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가 산책을 하다가 문득 경험했다고 하는 무분별의 경지, 니시다가 말하는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순수경험(純粹經驗)이 일어날 듯한 신비한
공간이었다.
-----공부방23호「어느 일본 유학생의 관동지방 여행기 」송동규 (p.150)
* 무분별(無分別) :
1. 분별력이 없는 것. 앞뒤 생각이 없는 것. 사리에 맞게 판단, 구별하지 못 하는 것.
2. (불교용어로서) 주체와 객체의 구별을 넘어 언어나 개념만으로 대상을 파악하지 않은 것.
* 무분별지(無分別智) : 무분별에 의거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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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부정적 의미를 띤
일반적 '무분별'이 불교용어(스즈키 다이세츠의 철학적 개념도)로서는 분별이나 구분, 차별까지를 넘어서는 초월적 의미, 긍정 용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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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일본불교사공부방1호 」출간부터 지켜보면서,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부방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었다.
"한국불교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본불교?"라든가
"일본불교 그거, 원래 우리가 전해준 거였잖아? 선진 문명이었던 우리 백제가 전해준, 그 일본의 불교를 이제 와 새삼 우리가 왜 공부해?"
"아, 일본불교...그 장례불교?"
등등의 조롱과 비난 섞인 온갖 손가락질을 하는 무리 속에 나도 있었다.
없는 데서는 물론이고 면전에서 대놓고 붓는 수모를 감내하면서 일본불교아카데미 세미나를 열고 논문집까지 내는 김호성 선생을 보면서 참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왜 저런 욕 먹는 곳에 쏟아붓지? 누가 말릴 친구도 없나? 정말 노답이다...
욕하는 나 같은 사람들 저 편에는
회갑연 맞아 뜻있는 곳에 쓰겠다고 공부방 제작비에 보시하시는 분, 익명으로 성의를 보태시는 분들, 응원하고 동참하는 좋은 도반들이 늘 옆에 계시기에, 책 나오면 혼자 주소 쓰고 발송작업하고 우체국을 열두 번도 더 드나들며 도처에 보내는 김호성 선생이 지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공부방이 나오고 23호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자폭성 고백을 하자면 사실
새파랗거나 샛노랗거나 진주홍이거나...라자스탄 여인들의 사리만큼 칼라풀한,
강렬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튀는 표지의 공부방을 받아들면 대~충 표지 목록만 훑어보고 그중 한두 꼭지 글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 공부방을 대하는 독자로서의 나의 태도였다.
어차피 읽고 싶어서 내 돈 내고 내 산 책이 아니었기에...
그랬는데...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차츰 공부방을 열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랍기까지 하다.
한국불교/일본불교, 따져가며
그동안 "무분별"한 비판과 선입견으로 호감/비호감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나의 시각이 좀 바뀌어 가고 있다는
방증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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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타면 종 두고 싶다 경마 잡히고 싶다(騎馬欲率奴), 했던가?
욕심이란 끝이 없다.
공부방23호의 아쉬운 점은
사진과 그림을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 민화에서 모티베이션한 패션 디자인이나
[<민예(民藝)와 민화(民畵)>(신현경)]
란카지 불탑의 청명한 하늘과
먹음직스런 우나돈(鰻丼, 장어덮밥)을
껌꺼무리한 흑백으로 봐야 한다는 것,
[<'어느 일본 유학생의 관동지방 여행기>(송동규)]
제작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