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역사.
1. 어디서 라면은 시작됐나
라면은 밀가루 반죽을 묻힌 생선을 기름에 튀기는 일본 [덴뿌라]와 같은 원
리의 인스턴트식품이다. 즉 밀가루 반죽은 끓는 기름 속에서 애초 수분이
있던 자리에 구멍을 형성하게 되고 이를 건조시켰다가 다시 끓이면 원상태로
풀어지는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평생을 인스턴트 식품연구에 쏟았던 안도시로후쿠씨는 거듭된 실패로 위기
에 몰려 있다가 한 술집에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가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라면]이란 이름의 제품을 개발,시판했던 것은 1958년. 우리나라에선
삼양식품이 일본 명성식품과의 기술제휴로 1963년 9월 라면을 탄생시켰다.
일부에선 라면의 유래를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전시 비상식량으로 사용하
던 건면(乾麵)에서 찾기도 한다.
2. 라면의 면은 왜 꼬불꼬불한가
일단은 한정된 부피 내에 많은 양을 담기 위해선 직선보다는 곡선이 낫다.
그리고 튀김공정 과정에서 빠른 시간내에 많은 기름이 흡수되도록 하기 위해
서도 면은 꼬불꼬불해야 한다. 시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미학적 차원에서도
직선은 문제가 있다.
3. 초창기 라면의 인기는 어땠나
소비자들은 라면을 라면(羅綿), 즉 무슨 새로 나온 옷감으로 알았다. 그래
서 선발주자였던 [삼양라면]은 시장,공원,영화관,버스터미널,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마솥을 걸어 놓고 무료시식 캠페인을 벌였다. 그 무렵
고 박정희 대통령조차도 [좀 얼큰하게 맛을 내라]며 주문을 보태기도..
4. 처음 라면값은 얼마였나
1백g 1봉지에 10원. 11원,12원 하기가 좀 뭣해서 10원을 붙였는데 메이커에
떨어지는 이윤은 1봉지당 70전 수준이었다.
이후 라면값이 20원으로 인상됐던 것은 1970년, 무려 7년 만이었다. 하지
만 용량이 1백g에서 1백20g으로 덩달아 올라 실제 가격인상 효과는 그리 크
지 않았다.
1960년 소비자 물가 인상률이 4백%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 상황을 가늠하기
충분하다. 그 뒤에도 라면값은 다른 물가에 항상 뒤처져 오르는게 고작이었
는데 1981년 8월 들어 겨우 1백원에 도달했다. 당시 자장면은 5백원이었고
곰탕 1천2백원, 냉면 1천3백원 수준.
현재 라면이 물가지수에 차지하는 가중치는 1천분의 3.1로 빵보다는 낮고
소주보다는 높다. 그러나 정부가 비상사태 때 관리하는 쌀,휘발유 등 12개
생필품 속에 라면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5. 현재 라면은 몇 종류나 나와있나. 그리고 제일 비싼것과 싼것은..
끊임없이 새제품이 나오고 또 비인기 라면은 사라지고 있어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그러나 줄잡아 농심,삼양,오뚜기,한국 야쿠르트,빙그레,삼립 등 6
개 라면메이커는 1백20종의 라면을 시판하고 있다.
이중 가장 비중이 큰것은 3백원대 봉지면으로 총 34종. 다음이 5백원에서 1
천원에 달하는 용기면으로 모두 31종을 헤아린다. 가장 값이 싼 라면은 오
뚜기의 봉지면 [참라면]이 1백50원. 제일 비싼 제품은 지난말 선보였던 농심
의 [머그면]인데 보통 라면의 5분의1 크기인 25g짜리 6개가 함께 포장돼 1천
2백원에 팔리고 있다.
6. 용기면은 언제 처음 나왔나
지난 82년 11월 나왔던 농심의 [사발면]이 첫 제품으로 라면문화를 또 한번
바꾸어놓았다는 평까지 들었다. 이후 [컵라면][큰사발][왕뚜껑]등이 잇따라
소개되면서 고가 라면시대를 열었다. 현재 팔리고 있는 1천원대 용기면은
[뚝배기](농심), [미스터빅](삼양), [프레미엄캡틴](빙그레), [빅3](한국야
쿠르트)등이다.
