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명을 생각하다가 그 뿌리인 로마문명의 역사를 요약 정리해 보기로 하다!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 에서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 이며 탄생- 성장- 쇠퇴- 붕괴의 과정을 거쳐 순환한다고 했는데.... 23개 문명 중에서도 6개 문명은 원시사회에서 스스로 발생했다고 말했으니, 사람들은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을 제외하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에 중국문명을 4대 문명이라고 말하게 된 시초가 되었습니다.
토인비는 일본은 중국 문명에 영향을 받았으나 “서구열강들의 도전에 응전” 해서 독자적 문명으로 발전 했다고 보았고, 한국은 중국문명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말년에 한국의 “효(孝)”사상과 “경로(敬老)” 사상을 듣고는 감격해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사상' 이라고 극찬했다는데... 21세기 들어 한국은 그의 말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제 “떠오르는 샛별” 이 되어 "한(韓) 민족의 융성" 이 시작되는가 봅니다?
사례1 : 미국 순위 조사 전문 매체인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가 발표한 정치· 경제· 군사적 영향력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Power' 순위에 따르면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에 이어 한국이 세계 6위에 올랐으며 프랑스가 7위, 일본이 8위를 기록했습니다.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는 한국에 대해 "첨단 기술과 서비스 기반의 경제는 외국 자본의 투자 성공 사례" 라며, "196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과 빈곤 감소세를 보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 중에 하나" 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어떤 분은 한국의 순위는 종합 20위이며, 10개 항목중에 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ies 라는 수식어가 붙은 “Power" 분야에서 6위를 한건 맞지만, 그건 군 병력이 많은데다가 국방비 예산이 많기 때문이고.... 또 10개 항목 중에서 한국이 일본에 앞선 유일한 항목 이라, 언론들이 나머지 9개 항목은 애써 모른척 하고 ”Power" 분야만 대서특필한다고 말합니다?
설사 그렇다고 쳐도 1948년 정부 수립후 기업이나 공장이 없는 농업국가니 조세 수입으로는 공무원과 군인 월급줄 돈에도 모자랐고... 6.25 이후 봄이면 보릿고개에 굶어 죽은 시체가 거리에 널렸었고, 1961년에는 국민소득 87$(현재 34,900$) 로 필리핀이나 케냐 그리고 70년대 초반까지도 1인당 소득이 북한보다도 뒤쳐졌던 세계 최빈국인 한국을 생각한다면 20위도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사례2 : 니혼 게이자이 신문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내년이면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2021년 1인당 국민소득(GDP) 은 룩셈부르크가 117,000$로 1위이고 6위는 싱가폴 79,400$, 7위는 미국 75,000$, 17위는 홍콩 49,700$ 이며 28위인 일본 39,600$, 30위 한국 34,900$ 그리고 대만 32,500$ 였으니 일본 언론들은 한국은 2027년, 대만은 2028년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1$ 에 110엔으로 고평가 되었던 일본의 엔화가 수출 부진과 제로 금리 때문에 매년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22년 들어서는 무려 20%(한국과 대만 화폐는 10% 하락) 나 그 가치가 떨어졌으니.... 니혼 게이자이 신문은 2022년에 대만 1인당 GDP 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며 다음 해인 2023년에는 한국도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엔저가 계속된다는 전제 하에 한국은 2023년에 다시 대만을 추월하고 2035년에는 홍콩과 싱가폴을 추월해서 동아시아 1위를 할 것으로 보니 이 해에 한국의 1인당 GDP는 6만 달러를 웃도는 반면 대만과 일본은 5만달러대일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니혼 게이자이 신문은 "한국과 대만은 행정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 대전환(DX) 에서 일본을 앞서기 때문에 1인당 GDP 역전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 이라 말합니다.
