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돈 수사돈
우리말에 암사돈, 수사돈이란 말이 있다.
암사돈은 며느리 쪽의 사돈을 가리키는 말이요, 수사돈은 사위 쪽의 사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양자 간에는 전래적으로 수사돈이 항상 우위에 있고, 암사돈이 하위에 있기 마련이었다. 이에는 남존여비라는 사회적 큰 틀이 작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아무래도 남의 집으로 시집을 보내는 딸 측에서, 시가 측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 때문이었다.
가부장 제도하에서, 남의 며느리가 된 자기 딸이 시어른의 눈에 어긋난다면, 시집살이에 당장 영향이 미칠 것임은 물론, 파탄을 맞을 수도 있었기에, 딸 가진 죄로 암사돈은 항상 수사돈에 대하여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속언에 암사돈을 ‘설 사돈’이라 하고 수사돈을 ‘누울 사돈’이라 하는 말도 있는데, 이러한 말들도 그러한 사회의 시대적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다. 두 사돈이 만날 경우에, 고자세에 있는 수사돈은 암사돈을 누워서 맞이한다는 뜻이고, 저자세에 있는 암사돈은 수사돈이 오면 항상 일어서서 응대해야 한다는 뜻에서 연유한 말이다.
옛날 어느 시골에 짝이 기운 두 사돈이 있었다. 수사돈은 원래부터가 고자세인데다가 글공부도 많이 한 유식한 사람이었고, 저자세에 놓여 있는 딸 사돈은 게다가 일자무식꾼이었으니, 두 사람 사이가 짝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수사돈은 암사돈을 매일 얕보고 무시하였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수사돈은 암사돈에게 ‘네가 무엇을 안다고 이러느냐?’는 식이었다. 암사돈은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수사돈의 그 거드럭거리는 태도가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자기의 처지가 처지인지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무식한 암사돈이었지만 어찌 한 가닥 속까지 없겠는가?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날이면 날마다 당하다 보니, 차츰 분한 마음이 더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암사돈은 어떻게 하면 이 모욕을 풀고, 나아가 수사돈을 보복할 수가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한 끝에 나온 결론은, 자기도 글을 배워야겠다는 것이었다. 무식쟁이라고 핀잔만 받아 오던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리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그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그는 이를 악물고 틈틈이 글을 배웠다.
결심이 워낙 굳은지라, 공부의 진척도도 빨라서 얼마 안 되어 쉬운 글자, 곧 나무 목(木), 입 구(口), 손 수(手), 눈 목(目) 등의 글자를 익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즈음, 어느 더운 여름날 짬을 내어 마당 곁에 있는 큰 장수나무 그늘에 앉아 글자를 익히고 있는데, 수사돈이 지나가다가 우연히 암사돈 집엘 들렀다.
그간의 정황을 알 리 없는 수사돈이 가만히 보니, 무식한 암사돈이 뜻밖에도 글자 나부랭이를 끼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도 의아스러워 암사돈더러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암사돈이 일어서지도 않고 앉아서 당당한 자세로 “선비가 어찌 그것도 모르시오. 내 글공부를 하고 있지 않소?” 하며 퉁명스레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 수사돈이 말하기를 “당신 주제에 글자는 무슨 글자? 혹시 글자를 넘보기라도 했다면, 아무리 어려운 글자라도 좋으니 당장 내게 물어 보라.”고 하면서 평소처럼 비웃었다.
그러자 암사돈이 당장 받아서 하는 말이, “물어도 모를 것이니 아예 묻지 않겠노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수사돈은 하도 같잖아서 어서 물어 보라고 다그쳤다. 몇 번을 다그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물어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아예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분통이 터질 대로 터진 수사돈이 한사코 청하므로, 암사돈은 “모를 텐데……?”라는 말을 내 뱉고는, 못 이기는 듯이 말하기를 “나무 목(木) 자 옆에 입 구(口) 한 자가 무엇이오?”라고 물었다.
