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서열, 아이돌 서열, 핸드폰 서열, 자동차 서열 등등….
요즘 인터넷에서 ‘00서열’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서열은 말 그대로 비교 대상을 일정한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그 순서대로 배치해놓은 표를 뜻합니다.
이 서열시리즈는 2011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국내 남자 아이돌 그룹 서열’을 시작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지금은 아이돌뿐 아니라 전자기기,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작돼 네티즌들의 관심과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열이 해충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혹시 들어보셨나요?
아래 편지의 사연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노잉아 안녕?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이태민이라고 해.
요 며칠 나는 해충들한테도 서열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우리 집에는 개미가 무척 많았어.
과자나 빵을 먹다가 놔두면 어느새 개미들이 몰려와서 빵을 까맣게 뒤덮었지.
그런데 우리 아빠가 하는 말이 바퀴벌레 몇 마리를 풀어놓으면 바퀴벌레가 개미를
잡아먹어서 개미가 사라진다는 거야.
며칠 뒤 우리 집에 바퀴벌레 세 마리가 이사를 왔고 아빠 말대로 집에 있던 개미들은 사라졌어. 그런데 이젠 바퀴벌레가 잔뜩 늘어난 거야. 화장실에서 불을 켜면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막 기어가고, 천장에도 엄청 큰 바퀴벌레가 떡하니 붙어 있었어.
아무리 약을 뿌려도 바퀴벌레는 쉽게 죽지 않더라고.
아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돈벌레를 키우자.”
아빠 말씀이 돈벌레는 다리가 엄청 많이 달린 징그럽게 생긴 벌레인데
이 벌레가 바퀴벌레를 모두 잡아먹는대. 그래서 아빠 말대로 돈벌레를
풀어놨더니 정말 집 안의 바퀴벌레가 모두 사라졌어.
그런데... 돈벌레는 너무 징그럽게 생긴 거야.
크기도 바퀴벌레보다 훨씬 커서 돈벌레를 본 우리 엄마는 방방 뛰면서
아빠한테 잡아 없애라고 막 뭐라고 그랬지. 그런데 그건 우리 아빠도 못 잡더라고.
이제 우리 아빠는 돈벌레를 잡아먹는 황닷거미라는 녀석을 풀어놓으려고 해.
여기까지가 내가 연구한 해충 서열이야.
만약 황닷거미도 많아져서 그것보다 더 센 해충을 키워야 하면
내가 해충 서열 표를 만들어서 방학 숙제로 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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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해충으로는 개미, 바퀴벌레, 집게벌레, 그리마(돈벌레), 황닷거미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벌레들은 한 집에서 공생할 수 없다고 합니다. 벌레들 사이에 먹이사슬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개미의 알은 바퀴벌레에게 먹히고, 바퀴벌레는 그리마(돈벌레)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에 먹이사슬 상층부의 벌레가 집에 있으면 먹이사슬 하층부의 벌레들은 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충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과연 이 이야기는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해충들의 먹이사슬 피라미드>
먹이사슬의 아래쪽에는 난방시설이 잘 발달된 집안에서 주로 서식하는 개미류입니다.
이들은 한 군체 당 수천에서 수십만 마리가 존재하며 서식 환경이 나빠지면 즉시 이동하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개미들은 살충제를 사용할 경우 개체를 분산해 군체를 확산시키는데요, 섣불리 살충제를 사용했다가는 자칫 집안 전체에 개미들이 들끓을 위험성이 큽니다.
<주름개미>
그렇다면 이 개미 퇴치를 위해 개미의 바로 위 서열인 바퀴벌레를 풀어놓는다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답은 노(NO)입니다. 사실 개미와 바퀴벌레 중 어느 해충이 먹이사슬 위에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바퀴벌레의 천적은 개미라고 나오고, 일반인들은 개미의 천적이 바퀴벌레라고 알고 있으나 이는 모두 확인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해충 전문 방제업체 세스코에 따르면 바퀴벌레와 개미는 모두 실내의 좁은 틈새에 서식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역사책을 보면 영토 분쟁으로 전쟁을 벌인 국가의 인구수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퀴벌레와 개미 역시 서식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개체 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두 해충의 천적 관계로 오인해 한쪽의 벌레가 사라졌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두 해충이 동시에 살고 있는 집들도 많다고 합니다.