사례3 : 동아일보에 이정은씨는“뜨는 K웹툰, 지는 日 망가”를 올렸으니, ‘일본 망가 (漫畵·manga) 는 한국 웹툰에 가려져 빛이 바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보도로 만화의 원조 일본의 아성을 한국 웹툰이 무너뜨리고 있으니...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시티헌터, 베르사유의 장미, 엄마찾아 삼만리,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랜더스의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일러문, 아톰, 이웃집 토토로, 은하철도 999, 올훼스의 창…
일본 ‘망가’ 를 해외에서 통용되는 고유명사로 만들었던 일본으로서는 자존심을 후벼파는 보도인데 한국 웹툰(Webtoon) 은 37억달러를 돌파하며 급성장하는 반면에 일본 망가는 19억달러로 감소 추세이고, 일본 디지털 만화 플랫폼의 양대 축인 한국 회사 네이버의 라인망가와 카카오의 피코마의 시장점유율은 80% 이며, 100만점 이상의 작품 중 상당수가 일본어로 번역된 웹툰입니다.
모바일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하는 글로벌 만화시장에서도 일본 작가들은 흑백의 단행본 출판을 고집해 왔으니... 주인공의 땀방울까지 세밀하게 그려내는 장인정신은 신세대 독자층의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했으니, 독자의 시선을 사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만화책의 화면 분할 방식은 스마트폰의 스크롤로 쭉쭉 내릴수 있는 웹툰의 세로읽기 보다 답답하한데, 한국의 웹툰은 글로벌 판권 경쟁은 물론이고 굿즈 생산에 방송에서나 볼수 있었던 작품속 간접광고(PPL) 까지 비즈니스 확장성도 어마어마 합니다.
시례4 : 2003년 배용준 겨울연가의 일본 NHK 방송으로 시작된 한류(韓流) 는 일본열도를 사로잡아 일본 중년 여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영애의 대장금으로 중국과 동남아로 뻗어갔으니 2천년간 중국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문화가 한국에서 서쪽 중국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인 데..... 배용준과 동방신기가 주도한 1차 한류에 이어 카라 · 소녀시대 등 걸그룹과 근짱의 2차 한류 그리고 2017년 걸그룹 트와이스와 아이돌 방탄소년단에 블랙핑크등이 이끄는 3차 한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2년 싸이의 말춤 강남스타일은 전세계를 강타해 기습적으로 모이는 플래시몹은 파리 에펠탑 에 2만명이 모였고 이탈리아 밀라노 2만명, 피렌체 2만명 로마 포폴로 광장에 3만명, 팔레르모에 1만명이 모였으며..... 그리고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기생충과 오징어게임등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 열기가 뜨거운등 “한국 열풍” 이 대단하니 "한민족의 융성기" 입니다만..... 다만 이런 것들도 “서구문명의 일부” 인가 합니다?
서울에 사는 김한국씨는 예전에는 양옥집에 살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새벽에 일어나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주변 아스콘이 깔린 보도를 조깅하고는 돌아와 욕실에서 샴푸와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고 타올로 닦은후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배달된 신문 제목을 훑어봅니다.
전자레인지에 구운 토스트 몇 조각에다가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넣어 함께 마시고는 런닝에 와이셔츠 를 입고 넥타리를 멘 양복 차림에 신발장에서 구두를 급히 꺼내다가 마눌의 하이힐이며 부츠를 떨어뜨리 는데.... 보통 승용차를 이용하지만 비가 내리니 우산을 받쳐들고 내려와 지하철을 타는데 자리에 앉은 후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과 밴드를 획인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일본 망가를 제쳤다는 카툰을 읽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트로 올라와서는 걸어서 회사에 도착해 출입문 기계에 지문을 인식 한후 사무실로 들어가서는 형광등을 켠후 컴퓨터를 부팅해 이메일을 확인한 다음 지난 일주일 실적이 나온 액셀 자료를 읽어보고는 오늘 회의를 위해 어제까지 작성을 완료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획인한 다음 화상회의에 들어가 여름철 계획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점심 시간이 되니 김과장은 돼지국밥집으로 가지만 부서의 직원들은 돈까스집으로 가거나 이탈리안 스타일 경양식집에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고 신입사원 박군은 햄버거집으로 가는데.... 오후 업무 중에 잠시 커피 타임을 가지니, 김과장은 1회용 커피믹스를 사용하지만 박계장은 원두를 내리고 이대리는 홍차를 마시 는데, 일본인들이 포르투갈의 “판” 을 번역한 “빵” 을 함께 먹으니 빵은 영미권에서는 “브레드” 라고 하나요?
