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양=소호금천' 이라는 등식은 아직 완성 된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추론의 단계에 있습니다.
소호금천은 우리민족과 연관이 있던 오제중 하나입니다. 김유신의 비문에도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軒轅之裔, 少昊之胤)는 구절이 보입니다.
우선 그렇게 추정하는 첫째 이유는 少昊라는 명칭이 '소태양'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昊자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지요.
대만의 학자 '원가'는 <<중국고대신화>>란 책을 펴냈는데요. 그 책에 따르면,
"하늘나라에 '황아'라는 베를 짜는 선녀가 있었습니다. 황아는 베를 짜다가 피곤할때면 은하수 근처 궁상(窮桑)이라는 나무에 놀러 갔는데, 백제(白帝)의 아들이라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 소년은 계명성(금성)이 었습니다. 둘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나왔는데 그가 바로 소호(少昊)입니다."
"소호는 동방의 바다로 가서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가 소호국입니다. 소호는 새를 신하로 삼아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제비, 까치, 종달새, 금계 네마리의 새가 춘하추동을 다스렸고, 이 네마리의 새들은 봉황에 의해서 다스려 졌습니다."
"동방을 다스리던 소호는 서방으로 돌아가면서 두 아들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중(重)과 해(咳)입니다. 중은 나중에 태호복희의 속신이 되어 목신(木神) 구망이 되고, 해는 소호의 속신 금신(金神) '욕수'가 됩니다. 욕수는 동방의 천제가 되어 1만 2천리의 땅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소태양과 소호금천을 연관 짓는 이유는 소호라는 명칭 자체도 소태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황해도 무가에 보면 태양계를 창조한 소태양님의 심부름을 하는 새로 '앵무공작'이라고 하는 세발 달린 새가 나옵니다. 왕대유가 지은 <<용봉문화원류>>라는 책을 보면 삼족오는 공작에서 출발을 한다고 합니다. 이 공작이 봉황과 주작으로 발전을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도 제가 주장을 했지만 삼족오가 까맣게 보이는 이유는 태양을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물은 태양을 등지고 있을 경우 까맣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삼족오(三足烏)의 烏는 까마귀가 아니라 새로 번역 되어야 하고, 삼족오는 세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발달린 새'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황해도 무가에 나오는 '앵무공작'이 바로 삼족오라고 저는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소태양은 소호금천이라고 하는 등식으로 보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소호금천이 나라를 다스리게 했던 봉황이 바로 앵무공작이고 그 앵무공작이 삼족오라는 것이 저의 추론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많은 부분이 '상징체계로 이루어 졌습니다. 상징은 '의미체계'입니다. 이 상징을 잘못 해석을 하게 되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궁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미궁속에서 해매고 있는 이유는 바로 상징을 잘 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오류들은 지배자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행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불교에 대한 제 생각을 이야기 해 볼까요? 석가모니가 불법을 이야기 할 때 지금 불교경전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어렵게 이야기 하였을까요?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지배자들에 의해서 문자화가 되면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서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을 하게 되고, 거기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다 보니 또 다른 해석을 하게 되고 그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붙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도통 알아먹지도 못 할 경전들이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성현들의 말씀은 대중들이 알아 듣기 편한 말로 설법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기존의 학자들이 무가를 해석해 놓은 걸 비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학자들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 오는 무당들의 무가를 녹음을 합니다. 즉 무당들의 무가가 일차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차 자료를 소리만 듣고 글로 적습니다. 소리를 글로 적어 놓았으니 이게 무슨 말인지를 잘 모릅니다. 모르는 말들은 무당들에게 물어 보지만 무당들조차 잘 모르거니와 설령 알아서 설명을 해주어도 자신들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으니 무시를 해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짧은 지식으로 해석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창작물로서 이차자료가 탄생 되었습니다. 무속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문헌공부를 통해서 새로 창작된 이차자료를 봅니다. 창작된 이차자료가 일차자료화 되고, 그것이 곧 진리가 되어 버립니다. 이 문제는 무속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문학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따라서 저는 모든 학문이 원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전을 해석함에 있어서 무당들의 무가는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맹무공작의 삼족오는 상당히 와닿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김유신 비문을 인용하셨군요. 여기서 한가지 금문학회와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는 소호김천이라고 하죠 또 한자도 少皥金天으로 쓰고 있죠. 이 소자 역시 밝은 소자니 소태양님 의견에 부합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무가의 전체 맥락으로 볼 때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소태양님의 많은 활약 기대합니다. 기존 무속학자들의 오류를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
네 감사합니다...^^
삼족오에 대한 설명과 역사에 대한 관점에 대해 도움을 받아 감사드립니다~~^^
아... 그렇구나...타당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삼족오라는 우리 민족 전통의 문양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까마귀만 보면 좋아했었는데 ㅎㅎ 그런데 어느 글에서 봤는데 우리 민족이 옛부터 까마귀를 길조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요?
일본에서도 까마귀는 길조로 여기고 있죠. 아마도 그문제는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는 까마귀와 까치가 만드는 오작교와 연관이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한국, 중국,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군요 ㅎ 답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