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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와 다르게 하는 것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인간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앞에 누가 감히 대항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을 호령했던 영웅호걸들도 죽음앞에서는 먼지가 되어 사려졌습니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늙어 간다는 것은 낡아 간다는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 같지만 분명 그 날이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의 전조들이 분명히 우리의 몸에 나타납니다.
박완서님의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절실히 공감이 됩니다.
덜컥 탈이 났다.
유쾌(愉快)하게 저녁식사(食事)를 마치고 귀가(歸家)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寢臺)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些少)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洗面臺)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洗手)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物件)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病院)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疲困)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不平)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奇襲的)으로
반란(反亂)을 일으킬 줄은
예상(豫想)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中國) 속담(俗談)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實感)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前)과 후(後)’가
이렇게 명확(明確)하게 갈리는 게 몸의 신비(神秘)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존경했던 지인 병문안(病問安)을 다녀왔다.
몇년에 걸쳐 점점 건강(健康)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自己)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程度)에 불과했다.
예민(銳敏)한 감수성(感受性)과
날카로운 직관력(直觀力)으로
명성(名聲)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才能)도 다 소용(所用) 없구나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食事)하고,
산책(散策)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些少)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뒤라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當然)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感謝)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健康)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日常)에 감사(感謝)하며 살자!
지금, 감사를 느끼고 계시는지?
우리들이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진정(眞情)으로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안구(眼球) 하나 구입(購入)하려면
1억(億)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腎臟) 바꾸는 데는 3천만(千萬)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원,
간(肝) 이식(移植)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義手)와 의족(義足)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健康)하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원이 넘는
재산(財産)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다.
얼마나 소중한 하루 하루인가!
머지 않아 우리는
누렸던 모든 행복과 기적들을 송두리채 모아
원래 주셨던 주인에게 반납해야할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누가 내 삶의 주인가?
누가 나에게 해달별을 주고, 내 삶이 존재케 한 주인인가?
그 주인을 분명히 알게 되는 날이 오기 전에 주인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바른 삶을 살 수 있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
누가 세상에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온 우주를 창조하며 다스리는 참 주인이다. 내가 너에게 참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주마!”
보통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면 정신병원가기에 딱 좋은 말이다.
그런데 온 세상을 향해 감히 담대히 그렇게 선언하신 분이 계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리고 그 증거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부활시켜 증명해 보이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이 죽어 3일이 된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친히 만물의 주가 되심을 증거하셨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을수 있냐고? 의심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세상에, 이런 일을 믿으라고 한다니 기가찰 노릇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간절히 그 사실의 진위를 찾으면 누구든 그 진실을 알 수 있다. 찾으라 진정으로 찾는 자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
참으면 그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증거들 앞에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나도 주님을 믿기를 원합니다.” 고백하게 될 것이다.
증거1. 역사의 중심이 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올해를 왜 2026년이라고 하는지 아는가? 도대체 2026년 전에 무슨 일이 있어났기에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는가?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는 대부분 주전(主前), 주후(主後)라고 알고 있고, 영어로는 B.C와 A.D로 역사가 나누어진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주전(主前)이라는 말은 주님이 오시기 전이라는 말이다. 주님이 누구신가? 이전에는 역사를 기록할 때 조선 태조 몇년 이렇게 기록했다. 왕이 나라와 역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 태조를 우리나라 사람은 아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먹히지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역사를 기록하는데는 온 세상이 아는 왕이 필요하다. 누가 온 세상의 왕인가? 아무리 대단한 왕이라도 한 세상을 살다가면 그뿐 인 것을... 그래 싸우며 뺏고 정복하는 왕이 아니라 온 세상에 화평과 소망, 희망과 생명을 준 온 세상이 다 아는 왕, 그분의 탄생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잘 알것이 아닌가? 그래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중심으로 주님이 오시기 전을 주전(主前), 주님이 오시고 난 후를 주후(主後)라는 지극히 상실적인 내용에서 시작된다.
영어로 풀어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B.C는 Before Christ라는 단어로 주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A.D 는Anono Domini 우리 주님의 해라는 의미이다.
사실은 예수 탄생을 중심으로 기록했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탄생할 때 관심을 둔 사람을 몇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삶에도 세상은 깨닫지를 못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수 있냐고 참람된 소리를 한다고,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십자가에 메달아 죽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3일만에 부활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모든 사람의 생년월일, 모든 기록, 모든 만남의 약속의 기준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인가? 역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증거2. 증거를 찾아 연구한 자들의 고백
예수의 부활을 거짓말이라고 증명하려고 자료들을 찾아 헤메였던 한 신문기자가 결국 예수의 부활이 사실임을 깨닫고 예수를 그의 구주로, 하나님으로 영접한 경험이 영화하여 나왔습니다.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이다.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그는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유력 일간지인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서 법조 전문 베테랑 기자이자 법률 편집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증거와 논리적 팩트만을 신봉하던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그의 인생을 뒤흔든 사건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내 레슬리(Leslie)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자, 스트로벨은 결혼 생활이 망가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꼈다. 그는 아내를 미혹에서 건져내고 기독교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위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 사기극임을 증명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1980년부터 약 2년 동안 냉철한 탐사 보도 기자의 관점으로 전 세계의 최고 석학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문헌을 검증했습니다.
