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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 미술여행Ⅴ』
-▣말레비치▣세잔▣페르메이르▣드가▣보티첼리▣릭턴스타인▣피에르 퓌제▣베르토 보초니▣산비탈레교회 모자이크▣W.터너▣몬드리안▣이소스 전투▣르누아르▣제리코▣올든버그
『박일호의 미술여행Ⅰ』 https://blog.naver.com/ohyh45/222422454248
①모네-인상:일출, ②대 피터 브레겔-눈속의사냥꾼, ③최초의 여인상, ④안중식-백악춘효, ⑤쿠르베-화가의 아틀리에,
⑥보치오니-도시가 일어나다, ⑦칸딘스키-즉흥, ⑧달리-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 ⑨티에폴로-다프네를 쫓는 아폴론,
⑩앤소니 카로-어떤 이른아침, ⑪노트르담대성당,⑫조르주 쇠라-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⑬카날레토-베니스 풍경,
⑭카스파 프리드리히-바닷가의 카푸친 수도사, ⑮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6푸생-샤비니 여인들의 약탈.
17.미레비치-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 18.고흐-옥수수밭과 삼나무 19.뒤상-샘
『박일호의 미술여행Ⅱ』 https://blog.naver.com/ohyh45/222423766389
20.잭슨 폴록-가을리듬, 21.로버트 라우션버그-모노그램, 22.라파엘로-아테네 학당, 23.리처드 해밀턴-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24.산디 셔먼-무제(메릴린), 25.얀 반 아이크-지오반비
아르놀피니 부부의 혼인 서약, 26.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27.폴 고갱-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28.윌리엄 호가스-난잡한 술자리, 29.라모스 왕 무덤 벽화, 30.콘스탄틴 브랑쿠시-뮤즈,
31.도널드 저드-무제, 32.로댕-지옥문, 33.바넷 뉴먼-영웅적 숭고를 향하여, 34.피사로-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
35.로베르 들로네-블레리오에 대한 경배, 36.조지프 코수스-하나 그리고 세 의자, 37.프란츠 마르크-작은 노란 말들,
38.조슈아 레이놀즈-비극의 뮤즈로 분장한 시돈즈 부인,
『박일호의 미술여행Ⅲ』 https://blog.naver.com/ohyh45/222424929912
39.존 밀레이-오필리어, 40.엘 그레코-오르가즈백작의 매장, 41.세잔-사과와 오렌지가있는 정물, 42.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이수스 전투, 43.외젠 들라크루아-사르다나팔로스의 죽음, 44.토머스 게인즈버러-시장으로 가는 마차, 45.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46.헨리 무어-누워 있는 여인상, 47.리처드 세라-9개의 고무벨트와 네온, 49.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성 마태의 소명, 50.모리스 드니-녹색 나무가있는풍경, 51.파블로 피카소-뮤즈, 52.바실리 칸딘스키-전투, 53.조르조네
-태풍, 54.모네-파랑과 보라의 조화를 이룬 수련들, 55.마네-풀밭 위의 점심식사, 56.조반니 볼로냐-사비니 여인의 강탈,
『박일호의 미술여행Ⅳ』 https://blog.naver.com/ohyh45/222573224164
57.폴 시냐크-생 트롱페즈 풍경, 58.콜로세움, 59.렘브란트-야경, 60.게오르그 바젤리츠-무제, 61.얀 반 호이엔-해변의 풍차,
62.리시포스-아폭시오메노스, 63.와토-시테라 섬으로 여행, 64.로버트 스미스슨-부서진 원, 65.피터 브뤼겔-농부의결혼,
66.페르낭 레제-카드게임, 67.막스 에른스트-밤 꾀꼬리에 놀란 두 어린이들, 68.존 컨스터블-데드햄의 수문과 제분소,
69.부랑쿠시-공간 속의 새, 70.프랑시스 피카비아-로비드 마소의 초상, 71.포드 매덕스 브라운-영국이여 안녕,
72.디에고 벨라스케스-세비야의 물장수,
『박일호의 미술여행Ⅴ』 https://blog.naver.com/ohyh45/222760749030
73.카지미르 말레비치-8개의 직사각형, 74.세잔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75.얀 페르메이르-식사준비,
76.드가-무대 위의 발레리나, 77.보티첼리-봄, 78.로이 릭턴스타인-음-어쩌면, 79.피에르 퓌제-크로토나의 밀로,
80.베르토 보초니-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81.산비탈레교회 모자이크화-유스티니아누스황제의 황금접시봉헌
82.윌리엄 터너-노예선, 83.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 84.모자이크화-이소스 전투, 85.르누아르-목욕하는 여인들,
86.테오도르 제리코-메두사의 뗏목, 87.클라스 올든버그-빨래집게,
『박일호의 미술여행Ⅵ』
88.빈센트 반 고흐-아를의 화가의 방, 89.자코모 발라의 『가죽끈에 매인 개』
73.카지미르 말레비치의 『8개의 직사각형』 - 1년이라는 빈 캔버스에 그린 그림
카지미르 말레비치 ‘8개의 직사각형’
