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복음: 요한 11,19-27: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축일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라자로의 집에 들르셔서 쉬고 계실 때에, 마르타는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던 마리아에게 자기 일 좀 거들어 주게 하라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를 보고,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1-42)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마르타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상징이고 동생 마리아는 관상생활의 모델로 공경을 받는다. 또한, 성녀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25절)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장면을 보고 그분이야말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타는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21-22절)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23절) 하시고 라자로를 살려 주시면서 “부활이요 생명이다.”(25절) 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죽은 자를 살려주시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구원은 “지금 여기서”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구원은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구원이 단지, 내가 죽은 다음에, 하느님의 심판을 받은 다음 결정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부터 체험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죽은 다음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원을 주시는 그분을 믿고, 따르면서, 즉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지금 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하느님의 뜻 때문에 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삶, 죽으려 노력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이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기 전에 이미 고통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혹은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낳아줄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탄의 신비, 십자가의 신비,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이때 우리도 “예, 주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절) 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은 바로 구원의 체험이며 그럼으로써 부활 신앙을 올바로 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