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인 유적-
보통 호버크레프트는 부의 상징이긴 했지만 그 생김새는 그렇게 멋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앞이 뾰족하고 납작한 플라잉머신의 샤프함에 비하면 호버크레프트는 타원형으로 둥글둥글한게 멋이 없었다. 거대한 호버크레프트는 조종실과 중앙 공간에 휴식이라던가 그 외의 업무를 볼수 있는 장소가 있었고 그 외의 부분들은 모두 동력실같은 운행장비들이었다. 호버크레프트는 제작당시부터 이동력을 중시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쓸데 없는 장비등은 달지 않았다.
"세느카... 이상한 녀석들이 따라오는데?"
카인은 조종석 아래 보이는 후방탐지레이더에 비친 비행체를 보고는 말했다. 워낙 큰 호버크레프트인지라 뒷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비행체는 카인일행이 타고 있던 호버크레프트보다는 소형이었지만 마찬가지로 호버크레프트임은 확실했다.
"어째서... 우릴 뒤쫒는것이지? 그것도 푸치니시를 벗어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 말야.."
- "흠.... 아무래도 우리에게 목적이 있는것같아. 저런 호버크레프트를 지닌 녀석들이라면 분명 강도는 아닐테고....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녀석들이겠지.... "
카인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공격을 받은 것이 틀림 없었다.
"무슨일이야? 갑자기!"
파인리히였다. 중앙 공간에서 조종실로 뛰어들어온 파인리히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았다.
"젠장... 공격형 호버크레프트야. 저런 건 일반인들은 구입할수 없는 물건이라구....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길래 저런걸로 우릴 공격하지?"
그랬다. 호버크레프트가 공격을 할수 있다는 것은 전투를 위해 개발된 것이란 뜻인데.... 그런 것은
정부의 허가 없이 구입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공격으로 인해 세느카들의 호버크레프트는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워낙 안전장치가 잘 되있는 호버크레프트라 불시착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불시착하는 장소가 황량한 사막이었다는 점이었다.
파인리히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녀석들이 이곳까지 쫓아온것인가.... 겨우 도망쳐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파인리히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호버크레프트밖으로 빠져나왔다. 세느카와 카인도 호버크레프트가 폭발하기 전에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적 공격형 호버크레프트는 세느카 일행의 근처에다가 착륙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세명의 인간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검은색 폴리아트겐의 방어용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후훗... 도망칠곳은 없다. 파인리히!"
파인리히라는 말에 카인과 세느카는 동시에 파인리히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녀석들은 파인리히를 노리고 있는것같았다. 파인리히는 긴장한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말했다.
"도대체.... 왜 날 뒤쫓는 거냐? 내가 너희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난 너희들이 공격했기 때문에 반격한것뿐이었다. 그게 잘못인가?"
파인리히는 그들이 왜 자신을 쫓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듯했다. 상대방 역시 그 점을 가르쳐줄 마음이 없는지 공격준비자세를 취했다. 카인이 보기에 그들은 모두 매너포스를 지닌 포스 오너들같았다. 보통인간이라면 포스 오너들에겐 상대가 되지 못했다. 포스 오너들에게도 등급이 있긴 하지만 하위등급이라할지라도 그 파괴력은 굉장했기때문이었다. 솔직히 카인 자신도 지금의 상태로는 그들과 대적할수 없었다. 하지만 쉐도우로 접속한다면 충분히 승산있는 게임이었다. 3:2 의
싸움... 불리했다.
파인리히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위험해진 그를 돕지 않는 것은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카인은 우선 쉐도우와의 접속을 자제하기로 하고 입자폴리곤 단검의 손잡이를 꺼내어 들었다. 그러자 상대방 중 뚱뚱한 녀석이 말했다.
"이봐... 너한테는 볼일 없으니 괜히 나서지 말고 잠자코 있어. 우린 저 녀석만 데리고 가면 볼일 끝이야. 알겠어?"
