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플레인 모드
황유원
주말 오후
마루에 누워 듣는 비행기 소리가 좋다
시간은 딱 공항만큼만 넓어져
공항 가본 지도 실은 오래됐지만
공항에 누워 있는 듯
공항이 돼서 누워 있는 듯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마루에 누워 듣는 비행기 소리가 남겨 놓은 굉음이
사라져 가는 데까지 좇아가보는 게 좋다
귀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게
눈이 내가 없는 곳까지 보는 게 좋다
마루에 누운 나는 이착륙을 하지 못할 테지만
나 대신 이착륙을 해주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거리가 좋고
그 비행기를 몰고 가는 기장의 스트레스를 굳이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카트를 끌며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이 든 더러운 트레이를
치워주는 스튜어디스의 직업적인 미소를 굳이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그냥 텅 빈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는 게 좋다
착각은 나의 자유
아마도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일 테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 게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이 피어오르는 게 좋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하고 애써 생각하지 않는 게 좋고
더는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할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어보는 게 좋다
이러다 깜박 잠이 들어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문득 잠들었던 곳에서 다시
깨어난다 한들
나쁠 건 없겠지
혼자서 공중 회랑*을 통과해 가는 이 오후가 나는 좋다
*air corridor. 항공기 전용 항로.
황유원
2013년 《 문학동네 》 신인상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초자연적 3D 프린팅』 『하얀 사슴 연못』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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