퇴근을 준비하다가 팩스가 들어왔기로 일별하고는 회사를 나와 아들 생일이니 파리바게트에 들러 케익을 사서 들어오니 헬스장에서 막 돌아온 듯 와이프가 빨래를 걷어 달래서 베란다로 나가니 브랜드 옷은 없지만 블라우스와 브래지어에 스타킹등 와이프와 딸 옷들이 많은데 잠시후 돌아온 아들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니 소독약에 머큐롬을 발라주고는 전등을 끈 후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릅니다.
지난 달에 딸 생일은 토요일이었으니 와이프는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고 돌아와서는 점심은 외식 을 하자면서 양산을 들고 나갔는데, 경양식집으로 가서 마눌은 카레아이스, 딸은 스파게티, 아들은 돈까스 그리고 김과장은 비프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누구는 래어로도 먹는다지만 그는 비위가 약한 탓에 미디엄도 아닌 웰던으로 구워달라고 요리를 돌려 보냈고, 식사후 김과장은 맥주를 마눌은 사이다, 아들은 콜라 그리고 딸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오늘은 집에서 먹기로 하니 와이프는 전기밥솥을 놔두고 압력밥솥에서 찰밥을 했는데 남편을 위해서는 된장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냉장고에서 햄을 꺼내고 참치캔을 따서 찌개를 끓이고 김을 구워 저녁을 먹는데, 다른 집에서는 생수를 마신다지만 김과장 집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마시며 식사후 에어컨을 켜고는 텔레비전을 틀어 축구 경기를 봅니다.
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 어릴때 스포츠카 카봇에서 순식간에 로보트로 변신하는 헬로카봇 컨버스터 변신 자동차 장난감에 빠졌고 플라스틱 딱지치기도 열심던 아이인데.... 고향에 사는 아버지는 어릴적에 골목길 흙길에서 구슬치기나 비석치기며 자치기를 했다지만, 김과장은 워크맨을 즐겨 들었다는 아버지와는 달리 MP3 로 음악을 듣고 소니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 뻐졌었는데 이제 아들과 딸은 등하교시 스마트폰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피아노를 치던 와이프는 이제 조용한 것이 전축이라도 튼 모양으로, 크리스찬이라 교회 성가대가 찬송을 하면 바이얼린을 그리고 딸은 플롯으로 반주를 하는데.... 아버지는 하모니카를 불었다지만 김과장은 젊었을 때 키타에 빠져 오랜 세월 열심히도 연습을 했었는데 요새는 시간이 나면 악기 보다는 테니스를 하거나 당구를 치는데 더 열심입니다.
딸은 노트북을 켜서 트위터인지 페이스북을 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니 아파트 가 오래된 탓에 화재경보기가 또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라... 김과장은 다음주 비행기로 해외 출장을 가야 하니 서류며 카메라를 챙겨야 하는지라 그만 텔레비전을 끄려는 순간에 북한이 드론을 서울 상공에 날렸다는 보도를 보는데, 지난 주에는 북한이 잠수함에서 SLBM 을 발사하고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를 본 것을 기억 합니다.
