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道洞)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동.
원래는 대구부 해부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상향동과 하향동이 도동이 되어 달성군 해안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대구시에 편입되었으며
-1981년 대구직할시 동구 도동을 거쳐
-1995년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이 되었다. 도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1998년부터 도평동이다.
갓곡·개미실·신기리 등의 자연마을과 구미실·구회당곡·다릿골·매곡·항잇골 등의 골짜기, 삼태봉·향산(160m)·용암산(367m)·문암산(431m) 등의 산이 있다. 삼태봉은 세 봉우리가 삼태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용암산은 큰 바위가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문암산은 바위가 대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난다.
유적으로는 추보재(追報齋)·구로정(九老亭)·전귀당(全歸堂) 등이 전하고 문화재로는 문창공영정(대구문화재자료 25), 용암산성(대구기념물 5), 달성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1), 문창공영당(대구문화재자료 20) 등이 있다. 추보재는 1932년에 손병신(孫丙坤) 등이 지은 문중 재실로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구로정은 1903년에 지은 유림의 시회 장소로 2칸 규모이며 가구(架構)는 3량가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이다.전귀당은 서시립(1578~1665)의 효심을 기리기 위한 건물이다. 전귀당은 서시립의 호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중건한 것이다. 가구는 대들보 위에 원형판대공을 세우고 마루 도리를 받은 5량가이다. 오른쪽에 백원서원을 세우고 서시립의 위패를 두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
그밖에 동화사의 말사로 670년에 의상이 세운 관음사(觀音寺)와 고택 김두복주택이 있다. 김두복주택은 80여년 전에 지은 초가집으로 안채 3칸(6평), 사랑채 2칸(4평), 헛간 1칸(1평) 규모이다.
도동(道洞)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동.
동쪽으로는 북안천(北安川), 서쪽으로는 금호강(琴湖江), 북쪽으로는 주남평야와 접해 있다.
조선 후기 영천군 완산면(完山面)에 속한 지역인데 질그릇을 구웠다고 하여 점마, 점촌(店村) 또는 도촌(陶村)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칠백면(七百面) 도동동 일부를 통합하여 도리가 되어 영천면에 편입되었다가
-영천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1981년 영천읍이 시로 승격하여 영천시 도동이 되었다. 도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남부동(南部洞) 관할하에 있다.
오천정씨와 창녕성씨가 살기 시작하였으며, 구역(舊驛), 전촌(錢村),동당(東塘), 삼거리 등의 자연마을, 보(洑)인 거여새보 등이 있다. 삼거리마을은 세 갈래 길이 있다는 데, 전촌은 주조소가, 동당은 동쪽에 못이 있었다는 데 명칭이 연유한다.
유적으로는 호계사(虎溪祠), 모암정사(慕庵精舍) 등이 있다. 호계사는 1810년대 안증을 향사하는 사당으로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모암정사는 3칸으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진중에서 전공을 세운 성립(成立)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노거수로는 버드나무가 있는데 수령 200여 년, 높이 약 20m, 둘레 약 4m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영천여자전산고등학교, 성남여자중학교 등이 있다.
도동(道洞)
평안북도 철산군 가산리 도덕부락에 딸려 있는 마을.
도동(桃洞)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후암동의 옛 이름.
도동 동명은 이곳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어, 복숭아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하여 도동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1947년 6월 서울시령 제2호로 동회제도를 시행하면서 도동1가동회와 도동2가동회가 설치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로 행정동제를 실시할 때 동회는 폐지되고 도동이 설치되어 도동1가와 도동2가 일원을 관할하였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에 의해 전면적이고 대폭적인 구 · 동의 관할구역 재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도동은 중구에서 용산구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동일자의 조례 제979호와 제981호에 의해 도동은 폐동되어 도동1가는 남영동, 도동2가는 후암동에 편입되었다. → 남영동[행정동], 후암동[행정동]
도동1가(桃洞1街)
동명은 도동 지역을 분할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도동은 마을 부근에 복숭아나무가 많아 복숭아골로 부르고 한자명으로 도동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1914.4.1 경기도고시 제7호로 도동의 일부를 길야정1정목(吉野町1丁目)으로 하고 우수현과 도동・대이문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길야정2정목(吉野町2丁目)으로 칭하였다.
