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때 알던 물 / 김미령
미안해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어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내가 하려던 말은 나를 남겨 두고 혼자 걸어가 지금쯤 집에 다다랐을 것이다
한동안 우린 물 위의 오리를 보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리가 아니었고
눈앞에 호수는 있지도 않았고
아까부터 저기서 우릴 향해 짓궂은 표정을 짓던 아이가 의자에 드러누워 테이블을 차기 시작했다
피곤한 날이군 하늘은 점점 흐려지는데
이쯤이면 이제 우리 중 누가 물을 엎지를지도
괜찮냐고 거듭 미안하다고 말하며 급히 닦다가 다시 컵을 깨뜨리기도 하면서
이런 날이 처음은 아닌데
이 장면들 중 내 기억이 아닌 것은 무엇이고 곧 다가올 경험은 또 무엇
휴일 아침은 탁자 위의 물방울 하나에서 흘러나와 시간의 앞뒤로 무한히 뻗어 가는데
어디선가 자동차 경보음이 들렸다
어제의 꿈에서인지 근처 주차장에서인지 그 소리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좀 걸어 볼까요?
우리는 먼길을 돌아 호수공원까지 갔다
오리배들이 밧줄에 묶여 목을 까닥이며 무언가 아는 흉내를 냈다
- <문장웹진>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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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령 시인
1975년 부산 출생. 부경대 국문과 졸업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 『파도의 새로운 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