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등장인물
소우스케, 도련님 - 박보검
마사토 - 서강준
미츠코
강준은 유명하기로 제일가는 여도둑의 자식, 어미는 죽고 장물아비의 손에서 길러졌다.
본디 제 어미의 기질이 어디 가지를 못하는 법이었으니
강준 또한 손버릇과 눈치는 제 어미를 빼닮아 그 실력이 섭섭지 않았다.
" 나랑 큰거 한번 해볼래? "
살결이 유난히 희고 고와 도저히 이 바닥 출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미츠코가
죽기보다 돌아오기 싫었다던 시궁창에 다시 돌아와 건넨 제안은 꽤나 흥미로웠다.
친일의 댓가를 톡톡히 받아 현존하는 조선땅에서 가장 부유해진 코우즈키가에 들어가
하인이 되어 그 집안의 도련님과 미츠코 자신을 혼인하도록 부추기라는 것.
" 그 다음엔 어떻게 할건데? "
" 어떻게 하긴. 귀하신 코우즈키가 아들내미를 정신병원에 잡아 넣어야지 "
" 재밌겠네 "
*
미츠코는 그 날로 가난에 찌들어 가문의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일본명문가 당주에게
신분을 사들여 제 자신을 명문가 대부호의 여식으로 신분을 세탁해 코우즈키가에 접근한다.
강준 또한 그 집의 하인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코우즈키가의 도련님 소우스케를 만나게 된다.
' 옘병, 잘생기면 잘생겼다고 말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
강준은 예상치 못하게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소우스케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미리 얘기해주지 않은 미츠코를 원망하고 있을 때
소우스케의 시선이 강준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한번 강준에게로 향했다.
" 다른건 다 괜찮은데 나한테 거짓말만 하지마 "
하마터면 제가 하인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들켜버린 건 아닌지 움찔한 강준은
이내 한없이 다시 나른해진 표정으로 돌아온 소우스케의 표정을 보고 안심한다.
소우스케는 의자에 걸터앉아 강준에게 무언가를 끄적거고는 수첩을 건넨다.
" 읽어봐 "
" 사실 제가 글을 읽을 줄 몰라요 "
까막눈이었던 강준은 소우스케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 아예 읽을 줄 모르는거야? 앞으로 그게 네 이름이야 마사토 "
소우스케가 일어나 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옷장과 서랍을 열어 값비싼 것들을 보여준다.
강준은 돈이 될만한 장물들에 저도 모르게 현혹되어 눈으로 쫒다가
소우스케의 손에 들려 있는 목걸이에 이르러서야 멈춘다.
" 이건 뭐에요 도련님 "
" 어머니 사진이야. 돌아가셨어. 사람들이 그러던데 내 어머니와 내가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다고 "
한없이 쓸쓸한 눈빛으로 사진을 들여다보는 소우스케.
아직도 죽은 제 어미의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다니,
강준은 생각보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릴거 같아 살풋 웃음이 새어나온다.
소우스케는 낭독회를 하러 가야 한다며 열두시에 저를 데리러 오라는 소우스케의 말을 듣고
열두시가 되어 낭독회실의 문을 연다.
그곳에 소우스케와 코우즈키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함부로 문을 연 강준에게 코우즈키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강준은 재빨리 문을 닫는다.
아까 본 뱀과 소우스케 그리고 코우즈키 사이에서 느껴졌던 어딘가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던 분위기를 떠올리며 소우스케의 목욕을 준비하는 강준.
미지근한 물에 소우스케를 들어가 앉히고 손에 사탕을 쥐어준다, 많이도 피곤 했던게지.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려 하는데 소우스케의 눈이 찡그려진다.
" 왜그러세요? "
" 이가 아파 "
" 잠시만요 "
강준은 골무를 서랍에서 꺼내와 소우스케의 입안에 제 손가락을 넣는다.
부드럽게 살살 어루만지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소우스케의 눈이 감긴다.