장황하게 김과장 집의 하루 일과를 적어 보았는데, 여기에 한국문명은 뭐가 있을까요? 우리 조상님 들이 만들어서 물려준 것으로는 쌀밥, 된장국, 김치, 숟가락과 젓가락, 돼지국밥.... 다 합쳐도 2~3 % 나 될까 싶으며 중국인들의 한자문명에 19세기 말부터 일본인들이 번역한 어휘등을 합쳐도 4% 정도라면 96% 는 미국등 서양인들이 만든 것이니 이른바 “서구문명” 하에서 살아갑니다.
오늘날 한국인 김과장의 하루 일과는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와 미국이며 프랑스 그리고 아메리카 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공통된 것이니 모두들 양복을 입고 치마 저고리 한복이 아닌 양장을 하며 양화(구두)를 신는데, “예수님 오신지 2024년째 되는해” 라는 서기를 쓰니...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은 토브와 쿠피야, 히잡 같은 옷이며 하루 5번 살라트등 이슬람 문명을 지키지만 그래봤자 서구문명이 한국인의 96% 에는 못미쳐도 90% 정도는 되리라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고대에 문자를 만들지 못했으니 고조선 나라를 세우고도 말로만 살다가 훗날 침략을 일삼는 원수놈들인 중국에서 한자(漢字) 가 간헐적으로 들어오니 적의 물건인데다가 글자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지라 당연히 읽을수가 없으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저 한자(漢나라 글자)는 천년이 걸려 만들어졌으니 태생이 상(商)나라에서 점을 치던 갑골에서 시작된 것이라 우리로서는 꺼림칙 (동이 東夷 를 침공하는게 길(吉)한가, 오늘 출진하는게 길(吉)한가...) 합니다.
산(山) 의 우리말은 뫼이며, 강(江) 의 우리말은 가람이고, 해(海) 의 우리말은 바다이니 그럼 중국말인 동해(東海) 의 우리말은? 한민족은 한자가 들어오니 그 한자의 발음인 중국말 (2천년전 漢나라 사람들의 말) 단어를 쓰다 보니.... 내일(來日) 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잊어버렸고, 또 동서남북(東西南北) 에 해당하는 우리말도 잊어버렸습니다.
강원도 어부들이 동풍을 샛바람이라 하니, 동(東)이 샛이라면 동해(東海)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샛바다이고 백두산의 우리말은 흰머리뫼이며 한강의 우리말은 큰가람이 될 것이며, 문자가 없으니 달력이 없는지라 우리 명절인 5월 삼한 수릿날, 10월에 고구려의 동맹, 동예에 무천, 삼한에 상달제 그리고 12월 부여에 영고는 중국 명절인 설날과 대보름에 한식, 단오, 칠월칠석, 중추절(추석) 과 동지에 밀려 잊어버렸습니다. 오늘 동아일보에 우리나라 무역흑자 1위가 중국에서 베트남(610억불 수출, 267억불 수입) 으로 바뀌 었다는데 그 베트남 거리 간판에 알파벳을 소리내어 읽으니 “부동산, 기숙사, 준비, 광고....” 등이라 는데, 한국과 쌍둥이 처럼 닮은 베트남은 중국이 통일되면 침략받고 분열하면 독립하며 한자와 음양오행을 받아들이고 유교를 국교로 삼으며 또 민간에서는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가 대세 입니다.
또 공맹과 주자의 사상을 공부한 유학자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쳐서 관리로 선발되는데, 몇년 전에 방문했던 후에 왕궁은 경복궁과도 닮았으니, 모두 베이징의 자금성을 모방한 것으로... 프랑스는 식민지 베트남에서 중국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 한자를 금지하고 알파벳으로 베트남 말을 적게 한 것이니, 저 알파벳을 소리내어 읽으면 “부동산” 등이 됩니다.
