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게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일상의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낯섦의 길을 떠났다. 낯섦의 길은 가보지 않아 설렘도 있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기대되는 희망이 있기에 그 길을 간다. 또한 그 길을 떠나옴은 일상의 지친 마음에 안식과 나를 돌아보는 피정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해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불러낸다. 떠남에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으며 발견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부모님처럼 우리를 위해 늘 빌고 계신 데도(루이 에블리의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이다.
올해는 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괴롭히고 있다. 본당의 지인 세 부부가 낯섦의 길을 떠났다. 그곳은 말로만 듣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북유럽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 조각 공원을 찾았다. 그곳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탄생에서 죽음까지로 인생에 대한 희로애락의 과정을 형상화하여 나타낸 조형물이다. 모든 조형물은 어린아이에서 늙은이까지 발가벗은 알몸이었다. 이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다. 나는 그곳을 둘러보면서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볼 첫 작품은 두 남녀가 원을 그리며 맞잡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인간이 세상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남녀의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어 함께 조화롭게 살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얼마를 가니까 분수대 조형물이 나타났다.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이 쏟아지는 물벼락을 맞으면서 짓누르는 쟁반의 무게에 힘겹게 버티고 있는 장면이다. 이는 인생길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함을 암시하고 있는 듯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며 공동선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가르침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다음은 17m의 인간 탑의 작품에 이르렀다. 120여 명의 남녀가 엉겨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생동감과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각계각층의 사람이 서로를 붙잡고 끌어내리려는 형상으로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졌으며, 인간의 욕망이 저렇구나 싶었다. 그 탑을 보면서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이 떠올랐다. 바벨탑은 인간이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헛된 욕망의 꿈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언어를 달리하면서 곳곳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그래서 오늘날 지구촌은 언어를 달리하는 여러 종족과 민족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 공원을 둘러보면서 그곳은 마치 하느님께서 지으신 에덴동산을 연상케 했다. 자연과 인간의 생태계는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인생의 희로애락 무게를 짊어지며 욕망을 버리고 살라는 작가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는 곧 하느님 가르침의 메시지로 마음에 담았다.
하느님께서는 낯섦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충전하여 삶의 활력소가 되도록 부르신다. 익숙한 곳의 삶은 변화 없는 안주의 삶이지만 낯섦의 떠남은 새로움의 체험이다. 또 다른 낯섦의 곳으로 발길을 돌리며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며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