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2A군 발암물질이다”
최근 정부의 ‘새벽배송’ 확대 방침에 관해 택배 노동자들은 이같이 말했습니다.
새벽배송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 타인의 몸을 수단시하는 세상에 대한 반발이었죠.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무탈하기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많은 노동이 촘촘하게 작용해야 하는지 헤아려본 적 있을까요?
밤 10시, 휴대폰을 켜서 내일 아침에 먹을 바나나를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가 완료되는 동시에 ‘내일 아침에 만나요!’라는 문구가 볼 수 있습니다.
바나나의 주문과 도착 사이에는 택배 기사, 주유소 직원, 철로 정비사, 식당 주인, 생선 가게 주인, 어부, 공장 노동자, 발전소 직원, 어린이집 선생님까지…
수많은 이들이 바나나가 더 ‘일찍’ 도착하도록 더 서두릅니다.
그렇게 잠들기 전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면 다음 날 눈 뜨기도 전에 현관문 앞까지 도착해 있는 새벽배송은 누군가 뜬 눈으로 밤새 몸을 움직였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것이 우리에게 주는 신속함과 편리함이라는 반짝임 속에는 수고로움이 빠져 있을 때가 있죠. 누군가의 윤택한 생활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워라밸을 포기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일찍’이라는 평범한 단어가 일으킨 파장을 예리한 통찰로 담은 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은 편리한 소비 속에 숨은 이면을 상상해보자고 권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을 기억하지 못하면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누군가의 밤잠을 못 자는 삶을, 고통을, 괴로움을, 그 반복을 멈출 수 있는 건 언제나 알아차리고 저항하는 인간뿐이니까요.
오늘도 새벽배송 주문하실 건가요? 그전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밤과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영화 <다음 소희> 중에서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
정진호 지음 | 사계절 펴냄 | 44쪽 | 15,000원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