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 타이젬에 서양 바둑계 현황을 나라별로 소개한다. 내가 20년 이상 서양에서 바둑인으로 살아서 그들을 잘 안다는 이유로 타이젬에서 나에게 이런 주제의 글을 청탁한 걸로 안다.
서양이 끝나면 동양 그 후 기타 지역을 다뤄 보려고 한다. 그러나 전세계 바둑계를 소개한다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작업은 한국 바둑계가 벌써 했어야 했다. 누구 한 명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다. 특히 해외동포 바둑인이 현지 바둑계와 교민활동에 대한 정보를 주면 고맙겠다.
다행히 나는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서양바둑문화의 이해’ 란 과목을 강의를 하면서 1차 자료조사를 해 놓은 것이 있다. 그 위에 새로운 자료들을 수집해 추가할 생각이다.
▲ 2008 미국 바둑대회(Portland) 일반 대국실 |
●…서양 바둑의 특성
‘서양바둑의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d그들의 바둑은 우리와 비교해서 분명히 다른 점은 많은데, 그것들을 내가 정리해 보려고 하니까 만만치가 않다. 서양인들의 가치관이나 의식구조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과학성, 합리성, 개인주의를 앞세우고 가치의 본질을 파악, 분석하려는 노력을 한다. 거기에다가 취미도 본업처럼 열심히 추구한다. 그들의 그런 자세가 어떨 때는 어이가 없고 때로는 나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엉뚱한 결과에 도달하기도 한다.
 ▲ 수 읽기가 힘드네 ▲ 필자와 필립5단(네덜란드 라이든 클럽) |
서양에서 바둑은 동양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도 수학과 컴퓨터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바둑은 수리적 게임이란 선입관 때문일까? 호주 국립대학 스마이스 (Neville Smythe)교수(수학- 4단)는 "수학을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철학과 만난다. 바둑은 동양 철학을 배경으로 해서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수리적 게임이라 그 안에서 내가 찾던 무슨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둑을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 대학생 시절부터 바둑을 배운 모내쉬 대학 리스(Catherine Lees) 교수 (심리학)는 바둑을 "위대한 지적(知的) 탐험(The Great Intellectual Adventure)" 이라고 칭하고 포스터를 제작하여 돌리는 것을 봤다. 상당수의 서양 지식인들은 "바둑은 동양문화의 부산물이며 능력이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게임" 이라고 생각한다. 바둑을 둘 줄 아는 서양인들은 자기네가 ‘지적 특권층’ 이란 의식을 은근히 갖고 있다.
기력이 13급 밖에 안 되는 미국 버클리대학 수학과 벌켐프(E. Berlkamp) 교수는 끝내기 이론을 자기 방식대로 정립했다. 그는 1998년에 내한하여 숭실대학에서 “조합적 게임이론”이란 제목으로 바둑강의를 했으며 1994년에는 ‘Mathematical Go’라는 저서도 냈다. 컴퓨터 전문가 윌콕스 6단은 귀를 철저히 무시하고 첫 6수를 중앙과 변에만 투입하는 일명’만리장성’ 이라는 독특한 포석을 부단히 시도하고 있다.
호주의 13급짜리 웨인은 초보자를 너무 어렵게 가르치는 사범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자기가 책을 썼다. 그런데 그 사범이 불행하게도 필자였다. ^^ 스위스 챔피언 고스텔리(Gostelli)는 텔레파시로 상대편 선수의 의중을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연구에 집착하고 있다. 내가 서봉수 사범과 스위스 그의 집에 갔을 때 서 사범에게 “조훈현 사범과 한 방에서 둘이서만 대국한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상대편 생각을 읽을 수 없었느냐?”고 집요하게 질문해 서 사범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이런 태도에서 "우리에게는 인식의 사각(死角) 지대에 숨어 있어 안 보이는 바둑의 다른 모습이 그들에게는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접근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과했던 아주 간단한 사실이나 진리를 그들은 보고 실천에 옮긴다.