<먹바퀴>
비록 바퀴벌레와 개미의 서열은 가릴 수 없으나, 바퀴벌레는 개미보다 자주 발견되며 혐오스런 외관 때문에 사람들은 바퀴벌레를 개미보다 더 나쁜 해충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바퀴벌레는 평생 8번 정도 산란을 하는데 암컷 한 마리가 1년 동안 번식시킬 수 있는 바퀴벌레의 수는 10만 마리라고 합니다. 바퀴벌레는 동료의 사체나 배설물, 심지어 사람의 각질과 타액까지 먹어 치웁니다. 특히 바퀴벌레는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이전에 먹었던 반쯤 소화된 음식을 토해내기 때문에 식중독, 천식, 알레르기 등의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40여 종의 병원균을 옮기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해충입니다. 바퀴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각종 살충제와 다양한 구제 방법이 개발됐지만 이 벌레를 박멸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 이제 해충 서열 2위인 그리마에 대해 알아볼까요?
그리마는 그리마과(Scutigeridae)에 속하는 절지동물의 총칭으로 생김새가 지네와 비슷합니다. 그리마는 보통 건물 밖에 서식하지만 기온이 내려가면 실내로 침입하기도 합니다. 특히 난방이 잘 되는 따뜻한 집에서 많이 볼 수 있어 난방이 어려웠던 옛날에는 그리마를 보고 ‘돈벌레’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그리마>
돈벌레는 생김새와 움직이는 모양이 혐오감을 유발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바퀴벌레나 개미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입니다. 돈벌레는 곤충과 허물, 곤충의 알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해충이 많은 집에서는 돈벌레로 인해 어느 정도 해충이 감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열 1위인 황닷거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황닷거미는 해충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주로 산이나 들에 서식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황닷거미는 일부 곤충 마니아들 사이에서 애완거미로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황닷거미는 주로 작은 곤충이나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여기에는 서열 2위인 그리마도 포함이 됩니다.
<황닷거미 출처>
하지만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육식성 곤충이 비단 황닷거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마귀도 황닷거미처럼 다른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이 외에도 육식성 곤충들은 다른 곤충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얼마든지 서열 1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충도 아닌 황닷거미를 해충 서열 1위로 정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해충들의 서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해충 서열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
이에 대한 답은 거짓이라고 판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토끼는 사자를 잡아먹을 수 없지만 바퀴벌레나 개미는 개체 수에 따라 그리마와 황닷거미 같은 벌레들을 먹을 수 있습니다. 서로 먹고 먹히는 곤충들의 세계에서 일반 동물들과 같은 먹이사슬을 그려내는 것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해충을 박멸하는 방법입니다. 황닷거미나 그리마 같은 익충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나 이들과의 동거는 썩 반가운 일이 아닐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손으로 해충을 깔끔하게 잡아내 청결한 주거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해충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서열 1위는 우리 인간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유용한 해충 예방법을 알려드리며 글을 끝맺겠습니다.
해충 예방법 # 1
해충을 잡으려면 해충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징그럽다고 머뭇거리다 해충을 놓쳐버리면 그 해충은 몇 배 이상으로 번식합니다. 평소 두려워하던 해충의 모습을 출력해 일할 때나 밥 먹을 때 틈나는 대로 쳐다보세요. 익숙함은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해충 예방법 # 2
쓰레기통은 뚜껑을 닫아 놓고 재활용 쓰레기는 실외에 모아서 배출해야 합니다.
해충들은 하수구나 배수관을 통해 유입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하수구와 배수관 뚜껑은 꼭 닫아줍니다.
해충 예방법 # 3
해충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은 어둡고 습하며 지저분한 공간입니다. 실내 환기를 자주 해주고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과자와 같은 간식은 해충들의 양식이 될 수 있으니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깨끗이 먹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