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화] 국보169호, 청자양각죽절문병
글 : 제이풍수사
글 게시일 : 2023. 2. 21.
국보 제169호 청자양각죽절문병/ 대나무 병을 본 따 만든 청자 병으로 광택이 좋고 녹색 계의 비색유가 고르게 시유되어 세련된 멋을 풍긴다. 일제 때 이토가 소장하다가 장석구에게 팔았고, 그 후 김형민, 홍두영을 거쳐 지금은 호암미술관을 거쳐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청자양각죽절문병(靑磁陽刻竹節文甁, 국보 제169호), 이 청자병은 높이가 33.8센티미터이고, 구경이 8.4센티미터로 주둥이는 나팔처럼 벌어졌다. 대나무 병을 본떠 만든 병으로 안정된 양감과 유려하게 흘러내린 곡선이 빼어나고, 병 아래는 매우 풍만하게 생겼다. 또 광택이 좋고 투명한 짙은 녹색계의 비색유가 고르게 시유되어 세련된 멋을 풍긴다. 목에서부터 밑굽에 이르기까지 전면이 대나무 무늬로 양각되어 있는데, 목 부문에서는 한 줄이던 대줄기가 어깨 부분에 와서는 두 개로 갈라져 할죽(割竹)모양을 하고 있다. 입구 부분이 일부 산화 번조되어 갈색조를 띠었고, 약간의 빙렬도 보인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비슷한 청자파편이 출토되었으나 온전한 것은 이 청자양각죽절문병이 유일하다.
1.전쟁 포로가 될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1940년 대 중반,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일본인이 있었다.
이토 마끼오(伊藤愼雄)
그는 동양제사(주) 사장으로 도자기 위주로 수집하여, 일제 때 도자기 수집에 있어서는 한번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은 대수장가였다. 일정 초기에는 골동상 곤도(近藤)를 통하여 도자기를 배웠고, 단파 라디오를 통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일본이 전쟁에 지면, 나는 곧 전쟁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러면 쥐 죽은 듯이 고개 숙인 조선인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사정없이 몽둥이로 때릴 것이고 나는 매를 맞아 죽겠지.’
이토는 상상만 해도 온 몸에서 진저리가 처졌다. 그렇다고 정보를 골동계에 흘릴 수도 더욱 없었다. 너도나도 소장한 골동품을 내다 팔면 고미술품 값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은밀히 소장품을 살 사람을 수소문했다. 그러자 거래가 있던 한국인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사람에 따라 물건을 골라 파는 고도의 수완까지 부렸다.
먼저 청자금채입상감대접(靑磁金彩入象嵌大接)과 부산 가마에서 구워 보물로 지정을 추진 중이던 백자 향로(白磁香爐)를 비롯한 5점의 고미술품을 30만원을 받고 최창학(崔昌學)에게 팔았다. 최창학은 광산왕으로 조선 최고의 갑부였다. 그 다음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 소장된 순화4년명청자항아리를 인천의 대수장가 스지스게(鈴茂)에게 넘겼다. 스지스게는 정미소를 운영하며 큰돈을 번 사람이다. 또 당시 무산철산을 인수해 세계적 거상의 꿈에 부풀어 있던 이희섭(李禧燮)에게도 백자철채용문필통(白磁鐵彩龍文筆筒)과 다수의 일급품을 좋은 값에 넘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해방 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장석구에게 양도한 물건들이다.
청자흑유백상감매병(靑磁黑釉白象嵌梅甁)은 이미 일정 때부터 이름이 높은 명품이었고, 김동현이 입수한 고구려무량수삼존불입상, 그리고 대나무를 쪼개 병을 만든 것 같은 청자양각죽절문병 등 다수의 명품이 장석구에게 넘어갔다.
높이 28센티미터의 청자흑유백상감매병은 해방과 더불어 국보 제372호 지정되고, 시커먼 바탕에 흰 당초문이 상감된 매병이다. 화려한 청자에 비하여 흑유매병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백회문양에서는 깊은 맛이 풍기고, 형태 역시 균형이 잘 잡혀 아름다웠다. 96년 10월 크리스티 경매에는 나뭇잎이 그려진 청자흑유삼엽문매병(靑磁黑油三葉文梅甁)이 22억 원에 낙찰되었다. 만약 이 매병이 현재까지 전해진다면 아마도 30~40억은 족히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매병은 6․25 이후 일본을 들락거리던 장석구가 은밀히 밀반출하여 지금은 소재조차 모른다.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팔아 거액을 챙긴 이토는 일본 패망에 앞서 일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사업에 실패한 장석구는 재기를 꿈꾸면서 일본 그림과 다수의 도자기를 구입하고, 또 소장했던 고미술품을 한국인에게 팔거나 맡기고는 돈을 빌려 썼다. 이 때에 청자양각죽절문병을 입수한 사람은 김형민(金炯敏)이었다. 그에게 이 병이 양도된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다. 청자병을 소장한 김형민은 1970년 대 초에 남양 유업을 경영하는 홍두영(洪斗榮)에게 이 병을 다시 수 천만 원에 넘겼다. 그 후 이 청자양각죽절문병은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69호로 지정되었고, 어느 때 어떤 사연으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 양도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이 병은 그 동안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진열되어 오다가 최근에는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