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짐 체인지 (魔力과 生命力)
날씨가 참 포근합니다. 오늘이 정월 초이틀, 입춘입니다.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나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란 말과 하나 다르지 않음에도 입춘방을 “레짐 체인지”라고 쓰고 보니 아주 유식해 보입니다. 꼬부랑글씨가 주는 마력(魔力)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삼으실 때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시몬을 만났습니다. 그는 종일 그물질을 했지만 빈 그물만 거두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드리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서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데만 생각이 가 있습니다. 예수가 시몬에게 한 말은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의 포로가 되어 생각 속에 갇혀 살지말고 외연을 넓혀서 세상을 크게 보라는 말씀입니다. 시몬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생업을 팽개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영혼)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예수는 이름까지 새로 지어 주었습니다. 생각을 개문(開門)하고 일신(日新)한 베드로는 그 후 자신의 운명을 바꿔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땅의 일이나 하늘의 일에 대하여 선악으로 구분 짖기를 좋아 합니다. 천사와 악마, 선인과 악인, 선행과 악행으로 구분하길 좋아합니다. 백이면 백 모두가 자신이 악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고 또 자신이 악인이라는 사실을 부정 합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나 아닌 남을 나쁜 사람, 악한 사람으로 비난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선하게 보이려고 자기 얼굴에는 하얗게 분칠을 합니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현미경보다 더 잘 살핍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인간사를 ‘선악의 틀’로 분별하고야 마는 ‘생각 속에 갇혀버린 영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것을 원죄라 여깁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선악은 본디 없습니다. 깨우친 자의 행동이냐 그렇지 못한 몽매한 자의 행동이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깨우친 자의 행위가 선하지 아니할 리가 없으며 우매한 자의 행위가 결코 선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라, 깨어서 기도하라!”는 예수의 외침은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를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들의 몽매함을 한 없이 측은히 여기시면서 최후를 마치셨습니다.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향해서 “주여!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조차도 모르니 저들을 용서 하소서”하며 기도하신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의 행적은 인간이 남긴 가장 위대한 ‘레짐 체인지(체제 변혁이 아니고 그보다 더 본원적인 인간의식의 변혁)’입니다.
영적인 사기꾼은 늘 깨친 자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보지 못한 세상을 본 듯이 말하는 그 거짓은 언젠가는 들통이 나고야 맙니다. 그들이 바로 성서에서 말하는 거짓 목자, 거짓 선지자, 적(敵)그리스도 입니다. 그들은 천국(=깨우침의 세계로)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그 문을 가로 막고 서서 천국(=깨우침의 세계)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을 방훼 합니다.
우리가 무지 했을 때는 이들을 영웅으로 불렀습니다만 세상은 이들 때문에 혼란에 빠지고 우리의 복된 삶이 파괴 되었습니다. 모르면 아는데 까지만 답하고 나머지는 간절히 궁구하면 될 일을 그들은 거짓을 지어내어서 선동합니다. “예면 예하고 아니면 아니요” 하라는 가르침이 왜 필요한지 조차도 모릅니다. 그들의 영혼이 진리(=밝음, 참)에 속해 있지 않은 때문입니다.
역사 이래로 수많은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갔었습니까? 진리(=밝음, 참)의 세계로 인도하기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우리 앞에서 늘 낙원을 말했지만 우리가 도달한 곳은 낙원이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참을 드러내 보이는데 두질 않고 그 자신이 선해 보이고 착해보이고 위대해 보이고 신성해 보이고 전능해 보이는 일에 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그들의 영혼이 자유를 잃고 스타의식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타의식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자유를 잃게 되고 당신의 아름다운 영혼이 망가지게 되어 급기야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이 유린 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상숭배하면 지옥 간다고 악을 쓰는 사람들이 돈과 권세와 자기 영광에는 태연하게 영혼을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천국을 선포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떡과 만국의 권세와 이적의 유혹"을 물리치신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우리의 영혼이 진리(=참)가 아닌 것의 종이 되어 끌려 다니는 것 그 자체입니다. 깨우친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라며 감탄하는 마음은 깨우친 자만이 낼 수 있는 일성입니다. 영혼이 진리를 향하여 거듭나지 못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질 않습니다.
안동김씨 60년 세도정치의 부패를 청산한 대원군이 몰락한 것은 조선은 이 씨의 나라라는 생각에 갇힌 때문이고, 굶어죽어도 개방사회로 나오지 못하는 북한은 김일성이 세운 김 씨의 나라라는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참과 자유를 바라보고 끝임 없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틀을 깨지 않으면 금세 우상(앙시앵 레짐: 구 체제)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진리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을 믿지 않고 “생각” “틀” “체제”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게 되는 때문입니다.
네모난 수박을 보면 누군가가 내 머리에다 네모난 철재 빔을 씌우고 렌치를 돌리며 자꾸 조여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유생들에 의해 목이 댕강댕강 날아간 불상을 보면 내목을 먼저 만져보게 되는 것도, 공자묘를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홍위병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도 “생각의 틀”을 맹신하는 이런 미친자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혁명의 소식이 멀리 이집트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파라오의 부활을 위해 평생을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되었던 노예들의 영혼들이 파라오들 보다 먼저 부활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위 진압과정에서 95명이 사망하고 2000여명 다쳤다 합니다만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봄은 뭇 생명을 더욱 생명답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냉혹하던 겨울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바레인, 예멘, 이란에 까지 시민혁명의 함성이 일고 있습니다. 생각은 바뀌는 것이 자연이고 또 그러해야 우리의 삶이 행복해 집니다. 봄을 맞아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붓을 잡아 입춘대길(立春大吉) 이라고 쓸 수 있음도 생명력(生命力)이 넘치는 바로 이 기운 때문 일 것입니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 뭇 대중들이 깨어나는 봄, 봄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모든 생명들이 제 참모습을 보여주는 계절이라고 봄입니다. 생명의 노래 소리는 어떤 종교도 어떤 권력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처럼 용기 없는 자조차도 깨어나서 빠끔히 창을 열고 나의 봄을 훔쳐봅니다.(2011.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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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명의 노래 소리는 어떤 종교도 어떤 권력도 막지 못한다는 봄, 잘 읽었습니다.
영혼이 맑아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2.5일에 쓴 글이데 어쩌면 그 당시의 사회상이나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지금과 똑 같은 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인간이란 정녕 구원이 불가능한 종일까요?
희망을 가지고 또 한 번 속아봅니다. 새 봄의 놀라운 생명 기운이 우리
인간들에게 깊이 스며 들기를 소원합니다.
회장님. 마치 어제 쓴 글같이 실감 있게, 감동으로 잘 읽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곳곳마다 움이트는 소리가 나는 듯 합니다. 아니, 움이 트고 있었어요. 어떤 종교도 권력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