뚱뚱한 녀석의 말을 들은 카인이 무슨 말을 하려하자 파인리히가 그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녀석들이 왜 날 쫓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일은 내 문제니까 혼자서 처리할게. 나서지 말아줘."
- "뭐? 혼자서 포스 오너 세명을 상대하겠다구? 그건 미친짓이야. 너에게 승산이 없다구..."
파인리히는 카인이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카인에게 신세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살아온 인생이 아니던가.... 벌써 저런 녀석들의 추격을 받은게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밀리에 포스 오너한명을 보낸 것이 다 였는데 파인리히가 물리쳐내자 3명을 동원한 것이다. 포스 오너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잘 아는 파인리히였기에 계속 그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이 왜 자신을 뒤쫓는지는 알수 없었다. 그에게는 알고 싶은 것들이 그 외에도 많았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신의 능력에 대한 것.... 그는 그들이 자신을 뒤쫓기 시작한 3년간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을뿐이었다. 그 외에 기억나는 것은 고고학과 죽음의 순간에서 자신을 보살펴준 사람뿐이었다.
카인은 파인리히의 눈빛에서 도움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읽어낼수 있었다.그렇다고 잠자코있을수만도 없는 카인이었다. 저들이 말은 카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어도 믿을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전투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세느카까지 위험해지도록 보고있을수만은 없었다. 카인은 입자폴리곤 단검에 자신의 지문을 입력했다. 그러자 시퍼런 폴리곤 광선이 약 80센치 가량 뿜어져 나왔다.
"호오... 기어이 상대를 하시겠다? 후훗.. 웃기는군. 우리들에게 그깟 검이 소용있다고 생각하나?"
세명중 우람한 근육질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끈을 하나 꺼내 들고는 양손에 쥐고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끈이 마치 쇠처럼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끈의 아래쪽을 양손으로 쥐자 마치 검을 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건 단지 끈조각일 뿐이었다. 카인은 상대가 자신을 얕보고는 매너포스를 이용하여 검술로 승부를 지으려는것에대해 내심 안도했다.
뚱뚱한 사내는 옆 동료가 상대방을 가지고 놀겠다는 듯 행동하자 껄껄거리며 파인리히쪽으로 다가섰다. 또 다른 한 녀석은 아직 싸움에 끼어들 마음이 없다는 듯 뒤에서 웃으며 동료들을 지켜보았다. 그의 웃음은 승리를 확신하는듯한 웃음이었다. 근육질 사내가 말했다.
"이봐. 그 녀석은 이상한 기술을 쓰니까 조심하라구. 그리고 반드시 생포해야돼!"
- "후훗.. 그래.. 알았어. 저 이상한 애송이나 처리하라구!"
뚱뚱한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파인리히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뚱뚱한 사내의 양손이 옆으로 펼쳐지자 주위에 있던 모래들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뚱뚱이의 매너포스는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인것같았다. 주위의 모래들이 한줄기로 뭉치더니 파인리히를 향해 날아갔다.
"젠장!!! 쉘리아드!!!" 파인리히는 단단한 금속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생명체인 쉘리아드를 불러내었다. 쉘리아드로 뚱뚱이의 모래공격을 막아낸 파인리히는 발이 모래속으로 30센치정도 빠져들어갔다. 뚱뚱이는 자신
의 공격을 쉽게 막아낸 것이 마음상했는지 양손으로 두 줄기의 모래를 파인리히를 향해 날렸다. 파인리히는 이번엔 방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옆으로 굴러 공격을 쉽게 피해버렸다.
"미케노스!!!"
파인리히의 오른손에서 원형으로 생긴 투명한 생명체가 뚱뚱이를 향해 날아갔다. 뚱뚱이는 파인리히의 반격에 당황한 듯보였지만 금새 자신의 앞에 있는 모래들로 방어막을 만들어 막아내었다.
