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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길] 04
1. 차안. 밤.
운전중인 도우. 혜원은 맥주 마시면서.
혜원 : 굳이 뭘 데려다줘. 다시 갈거면 그냥 거기 있지. 기다릴 수 있었는데... (맥주 마신다) 아 맛있다.
도우 : (혜원의 맥주를 본다)
#3회 씬82.
쓱 맥주잔을 옆으로 밀어줬던 수아.
혜원 : 마지막잔이라 더 맛있네.
2. 1층 가게. 밤.
빈 잔 보고 있는 수아.
#수아 뒤로 들리는 혜원의 목소리 “도우씨”
무너질 것 같다. 옴짝달싹 못하겠는데,
뒤에서 현우가 일부러 소리 나게 의자를 올린다.
수아 : (돌아본다. 영업 끝났다) 죄송해요. 제가... (다리가 후들후들)
현우 : (계산대 쪽으로 가면서) 만이천원이요.
수아 : 아..네. (계산대 쪽으로 겨우 걸어가서 카드 꺼내 계산하는데)
현우 : (계산하고 카드 돌려주며) 안녕히 가시고.
수아 : (받는다. 손이 떨린다)
현우 : (떠는 거 보인다) 오늘 잊지 말아요. 뭔가 느꼈을 거 아닙니까. 그거 잊지 말라구요.
수아 : ?
현우 :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면 할 수 없고. 나도 잘 알고 하는 말은 아니니까.
수아 : (당혹. 이 사람 뭘 아는 건가) 오늘, 명심할게요.
현우 : (본다)
수아 : (바로 나간다)
3. 도우집 앞. 밤.
차에서 내리는 도우와 혜원.
혜원 : 이 차 타구 가.
도우 : 내 차 거기 있어.
혜원 : 이래저래 괜히 같이 왔네.
도우 : 들어가.
4. 1층 가게 앞. 밤.
힘없이 걸어 나오는 수아.
5. 도우동네. 밤.
급히 걸어 나오는 도우. 수아에게 전화를 건다.
6. 거리. 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흔드는 수아. 전화가 온다. ‘애니아빠’ 뜬다.
동시에 택시가 온다. 수아 앞에 멈춰 서고.
수아, 전화를 받을 것인가. 택시를 그냥 보낼 것인가. 고민 가게 쪽을 본다.
정리중인 현우가 보이고.
순간 #수아의 팔을 잡는 도우.
택시아저씨가 출발하려 하자, 서둘러 차문을 두드리는 수아.
7. 거리/ 택시 안. 밤.
길가로 걸어 나온 도우와 택시 안의 수아.
도우 : (전화 받는 소리. 다행이다) 어디에요?
수아 : 가는 중이에요.
도우 : 지금 볼 수 있어요?
수아 : (창밖으로 한강이 보인다) 저 지금 한강 건너요.
도우 : 아까(하려는데)
수아 : 그때... (#맥주잔 밀어주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잊지 않으려구요.
도우 : (천천히 걷는다)
수아 : 친구 분이 가르쳐줬어요. 잊지 말라구.
도우 :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요.
수아 : ...참 무섭고 슬프다.
도우 : (정지. 서 있는다)
수아 : (창문 연다. 바람이) 비행 간 낯선 도시에서의 삼사십 분. 산책 끝. 전화 끊을게요. (전화 바로 끊는다. 창밖을 보는)
8. 1층 가게 앞. 밤.
천천히 걸어가는 도우.
9. 1층 가게. 밤.
실내에 의자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고. 조명도 바 위로만. 어두컴컴한 실내.
수제맥주 제조중인 현우. 바에 앉아있는 도우.
현우 : 바람 피면 너 안 본다.
도우 :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리고. 몸을 살짝 뒤로 젖힌다)
현우 : 아줌마 아저씨 연애 지구 끝까지 반대야. (맥주 만들어 놓은 거 휘휘 저으며. 열중)
도우 : (현우가 저러는 이유를 안다)
현우 : (도우에게 맥주 한잔 내밀더니) 마셔봐.
도우 : 새로 만든 거야? (마신다) 좋은데.
현우 : 니가 니네 집에서 일 보던 ‘혜원씨’랑 사귄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니가 아까웠거든.
오래 널 봤지만. 너라는 애 선해. 깊고. 자기 주관 확실하고. 근데 자기애 강한 앤 또 죽어라 싫어해.
우리 주변에 지밖에 모르는 여자애들 투성이잖아. 내 눈엔 혜원씨 그중에 단연 탑이었는데....
도우 : ..은우.
현우 : (끄덕) 그래. 혜원씨 옆에.. 걔가 니 사랑을 받아도 되겠다.
너라는 인간의 우주 같은 사랑을, 저 아이라면 받아도 되겠다...
도우 : (그래서? 본다)
현우 : 니가 아까 그 여자한테 끌린다면...
도우 : (집중)
현우 : 그건 맥주를 양보했기 때문이야.
도우 : (실소가)
현우 : 눈 깜짝 할 사이에 누군 양보하고, 누군 한 치의 미안함 없이 냉큼 가져가고.
본능적인 반응. 서도우가 무섭게 잘 캐치하는 것들.
도우 : ...
현우 : 너두 잘 모르겠지? 지금 니 감정이 뭔지.
도우 : (피식) 알아. 모르긴 왜 몰라.
현우 : 안다. 그럼 끝난 거네.
도우 :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마저 마시고) 아는데... 어떻게 될진, 몰라.
10. 수아집. 밤.
-거실> 짐이 듬성듬성 빠져나간 집. 지저분하다. 청소하는 수아.
-효은방> 트렁크에 자신의 짐을 챙긴다. 승무원복도 넣고.
11. 2층 작업실. 밤.
어두운 조명. 의자에 앉아 창밖 야경을 바라보는 도우.
12. 수아집 앞/ 1층 가게 앞. 새벽.
-새벽에 집을 나서는 수아.
-비슷한 시간, 가게를 나서는 도우.
13. 영숙집. 새벽-아침.
문을 열어주는 효은.
효은 : (쉿! 조용) 왜케 늦었어? 얼마나 걱정했는데?
수아 : (트렁크 먼저 집어넣으며) 엄마 승무원복도 챙기구. 니것두 챙기구.
효은 : (가방 끌어서 안으로 넣으며 괜히 할머니 들으라는 듯) 집에 가서 짐 챙겨오느라 늦었구나! (반응이 없자) 주무시나봐.
수아 : ...
효은 : 내가 성질 좀 부렸다구 집을 나가냐.
수아 : (아닌데)
효은 : 알았어. 나두 양보. 메리이모 타령 안할게. 으이구.
수아 : (애잔. 빤히 보며) 엄마 좀 안아줘.
효은 : (안아준다)
수아 : (안기며)
14. 전경. 서울. 아침.
15. 효은방. 영숙집. 아침.
가방 싸는 효은.
효은 : 온다온다. 했거든. 엄마 안 올까봐.
수아 : (가방 싸는 거 도와주면서) 온다온다? 아...
16. 체육관입구. 숲. 낮. (회상)
수영복 입은 어린 효은(5살)을 수영장에 들여보내면서 손을 흔드는 수아.
수아 : (소리) 맞다. 예전에 너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었지.
