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式) 정치는 보수의 영토를 잘라내는 ‘뺄셈의 정치’에 가깝다고 합니다.
청년 정치의 대표성을 지닌 이준석을 여당 대표에서 끌어내리고, 여권내 일정 지분을 갖는 안철수·유승민 등과 절연했기 때문입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보수 빅텐트’를 해체해 버린 것이고, 한동훈 대표와도 끊임없이 갈등 빚으며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평도 듣고 있습니다. 정권의 존립 기반인 보수의 외연을 좁히고 스스로를 고립으로 몰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보수 주류층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는데, 김건희 여사 문제 때문입니다. 공적 권한 없는 김 여사가 국정과 인사, 심지어 여당 공천과 당무(黨務)까지 관여한다는 의혹이 꼬리 물고 있습니다.
추석 전 현장 방문에서 김 여사가 제복 공무원들을 세워놓고 “미흡한 점이 많다””개선이 필요하다”며 지시조(調) 발언을 쏟아낸 장면이 상징적이었다고 합니다.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보수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철학인데, 김 여사의 월권을 수수방관 방치하는 윤 대통령의 태도를 보수층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요즘 여론 같습니다.
<민심을 몰라도 어떻게 이렇게 모르나.
추석 연휴였던 지난 15일 김건희 여사가 장애아동 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온 탄식이다. 명절 때 영부인이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거야 정치권의 오랜 관례고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이벤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다. 연휴 직전인 12일 김 여사와 관련된 두 개의 뉴스가 터져 나왔다.
첫째 서울고법이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사건 2심에서 ‘전주(錢主)’ 손모 씨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오래전부터 손 씨 혐의가 김 여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손 씨 판결이 김 여사 기소 여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번 2심 판결로 검찰은 김 여사도 기소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게 됐다.
둘째 감사원이 대통령실ㆍ관저 이전 공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계약ㆍ시공ㆍ준공의 전 과정에 여러 불법ㆍ비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여사 관련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인테리어 공사에 참여해 논란을 일으킨 대목에 대해 감사원은 수의계약이 불법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쉽게 수긍하긴 힘들다. 2021년 영업이익이 1억5000만원에 불과한 영세 업체가 종합건설업 면허도 없는데 수십억 원짜리 국가 핵심보안시설 공사를 따낸 게 누구의 입김이었을지 뻔하다. 수사 당국이 이 문제를 이 잡듯이 뒤지면 뭐가 더 나올지 모른다. 야당은 ‘검건희 특검’으로 관저 이전 의혹까지 규명하자고 벼른다.
이렇게 민심을 자극할 악재가 연타로 터졌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스레 봉사활동을 하는 영부인이라니. 국민에게 봉사의 진심이 전달되기보단 보여주기식 쇼만 한다는 반발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을까. 게다가 김 여사는 이미 지난 10일 ‘마포대교 시찰’로 논란을 일으킨 상태였다.
자살예방 활동이었다곤 하나 제복을 입은 경찰관을 세워두고 김 여사가 손으로 지시하는 듯한 사진이 공개되자 당장 시중에선 “누가 대통령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인사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 여사는 지난 6일 검찰 수사심의위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하자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재개하려는 심산일까. 정말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명품백 문제는 법적 절차야 어찌 되든 본인의 진솔한 공개 사과가 없으면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없는 이슈다. 김 여사는 대선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허위 이력 논란을 직접 진화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윤석열 캠프가 여러 악재로 크게 흔들리자 김 여사가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명품백 문제와 비교하면 오히려 이력 부풀리기는 경미한 사안이었다.
김 여사는 올 초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문자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가량 빠졌다”며 명품백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를 댔다.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그
무렵 윤 후보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윤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과 지지부진한 선거 캠페인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끝까지 김 여사가 사과 회견을 하지 않았다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김 여사는 당시 회견 때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면 오늘날 영부인이 정권의 핵심 리스크가 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정히 사과가 힘들다면 철저히 은거하는 게 차선책이다.
아주 불가피한 필수 행사를 제외하곤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현 상태에선 자꾸 홍보 사진을 찍어봐야 국민의 부아만 돋우니까 말이다.>중앙일보. 김정하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정권의 핵심 리스크가 된 영부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8693
김 여사 이슈는 보수의 마지막 보루인 법치의 가치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왜 대통령 부인은 명품백을 받아도 처벌받지 않는지, 주가조작 의혹으로 고발돼도 4년 넘게 수사가 뭉개지는지, 검찰에 소환돼도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특혜성 조사를 받는지, 설명이 궁색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자들로선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 된 것입니다.
지지 기반이 무너지는 비상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총선 때, 참패 위기 앞에서도 김 여사를 감싸고 한동훈을 내치면서 선거를 엉망으로 망친 것을 보수층은 기억하고 있는데, 하도 기가 막혀 윤 대통령이 보수를 망치려 작정한 ‘X맨’ 아니냐는 한탄까지 나올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신이 보수라는 사람 중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3%로, ‘지지한다’ 38%를 압도했습니다. 보수층조차 윤 정권의 실체에 실망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이 심각한 상황을 가볍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정말 보수층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면 어떤 비극적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집니다(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윤 대통령은 '보수'인가).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