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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조반니 프란체스코 부세넬로
초연 1643년 베네치아 산 조바니 에 파올로 극장
<2017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 콘서트 버전 / 192분 / 한글자막>
잉글리쉬 바로크 솔로이스츠 & 몬테베르디 합창단 연주 /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포페아.........................................한나 블라치코바(소프라노)
네로네........네로 황제..................김강민(카운터테너)
오토네........포페아의 연인...........카를로 비스톨리(카운터테너)
오타비아.....네로의 황후..............마리아나 피촐라토
세네카........신하. 철학자.............지안루카 브라토
발레토........오타비아의 시동......
아르날타.....포페아의 유모..........루실 리차르도트
드루실라.....오토네의 전 애인.....안나 데니스
아모르........사랑의 여신............
포르투나.....행운의 여신.............힌나 블라치코바
비르투........미덕의 여신..............안나 데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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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몬테베르디-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콘서트 버전)
두 목소리가 빛내는, 위험한 사랑
독재자였던 네로에 거만한 로마를 빗대어 조롱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몬테베르디(1567~1643)의 <포페아의 대관>은 네로 황제와 정부인 포페아 사이의 부정한 사랑의 승리를 다룬 오페라다. 몬테베르디 탄생 450주년을 맞은 2017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실황으로 콘서트 형식이다.
가디너의 수족과도 같은 악단과 합창단이 함께 하는 가운데, 최근 바로크를 빛내고 있는 바로크 소프라노 블라치코바(포페아)와 강민 저스틴 킴(네로)의 호흡이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한다. 두 사람이 지닌 젊음은 극중 '젊은' 황제와 정부의 감정으로의 몰입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의 이중창 '내 사랑하는 이여'(35번 트랙)에선 역시 가디너의 '선택'과 '안목'이 빼어남을 입증한다. 3시간 10분 분량. 콘서트 버전이지만 성악가들의 연기와 표정이 돋보여 오페라에 버금가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몬테베르디(1567~1643)의 마지막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은 1642~1643년 사육제 기간 동안 베네치아 산티 조반니 파올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네로 황제와 정부인 포페아 사이의 부정한 사랑의 승리를 다룬 오페라는 이후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베네치아에서 공화파가 득세를 누리던 시절에 몬테베르디는 독재자였던 네로에 거만한 로마를 빗대어 조롱하려 했던 것 같다는 추측이 많다.
영상물은 몬테베르디 탄생 450주년을 맞은 2017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실황으로, 오페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인 공연이다.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를 맡았고, 앙상블 잉글리시 바로크 솔리스츠가 양옆으로 나뉘어 진영을 갖추어 사운드의 공간성을 확장했다. 앙상블 뒤로는 가디너와 함께 수많은 명반과 명연을 완성한 몬테베르디 합창단이 위치한다.
포페아 역과 포르투나 역은 바로크 소프라노 하나 블라치코바가 맡았다. 현재 안나 프로하스카와 함께 젊은 바로크 소프라노계의 양대산맥인 그녀는 헤레베헤, 스즈키, 룩스 등과의 음반 작업은 물론 환상적인 발성과 가사에 내재된 드라마틱한 표현을 깊이 파고드는 감동으로 유명하다.
무대 연출 형식이 아니라, 악단과 합창단을 뒤에 두고 진행되는 콘서트 버전이지만 성악가들의 연기와 표정이 돋보여 오페라에 버금가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그중 카운터테너 김강민(강민 저스틴 킴)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2019년 로열 오페라하우스 역사상 최초로 <피가로의 결혼>에서 이전까지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가 남장으로 맡았던 관습을 깨고 케루비노 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그는 이 공연에서 또 다른 주인공 네로 역을 맡는다.
특히 블라치코바와 김강민이 보여주는 젊음은 극 중 '젊은' 황제와 정부의 감정으로의 몰입으로 이어진다. 물론 잘못된 사랑이지만, 작품의 줄기가 된 이야기이기에 두 사람은 열정을 다해 극중 서사와 음악에 몰입하게 만든다.