17. 수영장. 낮. (회상)
효은, 수영장에 들어가자 좀 더 큰 여자아이가.
아이 : 너 뭐야.
효은 : ?
아이 : 우리 레슨이야. 나가! 들어오지마!
효은 : ?
18. 수영장-입구. 낮. (회상)
어린 효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윗옷을 꺼내서 입고는 출입구로 간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밖을 본다.
쏟아지는 햇살. 나무.
효은 : 온다. 온다. 엄마가 온다. 온다. 온다. (나간다)
19. 일각-체육관. 낮. (회상)
수아, 근처를 왔다갔다 하며 효은이 기다리다가 수영장 쪽으로 걷는데. 뭔가 발견!
효은이가 어느 차 본네트 위에 앉아서 두 손을 흔들고 있는 것.
수아, 식겁하고 달려간다.
수아 : 효은아! 너 왜 여기 있어? (재킷 지퍼 여며주고, 효은을 끌어안는다)
효은 : 엄마가 올 줄 알았어. 그래서 젤 눈에 띄는 데 있었어. 나 찾으라구.
수아 : 그렇다구! 클날려구! (얼른 안아준다)
20. 효은방. 영숙집. 아침.
학교 갈 옷으로 갈아입는 효은. 수아는 신발가방 옷걸이에서 빼주고.
수아 : 너만의 능력이야. 학교에서도 어디서도 힘들면 주문 외워. 된다된다. 한다한다. 온다온다.
효은 : 그래. 그럼. 된다된다된다.
수아 : 뭐가?
효은 : 축구부.
수아 : 축구부 있대?
효은 : (좀 생각하더니) 있다있다있다. 축구부 있다있다있다.
수아 : (듣더니)
#3회 씬81. 도우가 수아의 팔을 잡는.
수아 : (혼잣말) 아니다...아니다...아니다..
효은 : 뭐가 아냐.
수아 : 아냐.
21. 거실. 영숙집. 아침.
사과 하나 씻어서 속옷차림으로 편하게 우적우적 씹던 영숙. 수아가 방에서 나오자 서로 깜짝 놀란다.
수아 : (자동적으로 친절한 승무원 미소) 일어나셨습니까?
영숙 : (뜨악. 획 일어나서 안방으루)
수아 : 편하게 하셔두 돼요. 어머니.
잠시 후. 옷 갈아입고 나오는 영숙. 식탁에 앉으며.
영숙 : 어딜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니?
수아 : (면목이 없다)
효은 : (소리) 할머니! 엄마 짐 챙겨왔어요! 승무원복이랑 내꺼.
영숙 : 아... 그래. (사과 깨물고는 종이 내민다) 이것부터 봐라.
수아 : (앉는다)
영숙 : 정신없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써 놨다. 내가 규칙적으로 나가는 시간이니까, 여기에 맞춰서 니 동생 불러주고.
아무리 6개월이라도 생활비는 내야 하지 않겠니. 한 달에 월급형식으로 받고 싶으니까... 거기 보렴.
수아 : ? (힐끗 보니, 수아 월급의 70프로라고 되어 있다. 헉! 하지만 내색 않고)
효은 : (소리) 엄마! 내 축구화 못봤어?
수아 : (시선은 종이에) 신발장에!
효은 : (소리) 챙겨줘!
수아 : 어. (종이 보다가) 아침은 각자요?
영숙 : 난 아침에 (사과 흔들며) 과일만 먹는다.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구.
스케줄 보면 알겠지만, 효은이 학교 가는 시간에만 나갈 테니까... 두 번 있는 이 모임은 못 뺀다.
일주일에 한번 뭐 배우러 가는 게 있긴 한데. 건... 빼던가. 난 일일드라마 보고 바로 자니까. 그때만 좀 조용히 해주고.
수아 : (궁금) 뭐 배우세요?
영숙 : 지금까지 몰랐던 부분은 계속 모르자. 6개월. 그저 6개월.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6개월만.
수아 : (6개월 넘어가면 큰일 날 듯) 네.
영숙 : 비행스케줄 내일 나온댔나?
수아 : 네.
영숙 : 그럼 이박삼일 갔다가 이박삼일 쉬는 거니?
수아 : 지역마다 달라요. 오세아니아 지역만 아님 이박삼일에서 사박오일쯤.
중간중간 퀵턴이라고 잡혀요. 그날 갔다가 그날 오는 거니까...
영숙 : 퀵 같은 건 아예 잡지 말고.
수아 :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효은 : (나오면서) 할머니 (90도로)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현관 문 열고 나가서 수아 기다린다. 문도 잡아주고)
영숙 : (잉?) 집 나가서 며칠 안 들어오면 애 전교 1등하겠다.
효은 : (안 들리게. 치~)
수아 : (자리 뜨려는데)
영숙 : 이거! (월급부분 가리키며) 불만 없는 거지?
수아 : (신발장에서 축구화 챙기며) 70이라는 게 총액에서요?
영숙 : 다달이 나가는 거 제외하구. 내가 살림 한두 번 해보니?
수아 : 그러라면 그래야죠. (현관 문 연다)
영숙 : (뭔 대답이 저래?)
22. 효은학교 앞. 아침.
엄마 보란 듯이 씩씩하게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효은. 그런 효은이 고마운 수아, 계속 본다.
효은 : 된다된다된다.
수아 : (웃는다)
효은이 들어가는 거 보고, 돌아서서.
23. 구 애니방. 도우집. 아침.
싹 비워져있는 애니방.
납골당에 놓을 애니물건 챙기러 온 도우(검정양복)와 석(검정한복), 놀란다.
석 : (놀람. 버럭) 다 어디 갔어! 은우! 다 어디 갔냐구! 왜 싹 다 치웠어! 은우물건들 다 어디 간 거야?
도우 : (어떻게 된거지?)
24. 카페. 아침.
현주 : (주방에서 와플 담아서 가져오며) 비행 안가?
수아 : 가지 왜 안가. (와플에 생크림 듬뿍 얹더니 시럽까지) 단게 댕겨.
현주 : 피곤하겠지... 시어머니 모신 첫날 밤, 오죽하겠어. 보통 밤이야 어디.
수아 : ...
#3회 81씬. 손을 꽉 잡는 도우.
수아 : 하루하루 일이 너무 많아. 종류별루 쓰나미.
현주 : 미친년 널뛰듯이 사는 거지. (쯧쯧. 저 사정 잘 안다) 좀만 참아.
수아 : (핸드폰 문자 보여주며) 진석씨 매뉴얼. 학원이름두 없어. 그냥 ‘국영수 학원 알아보고 등록.’
현주 : 학원 알아보고 등록하는 게 일이지. 거 알음알음 캐내겠다고 우리 카페에 아침마다 아줌마들이 드글드글하잖아.
정보 얻고. 테스트날짜 받아서 애 스케줄 잡구. 일이다 일.
수아 : 비서가 따루 없네.
현주 : 노선을 정해.
수아 : ?
현주 : 비서를 하든가. 교육에 무심한 일하는 엄마를 하든가. ..이 동네두 애들 학원 안 돌리구 편하게 키우는 엄마들 꽤 돼.
수아 : 노선을 정한다. (음...) 난 앵커리지행으루.