모두 2천년전 한나라 사람의 말인 한자(漢字)로 만약 진시황의 나라가 오래토록 유지되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한자(漢字) 라는 말 대신에 진나라 글자니 진자(秦字) 라고 쓸 것인데..... 한자를 쓰다보면 자연히 중국문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니, 거란이나 여진이며 몽골도 중국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한자를 쓰면서도 따로 “자기 고유문자” 를 만들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중국 개인 배낭여행을 10번 가량 했는데 안휘성이나 절강성에서 신기한게 기차를 타려고 들어가니 공안이 신분증(身分證)을 보여 달라는데, 중국 베이징 보퉁화(표준어) 인 “신펭장” 이라 하지않고 “신분증” 이라고 발음하며 또 표(票)를 베이징 표준어 “퍄오” 라고 하지 않고 “표” 라고 부르니 한국과 안휘성(절강성) 의 발음이 같은 것은 모두 2천년전 한나라 사람들의 한자 발음인 탓 입니다.
중국여행을 처음 갔을 때 기차를 화차라고 해서 놀라 살펴보니 19세기 서양문명 이 동양으로 밀려 들어올때 수천개의 단어들이 한자어로 번역(조어) 되었으니 Car (Automobile) 는 일본은 자동차 (自動車) 로 중국은 기차(汽车) 로 번역했고, Train 을 일본인은 기차(汽車) 로 중국은 화차(火車) 로, Bicycle 은 일본은 自轉車 (자전거) 로 중국인들은 자행차(自行车) 라 번역했는데 한국은 일본인 번역을 지금까지도 빌려쓰고 있습니다.
Limited Company 와 the President of a Company 를 우리는 일본인들이 번역한 대로 "주식회사 株式會社 와 사장" 으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유한공사 有限公司 와 총경리" 이며... 그외 의회, 정부, 경제, 사회, 민족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내각, 대통령, 개인, 자유, 국민,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철학, 무전 낭만, 과장, 비행기, 군함, 잠수함, 전차, 지하철, 수도, 전기, 전자,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수천여자 입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중국인들은 영어 단어 번역내지 조어(造語) 를 계속하니 코카콜라는 可口可乐 (가구가락), 맥도널드를 麦当劳(맥당노), KFC 는 背德基( 배덕기) , 엘리베이터를 电梯(전제) 그리고 케이블카를 索道(삭도) 라고 번역하더니.... 샤오미의 "휴대폰은 手机 (수기)" 라고 하고 "스마트폰은 智能手机 (지능수기)" 라 부르니 이는 "중화문화" 에 대한 강한 자부심 때문인가 봅니다?
해방후 한국은 영어 단어를 한자나 한글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쓰니 라디오, 텔레비전, 바캉스, 개그맨, 매스커뮤니케이션, 패션, 히어링, 컴퓨터, 피자, 아나운서, 코미디언, 개그맨, 컴퓨터, 오디오, 비디오, 라이브, 피디, 매스 커뮤니케이션, 바캉스, 카페, 레스토랑, 레저,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다이버, 엠씨, 모니터 쇼, 댄스, 록밴드, 재즈, 테입, 시디, 오토, 캠핑, 머드, 숍, 시너지, 랩, 스캐너, 스마일, 아이돌,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핸즈프리, 주니어, 스마트폰, 웰빙, 힐링 등 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번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포볼이나 데드볼, 도루, 견제구, 유격수, 병살, 캐치볼, 터치아웃, 무사 1루, 테레비 등 일본인들이 만든 조어는 가급적 피하면서, Club 을 일본인이 번역한 '구락부' 대신에 “클럽” 이라고 고쳐 부르고 “써클” 을 “동아리” 로 쓰면서 모바일폰(셀룰러폰) 을 휴대폰(핸드폰) 이라고 번역(조어) 합니다.
