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치현 화백 영정에 술 한잔 올립니다
이 재 천
김 화백은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데 나에게 깍듯이 형님이라고 존대한다. 그러나 그는 속이 꽉 차서 내가 형님같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라북도 미술대전 초대 작가이고 그라우 갤러리(서울)에서 개인전을 7회나 열은 상당히 알려진 중견 작가이다. 그는 불의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타협하지 않는 대쪽같은 성품이며 반면에 한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스러운 사람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포근한 고향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이 온다. 분홍빛이 많이 가미된 따뜻함도 특색이다. 미술계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15년전 군산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으면서부터 였다. 그때는 교직원들 절반 이상이 전주에서 통근을 하였다. 김 화백은 송천동에 살았고 나는 삼천동에 살았기 때문에 거리상 자주 만나는 관계가 아니었다. 거기다 인문고등학교라서 서로 바빠서 만날 시간이 더 없었다. 그런 중에도 몇 번 막걸리 집에서 만나 정담을 나누다보니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틈나는 데로 나를 미술실로 초대했다. 가서보면 항상 웃는 얼굴이고, 유모어가 많고, 분위기도 포근하였다. 자기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야한 그림을 내어놓고 같이 음담패설을 하며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퇴근길에 막걸리 집에서 만나곤 하였다. 그러다 인사발령으로 그는 전주 모 고등학교로 전출이 되어 만남이 뜸 해졌다. 마음은 있었으나 서로가 생활이 바빠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서로 아는 선생님들 애경사가 있을 때 만나면 그때를 회상하며 거나하게 취하곤 했다.
2005년 10월 어느날 예식장에서 하객으로 같이 만났는데 대장암 수술을 했다고 했다.(친척들 외에는 알리지 않았다함)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화백이 “형님 금년에 내 목표가 연말에 소주 반병 마시는 것이 제 목표네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못 마시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1년후 다른 곳에 암이 전이되어 2차 수술을 했다.
명예퇴직(2007년)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더니 좀 쉬고 싶어 그만두고 중앙동에 요양 할 겸해서 화랑을 냈으니 놀러오라고 했다. 한번 가서 본적이 있고, 뜸하다가 얼마 전에 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00형과 같이 화랑에 갔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건강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고풍스런 쌈밥집에서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하며 즐겼다. 그것이 내가 그를 본 마지막이었다.(2009.2월경)
00형으로부터 김 화백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몸이 오싹하며 절망스러웠다. 그 날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리 속이 김 화백으로 꽉차있었다.
그 날 밤 꿈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꿈에 김 화백의 화랑이 학교가 되여 내가 거기에 근무하는 교사로 변신해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김 화백이 옛날 무쇠로 된 장작 난로 앞에 등을 돌려가며 불을 쬐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그에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으니 00형이 술 한잔 하자고 해서 가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 이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심부름 갔던 아이가 돌아와 청주가 다 떨어져 그냥 왔다고 한다. 그럼 대신 막걸리라도 사오지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내가 직접 술을 사려 나갔다. 꿈속에서도 옛날에 갔었던 술집을 여기저기 다녀 봤지만 늦은 밤이라 술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초조했다. 그러다가 잠이 깨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반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다음 날 청주 한 병을 사들고 00형과 같이 장례예식장에 갔다. 김화백의 생전의 인품을 말해주듯 애도 객들이 많았다. 영정 앞에 어제 밤에 꿈에서 찾던 청주 한잔을 따라서 올렸다. 절을 하고 일어나 영정 사진을 보니 김 화백이 “형님 고마워요”라고 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제 꿈에서 갈급하게 술 사러 다녔던 초초했던 긴장감이 다 풀리는 듯 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김 화백의 영정 사진을 보니 좀 위로가 되며 숙명이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 화백이 가는 길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고, 우리도 그 길을 머지않아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나이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첫댓글 저는 김 화백을 한 번도 본 일은 없고 전시회에서 그의 그림을 감상한 일 뿐이었는데- 행복씨님의 글 읽고나니 그 분의 성품에 대해서 잘 알게되었습니다. 행복씨님은 참 대단한 분입니다. 망인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지극하였으면 그 분이 꿈에 나타났을까요- 그 꿈속에서 같이 술 한 잔 못마신 것이 마음에 걸려 청주 한 병을 사들고 그 분의 영정에 술을 올리다니요-
설마 하는사이 이별의 차가운 바람 불어와 꽃은지고...떠나보내고 나서야 한없이 나를 내어 주고싶은 마음을 어찌하오리까! 김화백의 영정에라도 술한잔 올려 그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주고싶은 심정이 가슴을 울립니다. 사람이 떠날때는 얼마나 철저하게 혼자인가? 얼마나 외로움에 떨었을까? 그런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그렇지만 김화백님은 떠나면서 결코 외롭지 않았으리라. 술한잔의 부피, 거기에는 사랑만이 가득했을테니까요. 온몸이 용암이었던 그분의 삶처럼 술한잔은 그렇게 뜨거웠으리라.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읽고..마음이...저도 제나이에 사랑하는사람들을 많이 보내야만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항상 생각해보지만..그리운이들을 두고가는자가슬플까 아님그리운이를 보내는자가슬플까...저 스스로는 사랑하는이들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너무 아플것같아 슬픔도 가슴에 묻고..또묻었습니다 술한잔 하고가려고 떠나지못했다는 꿈속대화는 두분의생전에 좋은관계를 가슴 뭉클함으로 전달이 되네요 청주한잔드시고 그리운사람들 얼굴봤으니 홀로가는 외로운길이지만...잘 가셨을거라생각됩니다 저도 뵌적은 없지만 진심으로 명복을빕니다
이 글을 읽다보니 교수님의 아파하시던 모습이 떠오름니다. 행복씨님께서도 많이 아프셨겠구나 짐작만 합니다.
우정은 때로 혈정보다 깊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정에 고개를 숙입니다.
가슴이 아픔니다. 화백님께 커피도 두 잔이나 대접을 받았는데 참으로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그 인자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히 안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