현주 : (어쭈) 연어는 역시 앵커리지지.
수아 : (푸하하)
현주 : (푸하하) 옛날 생각난다. 두바이 사막! 너 거기 기억나?
수아 : 당근! (박수까지 치면서) 우리 둘만 거기 갔잖아! 왜 그랬지, 우리? 미쳤었나봐. 가면서 얼마나 무서웠어!
현주 : (감회에 젖어) ..어디선가 모래 바람 싹 불고...
#3회 씬77.
수아 : 어느 낯선 도시에서 잠깐, 삼사십 분 정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이 스르르 사라지구.
인생 뭐 별거 있나. 잠시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
수아 : ...맞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랬는데... 왜 관둬 가지구..
현주 : 셋째부터는 진짜, 죽어두 못하겠더라. 울 엄마, 시어머니 돌아가면서 애 봐주는데. (아고..)
내 비행스케줄만 예정대로 움직이지. 나머진 다 예외, 예외... 친정엄마 눈에야 일하고 결혼한 딸이 자랑스럽지. 애틋하구.
시어머니 눈에는 뭐랄까... 탐탁지 않은 잘난 여자? 불쌍하게 생각두 안해. 지 좋아서 하는 거라지.
다 내 몫. 나만 죽어나는 거지.
수아 : 그래서 관둔 거야?
현주 : 난 좀 웃겼던 게. 어느 날 집에 가는데, 어느 집 베란다에서 여자가 빨래를 툭툭 털면서 너는 거야.
#인서트>평화로운 오후. 어느 아파트 베란다에서 여자가 빨래를 툭툭 털어 넌다.
한가롭고, 정겨운 느낌의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씬한 실루엣의 여승무원 뒷모습.
현주 : (소리) 너무 평온해 보이는 거야.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그때서야 하늘두 보이구.
내가 왜 이러구 사나. 왜 이렇게 하루하루 미친년처럼 사나.
현주 : 그 날루 관뒀어.
수아 : (울컥)
현주 : 너 왜 그래..
수아 : 아니. 그러고도 관두는데... 하루 이틀 안게 뭐 대수라고.
현주 : ?
수아 : 아. 나 왜 이러냐. 스트레스 받았나. (손부채질)
현주 : 생크림 쳐바른 와플 더 줘?
수아 : (고개 절레절레. 손부채질) 십몇년 일하고도 그러는데... 뭐가...대수라고...
25. 카페 앞. 낮.
현주 : (입구에 서서) 힘들어두 일 관두지마! 효은이 금방 커!
수아 : (그저 미소) 고마워.
현주 : (가게로 들어간다)
수아 : (천천히 걸으며. 속으로 소리) 말하자.
26. 버스 안. 낮.
창밖을 보는 수아.
수아 : (소리) 가서 그 사람이 있으면... 시작도 없었지만 끝내겠다고 하자. 웃겠지. 황당해하겠지. 뭘 했다구.
그래두 말하자. 선을 긋자. 근데, 만약 갔는데... 갔는데... 없으면?
27. 1층 가게. 낮.
현우 : (들어오는 수아를 본다. 무표정) 어서오세요.
수아 : 위층에 제가 뭘 놓구 가서요.
현우 : (그냥 본다) 핑계삼아 들락날락.
수아 : (대꾸 없이 그냥 본다)
현우 : 도우 없어요.
수아 : 없구나. (자신도 모르게 안도)
현우 : (안도하는 표정 읽어내고)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있기를 기대하고, 없는 것에 안도하고. 뭔지, 참.
수아 : 핑계든 말든 진짜루 뭐 가지러 온거구. 있으면, 만약 있으면 할 말이 있긴 있었는데. 없으니까... 없음
현우 : 하늘의 뜻? 것두 핑계.
수아 : 보고 말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꼭 보고. (하다가 왜 내가 이 사람한테 주저리 변명이지)
현우 : 있으면 말하고. 없으면 관두고. 중대한 결심을 하고 온 건가.
수아 : (화들짝)
현우 : 확 해버리려고 할 때 해야 하는 건데. 아쉽네. 올라가서 가져가요. 환기시키느라 문 열어놨어요.
수아 : (뭐라고 반박도 못하고. 순순히 계단으로 올라가려다가) 앞서가지 마요. 불편해요.
현우 : (그래서? 그냥 본다)
수아 : (올라간다)
현우 : 결심했을 때 도와줘야지. (핸드폰으로 문자)
28. 2층 작업실. 낮.
작업실로 들어가는 수아.
도우가 없는 도우의 공간. 블라인드 내려져있는 어두컴컴한 실내.
천천히 들어간다. 도우에게 받은 선물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들고 나오려다가, 도우가 늘 앉는 의자를 본다.
29. 납골당. 낮.
고은희여사를 비롯 일가친척이 와서 묵념. 혜원도 있고. 석이도 있고. 도우도 있고.
혜원은 애니사진을 보지 않으려 시선을 자꾸 다른 쪽으로.
도우, 그런 혜원 눈치 채고.
30. 주차장. 납골당. 낮.
납골당에서 내려오는 도우의 일가친척(꽤 사람이 많다).
도우, 인사하면 사람들 차에 올라탄다. 혜원이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는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현우 : (문자소리) 그 아줌마 와 있다. 위층에.
도우 : (주변을 보다가. -#‘참 무섭고 슬프다’ 수아의 말- 하늘을 본다. 날씨 좋다)
31. 2층 작업실. 낮.
도우 의자에 앉아있던 수아. 문자가.
도우 : (문자소리) 아직 2층이에요?
수아 :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문자) 주신 선물을 또 놓고 가서. 지금 막 가요.
도우 : (문자소리) 블라인드 올려봐요. (지금부터 도우와 수아의 문자)
-블라인드를 올리자, 천천히 들어오는 햇살. 천천히 펼쳐지는 풍경.
감탄하는 수아.
도우 : (문자소리) 의자를 앞쪽으로 갖다 붙여서 앉아 봐요.
-수아, 창문 가까이 의자를 바짝 붙여서 앉아본다.
도우 : (문자소리)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경치가 보일 걸요. 하늘도 좋고. 삼사십분. 쉬었다 가요. 편하게.
수아 : (감동. 편안하게 탁 트인 풍경을 본다)
32. 주차장. 납골당. 낮.
-차가 한 대씩 한 대씩 떠나고.
-도우와 혜원은 일일이 인사한다.
수아 : (문자소리) 건축 쪽 일 하시나봐요.
33. 2층 작업실. 낮.
책상 위의 도면을 보는 수아. 도우가 그린 그림을 꼼꼼하게 본다.
도우가 쓰는 연필도 쥐어보고. 왔다갔다 하면서 도우의 공간을 구경.
수아 : (문자소리) 무슨 일 하는지 지금 처음 알았네요.
도우 : (문자소리) 뭐 또 궁금한 거 있음 물어봐요.
수아 : (중얼중얼) 혈액형은 뭐에요? 생년월일은요? 좋아하는 시간, 계절, 장소는 (하다가) 이걸 왜 물어봐...
34. 주차장. 납골당. 낮.
고은희여사는 뒷자리에 타있고 도우와 혜원이 고여사에게 인사.
전화를 받던 석이가 도우와 혜원 쪽으로.