근육질 사내는 끈으로 만들어낸 검으로 카인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카인은 상대방이 결코 자신을 얕본 것이 아니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검술이라면 자신있던 카인이었지만 상대방도 굉장한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실력면에서는 카인의 검술이 윗단계였지만 근육질 사내의 끈으로 만든 검은 굉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막기만 해도 팔이 저릴 정도로 마치 거대한 망치로 검신을 때리는것과 같은 충격을 받고 있었던것이다.
사내가 끈으로 카인의 왼쪽 팔 부분을 찔러 들어왔다. 카인은 검 손잡이를 위로하여 머리쪽으로 검신을 들면서 끈을 쳐낸 후 돌면서 팔꿈치로 사내를 가격했다. 사내는 카인의 팔꿈치를 왼손으로 막고는 카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카인은 오른쪽으로 돌면서 상대의 발을 피하였다. 그리곤 상대의 발을 베어나갔다. 상대는 자신의 실력이 약간 모자란 것을 느꼈는지 공기의 흐름을 조종하여 카인을 옆으로 약간 밀어내었다. 카인은 적이 매너포스를 사용한 것을 알았지만 어쩔수 없었다. 불리한 싸움이란걸 알고 시작한것이었으니 말이다.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세느카는 파인리히와 카인이 엄청난 적들과 싸우고 있는 것을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 신경쓰이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또 한명의 포스 오너였다. 그 사내는 뚫어져라 파인리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가다가 세느카 자신을 바라볼때는
섬뜩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파인리히는 상대의 매너포스가 강하긴 하지만 자신이 지진 않을거란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상대의 공격은 주위의 모래들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처음보다 많은 기력을 소진했는지 공격이 약해지고 있었기때문이었다. 뚱뚱이도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파인리히란 녀석에게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파인리히는 지쳐있는 뚱뚱이에게 공격을 했다.
"미케노스!!!!"
뚱뚱이 역시 파인리히의 미케노스에 대해 몇번 막아본 경험이 있는지 가소롭다는 듯 자신의 앞쪽에다가 모래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파인리히가 노린것이다. 파인리히는 자신의 오른팔을 왼팔로 붙잡고는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미케노스역시 궤도가 바뀌며 뚱뚱이의 방어벽을 살짝 비껴나갔다. 파인리히가 다시금 팔을 안쪽으로 굽히자 미케노스 역시 안쪽으로 돌며 정통으로 상대의 몸에 적중했다. 뚱뚱이는 가벼운 신음소릴 내며 쓰러져버렸다. 미케노스의 파워가 원래 강한 것이 아니었기에 중경상을 입었을것이다. 하지만 한명의 적이 없어진 셈이었다.
뚱뚱이가 쓰러지자 근육질 사내는 카인에게 혼신의 힘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끈에게 보내고 있던 매너포스를 끊고는 뚱뚱이처럼 물체를 이용한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끈을 여러조각으로 자른 사내는 각각의 조각에다가 매너포스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공중에 뜬 끈들은 마치 날카로운 표창이 되어 카인을 노리고 있었다.
카인은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을 봐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쉐도우와 접속할 준비를 했다. 만약 적의 공격이 가공할만한 것이라면 쉐도우와 바로 접속하여 위험을 모면해야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인이 쉐도우와 접속할 필요도 없이 파인리히의 공격으로 근육질 사내의 공격은 무산 되었다.
파인리히는 자신의 능력중 가장 강한 볼캔샤이어를 적에게 구사했다.
마치 화염덩어리처럼 생긴 그 생명체는 놀라운 속도로 적을 향해 날아갔다. 온신경을 끈에다가 집중시키고 있던 근육질 사내는 순간 자신의 위험을 파악하고는 방어막을 형성하였지만 단 0.1 초 의 차이로 파인리히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워낙 강한 공격이었는지라 근육질의 사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사내는 동료들이 쓰러지는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점점 강해지고 있군.... 우리에겐 네 능력이 필요하다. 함께 가도록 하자. 이 녀석들의 죽음은 묵인해주겠다. 자.. 어서!"
