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식 글은 처음 올려보네요. <낭만닥터 김사부> 덕분에 즐거움과 행복한 기다림이 일상을 채우고 있는 요즘입니다.
사실 저는 이 곳에 계신 많은 분들에 비하면 한참 신참인 팬입니다. 90년대에 태어난 저에게는 '한석규의 시대'였던 90년대의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석규님은 제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대배우셨으니까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에 언제나 손꼽혔던 석규님은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이 제게도 연기를 잘하는 배우, 목소리가 참 좋은 배우, 지적인 이미지의 배우셨습니다. 그의 영화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던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귀동냥을 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영화 중 처음으로 본 건 TV에서 방영해 준 '쉬리'라고 기억됩니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이중간첩'이었습니다. 그 때, '한석규의 새 영화가 나온다'며 굉장히 들떠 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 이후에도 몇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지만, 그 때까지는 팬이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냥 한석규는 참 좋은 배우, 대단한 배우라는 이미지로 제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석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석규님의 많은 어린 팬들이 이 작품을 통해 팬이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극본, 연출, 연기, 이 세박자가 아주 잘 맞은 수작이었지요. 저는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 '뿌리깊은 나무'는 그 작품성에서 한국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도 이렇게 제대로 된 철학을 품을 수 있다는 것에, 그것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지요. 그 중심에 한석규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6회에 세종이 소이에게 '모든 것이 나의 탓이다'라며 포효하던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말그대로 압도적인 연기였습니다. 드라마에서 그런 연기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끝나고 제게는 한석규라는 배우가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긴 연기인생의 발자취를 뒤늦게 거슬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되어서 찾기 힘들었던 '아들과 딸', '파일럿', '호텔' 등의 드라마부터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던 8편 연속 흥행 영화들까지. 90년대가 왜 한석규의 시대였는지 분명히 알겠더군요. 90년대에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에도 석규님은 작품을 허투루 선택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석규님 영화를 보고나면 그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인생과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담은 영화들에서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석규님의 연기가 빛나는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의 영화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좋더군요. 기억도 없는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갖게 하는 석규님의 연기와 그 작품들이 가진 여러 함의들이 제가 가진 여러 인생관이나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이 그 영화들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석규님의 영화나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대체로 90년대가 많은 비중을 차지 하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워낙 좋은 작품이 많기도 하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배우이고, 결과적으로는 한국 영화사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원톱 배우라는 타이틀을 마지막으로 얻은 배우가 되었으니까요.(그 이후의 영화계는 원톱체제는 아니었지요. 앞으로는 한 배우의 독주란 더욱 힘들테고요.)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90년대의 영광 때문인지 2000년대의 한석규가 조금 덜 조명되는 것이 아쉽습니다. 90년대의 한석규가 찬란한 태양빛이었다면, 2000년대의 한석규는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처럼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무지개로 보여집니다.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주홍글씨'나 '음란서생', '구타유발자' 같은 파격과 '미스터 주부 퀴즈왕',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보여준 잔잔한 삶의 연기도 일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90년대의 한석규가 고민해오던 것이 200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였습니다. 예컨대, '베를린'의 정진수는 '쉬리'의 유중원의 중년일 것이고,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담담함이 일부분 공유되면서 변주되어 있었지요. 90년대의 영화들을 보며 '역시 한석규'라고 외쳤다면, 2000년대의 영화를 보면서는 '이런 모습 처음이야'를 반복했습니다.
긴 시간동안 석규님은 그의 말투처럼 여유롭고도 분명하게 발걸음을 내딛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서 한석규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되고, 그의 지난 시간들을 놓치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요즘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면서도 익숙한 모습에 반가웠다가, 새로운 모습에 놀랐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셨다는 석규님의 말씀을 들으며 또 한 번 작품과 연기, 그리고 사람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자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석규님이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던지고 싶은 물음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물음이라 더욱 각별히 느껴집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저보다 훨씬 긴 팬 역사와 많은 추억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부러운 마음이 드네요. 저도 앞으로 긴긴 시간 석규님의 작품들과 함께 좋은 추억들을 쌓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주 먼 훗날에 석규님의 작품들이 제 인생의 주마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저 제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했는데 주저리 주저리 글이 길어졌네요. 결론은 석규님이 참 좋은 배우라는 것입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기다리시면서 주말 잘 보내세요^^
P.S. 김사부를 보면서 자꾸 드는 생각은, 이제 한 편 쯤 멋진 멜로를 찍으셔도 좋겠다는...작은 바람이..^^
첫댓글 이글을 버스에서 읽기 시작해
지금 내렸는데 다 읽지 못해
비오는데도
버스정류장서 읽고 말았네요.
집에도 안가고 ㅋ
이글은 꼭 석규님이 보심 좋겠어요.
석규님은 늘 영화를 그 시대만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 다른 세대 또는 시대에도 추억이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생각하셔서 한작픔 한작품 열정을 내신다 하셨거든요.
이리 한사람의 인생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대배우입니다 ^^
우리가 그런 훌륭한 배우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는거죠 ㅋ
자주 글올려주삼요.
ㅋ
그만큼 글이 좋고
구구절절 맞는 표현에
사랑이 엄청 담겨있어 감동입니다.
멜로 원츄요 ㅋㅋ
강력히 외쳐요^
그러게요. 저리 멋진데...
멜로 좋아요.
저두 완전 강력 추천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멜로를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꼭 보고싶어요.
저도 이글 입을 쩍쩍벌려가며 읽었는데.
다물어지지가 않네요.
어마어마한 팬심이 느껴져서.
나이로 따지자면 우리아들뻘쯤 될거같은데
한마디 한마디가 제 마음에
와닿네요!
제마음에 감동이라는 두글자가 박혀있습니다.
멋진 글 잘 읽었어요~
자주 글 남겨주심 꼭 도장찍고 갈께요
제 바램도 멜로 입니다ㅎㅎ
작가인줄~글잘쓰시네요 앞으로좋은글부탁드려요
석규님 향한 맘이 너무 절절하게 묻어나는 글이네요. 한 사람을 좋아하고 오롯이 지지를 보내는 일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잘아시는 분이실거같아용 ^.^
와우~~~!!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
짧은역사와 짧은 추억을 갖고계실지라도 그 마음만은 엄청난 깊이가 느껴지는데요?
좋은 글, 멋진 이야기 잘 읽어습니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말씀들에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