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40)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공기 회항’ 사건엔 목격자가 있었다. 조 전 부사장을 제외한 유일한 일등석 승객이었던 박모(32·회사원)씨였다. 개인여행차
미국에 왔다가 KE086편을 탔던 박씨는 조 전 부사장 바로 앞자리(A열 1번)에 앉아있었다. 폭언·폭행이 있었느냐 여부를 두고
“처음 듣는 일…모르는 이야기”(조 전 부사장) VS “욕설을 하고 밀치며 파일로 때렸다”(사무장)로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제3자인 박씨가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그의 증언은 사무장 쪽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이다.
조 전
부사장의 ‘항공기 회항’ 사건이 알려진 뒤, 일등석에 타고 있던 목격자에 대한 루머가 많았다. 박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등석을
탄 것’이라거나 ‘비즈니스석에서 업그레이드 된 것’, ‘대한항공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몸은 숨기고 있는 것’이라는둥의 소문이었다.
확인 결과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박씨는 전에도 일등석을 여러 번 탔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지난 13일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과 인터뷰하기 전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사생활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박씨는 “이 나이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냥 회사다니는 회사원”이라고만 신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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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논란을 빚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 위해 12일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감독관실로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박씨는 지난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오후 4시간 동안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을 만나 “한 여성 승객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여자 승무원을 일어서게 한 뒤 ‘내리라’며 오른손으로 어깨를 밀쳤다”며 “승무원은 탑승구가 있는 3m 뒤까지
밀어붙이고, 말아 쥔 (플라스틱) 파일로 승무원 옆 벽을 쳤다”고 말했다. 그는 “그 승객의 목소리가 워낙 커 이코노미석
승객들까지 고개를 내밀고 봤고 사무장이 내릴 때까지 20분 정도 소란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 여성승객이
승무원에게 ‘태블릿PC로 매뉴얼을 찾아보라’며 소리를 지르기에 처음에는 ‘누구기에 항공에 대해 잘 알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조 전 부사장이 처음에는 승무원에게 내리라 했지만 사무장에게도 ‘네가 책임자니 너도 잘못이다. 네가 내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인격적으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승무원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거렸다”고 했다. 조 전 부사장이
이 과정에서 건넨 파일이 승무원의 가슴 쪽을 맞고 떨어졌는데 보기엔 던진 것처럼 보였다고도 했다.
박씨는 조 전
부사장이 소리를 지르며 여승무원을 밀친 건 목격했지만, 직접적으로 욕설을 하거나 사무장의 손등을 내리친 것은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조 전 부사장이 여승무원을 탑승구까지 밀친 뒤 커튼을 쳤다”며 “커튼 뒤에서 있었던 일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박씨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소리가 하도 커서 잠을 자다 깬 것이라 주의 깊게 보지 못했고, 좌석이 크다 보니
뒷좌석 이야기를 다 듣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오전 1시쯤으로, 늦은 밤 비행기에 오른 승객 대부분이 이륙을
기다리며 좌석에 앉아 쉬고 있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뉴욕에서 새벽 1시 전후에 출발하는 항공편은, 탑승 직후부터 잠에 빠지는
승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저러나’라고만 생각했다”며 “승객이 단둘이다
보니 언제 일이 터질지 몰라 14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왔다”고 말했다. 사무장이 내렸지만 조 전 부사장에게 밀쳐진
여승무원은 여전히 항공기 일등석에 남아 박씨를 담당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그 여승무원이 음식을 들고 박씨에게 다가왔다. 박씨가
‘어떤 분이시기에 저러는 거냐’고 묻자 승무원은 “회사 내부적인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 나중에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보고 나서야 (조 전 부사장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고작 (땅콩) 서비스 때문에 비행기를 돌리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에 화가 나 대한항공에 항의했더니 이틀 뒤 상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인터뷰는 자제해주시고 하시더라도
사과를 잘 받았다고 이야기해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임원이 대한항공 달력과 모형 항공기를 택배로 보내주겠다더라”며
“내가 만약 대기업 회장 딸이었다면 뒤늦게 사과를 했겠느냐, 나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승객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것 같지
않아 더 화가 났다”고도 했다. 박씨에 따르면 회항 당시 기내에 안내 및 사과 방송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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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기 회항' 논란을 빚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에 대해 수사중인 검찰 관계자들이 11일 대한항공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뉴시스
박씨는 소란 당시 한국의 친구와 실시간으로 나눴던 메신저 대화 내용도 제출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소란이 일어났을 때
실시간으로 친구와 ‘라인’ 대화를 나눴다”며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을 밀었다’, ‘파일을 말아 벽을 쳤다’, ‘사무장이
내렸다’ 등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친구에게 보냈다”고 했다. 이 메시지는 분·초 단위로 생생한 현장을 담고 있어 검찰 수사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와 인천공항 사무소를 압수수색했으며,
11일과 12일에는 해당 항공기의 기장과 사무장을 소환조사했다. 13일 목격자 박씨를 조사한 뒤로는 추가로 참고인을 소환하지 않고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조종석녹음기록(CVR) 등 압수물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의 폭언·폭행 혐의를 일부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다음 주중 조 전 부사장을 소환조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