석 : (어이없다) 이 전화는 뭐야? (혜원에게) 인테리어업체라는데 공사라니. 무슨 공사?
혜원 : (고여사 힐끗 보더니) 들어가세요, 어머님. (하고는 자신의 차 쪽으로)
석 : 뭐냐니까?!
혜원 : (고여사차 멀어지는 것 볼 뿐)
도우 : (걸어가며 의아. 혜원 본다)
혜원 : 애니방, 제 서재로 바꾸려구요. 내일 당장 공사에요. 것두 석이씨한테 일일이 컨펌받아야 해요?
석 : (입모양은 쌍욕)
혜원 : 다 들려요.
석 : 뭔 말을 했다구.
혜원 : 한 듯 쩌렁쩌렁 들립니다. 도우씨 나 약속시간 늦어. 가자.
도우 : 공사라는 건 뭐야. 나도 첨 듣는 얘긴데.
혜원 : 서재 한다고 했잖아.
석 : 그럼 가구 몇 개만 들고 나가면 되는걸. 공사는 뭐냐구.
혜원 : 흔적도 남기기 싫어요. ...내 앞에서 애니 얘긴 꺼내지도 못하게.
도우 : (! 그렇게 설득을 했는데. 또?)
석 : 혜원씨. 그럼 다 사라져? 애니라는 애가 사라지나? 머릿속에서두? 뭘 다 없애려구 난리야?
혜원 : 친엄마 외에는 애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 없어요. 앞으로 말조심해요.
석 : (헉)
도우 : (혜원을 의아하게 본다)
35. 차안. 낮.
운전중인 도우. 보조석에서 침묵으로 창밖만 보는 혜원.
혜원 : 항상 나 못마땅해 했어. 처음부터 죽.
도우 : ...
혜원 : 나도 이젠 안 참아. 그러기 싫어. 담아두는 것도 다 싫어.
도우 : ...
36. 거리/ 홍갤러리 앞. 낮.
가다가 작업실 건물을 스치는 도우. 분명 저기에 수아가 있을 텐데.
홍갤러리 앞에 선다.
혜원 : (문 닫으려다 말고, 아까 말한 거 신경 쓰인다) 친엄마 어쩌구 한거. 민석씨한테 한소리야. 새겨듣지 마.
도우 : (핵심은 그게 아니다. 애니로 자꾸 석이를 공격하는 기분) 나는 상관없고. 석이형, 나한텐 친형 같은 사람이야. 존중해줘.
(내리면서) 차 놓구 갈게.
37. 홍갤러리. 낮.
허겁지겁 들어오는 혜원.
혜원 : 늦었지. 미안. 일이 있어서.
현정 : (건넨다) 동남아 전시했던 거. 브로셔랑. 관련 기사들. 거기서 보내왔어. 반응 좋았다구. 홍관장님도 대만족.
혜원 : (뿌듯하게 본다)
전시장 사진들(도우. 애니가 갔었던 그 전시다)
현정 : 이 작품 그대루 네덜란드도 갈 것 같은데.
혜원 : 평수는 그대루구?
현정 : 더 넓어진다는 얘기가 있어.
혜원 : 해볼 만하지..
현정 : 홍관장님이 이번에 깨달은 게 쫌 있나보던데.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
혜원 : 원래 안목은 있는 분이시잖아.
현정 : 마음은 있었지. 티를 못냈지. (서랍에서 명함 찾으며) 지은씨 와서 징징거리다 갔다.
혜원 : 걘 또 왜.
현정 : 엄마한테 떼쓰는 거지. 회사 계속 하게 해줄까, 싶어서 그냥 일이년 봐준 줄 모르구.
어려운 거 모르고 자란 애들이 그렇지 뭐.
혜원 : 홍관장님 지원 끊는다는 얘기네..
현정 : (앗. 실수로 발설) 얘기 안했나?
혜원 : 지금 했음 됐지. 수고. (가는)
38. 거리. 낮.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가게로 향하는 도우.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
39. 2층 작업실. 낮.
책상 위에 놓여있는 (건축)미니어처를 신기한 듯 보는 수아.
40. 2층 작업실/ 거리. 낮.
작업실의 수아와 길 위의 도우, 통화중.
도우 : 현우가 먼저 아래서 가게 냈고 그 위로 저랑 친구 지은이랑 몇몇 친구들이 만든 작업실? 비슷한 거.
수아 : (도우 책상을 이리저리 본다. 작은빗자루, 연필깎이. 아이디어를 적은 노트 펼쳐져있고, 트레이싱페이퍼들 굴러다니고.
옆에 조그만 램프. 노트에 그려진 도우의 그림. 보다가 피식. 연필을 만져본다) 연필루 작업하나봐요..
도우 : 주로 컴퓨터로 하죠.
수아 : (연필 집어서. 이리저리 잡아본다. 문구류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재밌는 게 많네요.
(그 옆으로 연필 깎은 흔적이) 직접 연필 깎아요? 칼루? (연필깎이 본다) 연필깎이 있는데..
도우 : 기계는 주로 색연필 깎는데 쓰구. 연필은 뭐 생각하다보면 깎구 있더라구요... 그게 신기해요?
수아 : 오랜만에 봐서요. 나도 이거 잘했는데..
(편안하게 여기저기 보다가) 이렇게 얘기만 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요. 그냥 얘기만...
도우 : (천천히 걷는다) 얘기만요? 그게 편하면 그러든가.
수아 : 그래줄 수 있어요? 전화만 하구. 보는 건... 피차 뭐 바쁘구 하니까.
도우 : 얼마나요? 몇 달?
수아 : 아니.. 주욱.
도우 : (웃음) 그런 사이도 있나? 평생 전화만 하는?
수아 : 애매하죠. (얼른 손에 든거 내려놓고) 가봐야겠어요. 사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오긴 왔는데.
도우 : (근처에 왔다. 일부러) 글루 갈까요?
수아 : 안돼요. 절대로 안돼요!
도우 : ? (멈칫)
수아 : 갑자기 와서 도우씨 있으면 어떻게 하고, 없으면 어떻게 하고... 제 나름대로 정해놓은 게 있어서.
도우 : 없으면요?
수아 : 없으면(말하려다가 회의실벽에 슬라이드 사진 발견! 어 저거?)
-도우, 거의 다 왔다. 가게가 보인다.
-수아, 어두컴컴한 회의실을 들여다본다.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슬라이드사진. 전시실 내부를 찍은 사진,
이것은? 말레이시아에서 본 전시실이다.
수아 : (들어가며) 여기 슬라이드사진요. 이거 말레이시아에 전시됐던 거 맞죠?
도우 : 맞아요.
수아 : 여기 효은이랑 가봤어요! (들여다보더니) 이 사진이 왜 여기에 있어요?
도우 : 우리 어머니작품이에요.
수아 : (놀람) 어머니요?
#1회 51씬.
수아 : (작품들 둘러보며) 여기 이게 다 뭐야?
효은 : 애니언니 할머니. 삼촌. 다 여깄댔어.
수아 : ? (고은희 작품이 눈앞에)
그때 봤던 고은희 작품이 눈앞에. 옥구슬이 달린 은희 작품이다.