7. 라면이 처음 수출됐던 연도는. 또 지금은 얼마나 수출되나
지난 69년 주월 한국군 공급용으로 26만 상자를 수출했던 게 그 시초. 그
러나 1973년 파월 한국군 철수로 수출은 단절됐으며 76년 중동지역 건설붐을
타고 라면 수출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때 한국산 라면의 인기는 급상승, 한해동안 무려
42.6% 수출신장세를 나타냈다. 수출대상국도 40여개국에서 80여개국으로 늘
어났다. 지난해 수출액은 4천2백66만달러
8. 북한에도 라면이 있나
조총련이 김일성 65회 생일기념으로 1977년에 기증한 애국라면공장에서 라
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잦은 공장가동중단으로 공급물량은 절대부족
9. 라면에 얽힌 몇가지 기록들
지난 70년 11월 이화여대 K교수가 [라면 유해론]을 발표해 업계와 소비자가
일대긴장. 또 77년에는 [삼양 칼국수] 스프에서 구더기가 발견돼 소동을 빚
었고, 92년엔 농심라면에서 독극물 협박사건이 발생했다.
라면제품을 둘러싸고 용공(容共)시비까지 벌어졌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73년 3월 소위 스낵류 [라면땅] 제품의 하나였던 삼양의 [뽀빠이]
는 생산현장에 침투한 간첩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다.
포장이 오랜지색인 데다가 소련국기를 상징하는 닻이 디자인돼 있었던 탓이
었다. 회사측 개발 및 도안 담당자들이 관계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사
태마저 벌어졌다.
[아무데나 서서 후룩후룩 건져먹는 저게 뭐냐] 서울올림픽 당시 현장에 있
거나 TV를 시청하던 외국인들의 궁금증은 더해갔다. 농심라면 판매대와 함
께 경기장에 전을 폈던 [웬디스 햄버거]는 거의 맥을 추지 못할 정도였다.
전세계에서 라면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업계는 가격에 비해 부피가 커
물류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탓에 수입요청에 모두 응하지는 못했다.
라면이 먹고싶은 이유?
군대대다녀오신 분이면 반합라면이... 제일~
반합라면을 먹어보지 않고서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모 예비역의 말이
있습니다.
봉지라면의 아류작으로서 그 맛과 향기는 타라면의 추종을 불허하죠...
봉지라면의 단점(관리 잘못하면 쏟아지는 것, 국물 먹을때 난감한 것등...)을
거의 완벽하게 처리해준 이 추억의 반합라면~
예비역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반합이 어느정도 크기인줄은 다 아시죠?
반합라면은 끓여서 먹어도 죽이지만... 역시 그냥 끓는물 부어 먹는게 최고봉
입니다.
그 반합에 라면이 얼마나 들어갈까요? 한 2개? 3개쯤?
제가 말년에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결과... 무려 5개나 들어간답니다.
제가 전역대기를 할 무렵... 밥 먹으러 가기고 귀찮을 짬밥이 되어서 미기적
미기적 거리다가 부사수 놈을 시켜서 봉지라면을 사오게 한 후... 그 쫄따구의
반합(저는 관물반납을 다 해서 반합이고 뭐고 없죠)에 라면을 저 먹을거... 밥
은 안먹고 하루 한 두끼정도만 먹으니... 2개 정도 집어넣고 기다리자면...
그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를 맞아가며... 군인도 아닌 말년에게 한 젓가락만 달
라고 애원하던 그 추억의 쫄따구들... 으으...
해서해서 하도 달라길래 다음부터는 반합 2개에 라면을 각각 5개씩 집어넣고
기다리자면 밥 다먹고 우루루... 와서는 고참 먹을 라면을 국물 하나 안 남기고
깨끗이 처리하던 그 추억...
반합라면은(꼭 반합이 아니어도 그냥 냄비도 무관) 물을 라면 끓일때보다 약간
적게 부은후... 딴건 별로 필요없지만 참치 하나정도는 넣으면 둘이 먹다가
한 명이 기절해도 발로 차내고 먹을 정도의 맛이랍니다.
하지만... 제대후 똑같이 해먹어봐도 그 맛이 영 아니더군요~
참... 봉지 김 하나 넣어도 괜찮죠~
군시절 봉지라면과 반합라면의 추억을 기리며 한마디 썼습니다.
지금도 군대시절 추억을 생각하면서 라면을 먹어보고 싶답니다.
꼭 체험단선정되어서 먹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