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로 향하는 길은 어느새 말갛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신도시를 짓느라 흙먼지 풀풀 날리는 김포를 지나 초지대교를 넘어서자 마자 갯내음과 함께 가을향이 맡아졌다.
풋풋함을 넘어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들녁이며, 따가운 햇볕에도 어느새 그늘에만 들어서면 바람은 여지없이 선선하니 말이다.
주5일은 꿈도 못꾸는 그가 모처럼 토요일도 쉴 수 있게 되었고, 동생은 다섯살배기 조카녀석을 데리고 콧바람 좀 쐬어 달란다.
그래... 어여 와라.
이 언니가 그 정도도 못해주겠는고?
블로그 이웃이신 남장바리님의 포스팅 뽐뿌에 힘입어, 이번에는 제4야영장이 아니고, 우리도 바다까지 보인다는 상단^^ 사이트로 한번 올라가보세!!
함허동천 야영장 주차장에 닿자마자 벌써 만만하지 않음이 피부로 느껴지네.
주차장에 자리도 없고, 그 흔하던 리어커도 벌써 품귀다.
매의 눈으로 잽싸게 나가는 캠퍼분의 빈 주차자리와 리어커를 품에 앉는데 성공!!
그에게 상단사이트로 가야만 하는 이유를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대며 감언이설을 한 끝에 그는 거의 넘어 온듯 했다.
그래. 끝내주는 야경을 한번 보는 거야...불끈!!
그러나 꽤 미니멀하게 바꾼 우리의 장비도 2인용이 아니고, 접대용 장비까지 실어 버리니 미니멀에서는 점점 멀어지더라.
그가 주장하는대로 힘이 약한 자가 리어커는 끌고 힘이 센자가 리어커를 밀어야 한다는 이론에 따라 리어커의 앞을 내가 맡았다.
그 선선하던 바람은 다 어디로 갔는지...급한 경사로를 만나자 마자 진땀이 나면서 호흡이 가빠진다.
급기야는 북적이는 제4야영장앞에서 철퍼덕 퍼지기까지....
상단사이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기서 꼬꾸라질 판이다.
우리는 일단 리어커를 토요일의 행락객이 뿡짝뿡짝하는 놀이마당에 리어커를 대고, 각도가 암만봐도 45도 이상은 나옴직한 상단사이트로 빈몸으로 올라와 본다.
히야~~~~ 이래서 여기가 그렇게 좋다는 것이었군.
야영장 관리인의 말대로 아무데나 쳐도 된다더니 곳곳에 한팀만 쓸 수 있는 5성급 비박지가 아직도 철철 넘쳐난다.
도저히 예까지 오토캠퍼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터....
자~~ 저 45도 각도를 150미터만 올라가면 된다. 죽을 힘을 다해보세!!
엉? 힘들다 못해, 막 어지럽고 구역질이 날라고 그런다.
이보게 빨리빨리 밀어. 나 죽겠어...
숨넘어가게 난리를 편 끝에 겨우 사이트입구에 도착....난 리어커 팽개치고 화장실로 직행.
진짜 아침 사먹은 것이 완전 도로묵이 되었다.
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 사이트를 구축하신 몇몇 캠퍼분들에게 존경의 절이라도 넙죽 올릴판이다.
와~~ 그래도 드디어 우리도 해냈다.
상단사이트에 안착...빠라빠라밤!!!!
새로 산 텐트 에리얼이 아니었으면 그도 이렇게 힘을 내지는 못했으리라.
새 장비를 향한 그의 열망이 고생을 이겼으니 만세^^
작고 가볍고, 펼치기 편한 새 텐트는 합격점을 받았다.
새 텐트와 몇해를 써서 익숙한 퀘차가 오늘밤을 위해 나란히 이웃을 하고 보금자리가 되었다.
널찍하고 다른 사이트들과는 독립되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근사한 사이트는 하루 6,000원에는 참으로 과분하고 훌륭하다.
리어커를 숨이 턱에 닿게 밀 자신만 있다면 무조건 이곳은 백패커의 성지가 되고도 남음이다.
아아아.. 물론 어머어마한 장비를 구축한 오토캠퍼에게는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무덤이겠지만 말이다^^
우리 사이트보다 더 위쪽으로도 꽤 경사가 급하고 올라갈 거리가 150미터는 넘어 보이는데, 우리 뒤로 속속 캠퍼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이미 구축된 우리 사이트를 보면서 부러움에 이구동성....