#(순간!) 애니와 툭 부딪히고, 발치로 또르르 굴러오던 옥구슬!
#뛰어가는 애니의 뒷모습.
#승객명단에서 ‘서은우’.
수아 앞에 빈 비상구 좌석.
수아 : (떨린다) 애니 한국 이름이.... 따루 있었나요?
도우 : 은우요. 서은우.
수아 : (패닉) 제가 지금 통화하기가 조금 힘들어서. 저기...저.. 미안한데요. 제가 다시 전화를...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41. 계단. 낮.
헐레벌떡 계단을 내려가는 수아. 무릎이 꺾인다. 계단에 주저앉는다.
42. 1층 가게. 낮.
휘청거리며 가게를 가로지르는 수아.
의아한 듯 보는 현우.
현우 : 할 말 하시고 가셔야죠~
수아 : (나간다)
43. 1층 가게 앞. 낮.
가게를 나오는 수아. 이쪽으로 오는 도우가 보인다.
수아, 뒤돌아서 달린다. 달리다가 택시가 오자, 미친 듯이 잡아타고 간다.
황망하게 서 있는 도우. (영문을 모르겠는)
44. 공항버스정류장. 낮.
진석을 비롯해 케빈, 그리고 승무원들이 서로 인사.
혜진 : 앞으로 시드니행을 타야 보겠네요. 아쉬워요.
주현 : (의미심장하게 진석을 보며) 저희 마지막이기도 해서 뒷풀이 할 예정인데. 시간 되심 오세요.
진석 : (깍듯) 즐거운 시간들 되십쇼. (오는 버스 보더니) (케빈 보며) 다음 비행에서 보자구. (얼른 버스에 올라탄다)
주현 : (진석을 뚫어져라 본다)
45. 술집. 오후.
편안한 차림으로 들어오는 미진.
주현이 자리에서 손 흔든다.
미진 : (앉으면서) 내일 비행 없어?
주현 : 오늘 왔어요. 이미 좀 마셨는데. 같이 하실래요?
미진 : 한잔만. (주현 보니 취기가 도는 듯. 얘 위험한데)
주현 : 선배님들 보면 자기 관리가 대단하신 거 같아요.
비행 전날 무슨 일이 있어도 숙면 취하시고. 금주에. 몸매에. 체력에. 집중력에.
미진 : 자기관리 물어보려고 여까지 불러낸 건 아닌 거 같고.
주현 : 학교선배라곤 선배님밖에 없잖아요. 인생 상담 비슷한 거?
미진 : (촉이 오지만, 모르는 척)
주현 : (슬쩍) 2년 전에 시드니행이셨죠. 박기장님이랑 같이.
미진 : 응.
주현 : 저도 2개월 같이 비행했는데. (한숨 푸욱)
미진 : 왜. (대뜸) 잤니?
주현 : (헉) 아니에요, 그런 거. 그런 건 아닌데...
미진 : 근데 왜 그런 것처럼 분위길 풍겨?
주현 :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제가 좋아해요. 술 같이 몇 번 마시고. 잠만 안 잤지.
유사관계? (술 들이켜더니) 좀 얄미워요. 분명 저한테 관심 있어 했던 것 같은데. (고개 절레절레) 잘 모르겠어요.
미진 : 박기장 와이프 누군지 알지?
주현 : (끄덕)
미진 : (주현에게 술 따라주고는 다정하게) 너, 이뻐. 젊고. 인기 많을 거야. 편하게 만나도 되는 애들이랑 만나.
유부남들? 안정적이고 깔끔하고. 그거 다 너보다 나이 조금 많은 와이프들이 챙겨줘서 그래.
나이든 엄마가 챙겨주는 니 또래 애들이랑 비교가 되니. 게다가 승무원이 부인이야. 얼마나 잘 챙겼겠어.
주현 : 잠옷에 다림질까지. (피식)
미진 : 스릴만점인, 뺏고 싶은 사람. 그만 만나. 그거 습관 돼.
주현 : (이때다 싶은 듯) 선배님도 유사경험이? 그쵸. 박기장님이 그냥 뒀을 리 없어. 상습적이야, 아주.
우리 같이 박기장님 보내버릴까요?
미진 : 너(표정 확 바뀐다) 유사-라는 단어 참 잘 쓰네. 울 학교 애들이 말 어렵게 하는 거 참 좋아해. 잘난 척하고.
유사표현이 생각 안 나서 그런데, 쉽게 말할게. 야, 이 미친년아.
주현 : (놀람. 정신 확 든다)
미진 : 직장상사 남편을 건드려? 소문 조작에? 개망신 한번 제대로 당해볼래?
주현 : (허걱) 아니에요, 절대. 술만 마셨어요, 술만. 이렇게 고민 상담하고.
미진 : 뭔 일 있는 것처럼 떠들고 다니지마. 입조심해.
주현 : 네. 네. (근데 억울한지 입술 질끈)
미진 : (그 마음 아는 듯 술 한잔 따라준다)
46. 동현관. 수아아파트. 오후.
집으로 돌아가던 미진. 기장복의 진석을 보자, 멈칫.
진석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것 확인한 뒤.
미진 : 웬일이래 들이대는 여자를 마다하구. 정신 차렸거나, 아님 이틀만에 질렸거나. (입모양으로만) 개.쉐.끼.
47. 운동장. 오후.
천천히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수아. 멀리서 효은이 축구하는 것 본다.
‘어떡하냐...’ 주저앉는 수아. 동시에 “조심해!” 소리와 함께, 수아에게 강속구의 공이 파고든다.
얼떨결에 받아버린 수아. 몸이 뒤로 넘어간다.
남자아이 : 괜찮으세요!
효은 : (보더니) 괜찮아. 울엄마 운동신경 장난 아냐.
남자아이 : 안 괜찮은 거 같은데.
효은 : 엄마! 공 줘!
넘어진 채로, 공 안고 누워서 하늘을 보는 수아.
수아 : (중얼중얼) 싸다 싸... 맞아두 싸.. (하늘 본다) 하늘의 뜻...
48. 2층 작업실.
같은 시간. 의자에 앉아서 전화하던 도우. 수아 핸드폰이 꺼져 있다. 의자만 빙그르르.
49. 여기저기. 영숙집. 오후.
-주방> 난데없이 냉장고 안 행주로 닦고, 정리하고. 일부러 정신없이 일을 만들어서 하는 수아.
-화장대는 없고 화장대 의자만 보인다. 이것을 어디다 놓지? 들고 왔다갔다 우왕좌왕 하다가 멈칫.
#뛰어가는 애니의 뒷모습.
50. 베란다. 영숙집. 오후.
화장대 의자에 고개 푹 숙이고 앉아있는 수아.
51. 안방. 수아집/ 베란다. 영숙집. 오후.
진석 : (옷 갈아입다가 전화중) 집.
수아 : (베란다에 앉아) 일룬 안와요?
진석 : 피곤해.
수아 : 화장대는 거기 있죠?
진석 : (왔다갔다. 본다. 화장대만 있다) 어.
수아 : 됐어요. 의자만 옮겼더라구요.
진석 : 그게 다야?
수아 : ...
