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열정을 소멸시키기위해
오직 창작에만 몰두하셨겠죠.
노벨상은 그저 상에 불과할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 [원본 메세지] ---------------------
전 정말 노벨문학상은 챙피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레오 톨스토이, 앙드레 말로,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하디, 죠셉 콘래드, 헨리 제임스, 안톤 체홉,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 D. 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폴 클로델, 로베르 뮤질,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레이엄 그린, 에즈라 파운드, R. M. 릴케, 폴 발레리, 니코스 카잔차키스, 쌩 텍쥐페리, 귄터 그라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뛰어난 문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유명한 사람들인데 말이져 (아! 권터 그라스는 빼겠습니다..
그는 20세기 마지막 노벨 문학상을 탔으니까여)
곰곰히 생각해보면 노벨 문학상은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평가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가 많이 아는 T.S 엘리엇, R 타고르, 헤르만 헤세, 펄벅,알베르 카뮈, 어니스트 헤밍웨이들은 노벨 문학상을 탄 사람들이지여..
철학자인 동시에 소설과 희곡을 썼던 1964년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수상을 거부함으로써 막대한 상금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20년 동안 프랑스 인이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하게 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하네여... 1976년 수상자인 솔 벨로우는 '그 상을 받은 무명 작가의 대열에 끼이기보다는 차라리 상을 받지 못한 거장들의 대열에 참여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고 솔 벨로우가 마지못해 수상을 승낙한 이유는 그 막대한 상금의 유혹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작가들이 수상을 승낙할 때 상금의 유혹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져..
그리고.. 1962년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은 노벨상 수상이 마치 살인 사건과 흡사하다면서 '하루 이틀 신문의 기사거리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다가 그 다음에는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노벨상이 일시적인 유행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기도 했고요.. 또한 1923년 수상자인 시인 예이츠는 노벨 문학상의 상금을 '스웨덴의 상여금'이라고 말함으로써 노골적인 비난을 숨기지 않았다고 하져..
더구나 노벨 문학상이 문학성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수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의 짐작을 더 분명히 해주는 증거가 여럿 있는데여 우선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운데에는 문학가가 아닌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루돌프 오이켄(1908년 수상), 앙리 베르그송(1927년 수상), 버트런트 러셀(1950년 수상), 장 폴 사르트르(1964년 수상)는 철학자이며, 테어도르 몸젠(1902년 수상)은 역사학자이고, 윈스턴 처칠(1953년 수상)은 역사학자이며 정치가(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영국의 현직 수상이었고)인 것이다. 이들의 작품이 얼마나 문학적인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이들보다 뛰어난 철학자나 역사학자가 수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 일컬어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겁니다...
물론 독자들이 알고 있지 못할 것이 분명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E. 욘손과 H. 마르틴손은 1974년에 공동으로 수상했는데, 그들은 단지 스웨덴 사람일뿐만 아니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아카데미)의 18명 종신 회원이었으며 이 해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에는 아무도 이들의 수상을 점치지 못했는데, 심사 과정에서 점점 유력한 후보자로 얘기되다가 마침내 높은 문학성을 인정받으면서 당당히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공동으로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스웨덴 언론마저도 이러한 처사에 대해 '그것은 당연히 영국의 그레이엄 그린이나 터키의 야사르 케말에게 돌아갔어야 마땅하다'라고 맹렬히 비난했으며, 이러한 사태로 말미암아 노벨 문학상이 내세우는 권위는 한층 더 실추하기에 이르렀져..
이와 같이 선진국들이 노벨 문학상을 독식하는 현상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 여론이 일게 된 것은 1960년대에 와서이며 이제 스웨덴의 한림원은 세계 여론의 눈치를 보게 되었으고, 그 결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아랍을 비롯한 소위 제3세계에도 수상자를 분배(?)해주는 호의를 베풀기에 이르렀습니다..
문학 외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일은 허다했습니다..
1960년도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말이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독일이 강세를 보이다가, 전쟁 이후에는 미국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 무엇을 보여주고 있겠습니까? 정치적으로 나라가 강성해지면 갑자기 좋은 문학자가 나온다는 증거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는데 말이져. 또한 사르트르의 수상 거부 이후에 20년 동안이나 프랑스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겠습니까? 사르트르 이후에 프랑스 문학이 갑작스레 퇴락했다는 증거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고여...
