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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과 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들!
3. 거듭남과 성화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오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거듭난 것은 오직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6). 또 그것에 근거해서 영만 거듭나고 혼은 거듭나지 않았으며 혼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몇몇 성구들 때문에 이것은 틀림없는 성경적인 진리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래도록 그렇게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다행히, 결정적으로 해롭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성경적으로 바르게 아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자세히 규명하고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1) 중생과 성화에 대한 오해,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말한 대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영만 거듭나고 혼은 거듭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3장 6절을 근거로 제시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또, 해긴 목사님은 영만 거듭나고 혼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혼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야고보서 1장 21절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왜냐하면 이 구절은 구원에 대한 것이지만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 하는 말이고, 여기서 "영혼"은 '프쉬케'로 '혼'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과 함께 해긴 목사님은 로마서 12장 1-2절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해긴 목사님은 이 구절들이 우리 영은 거듭났지만, 혼과 육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혼과 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십니다. 우리가 우리 몸과 혼에 무엇인가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은 다음 성구와 함께 읽으면 그 뜻이 매우 선명해집니다.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처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은 몸으로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해긴 목사님은 이것이 '혼의 구원'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크게 해롭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구원파와 유사한 생각을 갖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죄 가운데 살면서도 이런 착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믿고 거듭난 사람이지만, 단지 혼이 변화가 안 되었을 뿐이야. 비록 혼의 구원은 아직 못 이루었지만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고 반드시 천국에 가!'
저는 『승리하는 교회』에 나오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다음 글을 읽고 실제로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은 지 오래 되었지만 그들의 혼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혼은 전혀 변화받지 못한 채 그것 때문에 마귀에게 시달림당하며 살다가 그런 상태로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그들의 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지 않았고, 회복되지 않았고, 온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마귀의 공격에 성공적으로 대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았다고 그들이 죽을 때 천국을 가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물론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속한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마귀에게 승리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승리를 누릴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사람들이 죄 가운데 살면서도 '나는 혼의 구원을 이루지 못해서 말씀대로 못 살 뿐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야'라고만 생각한다면,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들이라는 말과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구원받았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모두 물거품이 됩니다. 저는 이 견해가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가 됩니다.
또한,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는 말씀도 그 의미가 퇴색됩니다. 요한일서에 나오는 거듭남의 증거들에 대한 말씀들이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거듭 그 열매들이 혼의 구원의 결과가 아니라 거듭난 자의 특징 즉 거듭남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혼의 구원에 대한 해긴 목사님의 주장은 성경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2) 성경이 말하는 중생과 성화 그리고 성화의 비결!
저는 중생과 성화에 대한 해긴 목사님의 견해를 간단히 소개하고, 그것은 성경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생과 성화 그리고 성화의 비결에 대한 성경적인 온전한 진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해서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정말 영만 거듭나는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거듭날 때 영만 거듭난다고 믿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 구절에 의하면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타락으로 인해 부패하고 왜곡되었던 인성의 모든 부분이 새롭게 되는 것을 포함하며, 여기에는 마음도 포함된다."