한자(漢字)에 그런 글자가 없다. 그러니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선비라 하더라도, 한자는 그 수가 워낙 많아서 그런 글자가 없다는 확정까지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자기가 모르는 그런 글자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글자라서 수사돈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평소에 유식함을 뽐내던 수사돈으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없는 글자를 어찌 대답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다 못한 수사돈이 체면 불구하고 그것이 무슨 글자냐고 도리어 물었다.
그러자 암사돈이 대답하기를, “그런 쉬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선비인 척하면서 평소에 그렇게 거드름을 피웠느냐?”며 핀잔을 주고는, 그 글자는 ‘장수나무 구’ 자라는 것이었다. 자기 마당에 있는 장수나무를 가리키는 ‘목(木)’ 자의 뜻에다가 ‘구(口)’자의 음을 더해서 ‘장수나무 구’ 자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곱다시 당한 수사돈은 체면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다시 한 글자만 더 물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암사돈은 또 물어 봐야 모를 것인데, 물어 봐서 뭘 하겠느냐며 처음보다 더 능청을 떨었다.
이에 더욱 분통이 터지고 다급해진 수사돈은, 한 번만 더 물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그러자 암사돈은, 필경 모를 것이란 말과 함께 못 이기는 듯이 내던지기를, “나무 목(木)자 옆에 손 수(手)자 한 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런 글자 역시 한자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수사돈의 속만 타 들어갈 뿐이었다. 터지려는 울분을 삼킨 채, 할 수 없이 수사돈은 “그것이 무슨 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암사돈은 전번보다 더 큰 면박을 주면서,
“이렇게 쉬운 글자도 모르오. 그것은 ‘장수나무 수’ 자가 아니오?” 하면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마당에 있는 장수나무의 ‘목(木)’ 자에 ‘수(手)’의 음을 따 자기가 만든 글자였다.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수사돈은 이제 힌트를 얻은 듯, ‘모든 일에는 예전부터 삼 세 판이란 말이 있으니 한 번만 더 물어 봐 달라고 하면서, 그간에 당한 무안을 만회하기 위하여 암사돈에게 애걸복걸 청하였다.
암사돈은 앞서보다 더욱 능청을 떨며, 들으나마나 또 모를 것이지만 하도 빌어대니 원을 들어주겠다면서,
“‘나무 목(木)’ 옆에 ‘눈 목(目)’ 한 자가 무슨 자요?”라고 하였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사돈은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는 “장수나무 목 자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이를 들은 암사돈은
“이런 가짜배기가 있나. ‘서로 상(相)’ 자도 모르는 자가 여태까지 선비인 척 행세했구나.” 하였다.
계속 장수나무의 훈(訓)에다가, 오른쪽에 붙이는 글자의 음(音)을 갖다 대는 암사돈의 수법에 속아 넘어가, 결국 아는 글자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아, 망신을 당한 것이다.
안하무인격으로 남을 업신여기며, 잘난 척하다가는 언젠가 자신도 당하고야 만다는 이치를, 이 이야기는 실감나게 깨우쳐 주고 있다.
아무리 똑똑해도 독불장군은 없으며, ‘서로’를 인정해 주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서로 상(相)’ 자가 함께 일러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직장 생활을 같이 한 상사 중에,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한 멤버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뽐내고 뻐기는 것을 보아 주는 대상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보기로는 그가 머리가 좋다거나 행정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아랫사람을 무시하니 아랫사람들도 물론 그를 존경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아랫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만큼, 자기의 윗사람에게는 비열하리만큼 아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때로는 우리들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역겨운 심부름을 시키는 일도 더러 있어서, 나중에는 그가 우리를 얕보는 행위보다, 그의 그러한 비루함이 더욱 추하게 보였다.
인간(人間)은 말 그대로 ‘사람의 사이’ 속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혼자서 다 아는 사람도 없고, 자기가 똑똑한 만큼 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