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개봉되는 중국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의 무협영화 ‘영웅’이 2000년 여름 흥행에 크게 성공한 한국영화 ‘비천무’(김영준 감독·태원엔터테인먼트 제작)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차례의 시사회 결과 대다수의 한국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의 중요한 한 장면을 놓고 ‘비천무’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베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문제의 장면은 연인 사이인 비설(장완위)과 파검(량차오웨이)이 진나라 영정의 암살 여부를 놓고 의견충돌을 하던 끝에 칼을 뽑아들고 싸우고난 뒤의 결말이다. 천하제일의 무사인 파검이지만 비설을 워낙 사랑하는지라 결국 그는 비설의 칼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온몸으로 받는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과 파검의 큰 뜻을 깨달은 비설은 무릎을 꿇고 죽은 파검을 등 뒤에서 껴안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파검의 배에 꽂힌 칼을 자신의 배에 들어가도록 밀어넣어 자살한다.
한국영화 ‘비천무’는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을 맞은 설리(김희선)와 진하(신현준)의 슬픈 사랑이야기다. 비밀암살단 조직의 최고 무사 진하는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설리와 함께 도망간다. 그러나 설리는 적의 화살을 배에 맞고 죽는다. 진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적을 물리치고 설리를 등 뒤에서 끌어안고 통곡하다가 화살을 밀어 자신의 배를 관통시킨다. 죽은 연인을 따라 자살하는 설정이 칼과 화살이라는 도구만 다를 뿐 너무나 똑같다.
‘달마야 놀자’의 제작사 씨네월드의 정승혜 이사는 “‘영웅’이 워낙 화제작이라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력과 커다란 스케일에 놀라고 ‘비천무’랑 너무나 똑같은 한 장면 때문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 이 장면은 마지막 무명(리롄제)의 죽음신 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비천무’에서 진하가 설리를 따라 죽는 장면은 하이라이트다.
김영준 감독은 “‘영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주위에서 귀가 따갑도록 ‘비천무’의 하이라이트와 똑같다는 말을 들어 개봉되면 꼭 볼 생각이다”라며 “그러나 소문대로 똑같다고 하더라도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고 너그러운 자세를 보였다. 장이머우 감독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세계적 명성이 높은 감독이 우연이든 고의든 그의 영화를 흉내냈다는 것은 은근히 기분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홍콩의 제작사 에드코필름측은 한국측 수입사나 홍보사로 문제 장면의 스틸사진을 보내지 않아 더 의심을 샀다.
‘비천무’는 김희선의 오빠역을 맡은 정진영을 중국배우로 대신해서 찍은 ‘중국버전’이 2000년 겨울 현지 개봉돼 흥행에 크게 성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