사내의 말을 들은 파인리히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죽이려들땐 언제고 이제와서 부드럽게 말하는게냐? 그런다고 내가 들을것같으냐? 네 능력이 저 두 녀석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와 카인의 협공을 당해낼순 없을거다. 우리에게 저 공격용 호버크레프트만 내어준다면 살려보내주겠다."
사내 역시 자신이 두명을 한꺼번에 상대할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취할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파인리히의 말대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내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웃기는 소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는 못한다. 우리들은 한 번 맡은 임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한다. 어차피 이대로 동료들을 잃은채 돌아가봐야 개죽음뿐! 후훗..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
사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적막을 타고 뻗어나갔다. 파인리히와 카인은 전투준비를 다시금 가다듬었다. 그때였다. 세느카가 카인의 앞쪽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도대체 파인리히와 무슨 관계죠?"
카인은 세느카를 몇일동안 많이 이해할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녀의 행동은 이해할수 없었다.
세느카 역시 자신의 행동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파인리히를 보면 언제나 이상한 슬픔같은 것이 있었다. 자신을 보는듯한..... 세느카는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듯 사내에게 질문을 던진것이다. 무의식중에 일어난 일처럼 세느카는 순간 당황했다.
사내는 우연치 않은 좋은 기회를 놓지지 않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끈 조각들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세느카의 바로 앞까지 날아가 바로 앞에서 멈춰서버렸다. 끈들은 여전히 파르르 떨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후훗.... 멍청한 것.. 자아... 어서 무기를 버려라. 이 여자가 죽어도 좋은가? 파인리히? 너를 무척이나 생각하는것같은데? 나와 같이 간다면 이 여자를 살려주겠다."
금새 상황이 뒤바뀌어버렸다. 사내의 위협을 들은 카인은 그 즉시 입자폴리곤 단검을 땅바닥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파인리히는 비겁한 사내를 경멸하듯 말을 했다.
"후훗... 저 여자는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여자다. 죽일려면 죽여버려. 난 괜찮으니까... 받아라!! 볼캔샤이어!!!"
파인리히의 말과 함께 오른손에서 붉은 화염덩어리 생명체가 뿜어져 나왔다. 그 생명체는 엄청난 속도로 사내를 덮쳐나갔다. 사내는 파인리히가 그렇게 나올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사내는 끈을 표창처럼 발사했던 것을 잠시 정지시키고 있었는데 사내가 쓰러지자 끈이 세느카를 향해 돌진했다. 카인은 순발력있게 세느카의 앞으로 가로막아섰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이미 쉐도우와 접속을 한 상태였다. 쉐도우의 강력한 방어력덕분인지 매너포스로 쇠보다도 단단해진 끈이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상대방 사내가 쓰러지면서 주머니속에 있던 리모트 콘트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안있어 공격용 호크(호버크레프트)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폭발해버렸다. 죽을려면 다 함께 죽자는 심정이었을것이다. 폭발물의
파편을 쉐도우와 접속한 카인은 세느카를 보호하며 막아내었고 파인리히 역시 쉘리아드를 이용해 막아내었다. 사내는 호크의 파편에 맞아 절명한 듯 보였다.
카인은 쉐도우와 접속을 끊고는 파인리히의 멱살을 붙잡고 말했다.
"이런 나쁜 자식!!! 아무리 예의가 없는 놈이라지만 어떻게 세느카의 목숨을 놓고 장난칠수가 있지?"
파인리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휴우.... 어쨌든 이겼잖아? 그럼 된거 아니야?"
파인리히의 뻔뻔함에 카인은 주먹을 날렸다. 파인리히는 저항없이 그 주먹에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카인은 몰랐다. 파인리히가 그 주먹을 왜 맞았는지를... 파인리히 역시 그 상황에선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몰랐다. 세느카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지만 그런 말을 할 성격이 아니였던 그였다. 그래서 차라리 한 대 맞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카인은 파인리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의식을 잃은 세느카에게 달려갔다. 아마 폭발에 의한 쇼크인것같았다. 곧 의식을 차리겠지만.....
