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풍경에 '감성 덧입히다'
화려함 들이대지 말라…세월 빚어낸 공간 추억이 마중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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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골목 입구. 낡은 주택을 복합문화상업공간으로 바꿨다. |
영화 '국제시장'의 인기가 엄청났다.
편승하여 복고열풍을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보도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말은 못 했지만 다들 현실에 대한 버거움이 있었던 게다.
LTE시대를 쫓아가느라 마음 다독일 여유를 찾지 못하던 차에,
오래전 지나가 버린 이야기와 풍경들 자체가 외려 위로가 되는 것이다.
빠름과 첨단에 대한 역반응으로 감성의 결을 만져주는 느림과
그리움에 열광하는 것이다.
저면에 잠재된 오래됨의 가치가 마음을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바쁜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느리고,
켜켜이 시간성이 묻어나는 오래된 풍경에 마음이 촉촉이 젖도록
시간을 내어줄 필요가 있다.
■ 도시 뒷골목의 풍경-문화골목
지금껏 소개한 부산매력공간 중 공간을 디자인하고 시공까지 한
건축가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문화골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축가 최윤식은 문화골목의 옥탑에 작업공간을 두고
있을뿐더러, 사람을 만나고 공간 이야기 하는 것을 워낙 즐기기 때문이다. 취재차 방문한 날 역시 서울에서 온 무리에게 전체 안내는 물론
가장 내밀한 자신의 작업공간 '선무당'까지도 거침없이 내보이며
소년 같은 미소를 연신 지으니 말이다.
"어디 사느냐 묻지 마라, 어디에 살던 몸이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이가 몇이냐 묻지 마라, 정신이 자유로워지고 싶다."
영혼이 자유로운 예술가 최 소장의 말이다.
관습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대학가 상권이 활발한
뒷골목의 낡은 주택 다섯 채를 거금의 은행빚까지 내가며 사들였다.
그리고는 딱히 정해진 틀을 가지지 않고, 터내고 덧대고 고치고 이어 붙여서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복합문화상업공간을 탄생시켰다.
아니, 재생(再生)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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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집 '다반'. 창밖 마당 풍경이 인상적이다. |
높은 천장 아래 4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소공연장은 '지랄용천'이라
이름 지었다.
LP판 2000여 장을 보유한 음악카페 '노가다'에서는 음향의 진공이
박공천장 아래를 가득히 울린다.
플로리스트가 꾸미고 업을 하고 있는 갤러리 겸 꽃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트장이며 파티공간이다.
기존 주택의 멋스러운 목제 천장을 그대로 살리고, 중국에서 가져온
고가구로 테이블을 제작한 찻집 '다반'은 창밖 마당이 연출하는
멜랑콜리로 인해 가슴을 열어젖히게 한다.
그리고 오래된 옛 물건과 예쁜 소품들이 수다스럽게 비치된 2층
'부엉이집'에서는 인도식 카레나 칵테일, 와인 등을 먹을 수 있고, 가끔 어쿠스틱 공연으로 바짝 달궈진
분위기를 흡입할 수도 있다.
막걸리주점 '고방'이나 일본식 사케집 '몽로'도 전혀 다른 빈티지 매력을 뿜어내는 공간이니, 취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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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카페 '노가다'. LP판 2000여 장을 보유하고 있다. |
집과 집 사이의 골목에는 기존 있던 나무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장식 돌, 물둠벙, 폐자전거, 도자기 등 연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이상하리만큼 잘 어우러져 있다.
입구에 내건 목어(木魚)도, 우뚝 솟은 종탑도, 떡하니 제자리를 잡은
화분도, 그리고 한 무리의 들고양이 가족도 모두 여기서는 낯설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건축자재들은 질감이 막 살아나면서,
콜라주에 의한 명품 미술작품처럼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해가 기울고 주변에 조명이 하나둘 켜질 때쯤, 이 골목 안은 더욱 깊어진다. 번쩍이는 주변 상업시설들과는 사뭇 다르다.
불편하게 들이대지 않고, 그냥 그렇게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불 밝히고 있다.
폭 좁은 골목은 여기저기를 잇는 밧줄이 되었다가, 또 내부로 변신하였다가 오락가락한다.
실내는 벽을 뚫고, 창도 훌쩍 넘어 도망치더니, 불현듯 숨어있던 내면의 자신과 만난다.
속으로만 그리워하던 오래된 것이 전하는 체취를 여기서 다시 만난다.
그래서 고맙다.
사람들이 하나둘 스며들어온다.
