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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 마땅한 일,
손님으로서의 염치, 빈 손으로 못 간다.
주인으로서의 자존심. 빈 상으로 손님 못 맞는다.
# 손님의 도리
반찬마실 하는 당일 날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미리 장을 보시기로 한 변○할아버지, 오○할머니를 모시러 간다.
차에 오르시는 할머니 손에 쥐어진 것은
늙은 오이 3,4개가 담긴 비닐.
자기 텃밭에서 따셨단다.
뒤이어 차에 타시는 할아버지,
들릴 데가 있으시단다.
아는 분 농장에서 직접 기른 수박 한 덩이 사놓으셨단다.
누구 집 가든
음료수 한 박스라도 사가는 것이 손님된 도리요,
마땅한 인간관계의 예인데
복지관 행사며 프로그램엔
사람사이 마땅한 예가 없다.
오히려 빈 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어릴 적 친구집 갈 때도
어머니가 손에 무어라도 쥐어주며 보내시는데,
어르신들께
"그냥 몸만 오시면 돼요." 하기 쉽상이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정작 오가시는 어르신의 마음, 발걸음이 편할까?
염치가 있고 사람된 도리가 있는데
그러기 쉽지 않다.
그런 불편한 마음 없이
그저 후원품, 선물 욕심으로 오가시고 있다면
그건 이미 복지기계의 마성이 그렇게 어르신들을 만든 탓이리라.
# 주인의 도리
백○ 할머니댁에 반찬마실 하기 전보다 일찍 가기로 했기에
점심 밥은 농활팀, 박시현 선생님과 어르신 두 분 것만 부탁드렸는데
할머니댁의 상에 이미 놓인 것은
고추지진 것,
도라지무침,
된장찌개,
단술,
오이냉국.
그것 모두 넘치도록 한 가득.
농활팀이 열심히, 맛있게 먹어도
먹은 티가 별로 안 나고
다른 어르신들은 식사하고 온다는 사실이
안타까우신 백○ 할머니.
뒷집 할매도 가봤는데...
옆 집 할매는 병원 갔고...
건너 집 할매나 불러와야겠네...
하이고, 동네 할매들 좀 와서 먹어야 될낀데...
하시며 동네 분 이리저리 몇 번이고 부르러 나가시는 모습,
뒷짐 지신 채 이 상 저 상 다니시며
빈 그릇 없나 챙기시는 모습...
이게 주인으로서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할머니의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 내겐 더 귀했다.
당당하셨으니까,
손님 대접하는 그 집의 주인다우셨으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복지 기관들의 생신잔치, 어르신 잔치에서 보기 쉬운
"(복지 서비스, 후원품...) 아이구, 고맙습니다" 가 아니라
손님 대접하려고 이것 저것 차린 것
양껏 나누지 못함이 더 안타까우신 모습...
어쩌면 기존의 생신잔치, 어르신 잔치는
어르신 당사자들을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
행사의 들러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첫댓글 남의 집에 오는데 그냥 오기가 뭐해서, 손님들 온다고 해서 차린것이 별로 없지만 많이 드셔주시오. 손님과 주인의 도리... 무엇보다도 예와 덕이라는 도리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지요. 늙은 오이 3, 4개면 어떻습니까? 빈손으로 가도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참 따뜻합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잘 차려진 반찬과 음식은 어떻습니까? 아껴두고, 아껴둔 그릇에 김치 한포기가 정스럽습니다. 만남이라는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라, 마음의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그 날의 풍경을 손님과 주인의 도리로서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도리. 감사함,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뭔가를 사들고 간다- 의식적인것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어르신들의 삶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것이 도리라는 우리들의 단어로 표현된 것이고. 손님의 도리, 주인의 도리. 도리라는 것은 공작한 봐가 없었는데, 이런 결실이 나온 것이 고맙습니다.
그래, 그렇지. / 어르신들 댁 번갈아가며 반찬마실 하다보니 알게 됐는데, 반찬마실 하는 댁의 어르신은 확연히 주인행세를 하더라. 남의 집에서도 적극적이긴 하지만 부탁드리는 일만 열심히 하던 어르신이 당신 집에서 하면 전체를 살피시는 거야. 무엇이 부족 한가, 필요한 것을 못 찾아 헤매지는 안는가, 물은 잘 나오는가, 단술은 간이 맞는가, 수박 못 먹는 사람은 없는가 ... 한 사람 한 사람 수시로 살피시더라.
백OO할머니만 그렇게 대접하신게 아니야, 지난 번 반찬마실 장소를 내 주셨던 채OO할머니께서도 단술을 준비했다가 대접해 주셨지. 이번에 수박 사들고 오신 변OO할아버지는 두 번이나 집을 내 주셨는데 때마다 커피와 차를 준비해서 대접 해 주셨지. 조OO할아버지도 방 데워두고 간식거리 사 두셨지. 어느 어르신 할 것 없이 그렇게 주인행세를 하시더라.
주상이 말처럼 주인과 손님의 도리로 당연하다 여기시는게지. / 반찬마실이 반찬 만들기 프로그램 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계모임처럼 삶으로 여겨 주시니 그게 고마워. 밥상 위에 오르는 반찬 한 가지로 풍성해 지는 생활 보다는 어르신이 반찬 한 가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손으로 마련하는 살아 있는 존재, 삶의 주인이시기를. 반찬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삶을 누리시며 품위 지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