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 제너레이션
기술의 컨버전스라는 말이 있다. 기술의 발전은 같이 가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통신 기술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사진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SNS가 활성화됐다. 메타버스는 트렌그는 2021년이 피크였지만, 당장 활성화는 되지 않았다. 2025년 정도는 돼야 진짜 메타버스 시대가 온다. NPC Non-Player Charcter는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안에 원래 존재하는 조연 캐릭터들이다.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얘기는 사람처럼 대화하고, 이웃 친구로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건 아니건 관계가 달라질 이유는 없다. 판매원으로 아바타가 있고 그 아바타에 Chat GPT를 얹는다고 생각해 보면 주인과 친한 단골 가계가 생기는 셈이다.
이제는 교육 개념이 바뀌는 세상이다. 완전히 개인에게만 맞춰진 맞춤 강의가 된다. 2022년 4월에 <2022 KoVAC META Connect Edu Tech>에서 미래 교육의 지향점은 ‘형식상 완결성 Compltion과 내용상 맞춤 성 Customization’이었다. 여기서 학교와 선생의 역할이 변화된다. “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수업이 아니라 휴식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아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더 쓸모 있을 것이다. ‘휴식 시간에 배울 것이 많다‘ 유발 하라리의 의견처럼 학교는 학습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학습을 확인하고 계획하는 곳이 되고, 실제적인 학습은 디지털상에서 일어납니다. 선생의 역할을 주 업무가 바뀌는 것이지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호에서 현실로 바뀌고 있는 대학 개혁은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한국대학은 지방대학의 몰락으로 인구감소에 따른 대학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전에는 어떤 대학에 갈까가 화두였지만, 앞으로는 ”왜 대학에 갈까? “가 된다. 이런 시대는 대학의 학제가 바뀔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전공과 관련 있는 곳에 취업하는 사람이 37.3%다. 문과나 예체능은 전공 불문이 높다. 이런데 분과대학의 칸막이를 높이는 일은 대학의 매력을 더 떨어트린다. 개인의 전공이 다 다른 자유전공이 돼야 한다.
출판 환경, 작가 탄생 경로가 변하는데도 출판 비즈니스는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석 달이면 새로운 정보가 양산되는데 책 한 권 출판에 여섯 달이 걸리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몰락을 알리는 사건이 있었다. ’2019년 MBC 노동조합은 7월 25일 광고 매출이 1억 4천만 원이다. 임직원 1,700명의 지상파 방송사가 여섯 살 이보람 양의 유튜브 방송과 광고 매출이 비슷해졌으니, 경영 위기가 아니라 생존의 위기가 닥친 것’이라 성명을 냈다. 이때부터 방송의 흐름은 바뀌어 방송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조각으로 유튜브에 띄우고 있다. 연예인은 대부분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만약 유튜브 같은 ‘마이크로 미디어’가 뜨기 시작하기 전에 ‘레거시 미디어’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이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펙트의 시대가 아닌 믿음의 시대. 댓글 한두 개로 여론 형성은 할 수 없지만 여러 개를 조작해준다는 어둠의 업체에 의뢰하는 경우 정치와 학원 쪽에 댓글 문제가 심각하다. 이제 쳇 GPT 시대는 비싼 비용으로 어둠의 업체에 댓글 조작을 맡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댓글 조작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기자는 지식인 구성이고 영향력이 있는 스피커였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많은 온라인 매체가 생겨났다. 기존 기자들도 유튜버와 조회수 경쟁을 하는, 처지에 몰리고 데스크도 자극적인 지사가 없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기상의 쿼리티가 저하될 수밖에 없는 시대다.
‘할루시네이션’은 그럴듯함의 오류이다. ‘Hallucinatio’은 환각, 환청인데 ‘AI가 잘못된 정보를 그럴듯하게 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듯함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양극화는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굴러가는 현대사회의 원죄 같은 것이다. 초거대 기업의 독점으로 인한 기술적 양극화는 글로벌 비즈니스 시대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다. 하나의 서비스가 성공해 뜨면, 아주 짧은 시간에 글로벌로 퍼지면서 세계적으로 사용자를 모으고 고객을 확보한다. 다른 양극화는 사용자 간의 격차에서 생긴다. 마케터나 기자, 작가들이 쳇 GPT를 활용하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가 있다.
AI는 자연스럽게 쓰는 ‘AI네이티브’와 AI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는 이주자들은 구분이 된다. 이런 현상을 필자는 ‘AI 인디시전’이라 이름 지었다. AI를 사용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사람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마치 인터넷을 사용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그것과 같다. ‘AI인지시전’은 ‘AI네이티브’와 이주자를 가르는 하나의 심리상태일 뿐이지만, 사실은 AI를 대하는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를 드러내는 원초적인 표현이다.
의미와 정보를 잇고 통합하는 연결력이 뭘까? 이를 창발성 ‘Emergence’란 말로 필자는 설명한다. 창발성 개념을 만든 사람은 심리학자 ‘루웬스’인데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 존재들의 협력’이라고 했다. 이 개념을 잘 도입한 업체는 ‘애플’이다. 그래서 애플의 본사는 여러 부서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날 수 있도록, 소통의 경로를 큰 공간 안에 모으는 식으로 설계되었다. 새롭게 형성된 큰 의미의 정보와 만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예를 들어 휴대폰과 PDA, 터치스크린 등은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인데 이것을 합치니 ‘스마트폰’이라는 기존에 없던 것이 등장했다.
다른 연결력의 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의 회장이 쓰던 방식으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손 회장은 300개의 낱말 카트 만들었다. 그리고 하루 한 번씩, 이 카드 중에서 무작위로 3개를 뽑아서 단어를 연결해 보았다. 어느 날 카드가 ‘사전’, ‘음성발신기’, ‘액정화면’이 뽑혀서 이를 창발성을 가지고 생각한 것이 전자사전이고, 이 특허를 ‘샤프전자’에 팔아서 21살에 11억 이상의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소프트뱅크 제국의 시작이 된 것이다.
AI가 가지지 못한 것은 설득력과 리더십만이 아니다. 설득에 중요한 ‘감성’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들었다. 로고스는 논리, 이성적인 설득을 의미하고, 파토스는 감정, 감성적인 설득을 의미한다. 에토스는 설득하는 사람의 매력도인데, 명성이라고도 한다. 에토스는 누가 이야기하는가이다. 이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이 에토스이고 가장 영향력이 적은 것이 로고스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2022년 12월 ‘뉴욕 햄튼’ 유대 성당의 랍비 ‘저시 프랭클린’은 설교하기 전에 회중들에게 ”나는 누군가의 설교를 표절했다.”라고 밝힌 후 설교가 끝나고 누구의 설고인 것 같냐고 질문을 던진다. 회중들은 다른 동료 랍비나 프랭클린의 아버지 같다, 개중에는 유명한 신학자인 ‘조너선 색스’의 설교 같다. 말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CHAT GPT가 써준 설교문이었다. AI는 종교인의 설교문도 무난하게 써낸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해야 공감할 수 있고, 교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AI가 주는 편리함 반대편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쌓인다. 그래서 사람 자체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이 더더욱 관심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원래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가, 무엇을 지향하는가 ?’와 같은 의문에 대하여 심리, 역사, 문학, 철학 등 여러 가지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학문이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는 있다. 책을 읽고, 실제로 사람과 교류하면서 대화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것도 좋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 직간접적으로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많이 얻으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3.07.10.
CHATGPT
이 시한 지음
북모먼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