가디너의 해석과 지휘는 여유로운 템포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거대한 물길을 이루듯 유유히 흐르게 한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김강민과 블라치코바가 선사하는 마지막의 이중창 '내 사랑하는 이여'(35번 트랙)가 작품에 또 다른 빛을 더하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3시간 10분 분량이며, 간단한 해설지와 한국어 자막을 갖췄다.
=== 줄거리 === <2008 글라인드본 영상물 내지 해설 / David Ylla-Somers / 박제성 번역>
프롤로그
행운의 신과 미덕의 신이 자신들의 우월함을 겨루고 있다. 사랑의 신은 앞으로 펼쳐질 네로네와 포페아의 이야기가 증명하듯, 자신이야말로 세계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1막
포페아의 연인인 오토네는 사랑하는 사람의 집 밖에 서서 연모의 열정을 터뜨린다. 그러나 네로네가 포페아와 함께 집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동안 호위병들이 길거리에서 졸고 있는 것을 본 오토네는 자신의 불행함을 탄식한다. 잠에서 깬 네로네의 병사들은 전날 밤의 불쾌함을 불평하면서 포페아와 네로네의 사랑을 험담하고 궁정에서의 불만을 토로한다.
네로네와 포페아는 다정하게 껴안으며 서로에게 부드러운 작별인사를 건넨다.
포페아는 늙은 유모인 아르날타에게 자신의 야망을 말한다. 아르날타는 오히려 행운의 신에 대한 포페아의 불신을 경고한다.
황후 오타비아는 자신의 슬픔을 유모에게 토로하며 남편인 네로네의 잘못을 힐책한다. 유모는 새로운 연인을 찾아보라고 제안하지만 오타비아는 자신의 고통을 감내한다. 세네카가 오타비아를 위로하며 신념을 굽히지 말라고 권고한다. 오타비아의 시동인 발레토가 세네카를 웃게 한다. 오타비아는 신전에 기도를 드리려고 떠난다. 세네카는 세상의 위엄이 무상함을 숙고한다. 네로네는 포페아와 결혼할 것임을 말하며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을 세네카에게 선언한다. 도덕적, 정치적 이유에 호소하며 세네카는 설득하려고 하지만 네로네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내쫓는다.
포페아와 네로네는 행복함을 만끽한다. 네로네는 황후로 만들어줄 것을 약속한다. 포페아가 세네카를 모략한 덕분에 네로네는 화를 내며 그에게 자살을 명령한다.
오토네는 포페아의 불성실함을 힐난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오토네를 경멸하듯 비웃으며 자신은 이미 네로네의 것이라고 말한다. 절망에 빠진 오토네는 포페아에게 화를 내지만, 이마저 거부당한 뒤 이전의 연인이자 포페아의 하녀인 드루질라에게 돌아가 사랑을 맹세한다. 다시 사랑을 찾은 드루질라는 기뻐하며 첫 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2막
메르쿠리오가 나타나서 세네카에게 머지 않아 죽을 것임을 예언한다.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세네카는 오히려 하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세네카는 네로네가 내린 죽음의 선고를 받는다. 신념을 굽히지 않는 세네카는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세네카는 죽지 말라고 애원하는 집안 식구들을 위로한 뒤 자신이 목숨을 끊을 욕조를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황후의 시동과 하녀가 농탕질을 하고 있다. 네로네는 세네카가 죽었음을 보고받고 친구인 루카노와 함께 포페아의 사랑을 농염하고도 광기어린 노래로 찬양한다.