 ▲ 한국 바둑인은 전화번호에 361을 넣는데 서양에선 자동차 번호판에 넣는다. |
서양 바둑인들의 바둑활동은 다양하다. 대회나 정기모임은 물론이고, 바둑 보급을 위해 쇼핑센터 같은 곳에서 시범대국을 하며 바둑 관련 인쇄물을 나누어 준다. 주말에는 바둑피크닉, 휴가철에는 1~2 주간 경치 좋은 곳에서 바둑캠프를 연다. 또 대학의 바둑클럽은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회원을 모집하고, 간헐적으로 바둑 세미나를 개최한다.
 ▲ 유럽바둑연맹(EGF) 엣킨스(Tony Atkins) 회장과 필자 |
나는 호주에 있을 때 모내쉬 대학에서 7년간 바둑사범 노릇을 한 것을 비롯 20년 간 4개 대학에서 바둑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들이 지금도 나에게는 가장 허물없고 친한 사람들이다. 서양엔 웬만한 도시나 지방도 바둑클럽을 갖고 있으며 운영은 회비로 하고 시(市)나 주(洲) 정부에서 후원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 가브릴로프 유럽바둑연맹 부회장과 한국서 프로가 된 사샤(두 명 다 러시아 사람) |
우리나라와 달리 가정생활과 가족간 공동행복을 추구하는 서양식 가치관 안 에서는 바둑광이 설 자리가 없다. 내가 친한 서양 바둑인 중 여러 명이 이혼을 당했다. 이들 대부분은 바둑에 너무 심취하여 가정을 소홀히 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바둑쟁이들은 마누라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싸움도 하지만 그런 일로 이혼까지는 좀처럼 안 간다. 서양에서 바둑과 가정생활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것은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바둑문화가 서양에 정착하려면 바둑인구가 먼저 늘어야 한다. 유럽인구가 2009년 현재 8억 3000만(UN통계)인데 바둑인구는 10만 명 정도다. 바둑인구의 저변확대를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바둑산업도 큰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서양은 인구비율로 볼 때 아직 바둑의 불모지나 다름 없다. 서양의 바둑인구도 내 예상보다 증가속도가 너무 느리다. 서양에 바둑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바둑강국의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처음 서양에 바둑을 보급하고 종주국 행세를 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들은 지난 1세기 동안 바둑을 일본문화의 일부분으로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래서 현재 서양인들이 쓰고 있는 바둑용어도 대부분 일본어다. 바둑을 공부하는 영어서적은 일본에서 발행된 것들이다. 서양인들이 최근에 와서야 바둑의 기원은 중국, 최강국은 한국이란 사실을 인식하면서 “일본이 바둑 종주국” 이란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러나 유명한 서양 인터넷 바둑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아직도 일본바둑 뉴스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다.
 ▲ 미국인에게 영어로 복기해 주고 있는 안영길 사범(시애틀 2008. 7) ▲ 다음 날 이하진 사범의 영어강의 (시애틀 바둑센터) |
●…한국바둑 세계화의 길
한국 바둑은 해방 후 급성장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기도보급까지는 신경을 못 써 왔다. 바둑강국인 ‘Big Three’ 중 국제사회에 보급은 일본 혼자 해 왔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무임승차를 해온 셈이다. 바둑인구 감소와 국제대회 성적 부진으로 지금 일본 바둑은 많이 위축 되어 있다. 이제는 우리가 앞장 서서 다른 차원의 기도보급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우승 가망성이 높다고 하여 프로 세계기전 몇 개 만드는 근시안적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에 한국기원이 유럽대회(EGC)와 미국대회(AGC)에 프로기사를 파견하고 해외거주 프로기사에게 적은 액수나마 정기적 지원을 시작했다. 또 대한바둑협회가 필자에게 국제활동비로 1년에 3백만원을 지원하는 것은 그나마 세계화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겠다.