-1943.6.10 조선총독부령 제163호에 의한 區制度의 실시로 서대문구에 속하게 되었다가
-광복 후 1946.10.1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길야정1・2정목을 도동1・2가로 고쳐 중구에 소속시켰다.
-1975.10.1 대통령령 제7816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조정 때 동자동과 함께 도동1・2가의 대부분이 용산구에 편입되었으며,
-1985.9.1 서울특별시조례 제2016호로 동의 관할이 조정되어 도동1가는 동자동에 편입되어 도동1가 법정동명이 폐지되었으며, 도동2가는 후암동에 편입되었다.
도동2가(桃洞2街)
동명은 도동 지역을 분할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도동은 마을 부근에 복숭아나무가 많아 복숭아골로 부르고 한자명으로 도동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1914.4.1 경기도고시 제7호로 도동의 일부를 길야정1정목(吉野町1丁目)으로 하고 우수현과 도동・대이문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길야정2정목(吉野町2丁目)으로 칭하였다.
-1943.6.10 조선총독부령 제163호에 의한 區制度의 실시로 서대문구에 속하게 되었다가
-광복 후 1946.10.1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길야정1・2정목을 도동1・2가로 고쳐 중구에 소속시켰다.
-1975.10.1 대통령령 제7816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조정 때 동자동과 함께 도동1・2가의 대부분이 용산구에 편입되었으며,
-1985.9.1 서울특별시조례 제2016호로 동의 관할이 조정되어 도동1가는 동자동에 편입되고, 도동2가는 후암동에 편입됨으로써 법정동명이 폐지되었다.
도동(道洞)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도동화현(刀冬火縣)인데 경덕왕이 발음을 그대로 따서 도동(道同)으로 고쳐 임고군(臨皐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기도동ㆍ임천(臨川)의 두 현을 합쳐 영주(永州)로 하였다. 이 영주를 혹은 고울부(高鬱府)라 하였고, 1018년(현종 9)경주 관할하에 두었다.
1413년(태종 13)영천군(永川郡)으로 개칭하면서 도동ㆍ임천ㆍ신녕(新寧)ㆍ면백(黽白)의 4개 현을 속현으로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도동은 영천면 등에 분속되었으며, 1981년 영천이 시로 승격되면서 도남동의 일부가 되었다.
'대동여지도'에는 영천의 남쪽 4㎞ 지역에 나타나 있으며, 금호강의 상류인 남천의 하천평야에 발달하였다. 서남쪽의 하양(河陽)에서 동북쪽의 안강(安康), 동남쪽의 경주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되어 있었다. 도동은 임천ㆍ청통(淸通)과 함께 영천의 위성취락으로 발달하였다.
도동(都洞)
강원도 판교군 경도리 소재지마을. 본래 이천군 방장면에 소속된 지역이었다. 독을 굽던 마을이라 하여 독골마을이라고도 한다.
도동(道洞)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읍에 있는 도골마을. 온천다리에서 좌리고개로 이어지는 큰 도로 옆에 위치해 있다. 도동이라고도 한다.
도동(桃洞)
황해북도 송림시 서송리의 서쪽 오류동과의 경계에 있는 마을. 본래 황주군 송림면에 소속된 리였는데, 1914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도 복숭아, 배나무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도동(道洞)
황해북도 연탄군 성매리에 있는 마을. 본래 서흥군 도하면에 소속된 동이었는데, 1914년에 동이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동(陶洞)
황해북도 판문군 덕수리 중심에 있는 소재지마을. 질그릇을 구웠다. 질울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