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호남정맥’에 위치한 ‘마이산’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금산(金山)·용출산(湧出山), 조선 초(태조)에는 속금산(束金山), 태종 때부터 ‘마이산(馬耳山)’으로 불렸다.
전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국가 지정 문화재인 명승 제12호’로 승격되었다.
마이산도 금강산처럼 계절에 따라 각기 다름 이름으로 불렸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 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를 닮았다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文筆峰)이다.
서봉이 모봉(母峰)으로 암마이봉(687.4m)이고, 동봉은 부봉(父峰)으로 수마이봉(681.1m)이다.
‘고금당(古金塘)’은 ‘금당사(金塘寺)’가 있던 옛 자리여서이고, 또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다고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라고도 불렸다.
‘나옹암(懶翁菴)’은 고려말 나옹화상(1320~1376)이 이 바위굴에서 수도한 곳.
‘은수사(銀水寺)’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의 설화가 전해지는 태고종 사찰이고, ‘탑사(塔寺)’는 이갑용(李甲用 1860~1957) 옹이 만불탑을 쌓았다고 이름지어진 사찰이다.
‘비룡대(飛龍臺 521.3m)’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높다란 망루가 세워져 있다.
망루 아래엔 ‘나봉암’이란 빗돌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나옹선사가 오르내렸으니 ‘나옹암(懶翁巖)’의 오류가 아닐까?
‘봉두봉(鳳頭峰 540m)’은 봉황의 머리에 해당되어서일 테고, 카카오맵에 나오는 ‘관암봉((冠巖峰 496.2m)’은 ‘갓바위봉’의 다른 이름.
지형도에 나와있는 ‘탕금봉(528m)’이 ‘탄금봉(彈琴峯)’인 건 고금당의 현수막에서 확인하였다.
하지만 자료가 없으니 이를 더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나옹선사가 가야금을 탄 봉우리로 유추할 수 있을 것.
마이산 봉우리의 움푹 패인 크고작은 구멍들은 학술적으로 ‘타포니(tafoni)’라는 이름.
마이산 타포니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희귀하고 중요한 지형이어서 2019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고려 말 이성계가 황산대첩으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이곳 마이산에 들렀다.
이때 이성계가 하늘로부터 금척(金尺)을 받는 꿈을 꾸었고, 훗날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내용이 '몽금척(夢金尺) 설화'로 마이산에
전승되고 있는데, 이성계 장군이 천명(天命)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통제기간 : 2023. 11. 20.(월) ~ 별도 개방 시기까지
※ 매년 동절기 통제 : 11월 중순 ∼ 3월 중순
○통제구간 : 천왕문~암마이봉(0.6km), 봉두봉~암마이봉(0.9km)
○제한목적 : 자연환경의 효율적 관리·보호 및 등산객 안전 도모
※ 제한된 등산로를 무단출입하는 자는 과태료 처분(자연공원법 제86조).
산행코스: 남부주차장-고금당(나옹암)-비룡대-관암봉-봉두봉-갈림길-암마이봉 갈림길(초소)-암마이봉(U턴)-은수사-탑사-탑영제-남부주차장(8.5km,4시간 12분)
◇ 지난 ☞ 강정교~광대봉~탑사 산행기
Gps가 튀는 바람에 한덤 님의 트랙을 참고로 그려 넣었다.
한덤 님으로부터 받은 트랙.
<산길샘>은 지도를 바꾸어서야 이런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산길샘>. 마이산 고도표.
<국제신문>
<월간 산>
<월간 산>
미리 준비한 표지기.
남부주차장 일주문 앞.
마이산 도립공원 입구.
곧 좌측 고금당 방향으로 90도 꺾으며...
우측의 지형지물을 확인한다. 금당사 안내소가 있는 지점이다.
포대화상이 해맑게 웃고있는 입구의 이정표에 고금당이 600m.
고금당(寺)은 '마이산 탄금봉 고금당'이란다. "아항~ 탕금봉이 아니고 탄금봉(彈琴峰)이로구낭" 이제 의문이 풀렸다.
고금당으로 오르는 길.
곧장 오르다보니...
능선 9부 능선에 2층 전각이 우뚝하다.
당겨보니 고금당(古金堂) 현판이 걸렸다.
나옹암은 가까이에 있어...
안내판을 지나 굴 안을 들여다 보았다.
기도객이 있어 바깥에서 흔적만 잡은 뒤 되돌아 나왔다.
갈림길의 이정표.
갈림길에서 사면을 비스듬히 돌아 능선에 붙은 뒤...
바위를 타고 올라...
비룡대 아래 전망바위에 올라섰다.
고금당이 발 아래이고, 멀리 뽈록 광대봉인 듯하고, 고금당 위 좌로 꺾어지는 지점에 고금당산이 짐작된다.
비룡대 아래의 전망대.
비룡대 암봉이 우뚝해...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고 계단을 올랐다.
비룡대는 2층 망루. 전서체의 현판.
비룡대 망루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
멀리 흰머리를 한 봉우리를 당겨 보았다.
마이산이 우뚝하고...
뒤돌아보는 모습도 헌걸차다. 고금당 우측의 고금당산과 좌측 탕금봉도 가늠되고 멀리 광대봉도 짐작된다.