'좋으시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상단초입에 근사한 자리 맡으셔서요. 대단하세요... 두분이 이 짐 다 옮기셨어요?'
다 이런다. ㅋㅋㅋㅋ
우리보다 위쪽에 펼쳐진 사이트로 살랑살랑 구경을 나선다.
이제 우리의 고난의 행군은 끝났으니 한랑한 주말의 오후가 남았을 뿐이니....
위로 오를수록 더 근사한 사이트가 펼쳐진다.
곳곳에 정자가 갖추어져 있고, 그 앞에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아이들이 야구를 하며 깔깔깔 팝콘같은 웃음을 날린 곳이 여기렸다.
괜히 처음 와본 곳이 친숙하게 느껴지며 불쑥불쑥 반가웠다.
산가까이 오를수록 숲에 둘러쌓인 호젓하고 평화로운 작은 사이트들이 곳곳에서 마치 마법처럼 모퉁이를 돌때마다 나타났다.
이미 이르게 자리잡은 백팩커들은 나무사이에 해먹을 매달고, 오수를 즐기거나 숲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다.
세상에 더는 무엇이 부러울까?
나는 그들 곁으로 발소리조차 작게 죽이며 빨려 들듯이 숲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경하러 내려간 주차장에서 제일 가까운 제1야영장쪽은 아무래도 번다하다.
함허동천에 자주 오게 될테지만, 다시 온다해도 나만의 공간을 비밀스럽게 만들어주는 상단사이트에서 하루동안의 집을 지을터이다.
동생이 드디어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낚아채어 근처의 선두포구 선착장으로 나선다.
가을이 깊어가니 지금쯤은 서해의 해산물들이 제철을 맞아, 향기로운 바다맛을 짭조름하게 전해 줄 터이다.
싱싱한 가리비와 튼실한 새우를 잔잔한 모닥불에 얹어 자글자글 익혀내면 밤도 그렇게 무르익을 것이다.
동생과 그에게 가을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모처럼 바다를 본 다섯살박이는 수조에라도 뛰어들듯 신이났다.
밀물을 맞아 미끄러지듯 포구로 들어서는 작은 어선이며, 펄떡거리는 싱싱한 서해의 새우는 살아가는 날의 기쁨이니, 어린아이조차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 녀석이 차안에서 낮잠까지 자고 팔팔해 졌으니 오늘 어른 3명은 이녀석을 감당하느라, 밤이 이슥하도록 몸살을 할 것이다. ㅎㅎㅎ
캠핑장에 들어선 녀석은 제몫으로 지어놓은 퀘차가 꽤 맘에 드는 모양이다.
텐트안을 펄럭거리며 드나들더니, 숲에 온통 천지인 나무들을 보더니 저도 나무를 심는단다.
이모에게 나무가 자랄 씨를 내놓으라며 뗑깡이다.
'아니... 이 녀석아 갑자기 씨를 내놓으라면 어쩔?....' 윽~
이럴때 반짝 아이디어가 빛난다.
간식으로 싸온 포도를 열심히 먹고, 녀석에게 포도씨를 한움쿰 지어주었다.
'의진아~ 포도씨 심어서 이모 텐트옆에 포도나무 쑥쑥 자라게 해줘' ㅎㅎㅎㅎ
부지런히 땅을 파고 씨를 심고 한동안은 녀석이 집중할 거리를 찾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포도는 절대 씨앗으로 심는 것이 아니고 가지를 꺽어서 심는 꺽꽂이방식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는 10년은 지나야 알게 될 터이니 말이다.^^
심지어 씨앗을 심은지 채 10분도 안되어 녀석은 싹이 9개나 났다고 호들갑이니, 나의 계책은 성공했음이 분명하도다.ㅎㅎㅎ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숲속에 밤이 내리자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렌턴을 두고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고,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풍경...
그 곁에서 아직도 기운팔팔 호기심 왕성한 녀석도 쉴새없이 화로대를 맴돌며 숲속의 밤을 흔들고 있었다.
마니산에는 가을이 도착했으려나?
캠핑장에서 아침을 나누고, 산으로 향하는 길.
아직 다 도착하지 못한 가을이 산등성이에서 서성이고 있네.
