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강원도 정선군으로 출발!
간밤에 친구들과 늦게까지 카드놀이를 즐긴 탓에 아침 눈까풀이 까칠까칠..
그러나 집사람과 둘이서 떠나는 여행.. 마음이 편해서 좋다.
서울을 빠져나가 이천을 지나는데만 세 시간이나 걸렸다.
날씨도 꾸물꾸물.. 영동고속도로가 밀린다고 하여,
국도로 원주를 지나 신림으로 해서 주천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영월군 주천면.. 이곳은 일명 다하누촌이라고 한다.
그날 잡은 한우 고기를 좋은 가격에 파는 정육점들이 즐비하고
구입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식당들도 줄지어 있다.
비가 오는데도 각지에서 차들이 몰려온다.
우리도 한우 모듬 접시를 하나 사서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평평한 돌솣에 구워 먹는데.. 고기도 맛있고 모기도 덤빈다..
서울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꼭 한번 정도는 들러볼 만하다. 특히 고기 좋아하시는 분들!
그 옛날 단종 임금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길에 넘었다는 군등치(君登峙)를 넘어 영월 동강을 지났다.
동강가에 자리 잡은 아담한 선암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가르마처럼 산뜻하다.
이곳의 바로 왼쪽으로, 한반도 지형을 닮은 강 속의 섬이 있다는데
가는 길이 비(雨)로 인해 진흙탕이 되었다고 하여 그냥 돌아섰다.
영월을 지나 정선군 남면의 무릉리 라는 곳에 있는 '펜션텔'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에 4Km 못 미친 곳에 있는 수백호 마을인데
작은 호텔들이 몇 곳 있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사이에
농작물을 가꾸는 밭들이 있어 무척 한가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산촌이다.
전망이 제일 좋다는 10층으로 아들이 미리 잡아준
우리 방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희한한 모습이 있어서 카메라에 포착했다.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그 안에 들어가 박제가 된지 좀 된 듯한데..
빛으로 인해 나방의 '영원한 잠' 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지되어 있다..
집사람은 별 걸 다 찍는다고 핀잔하고..
첫 날은 막히는 교통으로 인한 노독으로 그냥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방에 장치된 제법 큰 PDP TV 로 올림픽 게임을 보며 노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늦잠 좀 자고 나서 삼척으로 향했다.
곳곳에 이렇게 고랭지 배추를 가꾸는 경작지를 만들어 놓았다.
쌀은 간척지 쌀이 맛있고 배추는 고랭지 배추가 맛있다는데,
김장철이 가까울 때 한 번 와도 좋을 것 같다.
산의 경사면을 깎아 만든 이런 경작지가 많은데도
그 모습이 흉하지 않고 예쁘기 까지 하다. 질 빗은 머리처럼...
정상에서 내려가며 8부 능선 쯤에서 바라본 풍경..
작은 우리나라지만 울창한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산맥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럽다.
삼척에 도착했다. 산기슭에서 부터 시작되는 도시...
지방 소도시 특유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참 좋다.
성내동 한 귀퉁이 오십천 절벽위에 있는 죽서루(竹西樓)를 찾았다.
800 여 년 전에 세워진 이 누각은 여러 차례 난리에도 타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귀한 유적이다.
17세기에 겸재(謙齋) 정 선(鄭 敾)이 그린 죽서루의 그림이다. 벼랑 아래 오십천이 흐르고,
누각에 기생들에게 술상을 준비케한 선비 셋이서 벼랑을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죽서루의 경관을
감상하고 있다.
이번 여행엔, 최 완수 저(著)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기행> 이라는 책을 가지고 갔는데
그 책에 나온 위의 겸재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일부러 건너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림에서는 저렇듯 한가하던 곳이 지금은 시가지로 사방이 둘러 싸여 있고
도도해 보이는 오십천도 지금은 큰 개천 정도로 보이고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서 있는 곳도 개발 공사가 한창이라서 좀 어수선하다.
다만, 누각에 서서 내가 사진 찍은 이곳을 바라볼 때,
좌측 개울 건너 산에 폭포가 하얗게 흘러내리는 것이 당시의 아름답던 경개를 짐작케 해준다.
바위를 깎아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기둥의 높이를 달리한 옛 사람들의 운치가 느껴진다.
그리고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로 펼쳐진 대숲의 그윽한 맛!
