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질 볼트 테일러의 뇌출혈 경험
우뇌와 명상
미국의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는 뇌출혈 경험을 통해 우뇌 의식의 핵심에는 마음의 깊은 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The New York Times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라는 뇌과학자의 뇌출혈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하는데, 그녀의 뇌출혈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그녀의 뇌출혈 경험이 명상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아서이다.
질은 2008년, 전 세계 지성인들의 축제인 TED 컨퍼런스에서 뇌출혈 경험으로 얻은 통찰을 주제로 강연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얻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정신분열증에 걸린 오빠를 보며 ‘왜 오빠는 다른 사람과 저렇게 다를까?’ 하고 생각하며 인간의 마음과 뇌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디애나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신경해부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해 왔다.
그러던 중 1996년, 질은 37세의 나이로 왼쪽 뇌에 뇌출혈이 일어난다.
그녀는 수술 후 초인적인 노력으로 8년 만에 뇌출혈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후,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좌뇌 기능이 상실되고 우뇌로만 세상을 느꼈던 경험을 My Stroke of Insight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긍정의 뇌>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질의 이야기 중에 명상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좌뇌는 분석하고 판단하며, 시간도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선 상에서 이해한다. 반면에 우뇌는 소리와 빛, 그리고 사물의 모습을 마치 꼴라주처럼 뒤엉킨 상태로 지금 여기에서만 느낀다. 그러니까 우뇌는 과거와 미래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의를 듣고 있는 가정주부가 강의를 들으면서도 동시에 ‘오늘 저녁 반찬은 뭘 하지? 강의가 끝나면 이따 마트에 들려서 반찬거리를 좀 사야겠다’ 라고 하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좌뇌가 활동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질 볼트처럼 우뇌만 작동하고 있다면 강사의 목소리만 그저 웅웅거리며 귓가를 떠다닐 것이다.
질 볼트가 좌뇌의 대부분의 세포가 파괴되고 우뇌의 기능만이 주로 작용할 때의 경험을 표현한 것을 몇 가지 인용하여 정리해 본다.
“나는 뇌졸중 경험을 통해 우뇌 의식의 핵심에는 마음의 깊은 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평화와 사랑, 기쁨, 공감을 표현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오른쪽 뇌는 현재에 있는 사물의 존재를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고 그냥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 걱정이나 근심은 아주 희미하다······. 오른쪽 뇌에는 현재 순간 외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만이 끝없이 계속 이어진다.”
“······ 우뇌가 작동하는 기간 동안 나의 느낌은 마치 니르바나(nirvana) 같았다.”
내가 질의 말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명상할 때는 좌뇌가 활동을 쉬며 우뇌가 활성화되는데, 이것은 질이 뇌출혈 경험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명상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止)의 명상, 즉 사마타(samatha) 명상으로부터는 쉼과 함께 마음의 평화, 사랑,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 걱정 근심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止)의 명상에서 관(觀)의 명상으로 옮겨가면 깨달음의 지혜를 얻게 된다. 이것이 명상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바르게 명상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정서가 안정되어 있고, 늘 긍정적이며, 비교적 걱정 근심이 없고, 있으나 없으나 늘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며, 동시에 인생과 사물에 대해 매우 지혜로운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명상을 통해 우뇌의 활성화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질 볼트 테일러가 왼쪽 뇌에 뇌출혈을 일으켜 우뇌만이 작동할 때에 얻은 경험과 명상가들이 명상을 통하여 우뇌의 활성화가 일상화 되었을 때의 경험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질 볼트의 경험은 명상의 효과를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글 | 윤종모 주교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