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 년만에 다시 찾아간 피에르 키 비 수도원에서 수도공동체 일부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함께했던 수도자들은 예전처럼 한 식구를 대하듯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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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성 베네딕도회 피에르 키 비 수도원 체험은 향적 스님에게 삶의 새로운 안목과 지평을 넓히는 계기였고 동시에 견성 체험의 시기였다.
비록 종교적 교의나 의식,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원에서 서로 같은 점을 찾아내고 궁극적으로 서로 일치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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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프랑스 피에르 키 비 수도원을 방문, 1년 가까이 수도원을 체험한 향적 스님은 하루 여섯 차례씩 기도 시간에 참석, 수도공동체와 함께했다.
미사 중에는 물론 영성체를 하지 않되 기도와 노동으로 이어지는 일상에는 늘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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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피에르 키 비 수도원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는 향적 스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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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수행시절, 나는 프랑스 베네딕도수도회 피에르 키 비(Pierre-Qui-Vire) 수도원에서 1년 가까이 머물렀다. 자급자족하는 가톨릭 수도원을 체험해보고 그 제도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수도원 삶에 점차 익숙해질 무렵, 예수 성탄 대축일 1주일 전부터 수도자들은 대축일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성당 제대 뒷면에 걸개 그림 형태 예수님 상이 걸려 성탄 분위기를 자아냈다. 성화는 미대 출신 노비스(종신서원하기 전 수련자)들이 그린 작품이었다. 이 수도원에서는 대축일 때마다 그날에 맞는 성화를 그려 성당에 봉안하곤 했는데 그 일환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노엘'(Noel)이라고 한다. 그날 노엘은 내가 수도원에 들어와 처음으로 맞는 큰 규모 행사였다.
수도원 성탄 대축일 축하 행사에 동참하기 위해 파리와 리옹에 사는 가톨릭 신자들은 두 달 전부터 수도원에 있는 오텔르리(수도원 숙소)에 방을 예약해야 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방이 없어 성탄 대축일 밤미사에 참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텔르리는 수도원 방문자나 며칠간 기도와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수도원 내 숙소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 때 쓰는 요사채와 같은 용도였다.
성탄 때가 되면 수도원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일상 수도원 분위기는 오간 데 없다. 평소엔 공동체 구성원이 90여 명이나 돼도 깊은 숲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인적이 드물어 깊은 정적만이 감돌던 수도원은 활기를 띠었다. 하루 여섯 차례 기도시간을 알리는 성당 첨탑의 투명한 종소리 외에는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던 수도원은 성탄을 이삼 일 앞두고 프랑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가톨릭 신자들로 붐볐다. 이렇게 모여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헌된 예수 성탄 대축일 자정미사에 나도 수도원 식구의 한 사람으로 참례했다.
성탄 자정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 출입구로 연결된 긴 복도에 신부님과 수사님들이 흰 수도복을 입고 두 줄로 서서 기다렸다. 오른손에는 흰색 긴 양초를 들고 불을 밝혀들었다. 맨 앞 두 노비스가 긴 줄에 매달린 향로를 흔들어 향을 뿜어내면서 성당 안으로 사제들을 인도했다. 그 뒤를 이어 수도원 식구들이 따라 들어가고 또 뒤에 화려하고 장엄한 제의를 입은 사제단 12명이 두 줄로 입당했다. 맨 뒤에는 수도원 원장님이 목자의 상징인 큰 지팡이를 오른손에 들고 천천히 성당 중앙통로로 걸어 들어왔다.
미사 전에 입당한 신자들은 기다리고 있다가 모두 일어나 입당하는 사제와 수도자들, 원장을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시 성직수사들 행렬에 서 있던 나를 보고 수도원에 모인 신자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다음날 관리 수사가 귀띔하기를 신자들이 회색 법복은 어느 나라 신부 복장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성탄 자정미사 행렬 속에 먼 나라 한국 승려가 참석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니 프랑스 가톨릭신자들의 그런 의아함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처음으로 참석한 성탄 자정미사 의식은 아름답고도 성스러웠다. 장엄한 종교의식은 종파와 국적을 초월해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참석자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고,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성탄 밤 미사를 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성당 안에서 퇴장할 때에는 바흐의 'b단조 미사곡'을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성당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에 가슴이 벅찼다. 「어린 왕자」에서 '성탄 자정미사 때 연주되는 바흐의 미사곡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내용을 읽을 때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먼 이국 성당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니 '장엄하고 아름답다'는 어린 왕자의 말이 어떤 느낌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퍼지는 영혼의 소리였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나도 모르게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과 더불어 종교음악의 금자탑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바흐의 'b단조 미사곡'은 바로크 음악의 결정체라 불린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시대와 종교를 떠나 사람 마음에 이토록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게 음악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자정미사를 마치고 바흐의 미사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들 "Joyeux Noel!(즐거운 성탄절 되세요!)"하고 덕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서로 두 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성당을 나오는데 공동체 식당에 따뜻한 차가 준비돼 있다는 안내를 받으며 들어갔다. 식탁 위에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 놓고 따스한 초콜릿 음료와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으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식당 스피커에서 흐르는 캐럴에 귀를 기울이며 뜨거운 초콜릿 음료를 한 잔 마시니 두 시간 동안 추위에 얼어붙었던 몸이 시나브로 녹는 것 같았다.
승려로서 성탄 자정미사를, 그것도 먼 이국 땅 프랑스 가톨릭수도원에서 체험했다는 것은 내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무엇보다도 '하지 말라'는 율법에 얽매인 구약 시대에 '하라'는 사랑의 신약 시대를 연 예수님의 숭고한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해줬고, 그 값진 경험을 통해 사랑과 자비는 결국 같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귀한 체험이었다.
향적 스님(대구 팔공산 선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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