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륙횡단철도(1869)

미국의 영토는 남북전쟁 전에 이미 태평양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미시시피 강을 넘어서면 서부는 아직도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이 광대한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자와 사람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대규모 운송 수단이 필요했다. 당시 유일한 대안은 철도였고, 전쟁이 격화일로에 있던 1862년 링컨 대통령은 역사적인 대륙횡단철도 건설사업에 서명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공사는 전쟁이 끝난 1865년에 시작되었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오직 인력에만 의존해야 했던 당시의 토목기술로 3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은 무모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였다. 이 모험사업에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정부는 철도 양쪽 20마일 폭의 땅을 건설회사에 무상불하하고 철도 1마일당 몇 만 달러의 돈을 정부가 빌려주는, 그야말로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니언 퍼시픽과 센트럴 퍼시픽, 두 회사가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유니언 퍼시픽은 아이오와 카운슬 블러프스에서 서쪽으로, 센트럴 퍼시픽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동쪽으로 철도를 건설해가기 시작했다.
일단 공사는 시작했지만 어려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수 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 노무자, 가난과 기근에 몰려 대서양을 건너온 아일랜드인들, 전과자, 부랑자, 제대군인들이 공사에 동원되었는데 혹독한 기후와 중노동, 원주민의 습격으로 수없이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거의 전쟁을 치르듯 필사적으로 공사를 강행한 끝에 마침내 1869년 5월 10일 양쪽에서 건설해온 철도가 유타 주 프로몬터리에서 만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양 철도의 연결점에 순금 지주못을 박는 기념 행사가 열렸다.
태평양 쪽의 철도 출발점 새크라멘토에서 출발한 최초의 대륙횡단열차는 엿새 반 만인 7월 29일 뉴욕에 도착했다.
일단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대륙횡단철도가 성공적으로 건설되고 건설회사들이 돈방석 위에 앉게 되자 너도나도 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불과 15년 만에 횡단철도 세 개 - 노던 퍼시픽, 서던 퍼시픽, 산타페 - 가 추가로 건설되었고 1890년대에 마지막으로 그레이트 노던 횡단철도가 건설되어 오늘날의 대륙횡단철도망이 완성되었다. 이들 후발 건설회사들에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 이와 함께 횡단철도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선들이 건설되어 이제 웬만한 곳은 기차로 연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1865년 3만 5천 마일에 불과하던 철도가 1900년 즈음해서는 거의 20만 마일에 육박했는데 이 길이는 당시 전 유럽의 철도망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철도망이 정비되면서 기관차나 철도 운영체계에도 기술적으로 획기적인 진보가 있었다. 최초의 대륙횡단열차는 장작을 때서 증기 터빈을 돌리는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장작 대신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대형 증기기관차가 개발되면서 더 많은 사람과 화물을 더욱 빨리 운송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식당차, 난방차, 침대차의 개발로 기차 여행은 편안함과 편리함을 더하게 되었다. 폐색 신호체계, 웨스팅하우스의 자동 연결장치, 공기압 브레이크의 개발은 철도의 안전성 향상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1883년에는 오늘날의 철도운영 시간체계가 처음 도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철도는 역마차를 대신하여 새로운 장거리 운송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은 미국인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모시켰다. 우선 상품과 천연자원 운송비가 엄청나게 줄어들면서 이것이 상업과 산업의 발전을 크게 자극했다. 한 예로 아이다호에서 생산된 감자의 동부 소비자 가격이 철도 건설 이전에 비해 하루아침에 10분의 1로 떨어지기도 했다. 서부로의 여행이 용이해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서부로 몰려갔고 이들에 의해 황무지에 불과하던 서부 개척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정부로부터 엄청난 면적의 땅을 불하받은 철도회사들이 이를 싼 값에 분양한 것도 사람들을 서부로 몰려가게 한 주요한 이유의 하나였다. 이들은 심지어 유럽에서까지 대규모 땅분양 판촉활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1874년에는 독일 메논파 교도 1만여 명이 캔자스로 집단 이주하기도 했다. 오늘날 캔자스를 뒤덮고 있는 터키레드 종 밀은 당시 그들이 가져온 것이다.
철도 주변과 특히 철도 교차 지점에 거대한 도시들이 생겨난 것도 철도가 가져온 큰 변화 중 하나였다. 오마하, 캔자스시티, 오클랜드, 포틀랜드 등은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아예 없었거나 조그만 촌락에 불과했으나 불과 30년 만에 수십만 인구의 거대 도시로 변모했다.
그러나 대륙횡단철도가 모두에게 다 좋은 것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서부의 초원을 뛰놀던 미국 들소들은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무차별 남획의 대상이 되었다. 백인에 쫓기다가 이제 막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원주민들에게 기관차의 굉음은 마치 그들의 명을 재촉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면 대륙횡단철도 건설은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었고 미국의 국력 신장에도 결정적 공헌을 했다. 미국은 드디어 사람들을 보내 대륙 전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게 되었고, 철도를 통해 태평양에까지 이른 미국의 힘은 곧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와 한국에까지 그 손길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철마, 광활한 대지를 질주하다 - 대륙횡단철도 건설(1869년) (미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10.22, 가람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