진석 : 난 확고해. 6개월, 그 동네서 난다긴다 하는 애들 모여있는 학원 보내서 레벨 만들어서
효은이 기숙가능한 국제학교 보내. 셋을 위한 거야. 누구 하날 위한 거 아니구.
수아 : ...
진석 : 이 침묵은 뭐야?
수아 : 그렇게 할게요.
진석 : (웬일이래? 항복? 화장대 열어서 이것저것 보다가. 옥구슬)
수아 : 쉬어요.
진석 : 여기 화장대 서랍에 이거 뭐야. 옥인가?
수아 : ...그냥 넣어둬요.
진석 : (서랍 닫는다)
52. 주방. 영숙집. 저녁.
김치냉장고를 열어본다. 맥주가 김치냉장고에 떡하니.
다시 냉장고를 열어본다. 이것저것 쌓여있지만 정리정돈 완벽. 네임택이 다 붙어있다.
영숙 : 이걸 왜 옮겨놨대. 헷갈리게...
수아 : (맥주 꺼내려 들어왔다가) 이름 다 붙여놨어요.
영숙 : 썬 김치도 김치다. 김치는 김치냉장고에. 너 저녁마다 맥주 마시니?
수아 : 네.
영숙 : ...너두 참. ‘아뇨’ 하질 못하냐?
수아 : 다시 옮겨놀게요.
영숙 : 둬라. 또 욱하면 집 나가게? 나두 오가다가 마시고. 맥주는 김치냉장고에 썬김치는 냉장고에. (끄덕)
수아 : ..
53. 베란다. 영숙집/ 거실. 미진집. 밤.
-화장대 의자에 앉아서 한강을 보는 수아. 맥주 한잔 들이켜며 통화중.
-미진은 소파에서.
수아 : 뭐해?
미진 : 기도 중. 내일 비행스케줄 나오잖아. 시드니만 가지 말아달라고.
수아 : 나두. 박기장이랑 비행 겹치면 골치 아파지거든.
미진 : 들어오다가 박기장 봤는데... 니들 뭐야. 별거야?
수아 : 주말부부쯤 될까. 우리 셋을 위한 거라네... 그런가부다.. 하는 거지.
미진 : 셋을 위해? 웃기네. 꿈에 그리던 싱글로 돌아갔구만. 얼마나 신날까? 기러기는 삭신이 늙는다구 죽어라 싫어해두
주말부부는 남자들 무지 좋아한다. 기본적인 살림은 지 손으루 하기 싫다는 거지.
자유와 게으름을 동시에 누리겠다는 거야.
수아 : 효은이 억지로 데려와서 생긴 일이니까 할 수 없지. 나도 불편하지만 며느리랑 사는 시어머니는 더하지.
미진 : VIP 손님이다 생각해. 너 잘하잖아.
수아 : 미진아. 나 아무래도 (하더니 맥주 한모금 마시고) 애니아빠...
미진 : 서도우? 왜. 아직두 연락해? 나두 같이 함 보자!
수아 : 아니... 그게 아니고. 애니라는 애. 죽기 직전에 본 거 같아.
미진 : 사고라며?
수아 : 응. 사고 직전. 비행 전에. 긴가민가했는데 걘거 같아.
미진 : (눕는다) 후... 기묘하네.
수아 : 기묘하기만 하니?
미진 : 그럼 뭐?
수아 : 왠지 내가 뭘 되게 잘못한 거 같아. 내가 그때 그 아이 말리지 않아서... 모든 게 줄줄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거 같구.
미진 : 왜 그딴 생각을 해? 그래서 지금 시댁서 VIP 손님을 모시고 산다구? 말두 안돼.
수아 :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미진 : 야. 너 울어? 많이 힘들어?
수아 : 아냐. 그냥... (꺼질 듯) 뭔가 굉장히 미안해. 그 아이한테.
54. 효은방. 영숙집. 밤.
잠자는 효은. 효은을 보는 수아.
수아 : (소리) 그때 내가 그 아이의 팔목을 잡았었다면 효은이는 지금 여기 없었을 테고.
55. 거실. 수아집. 밤.
맥주 마시며 혼자서 편하게 유럽축구중계 보는 진석.
수아 : (소리) 황당하게 구는 남편에게 당당히 화를 냈을 테고.
56. 2층 작업실. 밤.
핸드폰을 보는 도우, 수아에게서 연락이 없다.
57. 베란다. 영숙집. 밤.
몸을 웅크리고 야경 바라보는 수아.
#2회 씬66.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수아. 도우가 보인다.
수아 : (소리) 그리고. 그리고... 그 사람도 만나지 못했을 테고.
수아 : 그만. 여기까지.
수아 : (소리) 이젠 확실하다. 관두자. 관두자.
수아 : (눈 감으며) 관두자.
58. 도우집 전경. 아침.
59. 가옥-뒷마당. 도우집. 아침.
가옥에서 나오는 도우. 앞서 걷는 석을 따라간다.
도우 : 뭘 보여준다는 거야?
석 : 따라와..
뒷마당 쪽. 석이가 작업하는 나무들이 보이고.
그 사이에 대충 자리 잡고 앉는 석. 도우도 대충 자리 잡고 안는다.
석 : (커다란 가죽 가방을 열더니, 매듭이 달린 상자를 꺼낸다)
도우 : ?!
석 : 은우꺼. 내가 만들어준 상자잖아.
도우 : 이거... 내가 말레이시아서 가져온 건데.
석 : 내가 먼저 꼬불쳤지.
#도우서재.
-트렁크에서 이 상자를 꺼내는 석.
-(그 뒤에) 열려있는 트렁크를 뒤지는 혜원.
도우 : 애니 보물상자. (미소) 그대루야. (매듭을 푼다. 상자를 열어본다. 작은백자그릇(친부가 만들어준).
옷에 다는 천으로 된 작은 인형. 매듭공예소품들. 매듭단추. 자수손수건. 핸드폰 등.
*모두 다 훗날 애니의 스토리에 등장할 소품들입니다)
석 : (얼른 핸드폰 집는다) 이거! 은우가 미국 가기 전에 쓰던 거 맞지?
도우 : (끄덕)
60. 침실. 미진집. 아침.
침대 위 미진, 일어나자마자 바로 앉아서 얼른 노트북 켜고. 몸을 죽 피고, 스트레칭을 하는 듯 하더니 특이하게 기도하고.
항공사사이트에 로그인, 스케줄표를 본다. (승무원들이 제일 긴장하는 순간. 다음 스케줄을 확인)
‘기장 박진석’ 이름 보더니, 떨떠름.
미진 : 내가 승무원을 관둘 때가 오고 만 것인가.
61. 거실. 영숙집. 아침.
수아, 핸드폰을 앞에 놓고 경건하게 클릭. 눈을 감고, ‘제발. 제발’ 하고 누르는데. 스케줄표가 뜬다.
보더니, 경악!
62. 카페. 오전.
수아 앞에 창훈과 현주가 앉아있다. 현주는 케이크 흡입 중.
창훈 : 오클랜드행을 어떻게 바꿔. 이미 나온 건데.
현주 : 너 입장 곤란한 거 알구 일부러 그런거야. 분명해. 위에 마녀 몇 명 있어. 나이든 애 엄마들 치워버리는 마녀.
창훈 : 그런 게 어딨다구.