황후인 오타비아는 자신의 권위로 위협하며 오토네에게 포페아를 죽이라고 명령하며 신변을 위해 여장을 하라고 지시한다. 오토네는 슬퍼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오토네의 맹세에 위로받은 드루질라는 즐거워하지만, 시동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조롱한다. 드루질라를 만난 오토네는 오타비아의 명령에 따라 포페아를 죽여야만 한다고 말하며, 변장하기 위해 옷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드루질라는 옷 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포페아는 세네카의 죽음을 기뻐하며 사랑의 신에게 자신의 운이 더 뻗어나가기를 기원한다. 정원에서 쉬기로 한 포페아는 아르날타의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든다. 사랑의 신은 잠이 든 포페아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숨어 있다. 드루질라의 옷을 입은 오토네가 포페아를 죽이고자 정원으로 들어오지만, 사랑의 신이 이를 막는다. 포페아는 잠을 깨고 오토네(드루질라라고 여겨진)는 도망간다. 사랑의 신은 포페아를 구했기 때문에 바로 황후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2막은 끝을 맺는다.
3막
드루질라는 자신의 라이벌인 포페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기뻐한다. 아르날타가 드루질라를 붙잡았고, 네로네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드루질라가 왜 살인을 저지르고자 했는가를 궁금해한다. 비록 죄는 없지만 오토네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포페아를 죽이려고 했다고 거짓 고백을 한다. 그리하여 네로네는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결백한 드루질라가 형을 선고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오토네는 자신을 드러내며 오타비아의 명령에 따라 저지른 자신의 범행임을 밝힌다. 네로네는 그의 목숨을 살려주고 드루질라와 함께 국외로 추방하라는 선고를 내린다. 한편 오타비아와의 이혼을 선언하고 역시 국외로의 추방령을 내린다. 네로네는 포페아에게 바로 신부로 맞이할 것을 맹세한다.
네로네에 의해 추방된 오타비아는 고향과 가족을 떠나게 된 것을 슬퍼한다.
아르날타는 자신의 지위가 높아졌음을 기뻐한다. 네로네는 포페아의 대관식에 근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신은 포페아에게 지상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의 여신을 위한 왕관을 씌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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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 <2008 글라인드본 영상물 내지 해설 / Tim Carter / 박제성 번역>
"아, 미덕이여, 숨어버려라!"
1643년 베니스의 산 조바니 에 파올로 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의 프롤로그에서 운명의 여신이 노래를 부른다. 미덕의 여신은 자신을 변론하지만 이내 큐피트가 등장하여 이어지는 오페라의 모든 사건들을 지배하겠다고 장담한다. 입장을 바꾼 미덕의 여신은 심오한 도덕적 딜레마를 제창한다. <포페아의 대관>은 어느 면으로 보나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예술을 통해 일종의 진실됨을 보여주고자 한 위대한 작곡가의 후기 작품(몬테베르디의 경우에는 최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겉보기에는 모든 관습에 직면하며 산산조각 나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네로네 황제는 오타비아와 결혼했지만, 오토네(드루실라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의 사랑을 받고 있는 포페아와 호색적인 농탕질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타비아와 오토네는 포페아를 암살하고자 음모를 꾸미지만 발각되어 결국 추방당하고, 네로네의 탐탁치 않은 스승인 세네카는 자결하도록 강요당한다. 만약 우리가 로마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포페아의 '대관'은 덧없는 승리일 뿐이다. 실제로 포페아는 후일 황제에 의해 살해되고 네로네 역시 종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것이 정말로 오페라에서 의도하고자 한 것일까?
몬테베르디의 리브레티스트인 조반니 프란체스코 부세넬로(Giovanni Francesso Busenello)는 아마도 고대 로마 황제를 천박하게 묘사해야 베니스 사회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공화정이었던 베니스는 한편으로는 남부 이탈리아의 세습 공국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로마와 교회로부터 이탈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저 유명한 로마의 타락한 지배자가 저지른 만행을 무대에 올려, 부패한 교황이나 실패한 합스부르크 황제와 그럴 듯하게 비교함으로써 베니스와 그 통치체제를 찬양하려는 정치적 선전의 목적에 정확하게 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몬테베르디의 영광스러운 음악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거의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왜 극에서 네로네와 포페아는 최고의 행복을 누린 것인가?