잠시후 세느카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앞에는 파인리히와 카인 둘다 모두 무사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느카는 파인리히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실망하는 기색이 보이자 파인리히가 입을 열었다.
"난 변명같은걸 싫어해. 그리고 사과할줄도 몰라.하지만 나로선..... 나로선 그게........"
- "됐어... 그만... 난 괜찮아.... 미안해할필요 없어. 모두 무사하니까......"
세느카는 계속 파인리히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카인은 파인리히가 자초한일이라고 생각하며 세느카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파인리히는 차라리 그녀가 화를 내었다면 속
시원했을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어쩌랴...... 아무말 없이 카인과 세느카의 뒤를 쫓았다. 부숴진 호크의 잔해쪽으로 이동하던 세느카가 말했다.
"이제 나 혼자 걸을래... "
- "흠... 괜찮겠어? 혼자걸어도?"
카인은 세느카의 팔을 놓아주며 그녀가 괜찮다는것에 안심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동문제였다. 호크가 파괴된 이상 이 사막을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사막지역은 통신용 전자기파 차장이 심해 MTM 도 불능이었다. 세느카 일행은 앞이 막막했다. 사막의 기온은 일교차가 엄청나게 심하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 지금의 온도는 영하로 내려가려하고 있었다. 주간이 더 길다면 복사열 때문에 야간 온도도 상당히 높아야했지만 주간보다 야간이 훨씬 긴 겨울이었기 때문에 사막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세느카 일행이 타고 있던 불시착한 호크의 잔해에서 옷가지들과 모포 등을 주워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카인은 세느카가 자꾸 걱정되는지 계속 세느카의 얼굴을 살폈다.
"춥지? 후.....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었는데... 이곳의 지형특성상 통신은 불가능해... 꼼짝없이 발이 묶여있어야한단 소리지.... MGPS(Mini Global Positioning System:미니위성좌표분석기)도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수도 없어. 젠장.... 큰일이군.."
- "난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파인리히는?"
세느카는 주위를 둘러보고 파인리히가 안보이자 그의 행방을 물었다.
"몰라.... 녀석... 겉으론 강한척해도 무척 소심한녀석같아. 미안해서 네 앞에 못나타나는거겠지 뭐...."
카인이 자신을 비꼬는 소리를 듣자 파인리히가 다가오며 외쳤다.
"흥! 소심? 그런거랑은 거리가 멀어! 난 단지 먹을걸 찾으러 갔던것뿐이었어. 변변치는 않지만 이거라도 먹어둬. 전갈이야."
파인리히의 손에는 죽은채 통구이가 된 거대한 전갈이 들려있었다. 그 전갈역시 오랜 역사동안 진화를 거듭하여-죽음의전쟁도 이겨내고-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기가 많이 커지긴 했지만 속도와 그 독성은 더욱 강력해졌다. 사막에서 번식하는 전갈들은 주로 모래 내부에 숨어사는 생명체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카인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핫.. 미안... 듣고있는줄 몰랐어. 대단한데? 그런걸 잡아오다니.... 그거 먹을순 있는거야?"
- "매일 인스턴스 식품만 사다먹으니 이 맛있는 전갈요리의 참맛을 알리가 없지. 먹어도 안죽으니까 배고프면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마. 나 혼자라도 다 먹을 자신 있으니까"
파인리히는 말을 하면서 전갈의 껍질을 벗겨내었다. 의외로 흰 속살이 드러나자 카인은 군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파인리히는 가장 잘 익은 부분을 잘라 세느카에게 가져다 주었다.
"고마워... 파인리히...."
세느카의 말을 들은 파인리히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왜.... 화를 내지 않는거지? 나 때문에 화가 날만도 하잖아. 난... "
- "후.... 파인리히.. 난 너 때문에 화가난게 아니야... 난 오늘 사람이 죽는 모습을 처음봤어. 그것도 인간들끼리 서로 싸워서 말이야. 다른 종족들의 시체들은 많이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 난 도대체 왜 서로 죽고 죽여야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들끼리도 그렇고 다른 종족하고도 그래.... 난... 난 싫어.... 그런게 싫어. 살기위해 어쩔수 없다지만... 난 싫어........"
