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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우리 역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고민합시다!
웬만해서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성격이라 가끔 가뭄에 콩나듯 병원에 가면 과거와는 완전 딴판인 첨단 의료 시스템에 화들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진단과 치료를 위한 별의별 의료 기계들에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최첨단 의료 기술에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 계신 제 어머니를 진료해주시던 주치의 의사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명의로 소문이 자자해 몰려드는 환자로 늘 바쁘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환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해주시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번 해보자며 희망과 용기를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의사 선생님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병마를 쫓아내던 또 다른 예수님이셨습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가장 역점을 두셨던 사목활동이라면 단연코 치유와 구마 활동이었습니다. 의료 체계나 수준이 열악하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별것 아닌 병 앞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 득실대던 마귀의 횡포에 죽을 고생하고 있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신 두눈으로 확인한 예수님께서는 발길 닿는 곳 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환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하느님 아버지의 손가락이 되어 썩어 문드러진 환부를 재생시키고, 길길이 날뛰며 횡포를 부리던 마귀들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당신의 손가락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소중한 손가락으로 어떻게 하느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자비를 드러낼 것인가,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2)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쉬는 교우’란 용어가 주는 해악
영화 ‘사랑도 번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은 도쿄 한 호텔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두 명의 미국인 밥 해리스(Bob Harris)와 샬럿(Charlotte)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밥은 유명 영화배우지만 인기가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20억 원의 돈을 받고 도쿄로 위스키 광고를 찍으러 온 것입니다. 처음 접해보는 동양 문화에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고 집에 전화해도 아내는 시큰둥합니다. 결혼 24년 차이기 때문입니다.
밥처럼 같은 호텔에 있으면서 잠 못 드는 샬롯은 결혼 2년 차입니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출장이 잦은 남편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샬롯도 여전히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외롭습니다.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술 한잔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고 둘이 함께 있으니 잠이 옵니다. 둘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선을 크게 넘지는 않습니다. 밥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둘은 헤어지기 아쉬워합니다. 밥은 아쉬워하는 샬롯에게 가벼운 키스를 하며 귀에 대고 뭐라 말합니다. 샬롯은 얼굴이 밝아지며 영화는 끝납니다.
과연 저 둘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행복할까요? 어쩌면 더 큰 일탈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잠 못 드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계속 일탈을 꿈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힘을 빌려 그렇게 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른 표징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물론 다른 표징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믿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가 당신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나라도 나라고 천국의 나라도 나라라고 하십니다. 나라가 갈라지면 나라는 망합니다. 마귀의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도 악으로 단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를 악한 자가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를 하늘이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편 아니면 사탄의 편, 두 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중도는 없습니다. 빛 안에 어둠이 속할 수 없고, 어둠 속에 빛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사탄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이미 사탄 편에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입니다.
어떤 이들은 새벽과 저녁은 빛과 어두움이 섞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빛을 선택한 사람의 상태이고 저녁은 어둠을 선택한 사람의 상태입니다. 내가 어느 편에 서기로 했느냐에 따라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해있는지가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쉬는 교우’는 어떨까요? 예수님의 편일까요, 어둠의 편일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편임을 멈춘 상태입니다. 빛의 편이었다면 조금씩 더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멈춘다는 말은 어둠으로 가고 있기에 어둠의 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냉담자들을 ‘쉬는 교우’라고 칭합니다. 쉰다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 걷다가 쉬면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가 축적됩니다. 그러나 신앙을 쉰다는 말은 죽어간다는 뜻입니다. 밥 먹기를 쉬면 어떻게 될까요, 물 마시기를 쉬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힘이 빠져서 죽어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냉담 교우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쉬는 교우라고 칭합니다. 오히려 그런 칭호가 냉담을 회두시킬 필요가 없게 만들고 그들도 자신들의 상태가 빛으로 나아가는 줄 착각하게 합니다.
영화 ‘삼사라’에서 타쉬는 절에서 나와 결혼합니다. 신앙을 잠시 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내와 자녀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잠시 쉬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쾌락의 기쁨을 알아버렸고 아내와 자녀가 다시 돌아오는 길을 막습니다. 그런데도 쉬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를 쉬면 조금씩 죽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의 길을 아는 사람의 말입니다. 쉼은 생명을 회복함이지만, 냉담은 죽음을 선택함입니다. 이 절실함이 자녀들이 공부를 위해, 직장과 혼인을 위해 신앙을 잠시 쉰다고 했을 때 우리의 반응을 바로잡아 줄 것입니다.