정라진(항구)으로 가서 생선회로 점심 식사를 했다.
질 좋고 맛 좋은 생선을 값마저 싸게 판다. 식당은 친절하고!
동해안 다녀본 곳 중에 가장 값이 싼 것 같다.
집사람도 꼭 다시 와보고 싶단다.
피서철이 아니면, 길이 좋아져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사북으로 가는 412번 지방도로를 달리다가
좌측으로 꼬부라져 들어가는 곳에 <백전 물레방아>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정선군 동면 백전리(栢田里). 잣나무가 많아서 동네 이름이 백전리 이다.
지방도로에서 꼬부라져 시멘트 포장의 좁은 길을 약 1Km 들어간다.
골이 점점 깊어지며 계곡의 수세(水勢)도 점점 더 험해지고
비는 뿌리는데 사람도 없어 좀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나 돌려 나올 수 있을까? 그러나 꾹 참고 계속 들어 가니.. 아! 물레방아!
자료에 보니 1900년쯤에 세워진 이 물레방아는 현존하는 물레방아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방아간의 지붕은 이 지방에서 재배하는 대마의 속대궁으로 덮은 '저릅집' 이라고 하며,
이 물레방아는 아직도 주민들이 이를 이용하여 농산물 가공을 하고 있는 유일한 물레방아라고 한다.
오~래전 무주구천동 부근에서 물레방아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없는 것,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것,
기회가 되는대로 꼭 한 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오는 길에 사북 강원랜드에 들렀다.
라스베가스의 호텔의 한 귀퉁이를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다.
라스베가스 놀러 갔을 때의 기분이 되살아 나, 30분 정도 슬롯 머신을 눌러보았다.
규모는 작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쾌적하지가 않다.
마지막 날은 정선 장날이었다.
그야말로 장날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많았고
전문 예능인들이 펼치는 정선아리랑 공연은 볼 만했다.
정선 아리랑은 천천히 길게 늘어지는 슬픈 곡조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듯.. 격렬한 리듬에 이어지는 사설이 재미 있어서
구경하는 분들 중에 흥에 겨워서 나와 춤을 추는 이들도 여럿..
생 옥수수 한 망과 곤드레 나물 꾸러미를 좀 사고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 가도가도 산산.. 빽빽한 숲..
일요일 밤마다 EBS TV 에서 방영하는 우리나라 옛날 영화의 산을 보면 모두가 민둥산..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 듬성듬성 보이던 것이 우리의 옛 산이었는데
이렇듯이 가는 곳마다 깊은 숲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
산골 보건진료소.. 병원 마크가 든 캡을 쓴 간호사의 몸매가 늘씬하다.
누구의 작품일까..젊은 의사일까.. 간호사일까.. 아니면 단골 손님?^^
코와 입을 붙여 만든 솜씨로 보면 전문가는 아니 것 같은데
무릎 관절을 나타내느라 가운데가 약~간 굽은 나무로 다리를 쓰고
치마 자락 한 끝을 살짝 올려 몸의 생동감을 준 솜씨가 보통 감각이 아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분들은 모두 마음이 훈훈한 사람들일 것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렸다.
저녁을 먹으러 압구정동의 한식집에 들렀다.
김치찌개와 바싹불고기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니 벽 장식이 눈에 들어오는데...
3일 동안 강원도의 깊은 숲을 헤맨 눈에
벽 속의 나무는 인조품임이 금방 들어나지만...
한 가지(枝) 끝을 살짝 문틈으로 내밀어 놓은 주인의 재치가 산뜻하여 한장 더 찍었다.^^
<긴 이야기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 세세한 여행기 잘 감상해습니다. 정선 카지노도 다녀오셨군요. 저도 남편과 지인의 초대로 갔다가 돈을 넣어주는 바람에 잠깐 체험도 해 보구요. ^^ 카지노 메인탑(?)인지..심장부를 들어가 보았네요. 아무나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곳들을 들어가 보니 대단하더군요. 행복한 일상 되세요. ^^
두분이서 오붓하게 여행잘하셨네요...정선에는 곤드레밥이 참 맛났던 기억있습니다 두분 오래오래 행복하십시요...
사진을 곁들인 세세한 여행기를 읽으니 함께 다녀온 듯 합니다. 두분이서 알콩달콩 오래도록 행복한 여행 많이 다니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