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후 金尙厚 (1922-1999)】"1944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입대, 지난·칭다오지구 특파단원으로 활동"
1922년 11월 11일 평안북도 철산(鐵山)에서 태어났다.
1944년 중국 톈진(天津)과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 일대에서 활동하던 한국광복군 제3지대원 함세만(咸世萬)의 권유로 이종금(李鍾金)·이인곤(李仁坤)·조동빈(趙東彬)·정수정(鄭守貞)·이길영(李吉永)·김기창(金基昌)·박지영(朴芝榮)·박유일(朴惟一)·박영일(朴英一) 등과 함께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있는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허베이성(河北省) 등 화베이(華北)지구에서 대일 정보 수집과 선전공작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인 1945년 8월 16일 한국광복군 군사특파단 파견 계획이 수립되자, 8월 20일경 지난(濟南)·칭다오(靑島) 지구 특파단으로 파견되었다. 광복 직후 중국인들은 일본이 패망하자 한국인들을 약탈하였다. 광복군 제3지대는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고 각 지역에 특파단을 파견하였다. 지난·칭다오 지구 특파단은 제3지대 본부 부관 장호강(張虎崗)을 단장으로 하여 부단장 최규련(崔奎連), 단원 박재곤(朴載坤)·박용운(朴龍雲)·김응주(金應柱)·김경윤(金景潤)·유창근(劉昌巹)·최동권(崔東權) 등이 활동하였다. 또한 특파단은 일본군부대 내에 억류되어 있는 한인 사병들을 인수하여 ‘잠편지대’(暫編支隊) 또는 ‘직할대대’(直轄大隊)를 두어 광복군으로 편성하였는데, 한인 사병과 청년들을 모아 금강부대를 조직하였다.
1945년 12월 초 중국 공산군의 지난 공격이 임박하자, 동포 3,000명을 인솔하고 40여 일간 걸어 1946년 1월 15일 칭다오에 도착하였다. 특파단은 미군과 교섭하여 수송선 2척을 동원하여 2월 26일 인천에 도착하였다. 광복군 중 처음 입국한 부대였다.
1999년 2월 19일 향년 77세에 노환으로 별세하였으며, 묘소는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