눈으로 본 증거(목격자 증언): 신약성경의 사복음서가 신화나 조작이 아닌, 1세기 당시 신뢰할 수 있는 목격자들의 구체적 기록인지를 역사학자들과 법학자들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문헌적·고고학적 증거: 성경 사본의 보존 상태와 고고학적 유물들이 실제 성경 기록과 일치하는지를 교차 검증했습니다.
의학적 증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실제로 사망하지 않고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가사설(Swoon Theory)'을 반박하기 위해 의학 전문가들을 만나 십자가 처형의 해부학적·생리학적 사실을 파헤쳤습니다.
심리학적·정황적 증거: 제자들이 환각을 본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지어낸 것인지를 검토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잔혹한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인간 심리와 정황에 주목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론과 회심
증거를 모으면 모을수록, 기독교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보다 예수의 역사성과 부활을 사실로 인정하는 쪽에 훨씬 더 압도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981년 11월 8일, 그는 수집된 증거의 무게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지적 오만을 내려놓은 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내 놓은 작품이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이 한 둘이 아니다.
증거3. 부활의 증인들 500명과 600만명의 후손들
한 사건이 사실로 입증이 되려면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한데,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증인은 500명이상이 동시에 부활한 주님을 목격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전 15:4-6)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 부활을 증거하고 증거하여 그 부활신앙, 생명신앙을 버리지 못하여 300여년동안 600만명의 사람들이 로마의 지하공동묘지 카타콤베에서 살다가 숨졌다. “나는 예수를 모르오” 말한마디만 하면 자유를 누리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들이 어둠속에서 평생을 살았을까?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맹신자들이었을까? 아닙니다. 인생은 잠깐이고, 주님 주시는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사라질 것들을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한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예수부활을 목격한 그들의 조상들로 부터 들은 부활을 부인할 수 없어서였다.
증거4. 기독교의 존재
예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11명의 제자들은 다 제 살자고 다 도망갔다. 신앙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한나 뿐인 목숨, 살고봐야겠다는 심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같이 그들이 다 예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목숨이 그렇게 귀했던 그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순순히 그들의 목숨까지 다 내어 놓을 수 있었던가요?
부활을 목격하기 전에는 핍박이 두려워 도망갔던 그들이 부활한 예수를 목격하고 나서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들을 재판했던 유대 법정앞에서 담대히 죽일테면 죽이라! 내가 생명의 주를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외치게 되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8-20)
예수의 부활 외에는 이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부활한 예수가 그들의 영원한 생명의 보증자가 되었기에 그들은 가장 소중한 생명마저 기꺼이 주께 드릴 수 있었다.
로마가 그렇게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핍박하고 핍박했는데, 오히려 로마가 기독교화가 되었다.
순교자의 피는 오히려 복음의 씨앗이 되어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변화시켜 버리고 말았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가 되었다.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예수의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학자와 역사를 아는 이들은 연구해 보면 되겠지만 우리가 같이 농사나 짓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부활을 알수 있냐고 묻는 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섯번째 증거를 말하고 싶다.
증거 5. 자연의 법칙들속에 나타난 부활의 증거
자연이 부활을 증거한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어서 모든 만물이 잠든다. 그러나 봄이 되면 깨어난다. 산천이 부활한다. 우리가 먹는 밥도 다 부활의 열매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볍씨를 땅에 심는 것은 죽음을 말하며, 싹이 돋아나는 것은 부활을 증거한다. 죽어야 산다. 부활의 열매를 먹고 모든 인류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놀라운 증거를 하늘은 작은 씨앗속에 기록해 놓으신 것이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 15:35-38)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늘은 이 세상의 작은 풀 하나에도, 작은 곤충 하나에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봄이란 계절에 부활의 약속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땅만 기어다니던 못생긴 애벌레가 날개를 단 나비가 되어 하늘로 비상한다. 잎사귀만 갉아먹던 존재가 꿀을 먹고 이슬을 먹는다. 흉측스런 몰골이 찬란한 나비의 존재로 변한다. 이 모든 것들은 부활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은 교과서들이다.
증거6.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이다.
가족이 사고와 재난으로 이별할 때 사람들은 죽었다. 끝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픔과 재난없는 하늘에서는 행복하게 살아라. 다시 하늘에서 만나자.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고백이며, 소망이다. 애벌레 안에 하늘을 나는 나비의 유전인자를 주신 주께서 우리안에 부활과 영생, 참 행복에 대한 DNA를 새겨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이것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소망의 증거들이다.
그래도 부인하려고 애를 쓰면 핑게거리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사망이다.
믿고 받아들이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편을 선택하겠는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의 선택 그것이 예수 신앙이고, 부활신앙이다. 그것은 모든 절망을 이기고 우리를 희망으로 인도한다. 이 놀라운 여행에 기대도 함께 동행하기를 요청한다. 내 안에 있는 참된 행복의 이유들을 그대도 누리를 요청한다. 진실된 마음으로 믿음의 첫걸음을 내디디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https://youtu.be/c2rKmS8iHT8?list=RDc2rKmS8iHT8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