우리는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강화의 황금빛 벌판과 풍요로운 갯벌이 보인다는 마니산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첫댓글 고생끝에 낙(樂)이 온다고 하하하하하 풍류를 즐기고 오셨네요.부럽습니다.. 건강하세요 ^%^
그래서 어느분이 함허동천은 만민평등한 야영장이라고..벤츠타고 오셨어도 주차장부터는 리어커요, 버스타고 오셔도 주창장부터는 리어커니깐요. ㅎㅎ
저의 아지트에 다녀가셨군요ㅎㅎ ... 일주일 전에 다녀올때만 해도 모기가 꽤 있었는데 헌혈은 안하셨는지 ..^^
해떨어지니깐 모기들도 퇴근하던데요. 낮에만 좀 있고, 밤에는 모기향 두어시간 피우고 나니 안물렸어요. 아지트에 신고도 없이 제가 다녀갔군요. 마니산앞에 있는 옛날팥빙수가 아주 맛나더만요.
저도 아들데리고 토요일 늦게 5시쯤 도착해서 주차장에 꽉찬 차들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3야영장 꼭대기로 무조건 올라가니 그래도 백패커들을 위한 자리가 남아있더라고요 ㅎㅎ 다행히 아들넘과 오붓한 저녁시간 보냈드랬죠 ^^ 혹시 못보셨나요? 초록색 돔쉘터와 빨갱이 사각타프요
아 봤어요^^ 돔셀터 보고 우리 회원분이 아드님하고 오셨구나 했는데, 단봉낙타님이셨구나.. 아이코 인사나누었으면 좋았을것을...저도 계속 언저리를 왔다 갔다 했다는요.
이해는 되나 백패킹의 성지라기에는..너무 좋은 깊은 숲속 야영지가 많습니다
가까운 서울근교 중에서는 오캠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소 중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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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야님 집에서는 완전 동네마실 수준일껄요. 우리 동계시즌 내내 함허동천에 딱 붙어서 지내봅시당
작가 아니세요?너무 글을 잘써서 감동적으로다가 읽었습니다. 이쁜 사랑 키워나가시길...
고맙습니다. 아휴~ 훈훈한 댓글!! 사랑이 크다 못해 늙어가지만^^ 잘 해볼랍니다.
오토캠퍼의 지옥, 백패커의 껌인 함허동천 다녀오셨군요. 왠지 2부가 있을 것 같은 후기입니다, ^^
영화 수필도 기다리고 이써요. ^^;;
파란달님은 부연동에서 뵙고 여태 두계절이 지나도록 못만나고 이게 뭡니까? 가을가기 전에 뵈요~~ 영화수필은 써놓은 것은 꽤 되는데, 요즘 올리는게 게을러져서뤼... 이제 제가 올리는거 식상해요.
정말 뷰가좋은 5성급 비박지네요... 항상 야영하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니케님도 자주 다니시잖아요. 저보다 좋은데 많이 다니시면서^^
ㅋㅋ 함허동천의 로망을 실현하는 모든 캠퍼들이 겪는 구역질..;;; ..... ㅎㅎ
아침값 지불한 것이 너무 아까웠지 말입니다.
멋진분 만나서 캠핑하시는 모습이 넘 부럽네여 ... 참 좋을때죠....ㅎㅎㅎㅎㅎ
마늘님이 수피님같이 멋진 남편을 두고 이런 말을 하면 '있는 사람이 더 하다'라는 속담 생각납니다.
이번주에 신불산 가서 수피님이 마늘님한테 하는 거 보고 잘 배우라고 단디 일러 두었습니다. ㅎㅎㅎㅎ
어~, 저의 나와바리에(작년16회,올6회) 신고도 업시 오셨다니----, 토욜(8~16시) 3야영장쪽 계곡 돌침대위에 빨간 매미텐트치고 있었는데 못뵙네요. 함허는 동계때가 좋아요.
어허~ 베르디님도 계셨어요? 안그래도 체어스토리한테 여기 베르디님이 엄청 자주오셔.. 이럼서 브리핑도 했는데... 뵈었으면 술한잔 나눴을텐데...담부터 절대 신고하고 가겠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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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불발된 만남이 아쉬웠는데, 운탄고도에서 뵐 수 있게 되었네요. 기대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