아마도 작곡가는 관객들을 위해 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북부 이탈리아 궁정과는 반대로, 베니스의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티켓을 구입하는 청중들에 의존하는 공공사업이었다. 베니스는 이상주의적 공화주의자들의 안식처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행복이 넘치는 정원이었고, 지금은 이 도시의 예술과 건축을 찬미하는, 혹은 향락을 즐기고자 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메카이기도 하다. 낮에는 의무적으로 교회나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운하를 따라 곤돌라에 올라타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밤에는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향락이 베니스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와 사순절 사이에 벌어지는 카니발이 바로 그것으로서 가면을 서서 자신을 숨기고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며 거리 곳곳에서는 성이 매매될 뿐만 아니라, 베니스의 극장들은 매일 밤 문을 활짝 연다. 베니스의 고급 창녀들의 침실에서 미처 만족하지 못한 리비도를 찬양하는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것보다 어떻게 더 많은 청중을 끌어모으겠는가? 간호사 옷을 입은 성도착자가 나오고, 코믹한 대목도 나오며, 술에 취해 벌이는 섹스 파티가 등장하는 등, 여러 가지를 혼합한 코메디를 끼워넣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가수들이 아름답고 목소리 또한 유혹적이라면 훨씬 더 매력 넘칠 것이다.
그러나 17세기 초반의 이 위대한 작곡가에게도 이러한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몬테베르디는 당시 70대로서 30여년 동안 봉사해온 성 마르코 바실리카 성당의 음악감독도 막바지에 이를 때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시성과 각성하고자 찾아헤맨 감정에 충실한 강력한 음악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 오페라 작업을 위한 모든 비법들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가수들의 능력을 최고로 이끌어 올리는가, 어떻게 말하는 것과 같은 스타일(레치타티브)과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부분(아리아)을 드라마 패시지로 일체화시키는가, 어떻게 장면들을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로 이끌어가는가, 어떻게 한편으로 파토스를 이용하고 한편으로 코메디를 사용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어떻게 눈과 귀를 잡아끌 것인가.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던져진 문제는 몬테베르디가 그럴 듯하게 의도한 방식대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연 당시 안나 렌찌(Anna Renzi)라는 비르투오소 소프라노가 오타비아를 연기하며 청중들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포페아의 감각적이고 에로틱한 멜로디는 어떻게 해석했는가? 세네카의 죽음을 뒷받침하는 음악에 의해 표현되는 복합적인 메시지는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리고 동정 자체를 요구할 권리조차 갖고 있지 않은 두 명의 주인공이 부르는 저 영광스러운 마지막 사랑의 듀엣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마지막 듀엣은 어떻게 봐도 문제가 있다. <포페아의 대관>이 초연된 1643년 무렵의 악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고, 1650년 초반 무렵에 작성된 두 개의 필사본만이 남아 있다. 이들 필사본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섞어놓은 것처럼 보인다(1643년판 <포페아의 대관>도 거럴 것인가는 전적으로 다른, 그리고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게 합의된 부분은 마지막 장면 대부분과 오토네의 파트로서, 비록 증거로 미루어 볼 때 마지막 듀엣은 몬테베르디의 것임이 유력함에도 불구하고, 프란체스코 카발리(Francesco Cavalli), 프란체스코 사크라티(Francesco Sacrati)를 포함한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다른 베니스 작곡가들에 의한 것이다. 더군다나 악기 파트의 윗성부는 필요할 때마다 채워넣을 수 있도록 이따금씩 빈 칸으로 남아있다. 성악 파트는 때때로 해골과 같이 앙상한 골격의 형식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수많은 삭제와 삽입, 전조 지시가 남아있다. 17세기 오페라들에서 이러한 것들은 일반적인 일로서, 오히려 현실에 있어서의 극장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러나 이 음악을 소리의 세계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연주자를 괴롭히거나 기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도전에 다름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놀라움과 이따금씩 내비치는 불안정함을 오고가는, 파악할 수 없는 의미로 가득 찬 파악하기 힘든 작품이다. 몬테베르디와 부세넬로는 우리로 하여금 드라마적, 음악적, 도덕적 궁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끊임없이 도전하게끔 만든다. 물론 이러한 점이 왜 <포페아의 대관>이 위대한 오페라인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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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정보 === <2011년 10월 14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몬테베르디