세느카의 말을 듣고 있던 카인은 그녀가 받았을 충격이 생각보
다 심했고, 그 충격이 파인리히 때문이 아니라 살인장면에 의한 것이란 것을 깨닫고는 말했다.
"전쟁에선 살인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 그리고 전쟁에서 적을 죽였다고 해서 처벌받지도 않고.... 물론 그게 옳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의 생명과 가족들의 생명.... 재산... 국가 등을 보호하기 위해 우린 어쩔수 없이 전쟁을 하게돼. 서로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어. 아까의 경우도 전쟁과 다를게 없어. 파인리히와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우리 자신의 생명을 위해 싸운것이었어. 상대방의 목숨의 존귀함을 우리도 알지만 그건...... 어쩔수 없는거야... 상대를 살려주면 내가 죽어야하니까...."
- "그래.. 카인의 말이 맞아. 우리가 살인을 즐기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린 어쩔수 없이 싸우고 죽일 수밖에 없어... 넌 앞으로도 이런 일들을 많이 겪게 될거야. 하지만 이겨내야해..."
파인리히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세느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아...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 난 내 힘이 닿는한 인간끼리나 혹은 다른 종족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어. 어쩌면 인류의 기원을 밝혀내는 것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내게 주어진 사명같은.... "
- "후훗.. 녀석... 굉장히 심오한 말을 하는데? 이제 기분좀 풀린것같은데 자아... 맛있는 통구이전갈요리를 먹으시게^^"
카인이 농담하여 전갈통구이를 들이밀자 세느카는 웃음을 참지못하고 웃어버렸다. 파인리히는 세느카가 의외로 여리다는 것을 느끼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시인간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날은 어두워졌지만 셋은 아직 잠이 들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난
후 한참을 말이 없다가 누군가 입을 열었다.
"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여전히 허름한 옷에, 옷에 달린 모자로 얼굴을 푹 눌러쓴 파인리히였다. 세느카는 파인리히가 이제 마음을 열기로 한 것을 눈치챘다. 가만히 듣고 있기로 한 세느카는 파인리히를 바라보았다. 두눈을 감고 명상하듯 앉아있는 파인리히의 입에선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기억하는건 요 근래 3년동안의 일들뿐이야. 그리고 왠지 모르게 손에 배어있는 고고학에 대한 편집된 기억들.... 그리고 내가 기억을 잃고 헤매일 때 나를 도와주었던 그녀에 대한 기억.... 이게 다지..... 난 내가 누구이며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능력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
세느카는 진지하게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잠을 청하던 카인역시 자세를 고쳐 그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3년전의 일이었어..... 난 매우 흥분해있었고 장애물은 닥치는데로 부수며 달리고 있었지... 내가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난 달려야된다는 일념으로 뛰고 있었어. 내 뒤에선 아까 그런 복장을 한 한 녀석이 날 뒤쫓고 있었고 말야.... 난 단지 도망쳐야한다고 느꼈어. 그래서 도망쳤지.... 언제 다쳤는지는 몰라도 여러군데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어. 다행이 추격자를 따돌린 난 카드모스란 자그마한 마을에 와 있었지...."
- "카드모스란 마을은 처음인데..... 아직 도시화가 안된 마을이었다면 2지역구에 있겠군.... 그래서?"
카인이 뒷이야기가 궁금한 듯 파인리히를 재촉했다.
"훗.... 그곳에서 아우로페를 만났지.... 아니... 쓰러져있던 날 구해준 여자가 바로 아우로페였어. 내 상처는 별로 심하지 않았는지 몇일지나지 않아 완쾌될수 있었지.."
파인리히는 자신을 쫒던 자와 사투를 벌인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세이렌들의 등장...... 그녀의 죽음..... 너무도 슬픈 기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