소우스케가 눈을 감자 참았던 숨을 겨우 토해내는 강준은
아까부터 계속 이 욕실안을 감도는 달달한 냄새의 정체가 소우스케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욕조에 담긴 물 안에서 퍼져나오는 달콤한 체취에 취한 강준은
그만 갑자기 눈을 뜬 소우스케와 눈을 마주친다.
" 마사토 "
부드럽게 저를 부르는 소우스케의 음성때문에
아찔한 감각이 몸안에서 퍼져나오는 듯한 착각에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강준,
그 팔꿈치를 쓰다듬는 소우스케는 몽롱한 눈빛으로 마사토를 바라본다.
코우즈키 저택에 미츠코가 방문하는 날, 미츠코는 강준을 따로부른다.
" 어떤거 같아 이 집 도련님? "
" 글쎄 "
" 어째 대답이 시원치 않다? 만만히 볼게 아니야.
이 집 도련님 날 좋아할 수 밖에 없게끔 잘 구슬리란 말이야.
그래야 한몫 제대로 챙길 수 있다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
" 너무 만만해서 탈이야 이 집 도련님, 아마 아래를 건들여도 아무것도 모를걸 "
그 말에 웃음이 터진 미츠코를 뒤로하고
강준은 제 주머니 속에 있는 골무를 만지작 거린다.
"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
미츠코와의 식사자리를 위해 의상 입는것을 도와주던 강준은
소우스케의 셔츠를 입히다 말고
자꾸만 소우스케의 속곳 안으로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바람에 신경 쓸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소우스케의 셔츠 단추를 조심스럽게 하나씩 채우는 강준,
그래, 이 많은 단추는 나 좋으라고 달렸지.
소우스케의 정장차림에 넋을 잃다가 문을 여는것도 잊어버린다.
만찬이 끝난후 소우스케가 저를 불러세워
옷장에 든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복을 꺼내입힌다.
" 마사토 손 올려 "
입고있던 셔츠의 단추를 하나 하나 풀어낼때마다 닿는 손의 감각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조심스러웠던 제 손길과 달리 소우스케는 거침없이 단추를 풀어낸다.
소우스케의 숨에서 섞어져 나오는 알싸하고 달콤한 향기에 강준은 숨을 들이삼킨다.
미술수업을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또다시 저택에 발을 들인 미츠코,
" 거의 다 익었네 "
복숭아를 베어물며 약속한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리 없는 소우스케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미츠코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강준은
소우스케와 미츠코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소우스케와 산책을 나선다.
" 우리 엄마는 나 낳다가 죽었대. "
" 도련님 "
" 우리 이모는 나무에 목매달아 죽었고 "
우리 엄마도 목을 매달려 죽었는데,
강준은 저와 처지가 똑같은 도련님이 안쓰럽기만 하다.
저는 세상이 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바깥에 훤하다지만
그에 비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불쌍한 소우스케 도련님.
"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봐. 나 때문에 다 불행해져 버렸어 "
"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도련님 "
걱정스런 마음에 소우스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쥔다.
" 주인마님이 계셨다면 도련님께 분명 이렇게 말하셨을거에요. "
" 너를 낳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
미츠코의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든 강준은 도련님을 앉혀놓고 버섯을 따오겠다고 한다.
미츠코와 소우스케의 다정한 밀담을 훔쳐보는 강준의 마음이 이상하다.
일이 잘 되고 있는데 왜 마음 한켠이 무언가에 콱 막혀버린 것 처럼 갑갑한지 영문을 모르겠다.
버섯을 따며 내려오는 길에 강준은 울컥 밀려드는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홧김에 바구니를 집어던진다.
연이어 이어진 미츠코의 야외수업에서 둘의 애정행각을 목격해버린 강준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충격과 질투심에 소우스케를 외면한다.
소우스케가 부르는 종이 끊어지고 나서야 소우스케의 침실로 들어서는 강준.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토라져 있는 소우스케는 저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 않고 돌아 누워있다.
" 늦게 오시는 줄 알고 먼저 잠들었어요 "
" 낭독회가 얼마나 힘든었는지 알아? 옷갈아입는 거부터 전부 혼자 했다고 "
" 죄송해요 도련님 "
" 악몽 꿀거 같아 옆에서 자 "
숨막히는 정적을 깬 건 다름아닌 소우스케 쪽이다.
