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나방·개미·메뚜기 통조림… 곤충, 미래 식량의 寶庫
朴대통령 규제개혁장관회의 때 언급된 '식용 곤충'… 한국, 어디까지 왔나
‘갈색거저리’ 農場 가보니…
지난 7월 국내최초 食用 인정…비타민 함량, 소고기보다 높아
먹어보니 새우깡 맛과 비슷 “약간 쌉싸래하면서도 고소”
인류의 미래 식량으로 각광
지구상 동물 70% 차지 ‘풍부’… 사료비 적게 들고 영양 만점
온실가스 적어 親환경까지… 유엔, 곤충 1900種 식용 지정
세계는 지금 ‘식용 곤충’ 전쟁
네덜란드·벨기에 등 앞서나가… 한국, 최근 식용 곤충에 관심
갈색거저리 이은 차기 후보는 흰점박이꽃무지·장수풍뎅이

애벌레를 토핑으로 뿌린 루꼴라 피자
|
겉으로 보기엔 여느 농가의 비닐하우스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녹색 천으로 덮어씌운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코가 먼저 감지했다. '메주가 천장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냄새는 뭐지?'
쿰쿰한 냄새가 코를 스치는 하우스는 274㎡(83평) 규모다. 철제 선반이 하우스 양옆으로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층층이 놓인 것은 종이 상자 2160개. 그 상자 안에 냄새의 주인공이 있었다. 상자를 살짝 앞으로 빼어 드는 순간, 오동통한 애벌레 수백 마리가 시야를 강타했다. 장독대를 열면 보이던 노리끼리한 유충들이 몸을 뒤섞으며 꼬물거렸다. 이 애벌레들은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농촌진흥청 연구를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식용(食用)으로 정식 인정받은 곤충인 갈색거저리다. 바퀴벌레 양갱을 끼니로 먹던 영화 '설국열차'의 묘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먹어보니… 뒷맛은 쌉싸래한 새우깡
식품사를 새로 쓴 갈색거저리는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도 미래 식량으로 잠시 언급됐다. 그러나 먹어도 된다는 것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지난 10일 갈색거저리 전문 사육장인 경기도 화성의 '경기곤충'을 찾았다. 들어서면서 후각을 자극한 냄새는 갈색거저리 사료인 콩비지에서 나왔다. 비지와 밀기울을 섞어 넣은 사육 상자는 60㎝×90㎝ 크기. 몸길이 2㎝의 갈색거저리 2만 마리가 한 상자 안에 살고 있다.
|
'식용'이라기에 도전해보려고 상자를 꺼냈으나, 겉만 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자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김순택 경기곤충 대표는 "정말 맛있다"고 했다. 부인 홍현숙씨는 "먹어보면 더 달라고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홍씨가 센 불에서 5분가량 볶은 갈색거저리를 수북이 담아 한 접시 내왔다. 방금 볶은 애벌레 무더기에서는 기름기가 자르르 돌았다. 한 마리 입에 집어넣었더니 비릿한 냄새만 남기고 곧바로 바스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한 움큼을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꼭꼭 씹어 먹어야 맛이 납니다." 김 대표의 권유에 눈을 감고 두어 번 씹었다. 뒷맛으로 갈수록 새우깡과 비슷한 맛이 났다. 약간 쌉싸래하면서 고소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1억2000만원을 투자해 사육 하우스를 지었다. 현재 팔리는 것은 매달 50㎏ 분량이다. 주로 대학교나 연구기관에서 사 간다. ㎏당 2만5000원 정도다. 곤충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비타민 함량은 육류계의 큰형님인 소고기보다 높다(B12 제외)<그래픽 참조>.
◇딱정벌레 가장 많이 먹어
곤충은 지상 최대의 생물 군단이다. 지구 상 동물의 70%를 차지한다. 남극 만년설에서도 살고 끓는 온천수에도 있으며 동물의 창자와 심해까지, 살지 않는 곳이 없다. 종류로는 100만종, 개체수로는 1000경 마리다. 경(京)은 조(兆)의 만 배가 되는 수. 10의 16승 마리를 뜻한다. 어디에나 있으며, 얼마든지 존재하는 식량 자원인 것이다.
2014년 현재 지구 상에서 20억명이 식사의 일부로 곤충을 먹는 것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추산한다. FAO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식용 곤충: 식량 및 사료 안보 전망'에서 "곤충은 인류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딱정벌레, 애벌레, 벌, 개미, 귀뚜라미, 잠자리 등 1900종을 식용 범위에 넣었다. 식용 중 가장 많은 종류가 딱정벌레목으로, 31%를 차지한다.

