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구원
시간의 화살은 한 방향으로만 쉼 없이 흘러간다. 그 한순간에 의미를 두고 기억하여 기록으로 후대에 전해지는 것이 역사이다. 성서라는 경전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약속된 구원의 역사이다.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그 이전을 구약, 그 이후를 신약이라 한다. 구약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
신은 태초에 아담을 창조하셨으며 아담은 카인과 아벨, 셋을 낳았다. 아벨은 형 카인에 의해 목숨을 잃어 카인과 셋의 두 계보로 이어졌다. 10대손 노아의 계보는 셋의 계보이다. 아담의 7대손 에녹이 몽소 승천(히브 11, 5)하셨다. 에녹의 아들이 므투셀라로 성경에서 나오는 가장 오래 살아 969살에 생을 마감했다. 에녹은 노아의 증조부이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까지는 우리의 단군 신화와 같은 설화(학카다)이다. 기원 역사(창세기 12장)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이사악, 야곱, 요셉, 다윗, 예수로 이어지는 족보이다.
이스라엘에서 핵심이 되는 두 사건은 이집트에서 탈출 사건과 바빌론 유배이다. 탈출 사건은 이스라엘 해방의 구원이며, 바빌론 유배는 그들 민족이 죄로 말미암아 좌절의 쓴맛을 통해 다시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2000년을 나라 없이 쫓겨 살다가 20세기 후반에 독립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내면으로 삭이며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아도 그들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철학자와 예술계, 경제계에서 두각을 보였다. 유다인 중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철학자들은 사상은 가톨릭 사상을 지녔지만, 믿음은 유다교였다. 그들의 개종은 곧 가족과 민족을 버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약속은 신약에서 이루어졌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드러난다.” 이집트의 탈출은 히브리인들이 어린양의 피로 탈출 전날 밤에 상인방과 문설주에 발랐다. 이집트의 맏배를 쓰러뜨리면서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그냥 지나쳐 갔다고 한다. 여기에서 ‘상인방과 문설주’는 십자가를, 어린양은 예수, 피는 죽음을 상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써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부활과 구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서의 마지막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묵시록에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갈등과 고통, 좌절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묵시 문학이 성행했다. 그들의 삶이 고통이지만 참고 견디면 내세에는 구원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요한의 묵시록에는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싸워서 승리자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라고 했다. 이 말씀은 현세의 삶에서 부활하고 구원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오늘날 부활과 구원의 신관은 차안(此岸)의 삶이다. 지상 삶에서 부활은 새롭게 변화하는 삶이며 구원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여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분은 세상의 삶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며 제자들은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하였다. 그 메시지는 진리로 변함이 없으며 오늘날 많은 이(인구의 1/3)가 믿고 따르고 있다. 지상의 삶은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양심(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