■ 고즈넉한 풍경-대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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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룡마을에 세워진 사람 얼굴을 닮은 석조물. |
문화골목이 도심지 내에 집약된 복합문화상업공간이라 한다면,
'대룡마을'은 도시 외곽에 넓게 분산 배치된 복합문화창작공간이라
할 수 있다.
위치상으로야 부산이지만, 마을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의 전형적인
조용한 동네다.
여기에 저렴한 창작 작업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이 오래된 창고나
폐가를 재활용하여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아예 자리를 잡고
본격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회의할 장소와 전시할 공간을 만들고 작업한 조각 작품들을 마을
곳곳에 세우자, 예술의 혼이 온 마을 가득히 번져 나갔다.
벽화만 가득한 여타 마을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다.
나무토막으로 엮어 만든 코끼리와 말 조각상, 철재를 이어 붙여 만든
물고기 얼굴의 용이나 코뿔소 작품도 독특하다.
알록달록 새장으로 둘러싸인 폐목이나 사람 얼굴을 닮은 석조물, 머리
다섯 달린 우주인이나 흰색 스커트를 입은 흑인 미녀도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자연과 작품은 사진의 멋진 배경이 되어준다.
세라미스트 김미희 작가의 '작업실 오리'는 뜰이 있는 한옥을 고쳐 만들었다.
조심스레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도자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창고를 개조해 만든 'SPACE223'은 문병탁 작가의 작업실이며 조각 체험장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폐목 재료들이 대형 조각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방해가 안 된다면 가끔은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며, 미리 예약하면 예술체험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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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 카페 '아트인오리'. 대룡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
하지만 이 마을의 가장 유명한 곳은 따로 있다.
무인 카페로 여러 차례 방송에도 소개된 바로 '아트인오리(Art in Ori)'가
그곳이다.
에스프레소 기기와 냉장고를 이용해 직접 음료를 소비하되, 판매하는
직원은 별도로 없다.
셀프 계산하면 된다.
문화골목과 같이 여기도 곳곳에 추억이 묻어나는 옛 물건과 소품들이 있다. 낡은 LP판과 플레이어가 놓여 있고, 벽에는 폐자전거랑 타이어휠, 외국
차량 번호판 등이 붙어 있다.
그리고 다녀간 사람들의 메모장이 벽, 천장, 유리 할 것 없이 도배되어 있다. 여기서는 남들의 사연을 읽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수공으로 제작한 벽난로에 장작을 피울 수 있으며, 원목으로 된 통나무집에도 오를 수 있다.
왜 이렇게도 감성을 간질이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무, 호박, 부추, 달래 등 마을 사람들이 기른 제철 채소들도 무인 판매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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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를 개조해 만든 SPACE223. 작업실이자 조각 체험장이다. |
바로 옆에 최근 새로이 만들어진 '공작소면'은 국수랑 팥빙수를 파는
아담한 가게다.
거친 시멘트 마감으로 된 바닥에, 벽, 테이블, 소품 등은 목재로
인테리어 마감한 따뜻한 공간이다.
빈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에는 이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하던 방앗간은 '마을박물관'으로
고쳐 만들었다.
■ 그리움과 마주하기
숱한 사람과 부대껴 살면서 우리는 상처 입거나 무시당하지 않으려 위장하고 보편형 인간으로 자신을
항시 조율한다.
피곤한 일상이다.
해소해보려 술에, 노래에 빠져 보지만 다음날은 더 피로하기만 하다.
오히려 정서를 다독여야 한다.
딱딱하게 냉동시켜 버린 감성의 결이 다시 일어나게끔 해야 한다.
마음속 그리움과 자주 대면하도록 해야 한다.
두 곳(문화골목과 대룡마을)은 언제 가보아도 편안하다.
꾸민 이들이 관습에 얽매여 있지 않으며, 욕심에 가득 차 있지 않아 그런가 보다.
더 빼거나 덧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며, 속에서 일어나는 열정에 따라서 뭔가를 표출하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한 번 기웃거려 보자.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대룡마을 | 위치 |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 시설 | 작업장, 무인카페, 갤러리, 음식점, 각종 체험장, 미용실, 마을박물관, 쌈지공원, 통나무건축학교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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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골목 | 위치 | 부산시 남구 대연3동 | 시설 | 소극장, 음악카페, 갤러리, 음식점, 주점, 건축설계사무실 | 설계자 | 최윤식(가산건축사사무소) | 문의 | 051-625-0730 http: //blog.naver.com/golmok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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