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5월 7일, 약 2,000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뉴욕을 출항하여 리버풀로 향하던 영국 국적의 3만 1,500t급 여객선인 루시타니아호가 침몰하자 미국은 전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워싱턴 D.C.의 독일 대사관에게 있어 해전 법규는 아주 명확했다. 대영제국 또는 그 동맹국의 국기를 달고 있는 선박이 전쟁 해역-영국제도 인근 해역 포함-에 진입할 경우 이유를 막론하고 공격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독일 잠수함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영국 해군 본부는 즉시 루시타니아에 전문을 보내 지그재그로 항해하거나 그밖에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항법으로 항해할 것을 명했다. 루시타니아 승무원들은 이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며, 발터 슈비거 대위는 U-20 잠수함에서 어뢰 발사를 명했다. 이 어뢰는 루시타니아호의 우현 한복판에서 폭발했으며, 엔진실 보일러에서 더 큰 폭발이 일어났다. 루시타니아호는 불과 20분만에 가라앉았으며, 배와 함께 목숨을 잃은 1,198명 중에는 미국인도 128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루시타니아호는 북대서양을 횡단하는 정기여객선 중에서 가장 빠른 선박이었다. 특히 이 배에 타고있던 희생자 중에는 2세 이하의 유아가 100여명이나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독일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
영국은 루시타니아호가 여객선이었다고 주장하며 독일을 맹비난하였으며,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독일이 비무장상선에 대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고 믿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 미국 대통령은 배의 격침에 분노한 미국인들의 열화와 같은 전쟁 요구를 묵살하고, 외교 각서를 통해 배상금 및 여객선 공격 중지를 요구하는 협상을 독일과 벌였다. 독일은 루시타니아호에 무기가 실려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배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루시타니아호가 침몰과 함께 그 안에 있던 모든 비밀 역시 바닷속으로 사라지리라 믿었던 사람들은 거대한 선체에 비해 단 한 발의 어뢰 명중으로 인해 완전 침몰까지 18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 700여 명이 넘는 생존자들 역시 독일 잠수정에 의해 어뢰 공격을 받은 후 2차 폭발이 일어났다는 증언을 했다. 루시타니아호 안에 선박을 20분도 채 안돼 침몰시킬만한 파괴적인 폭발물이 실려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이 벌어지고, 또 탐사장비의 미비로 인해 한동안 해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백만장자인 ‘Gregg Bemis’가 발달한 탐사장비를 이용, 90m 이하 깊이에 잠들어 있던 루시타니아호의 일부를 탐사하는데 성공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루시타니아호엔 탄약 4천2백 상자와 유산탄 1천250 상자가 실려있었고, 수뢰 공격을 받을 때 그것이 폭발하여 배의 침몰을 가속화시켰다.
물론 이 수치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일부 개인에 의한 은닉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전쟁군수물자를 수송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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