이처럼 해긴 목사님이 혼의 구원으로 생각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에 나오는 "마음"도 거듭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둘 중 누가 옳을까요? 존 스토트가 옳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헬라어로 영은 '프뉴마'입니다. 이 단어는 성령이나 천사나 귀신에게 사용될 때는 문자 그대로 영을 뜻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상대로 쓰일 때는 영과 혼이 같이 나올 때만 주로 영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살전5:23, 히4:12). 그 외에는, 대부분 영과 혼이 서로 교호적으로 사용되었고 영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것이 혼의 더러운 것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은 괜찮다는 뜻일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혼도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영"은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영과 혼)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혼이 떠났다. 영이 떠났다' 또는 '혼이 돌아왔다. 영이 돌아왔다'는 표현이 많습니다. 이것들도 문자 그대로 영 혹은 혼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임종 때 영 혹은 혼만 떠나는 일은 없기 때문에 둘 다 영혼(영과 혼)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6절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문자만 보면 영만 거듭나는 것으로 보이나, 용례에 따르면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 점을 캐치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영만 거듭난다는 뜻으로 오해하신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 어떻습니까? 제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면서도 '그래도 성경에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렇게 분명히 명시가 되어 있는데 정말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지워버리기가 힘드시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듭날 때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더 많은 증거들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은 거듭남에 대한 굉장히 유명한 말씀인데, 거듭난 자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피조물"은 조물주가 만든 창조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창세기 2장 7절에 의하면 생혼이 되게 하셨고, 영과 혼이 결합해서 영혼으로 존재하는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영만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나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남은 육을 제외한 내적 존재 전체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만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거듭난 자를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난 영들"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영이 아니라 그 사람 즉 영혼이 거듭난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8 "바람의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계속 "사람"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8절에 보면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과 영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영이 거듭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영이 아니라 그 사람 즉 영혼이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또, 야고보는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여기서 "낳았다"는 것은 거듭남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이 아니라 "우리를" 혹은 "너희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역시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3장 6절을 제외하고, 그 전과 후에 계속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단지 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도 거듭날 때 영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좀 더 나아가볼까요? 만약 영만 거듭난다면 혼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혼은 구원받지 못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믿을 때 영뿐 아니라 혼도 구원받는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야고보서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베드로전서 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절들에 나오는 "영혼"은 "프쉬케"로 모두 혼입니다. 모두 우리가 믿을 때 영뿐 아니라 혼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영만 거듭날 수 없는지 아십니까? 사람의 혼에는 지정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 감정, 의지의 변화 없이 거듭날 수 있을까요? 사람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거듭납니다. 그런데 회개와 믿음 모두 지식, 감정, 의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영의 일이 아닙니다. 지정의가 동원된 혼의 작업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려면 자기 죄를 깨달아야 하고(지), 죄 때문에 애통해야 하고(정), 죄를 끊어버리기로 결단해야 합니다(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진리를 듣고 이해하고(지), 복음에 나타난 그 사랑에 감동하여 주님을 사랑하고(정),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의). 둘 다 단지 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혼의 지정의가 동원되는 일입니다. 혼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을 때 영만 거듭나고 혼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놀랍게도 영이 거듭날 때 혼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혼도 거듭납니다. 성경에 그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3:7-10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새 사람"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이것은 거듭남과 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거듭난 자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지정의의 한 부분으로 혼의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거듭날 때 영뿐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이 거듭날 때 단지 영이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더 결정적인 증거들이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각각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거듭날 때 단지 영이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결정적인 증거는 새 언약에 대한 예언들입니다.
예레미야 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새 언약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33절의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에 대해 박윤선 박사님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을 거듭나게 하시는 구원운동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라는 말씀이 보여주듯이 처음 믿고 구원받을 때 일어나는 일을 예언한 것으로 그때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거듭남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에서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8: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10:16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그런데 제인 허지스는 8장 10절의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에 대해 "이러한 은총이 십자가 사건 이후의 모든 중생한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했고, 박윤선 박사님도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들이 진리로 거듭날 것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법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한다는 것은 의롭다 함과 죄 사함이 아니라 분명히 거듭남을 뜻합니다.
그런데 잘 들으십시오. "생각"이나 "마음"은 혼을 뜻하거나 혼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그 증거로, "마음"은 헬라어로 "카르디아"인데,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에서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도덕적 지적 생명의 자리, 감정과 열정의 자리(분노, 용기나 비겁,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미움 같은 것을 나타낸다), 생각이나 상상력의 자리, 의지와 결심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정의지요! 그러므로 혼을 포함합니다.
또, "생각"은 헬라어로 "디아노이아"라고 하며 "생각, 마음, 이해력"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에서는 '생각하는 능력, 이해력, 사유 의식'(Demor. Fr.), '정신, 영혼'을 뜻하며, 70인역본의 용법에서도 주로 '마음, 영혼, 의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브와 레바브의 역어로 사용되었습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Behm).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통해 우리는 단지 영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 36:24-27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것도 새 언약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26절에 보면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이 부분의 예언은 특별히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실시하시는 성령님께서, 먼저 그들을 거듭나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이 구절들의 예언내용이다."
그런데 "새 영"뿐 아니라 "새 마음"이 나옵니다. 여기서 영은 '루아흐'이고 마음은 "레브"라는 단어입니다. "레브"는 70인역본의 용법에서 주로 '마음, 영혼, 의지'를 뜻했습니다. 또, 혼을 뜻하는 "네페쉬"가 KJV에서 15회나 '마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령에 의해 거듭날 때 단지 영이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거듭날 때 단지 영이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약성경의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데, 바로 베드로전서 1장 22절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중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에 대한 해석이 양분됩니다. 이에 대해 웨인 그루뎀은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는 회심('진리를 순종함으로'가 '복음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면) 혹은 회심 후에 이어지는 도덕적 정결 차원의 성숙('진리를 순종함으로'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의미할 수 있기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후 그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후자를 지지했습니다.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는, 베드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회심 후 도덕적 정결 차원의 성숙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주장들이다.
