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강을 아는 법' (빌립보서 4:8~9)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복음에 지배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의 통제와 지배 아래 있어야 하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지적 활동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다 (고후 10:5).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의 삶 전체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능력과 목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거룩함과 성화의 교리는 율법주의적인 접근과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은 "이것들을 해라!", "저것들은 하지 마라!"라며 독재자처럼 강요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은 결코 율법주의적인 접근을 취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충만함과 축복을 누리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당연한 원리이자 이성적인 호소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을 향한 시선
성경은 복음의 지배를 받지 않고 거룩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비난하기보다 '측은히(불쌍히)' 여깁니다. 그들은 복음이 제공하는 엄청난 영적 축복들을 제 발로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 '복음에 지배받는 삶(순종)'을 살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와 같습니다.
참된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내 삶의 존재 전체를 다스리는 새 생명입니다. 이 복음의 지배에 순종할 때 성경이 약속한 충만한 축복과 평강이 삶에 찾아옵니다.
1. 신약성경의 대원칙: "복음의 축복은 항상 조건적이다"
신약성경이 약속하는 평강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하면"의 비밀: 빌립보서 4장 9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바로 **"그리하면"**입니다. "너희는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행함(순종)이라는 조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
십계명의 서문,
그리고 산상수훈의 팔복("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적 축복에는 반드시 '항상 조건'이 선유(선행)되어 있습니다.
2.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위험: '이론적 지식'에만 만족하는 것
바울이 감옥에 갇혀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간절히 권면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교묘한 위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법을 너무나 잘 알았고 율법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씨름했으나,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착각했습니다.
율법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구원만을 바라보게 한다는 본질을 놓친 채, 실천 없는 지식에 머물렀습니다.
야고보서의 경고처럼,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 돌아서서 곧바로 그 모습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 13:17)
복은 지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고 행할 때' 날마다의 삶 가운데 주어집니다.
3. 반석 위의 집 vs 모래 위의 집
주님께서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인생을 두 종류의 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1. 첫 번째 난점: 지적 자만과 이론적 지식이 주는 '가짜 만족'
⚠ 사탄의 가장 큰 궤계 (위험성)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이론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잊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함정입니다.
2. 두 번째 난점: '특별한 체험'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
구원의 복음을 항상 **'어떤 체험의 견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입니다. 즉, 자기들에게 반드시 무언가 신비롭고 거대한 일이 일어나야만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막연한 기다림으로 일생을 허비함: 이들은 복음을 놓치는 일부 사람들처럼, 그저 어떤 놀라운 체험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며 일생을 허비합니다.
수동적 신앙의 한계: 하나님이 이미 주신 진리에 대면하여 스스로 '행하려는'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감정적인 자극이나 외부의 특별한 계기만을 바라는 수동성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머리로만 분석하는 신학적 유희'**에 빠져 있거나,
반대로 **'감정적이고 특별한 체험만 바라는 수동적 태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여 '아는 대로 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얻는 구체적인 방법과 최종 결론'**
1. 참된 성인(경건한 사람들)의 삶의 특징과 목표
교회사 속에서 위대한 신앙의 발자취를 남긴 성인들의 삶에는 아주 뚜렷하고 공통된 야망이 있었습니다.
인생 최대의 야망: 그들의 가장 큰 열망은 단순한 도덕적 삶이나 문제없는 일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삶의 지배적인 특징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 바울의 위대한 야망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 그분의 고난에 참예함을 알고자 했습니다 (빌 3:10).
나그네와 순례자의 삶: 그들은 이 세상을 영원한 정착지가 아닌 '광야를 지나가는 순례 여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영혼을 방해하는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주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오직 '경건함'에만 전념했습니다.
2.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한 3가지 구체적 실천 (순종의 방법)
바울이 말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가 날마다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첫째, 성경 읽기 (하나님의 계시로 나아가기):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한다면 반드시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젖을 갈망하듯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며 성경을 이해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벧전 2:2).
둘째, 기도 (하나님과의 대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하듯,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면 사적으로, 공적으로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셋째, 자신에 대한 성실한 태도 (반성과 성찰):
참된 성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마음을 살폈습니다(자기 반성). 자신의 죄악됨과 불완전함을 철저히 깨닫고 낮추는 겸손한 태도가 늘 따랐습니다.
3. "그리하면"의 최종 약속: 화평케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복음의 원리를 듣고 깨달은 대로 일상에서 실천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약속이 성취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십자가로 이룬 화평: 인간은 원래 하나님께 반역하여 비참해진 원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내면의 죄를 제거하여 긴장과 갈등을 사라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처한 환경과 조건이 어떠하든지 그 상황 속에서 평강을 유지하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옛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것처럼, 우리가 행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해결해 주시며,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히 13:5).
질병, 고통, 불행,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 있습니까? 환난 때에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이 놀라운 특권에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단순히 축복을 기다리기만 하거나 머리로 공부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오늘 배운 진리를 일상 속에서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다면, 그분은 진실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