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닮은 것이 없다
숲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언제나 거창한 풍경만은 아니다.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나뭇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 낙엽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버섯 하나가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자연은 작고 낮은 곳에 뜻밖의 이야기를 숨겨 놓는다.
어느 날 숲에서 재미있는 모양의 버섯을 만났다. 하나는 둥글고 통통한 모습이 영락없이 오리의 궁둥이를 닮았다. 누가 빚어 놓기라도 한 듯 불룩한 곡선과 오목하게 팬 자국이 묘한 웃음을 자아냈다. ‘오리궁뎅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 싶을 만큼 익살스러운 모습이었다. 숲이 장난삼아 만들어 놓은 작은 조각품 같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가느다란 자루 위에 넓은 갓을 펼친 모습이었다. 옛사람이 비를 피해 머리에 쓰던 삿갓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에는 묘한 기품마저 있었다. 작은 생명 하나가 제 몸보다 훨씬 넓은 지붕을 받치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버섯은 식물처럼 보이지만 식물이 아니다. 엽록소가 없어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균류라는 독립된 생물 무리에 속한다. 우리가 숲에서 보는 갓과 자루는 버섯의 일부일 뿐이다. 실제 몸의 상당 부분은 땅속이나 썩은 나무 속에 가느다란 균사 형태로 퍼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다가 온도와 습도 같은 조건이 맞으면 자실체를 땅 위로 밀어 올린다. 우리가 ‘버섯’이라 부르며 바라보는 것은 그렇게 잠시 세상 밖으로 나온 생명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비가 지나간 뒤 숲길에서 버섯을 자주 만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습기를 머금은 흙과 썩은 낙엽, 적당한 온도는 균류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어제까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하룻밤 사이 버섯이 솟아난 듯 보이는 까닭도 땅속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생명의 준비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섯은 숲의 청소부이면서 순환을 돕는 존재이기도 하다. 떨어진 나뭇잎과 죽은 나무 같은 유기물을 분해해 다시 흙으로 돌려보낸다. 어떤 균류는 나무뿌리와 관계를 맺으며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다. 숲이 숲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에 잘 띄는 꽃과 나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균류의 세계도 필요하다.
오리궁뎅이를 닮은 버섯과 삿갓을 닮은 버섯을 바라보며 자연에는 정해진 하나의 아름다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우스꽝스럽고 둥글며, 다른 하나는 가늘고 단정하다.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닮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방식으로 생겨났고 그렇게 숲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은 때때로 아름다움에 기준을 세운다. 곧아야 아름답고, 화려해야 눈길을 끌며, 남보다 커야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숲에서는 그런 서열이 무색하다. 작은 이끼도 제 몫이 있고 썩은 나무도 다음 생명을 품는다. 볼품없어 보이는 버섯조차 숲의 순환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삿갓처럼 갓을 펼친 버섯 앞에서는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저 가느다란 몸으로 어떻게 저토록 넓은 갓을 떠받치고 있을까. 약해 보이지만 제 생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만큼의 힘을 갖고 있었다. 자연의 강함은 언제나 크고 단단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리궁뎅이를 닮은 버섯에서는 또 다른 생명의 표정을 본다. 자연은 엄숙하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엉뚱하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모양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놓고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앞에서 웃는 순간, 숲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 가까워진다. 다만 야생버섯은 생김새만으로 종류나 식용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비슷하게 생긴 종이 많고 독성을 가진 버섯도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함부로 따거나 먹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숲을 나서면서 다시 뒤를 돌아본다. 둥근 버섯도, 삿갓을 쓴 듯한 버섯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지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다. 땅속의 균사는 다시 계절을 기다리고, 낙엽은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며, 그 흙에서 또 다른 생명이 시작될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멀리 있지 않았다. 오리궁뎅이를 닮아 웃음을 주는 작은 버섯에도, 삿갓 하나 받쳐 든 듯 고요히 서 있는 버섯에도 한 생명의 질서가 숨어 있었다.
숲은 말없이 가르쳐 준다. 생명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그 다름이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룬다고. 그래서 자연 앞에서는 낯선 모습조차 아름답다. 우리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생명까지도 모두 제자리에서 세상을 완성하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