사랑은 쉴 수 없습니다. 사랑을 쉰다는 말은 사랑이 식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불에 올리면 뜨거워지고 불이 없으면 식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진, 아니면 후퇴입니다. 신앙, 아니면 불신앙입니다. 쉬면 죽는 게 신앙입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1,14-23: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구들을 쫓아낸다.”(15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벗겨내고, 그리스도의 힘의 원천이 베엘제불이라고 우긴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이라고 그분께 요구하였다. 나라가 서로 갈라지면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베엘제불도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모두 끊으면 제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내쫓는가? 사탄이 저 자신과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기 시종들을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짓부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의 두 손이라고 하였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바로 아들과 함께 일하시는 성령이시다. 주님께서는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영 안에서 마귀를 쫓아내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인간 본성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 본성이 더러운 영들을 꾸짖음으로써 빛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있다는 의미이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21-22절) 그분은 세상의 지배자를 이기셨다. 그를 무릎 꿇리고 그의 힘을 빼앗은 다음,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내주셨다. 주님께서는 그 주인보다 더 힘센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자가 막강한 힘을 누리며 본래 하느님의 것인 양들을 멋대로 다루고 자기 외양간에 가두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말씀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어 맞서시자, 그는 전 재산을 빼앗기고 그의 재산은 전리품으로 분배되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23절).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마귀의 손에서 구해 내고 그에게 속아 넘어간 이들을 그의 거짓에서 건져 내러 오셨기 때문이다. 사탄은 주님께서 구원하고 모으신 이들을 흩어버리려는 자이다. 그분께 대항하고 사악한 뜻으로 그분의 목적을 훼방하려는 그자가 어떻게 주님을 도와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4)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을 해 보십시오. 아인슈타인이 지금 이 자리에 강의하러 온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 강의를 듣겠습니까? 또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요? 지금이야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많은 사람이 강의를 듣기 위해 올 것이라고 예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는 교수로서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아인슈타인의 강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물리학계의 주목받는 샛별이었지만, 수강 신청자는 겨우 세 명이었고 다음 학기에는 신청자가 아예 없어서 그 강좌가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프린스턴 대학 총장은 아인슈타인의 교수 기량이 부족하다면서 정교수 직위를 주지 않으려고도 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 잘 가르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자기 역량을 드러내는 분야가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실력 없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처럼 실력은 뛰어나지만, 단지 가르치는 것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판단은 늘 이런 식입니다. 하나의 모습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그래서 더 중요하고 큰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하느님 일 역시도 전체를 보지 못하기에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에 바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마귀가 나가고 이제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군중 중의 몇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이 말을 듣고서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런 표징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으로 알겠다는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도 하느님의 커다란 표징입니다. 당시에 벙어리 마귀는 하느님만이 쫓아낼 수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못 하게 하는 벙어리 마귀이기에 하느님만이 쫓아내서 당신 말씀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편을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마귀를 쫓아내는 어리석은 행동들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에 관한 부정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주님의 반대편에 서서 반대하고 흩어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일상이 바뀌어야 미래의 내가 바뀐다(김시현).
5)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예레 23,24)
목을 뻣뻣이 세우고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고집스럽게
제 멋대로 걸어가는 이들의
눈은
구원을 볼 수 없다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말씀의 편에 서서
말씀과 함께 걸어가는 이들의
입에는
구원의 진리가 담겨진다네.
6)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남을 시기 질투하고 이간질하는 것은
선한 영과 악한 영 어느쪽에서 오는걸까요?
남을 자기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선한 영과 악한 영 어느쪽에서 오는걸까요?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움을 풍선 불 듯 키워가는 것은
나의 선한 영과 악한 영 어느쪽에서 오는걸까요?
우리의 정신 약해지면
영혼에도 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악한 영의 영향을 더 받게 됩니다.
믿음이 단단하지 못하고 약해지면
악한 영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도 달콤하고 너무도 부드럽게
악한 영은 우리의 약점을 간파하고
우리의 몸과 정신과 의식, 그리고 영혼을 파고듭니다.
그래서 의식성찰과 영적 식별을 통해
악한 영과 선한 영의 작용을 식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제 안의 믿음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말씀안에서 살며 의식성찰과 식별로 제
자신을 돌아보고 다듬어 야겠습니다.
복음 말씀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