(1) 순종(휘파코에)은 신약성경에서 15회 등장하며, 명확하게 최초의 구원하는 믿음을 의미한 적이 없다.
(2) 베드로는 행위상의 순종에 대하여 2절과 14절에서 순종(휘파코에)을 사용한다.
(3) 깨끗하게 하다(하그니조)는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비유적으로 나타날 때, 회심 후에 이어지는 도덕적 정화와 관련하여 사용된다(약4:8; 요일3:3).
(4) 문맥은 베드로전서 1:15에서의 거룩함에 대한 사도의 명령으로, 이는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깨끗하게 하는 순종이 그 명령에 대한 능동적 반응의 결과임을 시사한다.
(5) 이 '깨끗하게 함'은 독자들 스스로가 행한 어떤 것이지만(너희가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회심 시에 하나님이 최초로 그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실 때 능동적인 행위자가 되었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화의 점진적 사역 가운데서는 능동적이다(참조, 고후7:1; 약4:8; 요일3:3)."
어떻습니까? 상당히 그럴듯하지요! 그러나 "(1) 순종(휘파코에)은 신약성경에서 15회 등장하며, 명확하게 최초의 구원하는 믿음을 의미한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단적인 예로, 베드로는 순종을 단지 순종이 아니라 믿음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그리고 이곳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동의합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진리에 대한 순종은 복음의 주장들에 대한 최초의 굴복이다."(에드먼드 클라우니)
"우리는 복음의 말씀에 순종할 때, 정결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게 됩니다."(마이클 벤트리)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러 스스로 세상의 길이나 과거에 사람을 다루던 방식과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분사 '헤그니코테스'는 완료시제로 이들이 지금은 과거에 복음에 순종했기 때문에 구별된 지위 가운데 있음을 뜻한다."(캐런 H. 좁스)
"그리스도인에게 정결함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포함한다(cf. 고전 6:11). ... 성도들이 순종한 '진리'는 기독교의 복음이다(요14:16; 갈5:7; 엡1:13; 딤전4:3). 그들은 이 복음에 순종함으로 정결의 영역에 들어왔다."(오광만)
또 "(2) 베드로는 행위상의 순종에 대하여 2절과 14절에서 순종(휘파코에)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미 한 설명으로 충분히 답이 됩니다.
다음으로, "(3) 깨끗하게 하다(하그니조)는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비유적으로 나타날 때, 회심 후에 이어지는 도덕적 정화와 관련하여 사용된다(약4:8; 요일3:3)."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것은 토마스 슈라이너의 말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세 번째 주장은 결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문제는 다른 저자들이 거룩함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언급하기 위해서 다른 문맥에서 정결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여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4) 문맥은 베드로전서 1:15에서의 거룩함에 대한 사도의 명령으로, 이는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깨끗하게 하는 순종이 그 명령에 대한 능동적 반응의 결과임을 시사한다."고 했는데, 문맥이나 15절에서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를 순종함"이 회심 후의 순종을 뜻한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22-23절은 형제를 사랑해야 할 근거와 이유로 성도들이 이미 경험한 과거의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23절에 그 점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22절에서 언급한 "진리"가 복음을 뜻한다는 것도 이것을 뒷받침해줍니다.
마지막으로, "(5) 이 '깨끗하게 함'은 독자들 스스로가 행한 어떤 것이지만("너희가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회심 시에 하나님이 최초로 그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실 때 능돋적인 행위자가 되었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화의 점진적 사역 가운데서는 능동적이다(참조, 고후7:1; 약4:8; 요일3:3)."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만 신자가 능동적으로 한 일이고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는 그 결과로 보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물로 "하여"라는 단어가 수동이면 더 좋은데 능동입니다. 그러나 단지 "깨끗하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를 함께 받으면서 능동으로 썼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공동번역은 "하여"라는 단어를 능동이 아니라 수동으로 번역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져서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심으로 열렬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영어번역본들도 수동으로 번역한 성경이 많습니다. 더구나, 23절은 22절을 조금 다른 표현으로 재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겹쳐지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이 능동이 아니라 수동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결정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때문에 토마스 슈라이너는 웨인 그루뎀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썼습니다.
