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고립에 대한 팡세
세상은 정(正)과 반(反)으로 이원화되어 갈등과 대립의 각을 세우지만, 균형을 유지하며 합(合)으로 나간다. 희생과 봉사는 사랑의 힘에서 나오며 반대로 외부와 단절하면 폐쇄와 고립으로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나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펠리칸은 이집트의 나일강에 사는 새다. 새끼를 극진히 사랑하는 새로 먹이를 구해 새끼에게 먹인다. 어미 새가 돌아다녀도 먹이를 구하지 못할 때는 새끼들에게 자신을 먹이로 제공한다. 새끼들은 어미의 살과 피로 생명을 이어간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닮았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죽었다.
언젠가 이스라엘 사해에 갔다. 사해는 해저 400여 미터로 물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빠져나가지 못해 염도가 높아 생명체가 살 수 없다. 그곳의 연어들은 모천회귀의 본능으로 강을 거슬러 힘들게 올라가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키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는 희생의 어류이다.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연어처럼 도시로 나가 살지만, 늘그막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찾고 고향에 묻히기를 바라는 인지상정의 회귀본능이 있다.
그런가 하면 고립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제도가 있다. 19세기 중엽 이곳을 항해하던 탐사선이 그 섬에 안착했다. 그 섬은 무인도로 생물의 천국이었다. 그 일행에는 생물학자 다윈이 타고 있었다. 거기서 조류들을 관찰하면서 진화론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그 말은 인간이 살 수 없는 생물들만 사는 고립의 세계를 비유한 말이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인데도 자국 시장만을 겨냥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본이 어떤 제품을 먼저 만들어 놓고도 미국에 밀리는 것은 세계시장보다 내수시장을 지향해왔다는 것으로 일본이 갈라파고스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폐쇄적 문화이다.
갈라파고스화의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이다. 외부 세계와 담을 쌓으며 70여 년의 폐쇄사회를 고집하며 빗장을 걸어놓고 있다. 현대에도 권력세습으로 독자적 진화를 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갈라파고스제도의 독특한 생물들도 외부와의 단절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주사파는 어떤 사람인가? 정신적으로 퇴행한 갈라파고스 종족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몸은 남쪽에 있지만, 정신은 북쪽에 두고 있다. 갈라파고스의 아름다운 섬도 외부와 단절로 생명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의 생태계는 지배가 아니라 서로가 의존하며 돌보아야 상생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