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두에서 소를 키우면서 기록과 지역을 공부하고 있는 후배 송호철이 전화했다.
난 포두초 100년사 수고했다 하고 한권 보내달라고 한다.
그는 포두 지역 사회이야기를 하다가 언젠가 말해 준 암각 글씨를 보고 싶다고 한다.
동강에서 마륜으로 오고 있다기에 집으로 오라한다.
그의 차를 회관 앞에 두고 범재등으로 올라간다.
호계 글씨를 보고 초록 이끼에 싸인 초서와 그 이의 죽헌독서대를 본다.
물길을 조심하라 여러 번 말하며 설주의 낙관이 있는 죽령폭포까지 간다.
을사년이 1905년이니 1965년일 거라 하니 1905년일 수도있다 한다.
그러고 보면 송 설주는 1965년에 별세하셨다.
노년에 쓰인 글씨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암벽을 살피면서 글씨를 찾는다.
고흥에 이런 곳은 처음이라며 관심을 보인다.
다시 다리로 올라와 영효재로 간다.
소재문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한다.
그도 여산 송씨다.
그가 담 넘을 모색하는 걸 보다가 내 하는 방식으로 방안에서
양동이 등 두갤 꺼내 문옆 담에 놓는다.
내가 먼저 넘고 그도 넘게 한다.
그는 이렇게 관리된 걸 안타까워 하며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관폭 글씨의 춘포는 지가 알고 있는 포두의 송형주 선생이 아닐 것 같다고 한다.
다시 회관으로 내려와 비끼골로 올라 괸돌바구까지 다녀온다.
그 역시 본 고인돌 중 가장 크다고 한다.
그의 차를 그대로 타고 동강에 가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 동강식당에 가니
이수일 선생과 박병섭 형이 막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 중이다.
이수일 선생은 언듯 몰라보시며 고흥에서 지내느냐고 묻는다.
소주를 한병 불러 운전하는 두부ㅜㄴ께는 권하지 않고 병섭형꼐 두잔 드리고 내가 다 마신다.
송아지가 생겨 바쁘다는 그에게 다시 데려다 달래 해 먼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