"이 단락(1:22-25)의 주제는 사랑하라는 권면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그 이유 또는 근거를 제공하는 두 개의 완료 분사와 묶여 있다. 첫 번재 분사는 제의와 정결의 언어를 사용하지만(22절), 두 번재 분사는 낳음과 아버지의 이미지를 사용한다(23절). CSB성경은 첫 번째 절을 '진리를 순종함으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였기 때문에'라고 번역한다. NRSV성경은 '이제 너희는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정결하게 하였다'라고 번역한다. 이 두 번역은 완료 분사 '정결하게 한'(헤그니코테스)을 회심으로 이해한다(개역개정.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분사의 완료시제는 이 견해를 뒷받침하며, 행동의 결과가 진행하고 있는 과거를 나타낸다. 더욱이 '진리를 순종함으로'는 아마도 복음의 진리를 말하는 것 같다. 신약에서 종종 복음은 진리로 정의된다. 우리는 이 구절을 '참된 순종'(형용사적 속격)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순종'(목적격적 속격)으로 이해해야 한다. '순종'은 다른 신약본문에서 회심을 묘사하며, 복음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롬1:5; 15:18; 16:19, 26). 이미 베드로가 1장 2절에서 순종을 말할 때 회심을 염두에 둔다(참조. 1:14). ... 신자들은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도록 그리고 구원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요청을 받는다(예. 행2:38; 3:19; 13:39; 16:31; 롬10:9). 그러므로 순종의 개념이 함께 사용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여러분, 동의가 되시지요! 그러므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는 거듭난 후의 순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진리를 믿고 받아들인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는 회심 후의 도덕적인 정결이 아니라 회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는 문구입니다. 그 의미를 더 파고들어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WBC주석에서 램지 마이클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정결과 순종을 연관시킨 것은 서두에 나온 베드로의 인사말을 상기시키는데, (특히 19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대한 성찰에 비추어 볼 때) 독자들의 영혼의 정결이 원칙적으로 '예수의 피 뿌림'(2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참조. Brn. 5.1:8.1)."
참고로, 베드로전서 1장 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때문에 2절과 22절의 "순종"이 같은 것이라고 가정할 때, 영락없이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피 뿌림을 얻는 것 즉 19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은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19절은 단지 죄 사함이 아니라 중생까지 포함하는 표현이므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WBC주석을 읽고 처음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의 기초 위에서 연구하고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2절과 22절의 "순종"이 같은 뜻일 때 성립이 되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2절의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을 뜻하고, 22절의 "진리를 순종함으로"는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다른 내용입니다.
저도 많은 학자들이 2절의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을 성전이나 성전기명들처럼 거룩하게 사용하라고 구별된 성별로 이해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들은 또 그런 의미에서 신자를 "성도"라고 부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전부터 그런 해석이 의심스러웠고 회의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믿는 자를 성도로 부르시고 구별하는 일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나옵니다.
로마서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바로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 성별을 뜻할 수 없습니다.