20년 전인가 어느 대학의 모 교수는 democracy 를 일본인들이 “민주주의” 라고 잘못 번역했는데 저건 정치 체제를 뜻하는 말이니 군주정(왕, 황제) 이나 과두정에 대한 말로 “민주정(民主政)” 이라고 바꾸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민주주의 라는 틀린 단어는 사용하지 말고 민주정이라는 단어로 고쳐 쓰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니 이제 세계는 이스람 문명과 힌두 문명에 중국 문명이 갸날픈 숨을 쉬기는 하지만 대세 는 이미 정해졌으니, 수백개의 다른 고유 문명들은 거의 다 사라져 버리고 “서구 문명” 하나로 통일된 것인데...... 서구 문명의 뿌리는 “그리스~로마문명” 으로 로마가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였으니 그럼 “로마 문명” 이라고 불러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로마의 역사에 관해서는 그간 수많은 저작들이 있었으니 폴리비우스의 역사, 타키투스의 연대기와 역사, 수에토니우스의 열두명의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에이드리언 골즈워터의 로마전쟁 영웅사, 배은숙의 강대국의 비밀,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초 역사서인 삼국사기는 신라나 고구려가 건국한지 1,200년이나 지난 후대인 1145년에 편찬되었으니 까마득히 옛날옛적 이야기를 기록한데 비해...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 에 편찬되었으며, 로마사 최초의 저술인 폴리비오스는 기원전 203년에서 기원전 120년까지 생존한 사람이고....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전 44년 그리고 타키투스는 서기 55년에서 117년까지 산 사람들이니 당대의 역사를 기록한지라 사실적인 사료들 입니다.
저런 책들 외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유명한데..... 내가 직접 구입해서 읽은 책은 로마인 이야기 15권 + 1권,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 상하 2권, 십자군 이야기 3권,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 르네상스의 여인들, 황제 프리드리히, 황금빛 로마, 은빛 피렌체, 주홍빛 베네치아등 30권인가 합니다.
이제 시오노 나나미를 따라 서구문명의 원천인 로마 역사를 요약해 보려고 하니....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유길준이 셍각나는데, 그는 “서유견문록” 서문에서“ 남들이 이야기한 찌꺼기 만을 주워 모았다” 라고 적었으니.... 그 남이란 바로 일본인 후쿠자와 유기치의 책으로 1863년 미국에서 돌아와 집필한 “서양사정”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19세기 말에 서구문명을 받아들일 때 그 과정이 좀 다르니.... 일본인들은 직접 미국과 유럽에 가서 시찰하거나 또는 4~5년씩 유학을 하면서 서구문명을 배우고 돌아와서는 책을 쓰고 대학을 세웠으며, 조선인(한국인) 들은 그 몇십년 후 일본에 가서 후쿠자와등을 만나거나 일본 대학에 입학해서 일본인들이 번역한 서구문명을 간접적으로 배웠는데 그후 유길준과 윤치호, 서재필등 몇사람이 미국을 다녀온 것입니다.
개화기에 미국과 유럽을 4번이나 다녀온 일본의 선각자 후쿠자와 유기치가 저술한 책 “문명의 개략” 이 1875년에 조선에 입수되면서.... 그의 문명개화론은 1880년대 조선의 개화 사상에 큰 영향 을 끼쳤으니 김옥균, 박영효, 윤치호,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이광수가 그들인데, 후쿠자와는 서구문명을 소개하면서 영어 단어를 “문화, 문명, 자유, 개인” 등 한자단어로 번역내지 조어(造語)했습니다.
후쿠자와는 1884년 갑신정변의 사실상의 설계자로 김옥균은 그의 집에서 6개월간 숙식했고,박영효 에게는 금속활자와 인쇄기에 잉크와 종이 그리고 시사신보 기술자 이노우에를 대동시켜 1883년에 귀국시켜 한국 최초 신문인 한성순보를 발간하도록 해 주었으며... 후일 서재필에 이어 독립신문을 발간하게 되는 윤치호와는 서신을 주고 받으며 언론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유길준 에게는 “문자지교” 라는 그의 저술을 국한문 혼용으로 번역하게 하였는데 1896년에 고종이 경복궁을 탈출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하니 친일내각이 무느지고, 고종은 그 중에 갑오경장을 주도한 김홍집과 유길준 부터 잡아죽이라 했으니, "조선에서 서양에 유학한 유일한 인물인 유길준" 을 죽이라니 그럼 "서구문명 도입" 은 어떡하라고....