현주 : 수아야. 일단 그룹장한테 가봐. 내일 비행 뭐 있어?
수아 : 퀵턴요. 홍콩.
현주 :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웠네. 이건 의도적인 거라니까. 나도 얼마나 후달렸는데.
창훈 : (팔짱 낀다)
현주 : 그룹장한테 가서 다른 부사무장 중에 오클랜드행 원하는 사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혹시 지원자 있는지 물어봐. 그리고...
창훈 : 미안한데. 여보 잠깐! 뭐가 달라? 2박 3일 집 비우는 거나 7박 8일 집 비우는 거나.
현.수아 : (동시에) 다르지.(죠.)
63. 주방. 영숙집.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영숙, 진석, 수아.
영숙 : (기가 차다) 7박 8일. 나보고 효은이 키우라는 얘기네, 아주.
수아 : (죄지은 듯 고개 조아리고)
진석 : (아무 말 없이 팔짱 끼고)
영숙 : 내일은 쉰다고 해서 점심에 약속도 잡았는데.
수아 : 내일은 퀵턴이에요. 당일로 홍콩 갔다 오는 거라 새벽이면 와요.
영숙 : 오클랜드에 홍콩에. 니 직업 끝내준다. 그러고 어떻게 애 고등학교 보내고 대학 보내니?
내가 6개월만 해주기로 했으니까 열심히는 하는데.
진석 : ...
수아 : 내일은 동생 제아가 봐주기루 했으니까 점심 약속 가세요.
영숙 : 박기장님. 혹시 이런 거 미리 알고 효은이 데려다놓은 거 아닙니까?
진석 : (수아 본다) 대책 없이 데리고 온 사람 따루. 복장 터지는 사람 따루. 고생하는 사람 따루.
64. 주차장. 영숙집. 저녁.
진석은 차안 운전석에서. 수아는 밖에 서서.
진석 : 이제 슬슬 말레이시아서 애 들쳐 업고 온 게 후회가 되나?
수아 : ...
진석 : 방법은 하나야. 어머니한테 잘해.
수아 : 그건 어렵지 않아요. 어머님한테 만 번이라도 잘하고 고마워할 수 있어요.
제발 남 일 보듯이 ‘너 한번 어떻게 하나 보자.’ 그러지 좀 말라구요. 제발...
진석 : 난 자네의 그 ‘제발’이 아주 거슬려. 제발, 제발.
당당히 자네가 한 일에 책임져. 난 6개월 동안 내 플랜대로 살 거니까.
수아 : (헉) 그러십쇼. 시드니의 신사.
진석 : (어쭈?!)
수아 : (진석 뚫어지게 본다)
진석 : (횡~ 차 몰고 가버린다)
수아 : (거칠게 숨 몰아쉰다)
수아,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본다. 천천히 걸어가다가 동과 동 사이에 멈춰 선다.
한강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65. 핸드폰 수리센터. 저녁.
“충전 끝났습니다.” 하는 안내와 함께 애니 핸드폰을 받는 도우.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켜본다. 작동된다.
메시지를 찾아보니, 모두 삭제. 다른 전화번호도 모두 삭제되어 있다.
실망한 도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폴더로 들어가니, 사진이 수십 장 저장되어 있다.
66. 뒷마당. 도우집. 저녁.
도우와 석. 작업대 위, 태블릿으로 사진을 한장 한장 넘겨본다. 모두 들판. 들판. 들판.
석 : 이걸 왜 찍었지? 온통 들판, 들판. (아래 보더니) 도우야. 여기 날짜!
도우 : (날짜를 본다. 핸드폰 달력을 열어 날짜들을 체크해보니 모두 2주 건너 토요일이다) 이거...
석 : (옆에서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거기잖아?
67. 비지니스석. 기내. 다음날.
조인트 브리핑하는 진석이 보인다.
진석 : 오늘 시드니행 비행에 함께할 기장 박진석입니다. 부기장 케빈 오입니다.
둘 앞으로 새로운 팀. 승무원들이 인사.
맨 앞줄에 도도한 표정의 미진이 보인다. 그 옆으로 상협, 의욕에 찬 은주도 보인다.
68. 브리핑룸. 인천공항.
그룹장(사무장을 관리하는. 항시 미소 짓는 얼굴)과 승무원복의 수아. (*퀵턴을 위해)
그룹장 : 박사무장이 추천서 올린 거 봤어. 티오가 생기면 면접 연락 갈거야. 알잖아.
수아 : 오클랜드행 대체가능한 부사무장님 계신지 확인해주시면(하는데)
그룹장 : 수아야. 딱 너같이 바꿔 달라가 시작이야. 그러다가 관둔다고. 수순이야.
수아 : 아니에요. 관둘 상황까진 아니에요.
그룹장 : 관둘 상황은 뭐고 관둘 수 없는 상황은 뭔지. 지나고 나면 다 그게 그거야.
앞으로 봐라. 비행에, 집안일에, 애문제에. 동시다발로 일 터질 텐데. 슬슬 하나 둘, 걸러내야 하지 않을까?
수아 : 관두라는 말처럼 들려요.
그룹장 : 아냐. 어느 것 하나는 ‘나 몰라라’ 해야 니 일이 수월해진다구 격려하는 거야. (미소)
기내에 똥칠할 때까지 일한다며... 술김에 한 얘기였나? (그저 승무원 미소)
69. 복도. 인천공항.
트렁크 끌고 가는 수아. 도우와 앉았던 벤치가 보인다.
#텅 빈 공항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수아와 도우.
70. 일각. 인천공항.
둘이 앉았던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수아.
그때와 달리 분주하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승무원들. 인사하는 기장, 부기장.
수아 : (소리) 이게 선택의 문제인지, 참고 견디는 극복의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요. 어떡해야 할까요?
도우 : (소리) 잘 왔어요.
수아 : (옆을 본다. 아무도 없다)
수아, 핸드폰을 본다. 부재중 전화. ‘애니아빠.’ ‘애니아빠’ 이름을 ‘서도우’로 바꾼다. 그러다가 다시 ‘공항’으로 바꾼다.
문자 쓰는 수아. ‘당분간은 통화가 힘들 것 같습니다.’ 쓰다가 만다.
수아 : 묻지도 답하지도 중얼거리지도... 그 사람한텐 아무 것도 하지 말자...
그게 관두는 거다.
71. 메리집. 오후. <말레이시아>
경찰이 상자를 건네준다. 고맙다며 받아드는 메리.
사이. 식탁 위에서 상자를 열어본다.
애니 사망 당시의 옷, 핸드폰, 비취색의 팔찌(1회 씬88에서 도우가 수아 준 것과 같은), 가방(백팩) 등이 있다.
울컥하는 메리.
72. 시골길. 늦은 오후.
시골길로 들어서는 도우. (경기도 이천쯤. 도공들 작업실이 많은 곳 정도로)
작업실로 보이는 시골집 앞에서 차를 세우는 도우. 대문을 두드린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나온다(남수. 40).
73. 일각. 인천공항/ 영숙집 앞. 늦은 오후.
-출입구 쪽으로 가던 수아. 전화가 오자 정신이 번쩍. 받는다.
-현관 앞 왔다갔다. 초조하게 통화중인 영숙.
