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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바라보니 / 조오현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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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림(士林)의 선비정신을 드러낸 사표로 동방사현인 정여창은 성종 때 성리학자이며 조선 성리학의 정통 계보를 계승한 김종직의 제자이다.
송나라 성리학의 태두인 정이천(程伊川)이 “농부(農夫)가 무더위와 한 겨울에 열심히 경작하여 내가 이 곡식을 먹고 공인(貢人)이 어렵게 기물(器物)을 만들어 내가 이를 사용하고, 군인(軍人)이 갑옷을 입고 병기를 들고 지켜 내가 편안히 지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은덕을 주지 못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낸다면 ‘하늘과 땅 사이의 한 마리 좀벌레(天地間一)’ 같은 존재다”고 한 말에서 정여창은 자신의 호를 ‘일두(한 마리 좀벌레)’라고 하였다. 좀벌레는 책이나 의복에 붙어 그것을 갈아먹는 해충이다.
버러지 같은 인생이란 말이 있다. 사람 노릇을 못하고 밥이나 축내고 무의미하게 사는 사람을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이웃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요익(饒益) 중생이 돼야 하는데 남을 속이고 피나 빨아먹는 유해(有害) 중생이 있다. 벌레 중생이다.
오현(1932~현재) 스님은 참선하면서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일컬어 좀벌레라고 칭하고 제대로 된 인간 노릇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스스로를 경책한 투철한 수행자가 소름이 끼치도록 겸손함과 실천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불법에서 깨달음의 내용은 나의 존재인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며, 인식의 주체인 마음에 대한 해답이며, 존재의 실상인 공(空)과 존재의 관계 법칙인 연기에 대한 설법이다. 이 말의 깊은 뜻을 깨달으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에 대한 정체를 알 수 있다.
중생은 생명을 가진 모든 무리 즉, 유정물(有情物)이다. 원래 인간은 중생 중에 으뜸 중생이나 인간은 포유중생인 개소나 미물중생인 벌레나 진화 출처가 일본(一本)이다.
인간은 우주의 별에서 왔다. 불과 바위에서 왔다. 억 년 전에 불덩어리 하나 떨어져 나와 식어서 물이 되고, 바람이 일어나고 흙먼지가 생겨나서 지수화풍 사대가 형성되었다. 거기서 미물중생이 생겨나고 벌레가 생겨나고, 파충류가 변화하고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였다. 중생이 부처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현재도 그 변화는 진행 중이다.
시인은 무심히 무금선원의 뜰에 기어 다니는 벌레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위대한 발견이다. 돈오이다.
생명의 위대한 모습과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나도 한 세상, 벌레도 한 세상이다. 모두가 한 살림 살고자 버둥거리고 꿈틀거리고 있다. 나 살겠다고 남의 살점 갉아먹고, 똥 싸고 알 까고 그렇게 사는 벌레나 인간이나 도긴개긴의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위대하다. 일체 중생이 불성이 있는 부처이다. 중생이 부처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열반경’에서 설파하신 깨달음의 말씀이다. 이 시에서 사람이 벌레 같이 무의미한 존재란 뜻이 아니라, 벌레가 나와 같이 소중한 생명을 지닌 동류중생으로 위대한 존재임을 설한 것이다. 인간이나 벌레나 모두 소중한 존재로 이 세상에 와서 각기 한 살림 살아가는 모습이나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시인은 짧은 시조 속에서 생존하는 생명의 율동과 생존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