한국바둑을 세계화하는 길은 무엇일까? 국제보급사 양성, 바둑서적의 번역, 국내에 국제바둑학교 설립, 국제바둑사업, 인터넷 사업 등일 것이다. 특히 인터넷 사업은 우리가 선도하는 것이 바둑 최강국으로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바둑공부만 하다가 입단을 못해 갈 길을 못 찾는 젊은 바둑강자들에게 영어교육을 시켜 국제사범으로 양성해야 한다. 아무도 그들의 장래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프로기사 중 윤영선, 김성래, 남치형 등이 영어로 바둑 책을 내고 국내에 외국학생을 교육시키는 바둑도장도 늘고 있음은 고무적 현상이다. 오로 미디어 같은 회사는 바둑영어책 출판과 국제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기원은 영어를 못하는 프로기사를 외국에 보내는 대신 그 예산을 먼저 한국 프로기사들을 위한 영어교육에 투자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국제 보급용 프로기사를 키워야 한다. 국제감각이 있고 영어도 하는 사람이 바둑계의 중요한 위치에 있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 이제는 일본이 기도보급 할 때와 시대가 달라졌다.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올림픽 종목 가입, 서양 바둑인구 확대, 남미, 아프리카, 인도, 중동까지 사범을 파견하고 바둑을 보급해야 한다. 바둑계는 그런 일에 걸맞은 인물이 필요하다.
 ▲ 한국서 프로가 된 두 아가씨 디아나(좌)와 스베타. 뒤편엔 유럽백인 최강자 카탈린과 방영부씨 |
나는 앞으로 다음과 같이 일정한 순서를 따라 각국 바둑을 소개할 생각이다.
1) 바둑약사와 주요 지도자 (Brief Baduk history and major figures (leaders)
2) 바둑협회와 회장단, 이사 등 (National body and the officials - President, secretary, treasurer, directors and others)
3) 바둑인구 (Baduk population including number of paid members)
4) 클럽 (Clubs)
5) 바둑대회 (Tournaments)
6) 바둑강자와 프로필 (Strong players and their profiles)
7) 바둑보급 활동과 계획(Promotion activity and schemes
8) 바둑캠프, 세미나, 교류전 (Baduk camps, seminars, friendship matches)
9) 재미있는 일화들 (Funny, eccentric and weird stories)
10) 사진(Related photos)
11) 출판물(Publications – Periodical / non periodical)
 ▲ 유럽대회에서 필자의 축사 ▲ 66개국이 참가한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
 ▲ 한국대표 하성봉 선수 ▲ 유럽바둑센터 매니저 프랑크 얀센씨(좌)가 네덜란드 대표로 출전 |
●…나 홀로 세계화
나는 1996년에 귀국하면서부터 “한국바둑의 살 길은 세계화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바둑계의 호응은 내 기대에 못 미쳤다. 그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해마다 프로기사를 포함한 바둑팀을 구성해 서양국가들을 돌면서 한국바둑을 보급하는 정도였다. 98년에는 바둑 두는 어린이 35명을 호주에 데리고 간 일도 있고 2003년에는 러시아 상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유럽 바둑대회에 40명을 인솔하고 간 일도 있다. 이 때부터 한국바둑이 유럽대회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8월에는 평양에 가서 10일간 북한 바둑 계를 접할 기회를 가진 것도 나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나는 세월이 더 흐르기 전에 나 혼자라도 세계화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2004년 10월 당시 ‘한국아마바둑협회’ 곽영필 회장의 도움을 받아 역삼동에 바둑영어교실을 열었다. 한 2년 동안은 대전에도 교실을 열고 대전엘 왕복하며 가르쳤으나 안타깝게도 학생 수가 줄어들어 그만 두어야 했다. 그 동안 약 200명이 내 수업에 참여했고 30여 명이 국제보급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그 중 10명이 해외사범으로 나갔다. 내가 아들처럼 사랑하는 안영길 사범은 호주 시드니에서 이세나-허기철 부부로부터 기원을 인계 받아 7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보급에 나선다.