음악사학자들은 오페라의 본격적인 출발을
바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초연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바르디 백작이 이끈 귀족 및 예술가들의 모임 ‘카메라타 Camerata’에서 1597년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Daphne]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1600년의 [에우리디체Euridice]가 되었답니다. [에우리디체]는 프랑스 앙리 4세와 피렌체의 마리아 데 메디치의 결혼 축하연을 위해 의뢰된 작품으로, 몇 대의 류트와 하프시코드가 무대 뒤에서 반주하는 단조로운 모노디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7년 만에 선을 보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같은 소재를 다뤘는데도 이 [에우리디체]와는 비교도 안되는 발전적 규모의 작품이었지요. 그래서 음악사학자들은 오페라의 본격적인 출발을 바로 이 [오르페오]의 초연으로 보기도 합니다. 몬테베르디는 대체 어떻게 이런 획기적인 오페라를 발표할 수 있었을까요?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는 르네상스 후기에 때어나 바로크 전기에 주로 활동한 작곡가입니다. 응급외과 의사이자 이발사였던(당시에는 의사와 이발사가 하나의 직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예로 이발사 피가로를 생각해보세요!) 아버지 발다사레 몬테베르디와 어머니 마달레나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불행히도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음악교육에 열성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몬테베르디와 남동생을 크레모나 대성당 합창지휘자에게 보내 체계적 음악교육을 받게 했고, 몬테베르디는 지휘자에게서 음악이론과 작곡, 바이올린 연주, 합창의 가창법을 배웠답니다. 그는 15세에 3성부 모테트와 완벽한 미사곡을 작곡했고, 17세에 만토바의 실세 빈첸초 곤차가 집안에 들어가 현악기 주자로 일했으며, 20세에는 이미 5성부 마드리갈 모음집을 출판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습니다.
만토바 궁정 시대
1590년, 스물세 살의 몬테베르디는 곤차가 공작의 가수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궁정 작곡가로 임명되어 그 뒤 22년간 봉직했지요. 궁정작곡가라고 하면 꽤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보수는 보잘 것 없었고,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몬테베르디는 늘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바로 이 만토바에서 초연한 [오르페오]에 몬테베르디는 40대 가량의 다양한 악기를 동원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초창기의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통상 10-20명 정도 인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오르페오]는 음악을 단순한 장식 수준에서 작품의 일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최초의 비중 있는 오페라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만토바 궁정에서 일하는 동안 몬테베르디는 그의 대표적인 교회음악 작품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Vespero della beata Vergine](원제는 ‘복되신 동정녀 성모마리아를 찬미하는 저녁기도’)를 완성합니다. ‘저녁기도’란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행하는 저녁 전례를 뜻합니다. 유럽에서는 수많은 작곡가가 시편, 찬미가, 마니피카트(성모마리아의 노래)를 조합해 이 '저녁기도'를 작곡했는데, 몬테베르디의 작품이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걸작입니다.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몬테베르디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성공적으로 음악에 도입했습니다. 이 점은 그의 교회음악에서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 첫 소절에서 이미 드러나듯, 그는 단순하고 차분하던 당시의 교회음악에 빛나는 색채감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답니다. 그러나 당시는 가톨릭교회가 종교개혁의 물결에 맞서던 반(反)종교개혁의 시대였고, 그 때문에 교회음악에 각별히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던 시기였습니다. 교회음악 작곡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명료한 선율을 써서 가사를 알아듣기 쉽게 작곡하는 것이었지요.