솔직히 유럽에만 거장 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등 수많은 아시아에도 거장들이 있는데.. 유럽만 노벨 문학상을 독식하다뇨...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스웨덴 한림원 창립 200주년인 1986년,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이자 문예학자인 키엘 에스프마르크는 <노벨 문학상>이라는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냈는데, 그는 심사위원들의 편견, 우둔함, 이기성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3분의 1이나 되는 작가들이 잘못 선정되었다고 묵묵히 인정한 바가 있지여..
마땅히 수상해야 할 작가 50내지 100명 정도가 수상하지 못한 비운을 맛봤으며, 첫 10년 동안에는 톨스토이 대신 센케비치를 선정하는 등 졸작을 선정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센케비치는 영화 쿼바디스 아시져 쿼바디스의 작가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후보자 선정 과정에 있어서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따지지 않고 어느 나라 작가에게 줄 것인가를 먼저 따진다고 추측된다. 가령 '이번에는 미국에 줘야 한다'는 원칙(?)이 서게 되면 그 다음에 가서야 미국 내에서 수상 후보로서 몇 사람을 꼽게 된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1930년 수상자인 미국의 싱클레어 루이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수상자가 결정되기 전부터 '이번에는 미국 작가의 차례다'라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고 있었고.. 결국 데오도어 드라이저와 루이스가 후보로 부각되다가, 루이스가 수상하게 되었져. 스웨덴 아카데미는 '루이스는 미국 상류사회의 유머를 그린 우수한 작가이며 그가 회의주의자이긴 하지만 드라이저의 운명주의보다는 노벨 문학상의 취지에 가깝기 때문에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던 것입니다..
1934년 스웨덴 아카데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이탈리아의 베네디토 크로체를 내정했었지만, 발표 직전에 루이지 피란델로로 교체하는 소동을 빚었습니다. 무솔리니 정권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크로체가 수상할 경우 혹시 파시즘의 보복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한 스웨덴 정부가 외압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의 사무국장 길렌튼은 1985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물론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들의 정치적 편견이 수상작을 결정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은 예컨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해도 파시스트에게는 상을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이 정치성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라고 변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작가의 인기와 유명도가 수상의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 발언은 곧 허위임이 드러나져. 그것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인 아투르 룬트비스트의 존재 때문이인데여.. 그는 좌파 시인으로 레닌 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으며 스웨덴 안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권위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1968년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는데, 현재 80이 넘은 고령으로 유난히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발언권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이 그의 개인적 견해에 의해 좌우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니까여. 실제로 그가 회원이 된 이후 미국과 유럽 수상자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으며, 그 대신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급진적 경향을 갖는 작가들이 수상자로 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현상에 대해 나눠주기식 수상이라는 비난도 적지 않고여..)
룬트비스트의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여..
그는 1980년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개인적 취향으로는 그레이엄 그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룬트비스트가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 있는 한 그레이엄 그린은 결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았고 그레이엄 그린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류급 작가로 평가되고 있었는데, 20년 넘게 해마다 노벨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를 뿐 정작 수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년 노벨 문학상 후보'라는 딱한 별명을 안게 되었으며, 결국 1991년 영원히 노벨상을 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룬트비스트는 또 다른 일화도 남기고 있습니다. 1985년 수상자인 끌로드 시몽은 1983년도에도 최종 후보까지 올라 영국의 윌리엄 골딩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다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룬트비스트는 최후까지 시몽을 지지해서, 심사가 끝난 후에도 '나는 골딩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공식 발언을 함으로써 심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노벨상 80년의 전통을 깨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져...
결국 끌로드 시몽은 룬트비스트의 후광을 입고 198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낯선 작가였으며 비슷한 계열의 '누보 로망' 작가인 알랭 로브그리예나 나탈리 샤로트보다 훨씬 덜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룬트비스트의 후광 아래 영예롭게도(?) 수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번역을 천시하고 있었습니다..물론 지금까지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져...
괴테도 <유사성>이라는 시에서, 번역이 마치 꽃을 꺾는 일과 같다고 말함으로써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생명력을 죽여버리는 일이라고 보면서도 동시에 훌륭한 번역은 그 꺾은 꽃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번역 행위의 의미를 평가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노벨 문학상 작품이 졸속 번역됨으로써...우리의 오역문화의 병폐를 기르는 온상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