영숙 : 오늘 니 동생이 효은이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냐?
수아 : 네. 같이 운동하고 데려온다고 했는데.
영숙 : 근데 왜 안 오냐. 시간이 몇 신데 연락도 없구!
수아 : 네? 제가 동생한테 확인해볼게요. (얼른 전화 끊고 제아에게. 겁이 난다) 제아야!
제아 : (E) 누나!
수아 : 효은이랑 같이 있지?!
제아 : (E) 그게... 누나, 어떡하지?
수아 : (심장이 덜컹)
74. 거리. 늦은 오후.
제아 : (달리면서) 아니 내가 바보같이 누나 집으로 간거야. 다시 효은이 할머니네루 잽싸게 가긴 갔거든. 학교도 잘 찾아가구!
근데 애들 말에 의하면,
주변에 꼬마애들이 왁자지껄.
제아 : 옆 학교랑 축구경기가 있었는데. 거기루 우르르 몰려갔나봐.
수아 : (E) 걔 그 동네 몰라!
제아 : (꼬마한테) 걔가 효은이 맞아?
꼬마 : 맞아요. 박효은. 걔가 형들 축구하는데 뛰어들어서 혼났어요!
꼬마2 : 체육선생님이 박효은! 너 뭐야! 그랬어요.
75. 복도. 인천공항. 늦은 오후.
수아 : (어딘가에 기대어 주저앉는다. 하지만 말투는 최대한 침착하게) 제아야. 학교 근처로 다시 가봐. 분명히 있어.
수아 : (소리) 온다, 온다.
하는데, 문자가 온다.
벌떡 일어나는 수아.
도우 : (문자소리) 우연히 애니 핸드폰을 찾았어요. 그런데 알 수 없는 사진들이 있더라구요.
화면에는 온통 들판. 들판. 들판. 하지만 무시.
76. 거리. 늦은 오후.
제아 : (달려간다)
수아 : (E) 제일 높은 곳으로 가봐. 학교 근처 제일 높은 곳! 눈에 확 띄는 곳! 별일 없어. 걔 어린 애 아냐.!
#씬18.
어린 효은, 밖을 보며 ‘온다온다온다.’
제아 : (달려가다가 어떤 느낌에 뒤돌아본다)
77. 시골집. 늦은 오후.
문을 열고 나온 남수.
남수 : (본다)
도우 : 안녕하세요. 저, 애니 맨날 데려다주던.
남수 : (본다) 그 애, 미국 갔잖아요. 꽤 됐지?
도우 : 일이 생겨서요. 제가 애니아빠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수 : (탐탁지 않은 얼굴) 한 달에 한두 번 그 애 여기 올 때마다 당신이라는 사람, 왜 들어와보지도 않나... 했었는데.
이러구 얼굴 내미는 거 보니 뭔 일이 생겼구만.
도우 :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에 계신가요?
남수 : (망설이다 이내 결심한 듯) 들어와요.
78. 시골집 마당. 늦은 오후.
마당이 나오고, 도자기 굽는 가마가 보이고. 작업 중인 어지러운 풍경.
남수 : 늘 이렇게 들어와서 저 뒤로 나갔어요.
도우 : ?
남수 : 그 아이, 거기로 들어와서 저 뒷문으로 나갔다고.
도우 : ?
79. 시골집 앞. 낮. (과거. 회상)
활짝 웃으며 도우에게 손을 흔드는 애니.
애니 : 갔다 올게요. 한 시간 뒤에 일루 와요.
도우 : 더 만나두 돼.
애니 : 아니에요. 요즘 아빠가 작품 때문에 바빠. 방해만 돼. 다녀올게요!
도우 : (끄덕)
80. 시골집 마당. (과거/현재교차)
-작업중인 도예가들.(북적북적) 천천히 마당을 가로지르는 애니.
-같은 곳을 걸어가는 도우. 주변에는 기구들만.(사람은 없고. 고요한)
남수 : (소리) 여기서 친아빠 만나기루 했다구. 맨날 기다렸지. 약속날짜가 언제냐고 하면 온다구만 하구.
-애니, 뒷문으로 간다.
-뒷문을 여는 도우.
남수 : (소리) 그 애 아빠라는 사람, 애당초 없었어요.
-애니, 뒷문을 민다. 쏟아지는 햇살.
81. 들판. 늦은 오후. (현재)
문을 열고 나가 들판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는 도우. 애니 사진 속에 있던 들판이다.
도우, 이게 어떻게 된거지...? 혼돈.
82. 들판. 늦은 오후. (과거)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애니. 들판을 찍기도 하고, 가져온 책을 읽기도 한다.
어린효은 : (소리) 온다..온다..온다.
83. 거리. 늦은 오후.
“삼촌!” 소리에 돌아보는 제아.
효은이다. 어느 차 본네트 위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제아 : 저게 뒤질라구! (핸드폰으로) 누나 찾았어. 찾았어. (효은을 안아서 내려준다) 야! 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효은 : (방긋) 난 삼촌이 올 거라고 믿었어!
제아 : 이 동네엔 왜?!
효은 : (내려오면서) 축구하는 거 보니까 나도 뛰구 싶은데 못 뛰게 하잖아. 화나서 막 달렸더니 여기데. 다 비슷해 동네가.
제아 : 당장 핸드폰부터 사!
84. 거실. 메리집. 늦은 오후. <말레이시아>
메리, 애니의 핸드폰에서 통화목록을 죽 훑어본다. 마지막 기록이 ‘mom’이다.
85. 구 애니방. 도우집. 늦은 오후.
애니방에 큰 책상이 들어온다. 옆에 서서 보는 혜원.
86. 거실. 메리집. 늦은 오후. <말레이시아>
메리, 핸드폰의 사진폴더를 열어보니 공항 내부를 찍은 사진들. 하늘. 하늘. 하늘. ‘이게 뭐지?’
87. 일각. 인천공항/ 들판. 늦은 오후.
-안도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수아. 눈앞에 그때 그 에스컬레이터다.
#2회 씬66.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오는 수아 시점에서 보이는 도우.
수아 : (소리) 온다, 온다, 온다.
수아 : (다시 도우의 문자를 확인. 들판 사진들. 망설이다가 답신 보낸다)
-들판> 걸어가는 도우. 그 위로.
수아 : (문자소리) 애니는 기다린 거예요. 누군가 와주기를...
-공항> 수아, 눈앞의 에스컬레이터를 보며
수아 : (문자소리)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들판> 도우, 멈춰 선다.
#1회 씬29. 다리 위.
애니 :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공항>
수아 : (문자를 보낸 뒤 심호흡을 하는데, 바로 전화가 온다. 얼른 받는다)
도우 : (E) 제가 보여요?
수아 : (울컥) 기다린 거죠?
도우 : (E) 아마도.
수아 : (에스컬레이터 보며) 안 올 거 알면서 기다린 거예요. 맞죠.
도우 : (E) 지금 만날 수 있어요?
수아 : (심장이 쿵)
88. 들판. 해질 무렵.
들판 앞의 도우. 바람이 분다. 핸드폰 들고 허공에 말하듯.
도우 : 보고 싶어요.
거친 바람소리 위로.
수아 : (소리) 온다....온다....온다
-4회.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