실생활에 응용 가능한 곤충 요리를 개발하는 경민대·서울대 공동연구팀이 이탈리안 레스토랑 ‘플로라’의 조우현 요리사와 함께 선보인 각종 갈색거저리 요리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애벌레 가루를 면 반죽에 섞은 크림파스타, 분말을 넣은 망고주스, 애벌레를 통째로 얹은 닭가슴살 구이. 초콜릿에 분말을 넣어 코팅한 케이크. /김수희 교수 제공
|
식용 곤충은 일찍부터 여러 나라에서 식량으로 애용됐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 시장에서는 연중 애벌레를 팔고, 매년 96t을 소비한다. '음식에서 애벌레가 마을 주민이라면, 육류는 이방인'이라는 격언까지 전해온다. 콜롬비아 북부에서는 극장에서 팝콘 대신 잎꾼개미를 먹는다. 독일에서는 나방 통조림, 프랑스에서는 메뚜기와 개미 통조림도 나와 있다.
◇싸고 풍부하고 환경 친화적인 미래 식량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가 있는데, 왜 곤충을 먹어야 할까. FAO는 2050년이면 육류 소비량이 2010년 대비 2배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인구는 늘고, 육류 생산에 필요한 경작지는 줄어든다. 광우병,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로 육류의 안전성은 위협받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용, 영양가,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최고의 미래 식량 후보가 곤충이다.
일단 기를 때 사료비가 적게 든다. 귀뚜라미 1㎏을 생산하려면 사료가 2㎏ 필요하지만, 소고기 1㎏을 생산하려면 8㎏이 든다. 온실가스와 분뇨 등 환경 문제에서도 곤충의 압승이다. 돼지보다 ㎏당 10배 적은 온실가스를 생성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자본으로 기를 수 있고, 사육 면적을 크게 차지하지 않아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된다.
영양학적인 가치도 높다. 단백질, 불포화지방, 칼슘, 철, 아연 등을 포함하고 있다. 건조 옥수수 단백질은 10% 내외이나, 곤충은 40~70%다. 소고기는 음식으로 만들면 단백질 함유율이 55% 선인데, 귀뚜라미는 80%다. 일부 곤충은 오메가3, 오메가6 함량이 주요 소비 육류나 생선보다 높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미래 식량으로 '정답'이다.

지난 10일 경기도 화성 경기곤충 사육장에서 김순택(왼쪽) 대표와 부인 홍현숙씨가 갈색거저리를 사육하는 종이 상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
우리 정부가 식용 곤충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곤충마저 수입해서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미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농업 선진국인 네덜란드는 농업식품부가 거액을 투자해 세계시장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2010년 와게닝겐대에 연구개발비로 100만유로를 지원했다. 벨기에는 2013년 갈색거저리를 포함해 집귀뚜라미, 풀무치, 딱정벌레 등 10종을 식용으로 지정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판매하는 국내 육류 시장은 현재 17조원가량이다. 이 중 1%만 곤충이 대체해도 1700억원 시장이 생긴다. 2009년 출범한 한국곤충산업협회는 국내 곤충 사육 농가를 1000곳 정도로 본다. 백유현 협회장은 11일 "지금 시작해야 곤충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흰점박이꽃무지와 장수풍뎅이
아무리 최고의 미래 식량 후보라 해도 꼬물대는 오동통한 애벌레를 입으로 가져가자니 거부감이 너무 크다. 영화 설국열차 승객들이 바퀴벌레 블록을 쉽게 먹었던 것은 모양이 매끈한 양갱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 6개와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는 식탁에 오르리라 기대하기 힘들다. 김수희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교수는 "일단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분말 형태로 조리하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식용으로 연구 중인 차기 후보는 흰점박이꽃무지. 제주도 초가지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생(生)으로도 먹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초밥으로도 먹는다. 3번 타자는 애완용으로 많이 기르는 장수풍뎅이다. 먹어본 사람들은 땅콩 쿠키 맛이라고 한다. 농진청 곤충산업과 황재삼 박사는 "내년까지 이들을 식용으로 허가받는 것을 목표로 안전성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대형 마트의 식품 진열대에서 애벌레 통조림과 장수풍뎅이 쿠키를 집어들 날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
곤충 식품, 인류의 오래된 역사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매미 맛 찬사… 성경·코란에도 메뚜기 등 먹거리 언급
곤충을 식품으로 즐겨 먹은 것은 고대 원시인만이 아니었다. 옛 학자들이 앞장서 '맛'을 인정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매미를 치켜세웠다. 저서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에서 '땅속에서 마지막 껍질이 벗겨지기 전의 매미 유충과 알이 찬 암컷이 가장 맛이 좋다'고 썼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뮈스 다윈(1731~1802)은 왕풍뎅이를 추천하며 '메뚜기나 흰개미처럼 제대로 요리하면 맛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왕풍뎅이는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바닷가재 수프와 비슷한 맛을 내는 별미로 식탁에 올랐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 문헌에는 메뚜기에 대한 언급이 많다. 성경 레위기 11장 22절에는 '곤충 가운데서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메뚜기, 방아깨비, 귀뚜라미'라고 기록돼 있으며, 코란에는 '비황(飛蝗·메뚜기떼)은 알라의 군대이니 먹어도 되느니라'고 가르쳤다. 배고픈 하층민만 먹던 것도 아니다.
1987년 와병 중이던 히로히토 일왕(1901~1989)이 대부분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즐겨 먹었던 것이 하치노코, 즉 노란 재킷 말벌의 애벌레였다.
글로벌 커피 기업 스타벅스는 2012년 곤충에서 추출한 성분을 음료에 썼다가 소비자 항의에 성분을 변경했다. 문제의 음료는 딸기 프라푸치노. 먹음직스러운 분홍색을 내는 염료로 인공 첨가제를 쓰다가 '천연' 성분으로 교체하고자 선택한 것이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코치닐 성분이었다. 그러자 네 다리 동물은 물론이고 계란과 곤충까지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들(비건·vegan)이 들고 일어났다. 논란은 '분홍' 성분이 연지벌레에서 토마토로 바뀌면서 일단락됐다.
| | | | |
첫댓글 미래식품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