또, 구별만 한다고 과연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뒤의 순종을 실제 순종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으므로) 또한, 성령이 단지 구별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를 따라 그것을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예언(겔36:27)과 로마서 8장(1-14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실제로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게다가, 그 뒤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에 비추어 볼 때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은 분명 회심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스캇 맥나이트는 매우 중요한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중적인 신학은 성화가 회심과 칭의 이후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즉 첫 번째가 칭의이고 다음으로 삶 전체와 영광 안으로 그 또는 그녀가 성화된다. 이것은 성화의 성경적인 이해가 아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대한 세 가지 특징을 언급한다. 처음에 죄로부터 분리(1:2에서 분명하다. 참조. 행20:32; 26:18; 고전1:2, 30; 6:11; 살후2:13), 삶 전반에 걸친 거룩함의 성장을 위한 고군분투(롬8:13; 고후3:18; 7:1; 살전5:23; 히12:10, 14),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백성을 영원토록 완전히 거룩하게 만드실 때 최종적인 하나님의 행위이다(엡5:25-27). 그렇다면, 베드로는 여기서 거의 오로지 우리의 성화의 첫 번째 영역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죄인들을 그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처음 믿을 때 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가 무엇이겠습니까? 거듭남 아닙니까? 말을 바꾸어 베드로의 표현에 입각해서, 회심할 때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순종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거듭남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 단지 성별이 아니라 거듭남이거나 적어도 거듭남을 포함한다고 믿어왔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거룩"을 성별로 이해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연이어 나오는 "순종"을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구별된 후에 믿게 됩니까? 성도가 되었다는 말 자체가 구별되었다는 뜻이므로 믿고 난 후에 성도가 되고 구별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래서 더욱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 단지 성별이 아니라 거듭남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2절에 근거해서 순종 다음에 피 뿌림이 나오니 22절의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도 죄 사함 받은 것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한편, 정확한 성경해석은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에 대한 해석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상반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여기에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나온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과 똑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그 직후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베드로전서 1장 2절의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을 성령이 우리를 성별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그 뒤에 나오는 "순종"을 복음을 믿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 이 순서와 일치하므로 그 해석이 옳은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 성별을 뜻할 수 없다는 것은 앞에서 한 설명을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왜 믿음으로 거듭나는 건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 앞에 나오고 그 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신다"고 했는가? 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여러분, 믿어야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나온 것처럼 성령이 주어지고 그로 인해 거듭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진리를 믿는 믿음" 앞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예정을 따라 우리를 성별한 것으로 보아야 되지 않느냐? 라는 반론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구절을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그 답을 그 앞에 나오는 9-12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으로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데 마지막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될까요? 그 이유가 11-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선, 거짓 것에 미혹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부터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미혹을 그들에게 보내사"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하나님께서 유기한(버린) 자들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13절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유기된 자들과 반대되는 택한 자들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실제로 개역개정에는 없지만 원어에는 13절이 "그러나"(데)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12절에 나오는 미혹되는 자들의 특징과 반대되는 특징을 쓴 것입니다. 즉, 13절의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은 12절의 "불의를 좋아하는"과 반대되고, 13절의 "진리를 믿음으로"는 12절의 "진리를 믿지 않고"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12절의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거듭남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어정쩡한 성별이 아니라 거듭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믿어야 성령이 임하고 거듭나는데, 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 "진리를 믿는 믿음" 앞에 나오느냐? 라는 위문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답해드리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강조입니다! 바울은 9-12절에 나오는 사람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미혹되어 거짓 것을 믿다가 심판받고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미혹되어 거짓 것을 믿고 진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좋아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와 이유이고 가장 강조되고 있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13절에서 먼저 불의를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즉 성령으로 거듭나서 거룩산 삶을 살게 되는 것을 강조하고, 그다음 12절에서 불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덜 강조된 "진리를 믿지 않고"와 반대되는 "진리를 믿음으로"를 쓴 것입니다. 이것이 일이 발생하는 순서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이유를 강조한 것부터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이 거듭남이 아니라 성별을 뜻한다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절에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가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22절의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죄 사함을 뜻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저는 22절의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죄 사함이 아니라 거듭남을 뜻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디도서 3장 5절에 보면 "중생의 씻음"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WBC주석에서 윌리엄 바운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은 신자들을 중생으로 깨끗케 하고, 그들을 새롭게 하심으로 채운다. ... 회심은 부정적으로는 깨끗케 하고(씻음), 긍정적으로는 성령에 의한 새롭게 하심을 이룬다."
톰 라이트도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서 그가 '거듭남'과 관련하여 주요하게 말하는 점은,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이전에 우리를 오염시켰던 모든 것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는 표현과 잘 어울리지요! 때문에 저는 이것이 거듭남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22절과 23절을 비교해 볼 때 23절의 "너희가 거듭난 것은"이 22절에서 이미 언급한 것을 다른 말로 반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23절 문자 그대로 거듭남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입니다.
또한, 22절에서 베드로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라고 한 것도 이것이 거듭남을 뜻한다는 것을 뒷받침해줍니다. 왜냐하면 요한일서에 따르면 형제 사랑은 거듭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9-10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때문에 저는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거듭남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저처럼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거듭남을 뜻한다고 보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먼저, 박창환 교수님과 김경희 교수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일반적이 여러 진리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복음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새 사람'이 되면서 마음과 정신과 생각이 순수해져서 가식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새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볼 때 거듭남을 뜻한다고 본 것이 분명하지요!