르네상스 후기인 16세기 내내 유럽 음악을 지배했던 이 규칙은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고, 몬테베르디 역시 한편으로는 이 ‘구식’ 음악형식을 죽을 때까지 고수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나 이 확고하고 생산적인 형식의 기반 위에서 몬테베르디는 인간 내면의 열정을 표현하는 찬란하고 극적인 음악을 창조했습니다. 이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는 엄격한 전통과 새 시대의 표현법을 가장 절묘하게 혼합한 몬테베르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몬테베르디가 그처럼 이 작품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동기였죠. 20년을 만토바 궁정에서 일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었던 몬테베르디는 1610년 교황 바오로 5세가 있던 로마에 갑니다. 스스로를 바티칸 교회에 악장으로 추천하고 싶어서였고, 아들 프란치스코를 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몬테베르디는 자신이 지닌 음악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 줄 '지원서'로 교황에게 이 [저녁기도]를 헌정했지요.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 시대
하지만 이 소망은 둘 다 좌절로 끝났고, 만토바 공작이 세상을 떠난 1612년, 몬테베르디는 그 후계자에게 해고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마침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 악장이었던 가브리엘리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듬해 그 자리를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30년 간 몬테베르디는 산마르코 성당을 주 무대로 활동하며 서양음악사에 길이 남을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오페라 탄생 초창기에 [오르페오](1607)와 [아리아나](1608) 같은 작품으로 장르의 수준을 높인 당사자였지만 그 뒤로 몬테베르디는 긴 세월 오페라를 거의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1600년대 초기에는 누구나 오페라를 일종의 ‘실험예술’로 간주했고, 오페라라는 예술이 오늘날처럼 긴 역사를 쌓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답니다. 그런 몬테베르디가 다시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 계기는 1637년 베네치아에 최초의 상업 오페라극장 ‘산 카시아노’가 세워진 사건이었습니다. 귀족들의 궁정에서 공연되던 오페라가 누구나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면서 작품 수요가 급격히 늘었고, 그래서 이때 몬테베르디는 [율리우스의 귀향](1640), [포페아의 대관](1642) 같은 성숙한 걸작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와 그의 두 번째 황후 포페아의 결혼 과정을 다룬 [포페아의 대관]은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최초의 사극 오페라이자 등장인물의 개성을 살린 최초의 오페라입니다. 남의 남편을 빼앗아 결혼한 포페아, 친구의 아내를 빼앗은 네로 등 주인공들은 도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 극은 인물들의 말과 행위를 보여줄 뿐, 전혀 도덕적 평가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몬테베르디는 이 작품에서 실제 역사의 주인공들 외에 군인, 유모, 시동, 시녀 등의 평민계급을 오페라에 등장시켜, 당시 상업 오페라 극장을 찾는 평민 관객을 배려했습니다. 또 크리스마스와 수난시기 사이인 카니발 때 공연된 작품인 만큼, 베네치아 카니발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분위기에 적합한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상업극장이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는 망각 속에 묻혔을지도 모르지만, 오페라하우스의 개관과 더불어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졌던 것이죠.
대개 이탈리아어로 쓰인 세속가곡 ‘마드리갈’의 작곡가로도 유명한 몬테베르디는 이 장르가 음악적으로 최고의 표현력을 획득하게 된 1580년경부터 1620경까지 마렌치오, 제수알도와 함께 마드리갈의 제 1인자로 군림했습니다. 1580년대에 이미 마드리갈 곡집을 두 권 발표한 그는 만토바에 자리를 잡은 뒤 궁정음악가로서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1590년부터 1605년까지 네 권의 마드리갈 작품집을 더 발표했지요. 반음계와 음화기법을 이용한 가사 내용의 표현은 상당히 세련된 형태로 발전해 극한의 기교에 도달했고, 류트, 테오르보 등의 악기를 반주에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1600년경부터는 극적 효과를 더 강화하려는 의도로 한 사람의 가수가 노래하는 단성 마드리갈이 출현했지요. 1620년 이후로는 다성음악 마드리갈이 거의 사라지고, 바로크 칸타타 혹은 아리아가 마드리갈의 자리를 채웠습니다. 몬테베르디에게는 이 마드리갈 작곡이 바로 오페라 작곡을 위한 준비단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아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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