" 미츠코가 혼인하재 "
" 어떻게 하실거에요 도련님은? "
불안하게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강준.
" 미츠코가 나한테 실망할거 같아 "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도련님 "
강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소우스케의 답변에 돌아누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소우스케를 쳐다본다.
" 너도 알잖아. 내가 어려서부터 부모님 없이 지내온거.
남녀 사이에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를 수 밖에 없잖아.
혹시라도 미츠코가 나를 시체처럼 여기면 어쩌지? "
소우스케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걱정이 안타깝기 그지없는 강준은 한숨을 토해낸다.
내가 미츠코라면, 당장이라도 벗겨서 소우스케의 체취를 실컷 맛보고 느낄텐데.
이걸 어떻게 하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소우스케의 얼굴때문에
도저히 신경을 다른데로 돌릴수가 없다. 역부족이야. 한참을 고민하는 강준.
' 그래, 가엽잖아. 어려서부터 부모 잃고. 아무것도 모르고 몸만 큰 어린애. 오늘만 가르쳐주자 '
탁상에 숨겨놓았던 사탕을 입에 넣고 혀로 살살 굴려 맛을 보는 강준은 제 입술에
딱딱해진 사탕을 비벼 녹이고는 조심스럽게 소우스케에게 입에 제 입술을 닿게한다.
말캉한 입술이 맞닿아 천천히 움직인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가는 입술.
축축히 젖어든 소우스케의 혀가 강준의 입술에 내려 앉아 이미 녹아 든 달콤함을 맛보려 할짝인다.
달콤하고 , 더 달콤하고, 씁쓸하고, 쌉싸름한 맛.
달콤했던 밤을 보내고 강준은 미츠코가 못마땅하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미츠코가 강준을 불러 몰아세우고 모든 게 밝혀지면
너나 나나 죽은 목숨이라는 걸 분명히 한다.
그 날 밤 강준은 피곤하다는 소우스케의 발을 어루만지며 마사지를 해준다.
강준의 빨갛게 달아오른 귓볼을 보고
강준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며시 미소짓는 소우스케.
" 미츠코가 삼촌이 저택을 떠나는 날 자기랑 도망치재 "
그 말에 강준은 부드럽게 주무르던 발을 제법 힘있게 감싸쥔다.
" 미츠코 아가씨가 도련님을 정말로 사랑하시나봐요 "
" 난 말이야, 그냥 지금처럼 마사토 너랑 살아도 괜찮을 거 같아 "
" 무슨 말씀이세요 도련님 "
"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내가, 꼭 그 여자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
" 사랑하게 되실 거에요 "
짝-
방안에 가득 퍼진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강준의 고개가 돌아간다.
떨리는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는 강준의 말을 듣고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 소우스케의 입술.
" 나가 "
강준의 멱살을 붙들고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입을 달싹이는 강준을 무시한채
강준의 방문을 닫아버리는 소우스케.
잠시 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밖으로 나간다.
정원 한가운데를 다 차지할 만큼 아름드리 큰 나무 위에 벚꽃들이 만개해있다.
그 아래 밧줄에 목을 매단 소우스케를 확인하자 마자 강준은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같다.
정신없이 달려와 소우스케의 발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살리려는 강준의 다급한 손길에
소우스케가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 본다.
눈물로 얼룩진 강준이 엉엉 아이처럼 목놓아 울고있다.
"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도련님 "
얼음장같이 굳은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는 소우스케.
" 네가 뭘 잘못했는데? "
" 제가 미츠코와 짜고 도련님을 속이려고 했어요,
혼인시키고 도련님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했어요.
도련님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죽지마세요 "
차가운 시선이 내려앉는다, 비로소야 강준을 바라보는 소우스케.
" 강준아 내가 걱정돼? "
마주치는 시선, 그걸 말이라고. 죽어도 상관 없어요.
울컥하는 마음에 목이 꽉 막혀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강준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인다.
" 난 네가 걱정돼 "
출처: 비공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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