비룡대 아래의 석비. 나봉암이다. 비룡대가 있는 암봉을 나봉암이라 부르는 듯하나 그 유래는 알 수가 없다.
금당사 갈림길을 지나고...
잡목사이 좌측으로 올록볼록 세 봉우리가 보인다. 지형도를 확인하니 삿갓봉이다.
입벌린 바위 아래에 나무 작대기를 세운 해학이 우스꽝스럽다,
다시 탑영제 갈림길.
벤치쉼터가 있는 봉두봉에 올랐다.
표지기를 걸고...
지나온 길을 돌아 보았더니...
비룡대의 모습이 특이하다. 비룡대 삐뚤어진 얼굴에 망루의 꼬깔을 썼다.
사면을 비켜돌아 계단을 타고 내렸더니...
우뚝한 암마이봉 좌측으로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이 있다.
우측길은 곧장 탑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화살표 방향이 국제신문이 안내하는 방향.
갈림길 바로 아래의 이정표와 안내판.
돌계단을 지나 암마이봉을 좌로 두른다.
바위에 붙은 고드름이 떨어져 미끄럽기 그지 없어 등로에서 벗어난 일행들.
되돌아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조심조심 내려서며 뒤돌아 본 모습.
미끄러운 길은 바위에 붙은 얼음조각들이 떨어져 다시 등로의 돌계단에 얼어 붙었기 때문.
이후 산길은 한결 수월해져...
나무에 붙은 수빙(樹冰)을 살펴볼 여유도 생겼다.
산죽 사이로 난 데크계단을 올라...
초소가 있는 암마이봉 갈림길을 올려다 본다.
초소가 있는 암마이봉 갈림길은 안부. 휀스가 쳐져있어 출입금지를 알리고 있다.
월선을 한 뒤 계단을 타고 오르다...
계단길은 한참이나 올라야 했고...
설화가 핀 산길에서 권형님이 벌써 내려오고 계신다. "좀 천천히 같이 갑시다"
표지기를 건 뒤...
<by 한덤>
뒷쪽엔 전망데크가 있어...
조망을 파노라마로 잡아 보았다.
뒤돌아 본 모습에 탑영제(塔影堤)가 보인다. 탑영제는 탑의 그림자가 비춰진다는 저수지.
특이한 인상의 비룡대도 보인다.
암마이봉에서의 조망.
암마이봉에서 내려가며 건너보는 수마이봉.
북쪽에서 바라보면 수마이봉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고, 암마이봉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고개를 떨군 형상이라지만.
수마이봉 중간에 움푹한 화엄굴.
화엄굴 안내판. 수마이봉 조망대다.
다시 초소가 있는 갈림길에 내려섰다.
그리고 두 마이봉의 중간 안부. 건너엔 수마이봉.
암마이봉을 내려와 금목(禁木)을 타고 넘는다.
'국가지정 명승 제12호'. 화엄굴은 건너 움푹하게 파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화엄굴 출입금지된 계단을 확인한다.
화엄굴 안내판.
은수사로 내려가며 레미콘에서 금방 쏟아 부은 듯한 콘크리트를 살펴본다. '타포니'라는 지질이다.
마이산 안내판.
은수사로 내려서...
올려다 보았더니 무량수전과 대적광전이 있는데, 어디가 본전(本殿)인가?
뒤돌아 보는 수마이봉과 은수사.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은수사라는 이름은 이성계가 기도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무엇이 문화재지? 문화재 입장료가 없어졌지만 이곳은 해당사항 없음이다.
우측 아래로 탑사.
탑사 위의 암마이봉 바위에 움푹움푹 파여진 구멍에 인위적 흔적들이 보인다. 쌓아놓은 작은 돌탑인데, 어떻게 올라 갔을까?
암마이봉과 탑사 전경. 바위에 움푹움푹 구멍이 뚫린 건 부실공사 때문? 시멘트 함량이 모자라서?
온각 형상의 돌탑들은...
마이산 탑사다.
도사 이갑룡 선생 사적비.
마이산 탑 안내판.
처사 이갑룡의 생애.
마이산 석탑.
탑사를 내려오다 우측으로 마이산 오르는 계단길을 확인한다.
걸어 내려오다 보이는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시비.
명려각이다.
명려각(明麗閣)은 조선시대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부부시인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 부부의 영정과 시비를 모셔놓은 곳이다.
설레는 첫날 밤 열여덟의 신랑신부가 주고받은 시가 전해오고 있다.
탑영제에서 올려다 보는 마이산 두 봉우리.
금당사다.
금당사는 보덕스님의 제자 11명 중 '무상'이라는 제자가 그 제자 ‘금취’와 함께 마이산 자락에 세운 절이다.
보덕 스님은 <열반경>의 대가로 명성이 높았던 고구려의 고승.
금당(金堂)은 '금색 몸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
금당사라는 절 이름은 중생의 곁에는 언제나 부처님이 함께 계신다는 열반경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이란다.
금당사 극락보전을 카메라에 담은 뒤...
아까 모두 내렸던 남부주차장에 돌아왔다.
드넓은 주차장엔 달랑 우리 차 한 대.
땅거미 지는 공간에서 타는 목마름을 해소한 뒤 차에 올랐다.
소천 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상황버섯.
오래전 많이 먹었던 상황버섯을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