서구문명을 처음 접하게 된 아시아인들 특히 일본인들은 당황했다는 정도를 넘어서 “경악” 했으니.... 개화기에 선각자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기치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데, 조슈번(야마구치현) 의 요시다 쇼인은 신동으로 12세 때는 번주 모리 다카치카 앞에서 유학 교재인 무교전서를 강의했다는데 훗날 "존왕양이론" 의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1854년에 에도(도쿄) 입구인 이즈반도 시모다에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이양선인 구로후네가 오는데, 당시 일본은 100톤의 목선인 범선이 있었는데 3천톤에 달하는 석탄을 때서 가는 거대한 군함을 보자 경악하고는,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 괴물을 만든 미국으로 가야겠다며 나룻배를 노저어 군함 포하탄에 올랐다가 에도 막부와의 관계를 생각한 미국 함장이 거절하니 실패합니다.
그러고는 고향 하기시에 쇼카손주쿠 松下村塾(송하촌숙) 라는 사숙을 열어 2년 동안 90명 제자를 기른 후에 막부를 무느뜨리는 거사를 계획하다가 다른 일로 참고인 소환을 받자 스스로 자복해 사형을 당해 메이지 유신의 불쏘시개가 되는데, 두꺼비는 능구렁이를 도발해 삼키게 한 다음에 독을 뿜어 능구렁이를 죽이고 는 알에서 깨어난 두꺼비 새끼는 능구렁이 몸을 파먹고는 나오니 요시다 쇼인은 두꺼비역을 자임한 것이라?
그 제자 중에 다카스키 신사쿠는 3백명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친막부파인 3천명 조슈번을 무느뜨리고 막부 10만 대군의 2차 토벌을 저지했으며... 구사카 겐즈이는 영국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시모노세키 에서 미국과 프랑스 상선에 대포로 포격해 미, 영, 프, 네델란드 4국 군대와 전쟁한 주역이었으며, 기도 다카요시는 유신 3걸중에 하나인데..... 2기 제자들 중에 일본 총리대신을 지낸 자는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에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다케, 다나카 기이치 5명 입니다.
조선통감 이토와 총독 데라우치, 초기 조선주둔군 사령관들에 명성황후 시해설계자 전 조선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와 공사 미우라 고로에 한일 합방시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역시 그의 제자들인데..... 양명학에 영향을 받은 그는 제자들에게 "죽어서 불멸의 명성을 얻는다면 언제 죽어도 좋다. 살아서 대업을 이루고 싶다면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 행동을 일으키면 그 뜻(志) 은 반드시 후세에 전해진다." 라고 가르쳤다는?
두번째로 만엔권 지폐에 나오는 선각자 후쿠자와 유기치는“대명율 상유조례”란 책을 구한날 아들이 태어 났기로 책에서 글자를 따와 유키치로 지은, 성리학자로 후쿠자와는 4서 오경을 공부한후 포술(대포) 서적을 얻은후 이 책을 읽기위해 난학(네델란드어)을 공부했는데 훗날 영어를 새로 배우면서“몇년 동안 수영을 배워 헤엄칠수 있게되자 다시 나무타기를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노라 어려움을 말했습니다.
1860년 2월 네덜란드선 함장 키무라 셋츠의 수행원으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인 일본사절단에 합류 하였는데, 미국인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당황하고 일본식 가치관이나 예의가 통하지 않는 서양사회에 적응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데...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등 군주의 후손과 외손들이 어떻게 생활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미국 국민들은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의 후손들 이 현재 무엇을 하는지를 모른다는 점에 대해 "큰 충격" 을 받았습니다?