해외사범 중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간 오은근사범 예를 들어 본다. 그는 연구생 출신도 아니고 나이도 40대 중반이다. 3년 전 내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곤잘레스 바둑회장을 만나고 그 곳 챔피언 후안 4단과 바둑을 두었는데 그가 당시 타이젬 7단인 나에게 석점에 패했다. 그 날 저녁 그 곳 바둑회 간부들과 저녁을 같이한 자리에서 그들이 바르셀로나 공과대학에 앞으로 바둑을 교양과목의 하나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듣고 내가 즉석에서 오사범을 추천했다.
 ▲ 유럽대회 1회전에서 제자 이승현을 만났다 |
그 이유는 오사범이 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카투사 생활을 해서 영어가 튼튼하고 바둑도 타이젬 8단이라 자격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으로 대학에서 바둑을 강의할 경우에 최적의 인물로 생각했다. 그는 내 영어교실에 2년쯤 다녔는데 모든 면에서 나에게 합격했다. 현재 부부가 같이 가서 스페인 생활을 2년 째 하고 있는데 내가 다시 스페인에 가서도 확인도 했지만 너무 잘 보낸 것 같다. 그의 인물 됨으로 보아 앞으로 그가 스페인 바둑계 대부가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그 나라 그 도시에 따라 적합한 인물을 골라야 한다.
한편 나는 여러 나라에 한국대사배를 창설하여 그 나라 세계선수권대회 대표 선발전을 겸하게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현지에 가서 한국대사관과 현지 바둑협회를 연결해 주고 업무분담을 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외통부를 드나들며 협조를 얻어야 했다. 대사배는 현지에서 한국바둑 홍보에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 그 효과는 아주 커서 우리의 기대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현재 5년 째 10개 국이 한국대사배를 치르고 있고 몇 나라가 교섭 중이다. 그러나 바둑을 못 두거나 이해를 못 하는 대사로 바뀌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4년 전부터는 독일에 ‘한상대식 방내기(Hahn System)’ 바둑대회를 만들어 1년에 두 번씩 대회를 치르고 있다. 우승상금이 천 유로로 유럽 최고 수준이다. 이 대회를 시작한 이래 황인성, 조석빈, 홍슬기, 오치민 등 한국인이 우승을 휩쓸고 있다. 역시 한국인은 방내기에 강한가? ^^ 1970년대 한국이 많은 태권도 사범을 전 세계에 파견하면서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데를 누르고 올림픽 종목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도 바둑사범을 많이 내 보내야 한다. 현재 나에게 20명 정도가 영어와 교양을 배우고 있으며 이 중 대다수가 연구생 출신 젊은 강자들이다. 프로기사 중엔 윤영선 5단, 안영길 6단, 이하진 3단 등이 나에게 1~3년간 꾸준히 영어를 배워 지금은 영어를 아주 잘 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앞으로 전 세계 어딜 가던지 내 제자들이 바둑을 가르치고 있고 내가 가면 그들이 나를 반겨 주는 그 날이 올 거라는 꿈이다.
한상대(전 호주바둑협회(AGA) 회장, 시드니 대학 교수)
( sdhahn@gmail.com) 017)276-5878
 1) 앞줄(왼쪽부터) 오치민(베를린사범 지난 1년간 유럽대회를 휩쓸고 있음) 안영길6단(호주사범 내 제2의 고향 호주로 보냄) 필자, 자오페이(중국 소녀위기단 출신, 14세 독일에 이민, 독일 최강자) 이하진 3단(우리교실 3년 가까이 다님 영어강자가 됨. 현재 미국 순회 중) 윤영선 5단(독일로 시집감)
2) 둘째 줄 박병규 6단, 장비(미국 시애틀 사범으로 가서 1년 이상 체류. 미국에서 1인자이었음) 다니엘라(바둑학과 졸업. 대학원 재학 중. 알려진 친한파, 독일 베를린)
3) 셋째 줄 이정우 6단(얼굴 일부만 보임 ㅎㅎ, 나와 안 6단과 같이 영국을 일주한 일이 있음) 크리스토프(자오페이 남친, 바둑학과 유학, 프랑스 파리) 라스무스(윤영선 신랑, 독일 하노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