또, 이상근 박사님도 이렇게 썼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함으로 자신의 영혼이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진리로 거듭난 자만이 참된 자기를 알고 남을 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
또한, 박윤선 박사님도 이렇게 썼습니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믿는 형제들을 사랑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이 뜨겁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들의 영적 생명 구조에서 찾아냈다. 첫째, 그들의 영혼이 중생하여 순결하여졌으니(22절), 이것은 사랑을 거짓 없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이요, 둘째 그들을 중생시킨 생명 있는 복음의 말씀이 그들에게 내재하니, 그것도 사랑을 열렬하게 할 가능성이다."
마지막으로, 채영삼 교수님도 이렇게 썼습니다.
"흥미롭게도, 2절에 나타나는 거듭남, 그리스도의 사역, 복음을 들음/순종, 성령의 역사 등의 모티브들은 22절에서 새롭게 반복된다. 22절에서 '진리를 순종함으로 거룩하여진'이라는 표현은, 2-3절에서처럼 중생을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역사한 결과로 다시 설명하는 대목이다. ... 그러므로 22절은, 앞의 2-3절에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일어난 거듭남을 다시 한번 설명한 본문이다."
그러므로 잘 들으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것처럼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는 거듭남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문구에 사용된 "영혼"이 원어로 "프쉬케" 즉 혼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날 때 단지 영만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혼도 거듭나는 것입니다.
한편, 이 외에도 거듭날 때 영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혼도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요한복음 3장 6절입니다. 완전히 반전이지요! 그 구절에 나오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에서 육을 통해서 태어나는 육은 부모의 육신과 똑같은 육신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에서도 영(성령님)을 통해서 태어나는 영은 성령님과 똑같은 구조를 가진 영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낳을 때 항상 같은 것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과 혼 시리즈 설교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고 짐승은 혼이 있고 사람에게는 영과 혼이 있는데, 짐승의 혼은 영의 한 조각이기 때문에 사람의 영과 혼을 합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과 같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영과 혼을 합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과 같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영과 혼을 합한 것이 바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성령님(영)과 구조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라는 말씀은 단지 '영만 거듭났다'는 뜻일 수 없습니다. 영과 혼 즉 영혼이 거듭났다는 뜻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거듭날 때 영만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거듭날 때 영만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거듭납니다. 이에 대해 H. A. 아이언사이드 박사는 "죽음 그 후에는"이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영혼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의지할 때, 전에는 멸망과 영적 파산 가운데 있었던 그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게 되며, 모든 부분에서 이 생명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각성된 영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며, 그 사람은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졌습니다. ... 영은 이제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과 영적인 것들을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말씀에 의한 분별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혼도 구원받았습니다. 그 감정과 정서도 깨끗케 되었고, 그 마음의 갈망과 원함도 이제는 악하고 세속적인 것에서 돌이켜, 거룩하고 천국에 속한 것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몸만이 변화되지 않은 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 그렇지만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주께서 우리의 낮고 천한 몸을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케 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웨인 그루뎀은 『조직신학(상)』권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의 전 인격이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엡2:1)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롬6:11) 여겨야 한다. 이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한 부분(영이라 불림)이 살아났다는 말이 아니라, 전 인격체로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의미이다(고후5:17)."
이것이 성경적인 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이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금 다른 말이지만, 거듭날 때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나는데, 왜 예수님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영만 거듭나는 것처럼 말씀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이미 설명해드린 영과 혼이라는 단어의 용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의 영과 혼을 합하면 하나님의 영과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기도 하고, '영 혼 육'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이런 차이가 있는 이유는, 사람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된 존재지만 '영'과 '혼'을 합하면 하나님의 '영'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이라고 해도 맞고, 영 혼 육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혼을 뺀 상태에서 영과 몸을 언급할 때 그것은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을 뜻한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요한복음 3장 6절이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이 거듭난다는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한 가지 예상반론을 더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할 때 성령에 의해 일어납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거듭남은 예수님의 부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런데 로마서 8장 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이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날 때 새 생명을 얻는 것은 영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영만 거듭나는 것 아니냐? 라는 의심이 다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 10절은 영이 새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에 자세히 설명해드린 것처럼, 신자의 몸은 죄 때문에 결국 죽지만, 신자의 영은 주님이 주시는 의 때문에 영생을 얻었고 멸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영에만 새 생명이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며, 영만 거듭난다는 견해와 무관한 구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