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외도
박문하
내 주택과 병원에 20여 평의 빈터가 있어서 이것을 이용할 겸 취미 삼아서 나는 몇 년 전부터 꿩, 금계, 오골계, 짜보, 메추리 등을 기르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에 꿩과 금계만 백여 수를 부화시켜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오골계, 짜보, 메추리알은 영약가가 높아서 가족들의 부식용에 쓰고 있다. 우리들처럼 가난한 나라에서는 취미생활도 소비성 일변도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꿩이나 금계 등을 기르른 취미는 생산성이 있어서 물질적인 손해도 보지 않고 또 나처럼 병원을 경영하는 의사들에게는 온종일 환자들 속에 갇혀서 우울해진 신경을 풀어주기도 하고, 환자들에게는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잠깐 동안이나마 즐거움을 줄 수가 있어서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의 이중 삼중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꿩이나 닭의 습성은 수컷 한 마리에 암컷 한 마리씩 짝을 지어 주어서는 수컷의 왕성한 정력에 암컷이 도저히 배겨나지를 못한다. 일부일처제도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만들어진 것이지 이러한 조류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대개 수컷 한 마리에 암컷 4,5마리씩을 한 울안에 넣어서 기르는 것이 그들의 습성에 가장 알맞고 또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좋다. 그런데 이러한 꿩이나 닭들의 일부다처의 습성이 내 아내에게는 몹시 비위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 이유인즉 커가는 집안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이다. 대학시절에 교육 심리학을 전공한 아내이게 때문에 걸핏하면 이러한 교육론을 들고 나서지만 그것은 아이들의 교육론을 핑게 삼아서 은근히 지난날의 내 행적을 공박하고 앞으로 내 처신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려는 아내의 약간 단수 높은 교육론임을 눈치 못 차릴 나도 아니었다.
이러한 아내의 꼬아진 심정도 풀어줄 겸 속죄의 뜻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부의 금술이 좋다는 원앙새를 한 쌍 구해서 키워볼까 하였는데 그 값이 자그마치 10만 원을 호가하니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궁리한 나머지에 친구 집에서 기르는 흰색 비둘기 한 쌍을 구했었다. 비둘기도 원앙새에 못지않게 날 때부터 한 쌍으로 태어나서 암수 사이에 금슬이 좋기로 모범적인 조류다. 내 집 정원의 푸른 잔디 위에서 이 한 쌍의 흰 비둘기가 짝을 지어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모이를 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평화와 행복을 상징하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런데 약 한 달이 지난 후에 이 행복한 한 쌍의 흰 비둘기들 앞에 뜻밖의 한 침입자가 나타났었다. 어느 날 회색의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었다. 아마 암컷인 모양으로 우리 집 흰 비둘기의 암컷과 그날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흰 비둘기의 수컷은 두 암컷의 싸움을 재미있는 듯이 보고만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그 싸움이 일단 휴전상태가 되더니 우리 집 흰 암비둘기가 알을 낳고 집안에 들어앉아서 알을 품기 시작하였다. 찬스가 나빴던 것이었다. 그날로 이 기회를 놓칠세라 흰 비둘기 수놈과 회색 암비둘기의 사랑의 랑데부가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나 자신이 죄를 짓는 듯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광경을 본 아내의 눈에는 쌍심지가 켜지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회색 암비둘기를 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회색 암비둘기도 그에 지지 않고 집요하게 날아들어 왔었다. 드디어 아내는 지쳐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체념한 듯 방으로 들어가면서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수컷은 모두 꼭 같구먼.”
비로소 아내도 자연과 생물의 위대한 법칙을 깨닫게 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