미국 체류중 웹스터 큰사전을 입수해 영일사전을 만들었으며 일본어와 영어, 중국 광동어를 비교 분석한 “화영통어 華英通語” 를 집필했는데..... 1862년 막부(幕府) 견외사절의 수행원 에 임명되어 유럽에 파견된 이후 3차례에 걸쳐 유럽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열차, 기관차, 기계등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소개하고 일본에 도입할 것을 적극 주장하였습니다.
“ 프랑스는 징병제라는데 영국은 아니라니 왜 나라마다 제도가 다른 것일까 궁금했다. 선거법은 어떤 법률 에 기초해서 실행하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는 어떤 관공서 인지 물었더니 질문받은 유럽과 미국인은 그저 웃을수 밖에? 더 황당한 것은 당파가 둘로 나뉘어서 정치적인 싸움질을 해댄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적인 상대방 의원과 함께 술 마시고 밥을 먹는다?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 이었으니..... “닷새고 열흘이고 걸려서 간신히 납득” 했다고 했으며, 첫 순방때 홍콩을 경유하였는데, 영국인들이 “중국인들을 개나 고양이” 와 다름없이 취급하는 것을 보고는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현실에 큰 충격" 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두번째 순방때 영국 런던에서 만국박람회를 시찰할때 증기기관차와 전기 장비, 활판 식자기 등을 유심히 관찰하였으며.... 이어 러시아를 방문해 일본과 러시아간 사할린 국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서는 육군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을 견학했고 토지 거래계약서 작성등 문화적 차이 에 놀라면서 일본에서는 책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에는 흔한 것을 조사했습니다.
서양식 병원과 은행 업무, 고리 대금, 보험 업무, 우편법, 징병 징집 제도, 선거 제도와 의회 제도며 기관차와 화학 약품에 기계들을 보고는 “서양문명의 유행은 막을 방도가 없으니 일본은 문명화를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새로운 축을 마련하자” 고 말했으니... 이른바 “탈아입구 (脫亞入毆)” 로 은행과 생명보험, 화재보험 등을 도입하고 게이오대학을 설립해 서구문명 을 가르치며 영어 단어를 “문화, 문명, 자유, 개인” 등으로 번역(造語) 해서 일본에 소개했습니다.
갑오경장(개혁) 은 아베 신조 총리의 외고조부인 오시마 요시마사가 1894년 6월 21일 경복궁을 습격해 불과 두세시간 만에 고종을 포로로 잡고 조선군의 항복을 받은후, 공사 이노우에가 김홍집을 수반으로 한 군국기무처라는 친일내각을 세우게 해서 궁내부 설치, 조세 금납제, 도량형 통일, 경무청(경찰) 설치, 과거제 폐지, 반상의 신분제도 철폐, 천민제도 폐지, 양반들의 재산인 노비 해방 에다가 5백년간 내려온 과부 재혼금지제도 철폐등을 추진했습니다.
이노우에 공사의 훈수로 친일파 정권에서 조선의 근대화 개혁이 시작됐지만... 개혁은 혁명 보다도 힘든 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거센지라, 반상의 신분 철폐는 양반들이 반발하고, 노비 해방은 양반들이 자기 재산을 뺏기는 것이라 저지하며 천민제도 철폐는 농민조차도 반발하고, 과부 재혼금지제도의 철폐는 일부종사, 유교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 일본이 3국 간섭에 굴복해 요동반도를 토해놓자 기세가 오른 고종이 개혁을 거부하고 아관파천으로 친일파 정권이 붕괴하자 근대화 개혁은 무산됩니다.
천민과 노비해방등을 주도한 갑오개혁의 주역 중에 한 사람인 친일파 유길준이 미국을 다녀와서 서유견문록 을 쓴 것 처럼.... 나도 미력하나마 이미 에드워드 기번과 시오노 나나미등 “남들이 이야기한 찌꺼기를 주워 모아” 오늘날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서구문명의 뿌리인 로마 역사" 를 요약 정리해 볼까 하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 이미 "로마" 를 1~6회 까지 연재하고서야 그 전문인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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