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거리미사
삼천포에서 밤 페리호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 것은 재의 수요일 3월 5일 아침 8시. 제주에는 처제와 처남이 살고 교우 등 여러 지인들이 있다. 우선 처제댁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고 도보순례를 위한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나는 사순절 첫날 재를 받고 순례를 시작하고 싶었다. 중문 성당 현상호 회장에게 전화하여 의논하니 1시간 내로 중문 터미날까지 오라고 한다. 제주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중문에 도착하자 현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 시간에 미사가 있는 곳은 한군데 뿐이라며 나를 강정마을 거리 성당으로 안내했다. 현재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신부, 수녀, 주민 수십 명이 지난 2년동안 매일 거리에서 제주의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여러 대 버스에 동원된 경찰병력도 매일같이 진압에 동원된다. 그러나 아무런 긴장감이나 소란없이 평화스럽게 되풀이되는 강정마을의 시위와 진압은 시위라기보다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이들은 매일 11시부터 2시간에 걸쳐 미사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공사장 출입문 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아 공사를 반대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녀원인 성가소비녀회에서도 강정에 분원까지 설치하고 수녀를 파견하고 있다. 제주 교구장 강우일 주교도 성탄이나 부활절 같은 대축일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미사를 주례하며 격려한다고 한다. 공사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경찰들은 출입문 앞의 신부, 수녀들을 의자 째 번쩍들어 옮겨 놓는다. 차량이 통행하면 참가자들은 다시 의자를 출입문에 갖다놓고 침묵 시위를 계속한다. 얼핏 소모적인 방법처럼 보이는 이들의 시위가 실제적으로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공정은 절반 가까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가슴까지 나부끼는 흰수염이 '거리의 신부'라는 별명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문 신부는 이날도 '강정의 평화'를 목터지게 외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심하겠다는 위로에 문 신부는 객지에서 고생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자신들의 행위가 바위에 계란던지는 일처럼 보이겠지만 평화의 섬 제주에 외세를 위한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을 누군가는 끝까지 반대했다는 사실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며 사명감을 드러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의구현 사제단을 중심으로 강정마을 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그리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위한 대한문 미사 등 다수의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평화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명감으로 도처에서 거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일반사회 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각자 생각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번 여행 중 만난 많은 신자들은 정의구현 사제단의 과거 투쟁에 대한 역할은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요즘 활동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민주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상대방의 부정이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종북 빨갱이'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면서 극단적인 용어로 서로 매도하면서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려기 보다는 쉽게 인간적인 관계마저 단절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제들이 집전하는 미사 현장까지 쫓아가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까지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나로서는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어지러히 나부끼는 강정마을 거리에서 어수선하게 봉헌되는 재의 수요일 미사가 슬퍼 나는 미사 내내 목이 메이고 눈물이 쏟아졌다. 우연치않게 조국 순례 첫날 제주 강정마을에서 재를 받고 첫발을 내디디게 된 나는 순례내내 우리 민족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라는 강한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편에서는 '해군기지 건설반대' 구호를 등에 붙힌 도사차림의 한 노인이 3보 1배를 올리고 있었다. 노인 뒤 여인 한 사람이 따라다니며 절 한번 올릴 때마다 매듭 한개 씩을 묶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며 벌써 2년 가까이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단다. 물론 왜 이분들이 이렇게까지 거리로 나와 미사를 드리고 매일 3보1배를 올려야 하는지 오랫동안 조국과 떨어져 살아 온 나로서는 무척 생소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제주도 내 모든 성당 미사와 모임에서 빠짐없이 바친다는 기도문에서 제주민들의 아픔과 애절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뿐이다. 강우일 주교가 인준하고 배포한 기도문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본다.
"(전략) 모진 바람과 파도와 역사의 아픔을 겪고도 좌절하지 않고, 인고의 삶을 이어오도록 저희 조상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지켜주신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제주가 지난 세월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참된 평화의 섬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제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저희가 물질적인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주소서!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여 개발의 포로가 되어 주님께서 은혜로이 내려주신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인간들이 의지하는 군사력이 결코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증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인간들이 만든 무기와 힘에 의지하기보다 주님의 자비와 권능에 의지하게 하여 주소서! (하략)"
(2014.05.12 뉴욕 虛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