8개의 붉은 직사각형이 화면 가운데 배치됐다. 크기가 다르고, 방향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사각형 1개를 파란색으로 칠하면 어떨까. 느낌과 의미가 달라질 거다. 하나를 빼면, 하나를 세우면,
역시 느낌이 달라지고 그 해석도 달라진다. 이 작품을 그린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말레비치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생략하다란 뜻 ‘abstract’를 어원으로 한 추상미술은 자연 속 대상을 생략·축약하는 과정을 통해 그림 자체의 형식으로 향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가 그 시작이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가 추상의 길을 열어 놓은 후, 대부분의 화가들은 ‘추상’이라는 새로운 미술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들은 그림에서 대상의 흔적을 지워 버리고, 정신만을 통한 화면 구성을 이루려 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그림이 추상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자연과 세계에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한 점을 극복하려 했다. 말레비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말레비치는 자연으로부터 어떤 대상도 가져오지 않고, 그림 자체의 공간 구성을 만들어 그것이 진정한 예술적 창조라고 했다. ‘8개의 직사각형’은 이렇게 탄생됐다. 8개의 붉은 직사각형이 서로 다른 크기로 인한 율동감을 주고,
미세한 방향 차이와 사각형들 사이의 거리감이 만든 긴장감도 스미게 했다.
이런 것도 미술작품일까? 미술을 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사실주의 그림뿐만 아니라 광고 포스터나 상품 포장지, 기하학적 디자인에서도 미적 즐거움을 경험한다.
미술의 새로운 시도가 미적 즐거움의 영역을 넓혀 놓은 덕택이다. 말레비치에 의해서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만으로 그림이 될 수 있고, 미적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새해가 밝았다. 앞으로 1년을 바라보며 계획을 세우는 때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어느 것을 앞세우고 어느 것을 뒤로할 것인가의 구성 말이다. 화가가 고민하는 것처럼 1년이라는 빈 캔버스에 우리만의 그림을 그려 보자.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3.카지미르 말레비치의 『8개의 직사각형』 - 1년이라는 빈 캔버스에 그린 그림/ 세계일보, 2022. 1. 7.
74.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 하얀 눈밭 위 소나무를 보면서
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함박눈이 내린 뒤 강한 한파가 몰아닥쳐 몸이 움츠러든다. 하얀 눈밭 위 당당하게 서 있는 초록색 소나무가 더욱 늠름해 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폴 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을 유심히 보고 있다.
평생 빛과 색의 변화에 매달렸던 클로드 모네는 ‘잡을 수 없는 신비한 자연’이란 한탄을 남기고 죽었다.
이와 달리 폴 세잔은 일찍이 인상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인상주의가 나타낸 눈으로만 파악한 감각 세계가 혼란스럽다 생각했고, 정신적 구성과 지적인 질서를 덧붙이려 했다. 대상 표면의 색은 변해도 입체적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관점에서 세잔은 “모든 자연 속 대상은 원통, 원추, 구로 환원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잔은 또 색채와 형태가 상호 보완적이며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색의 명암이나 색조 간의 조화와 대조를 통해서 사물의 양감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식이다.
색의 대비를 통해 원근 관계를 나타낸 색 원근법도 시도했다.
따뜻한 느낌의 황갈색 계통이 도드라지는 인상을 주고, 차가운 느낌의 청록색 계통이 움츠러드는 인상을 준다는 점을 이용한 방법이다.
이런 색 원근법이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에서 나타난다. 우리 시선이 왼쪽 아래 큰 소나무에서 출발해 멀리 산을 향해 뻗은 나뭇가지를 따라 그림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 안 풍경의 황갈색이 도드라지면서 앞으로 나오는 느낌을 주고, 청록색은 움츠러들며 뒤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이렇듯 세잔은 황갈색과 청록색을 번갈아 교차시켜 원근 관계를 나타냈다.
색의 띠나 조각들을 반복하고 교차시켜 전체적으로 굴곡의 느낌도 만들어냈다.
화면 가운데 산의 모습은 원뿔 형태를 바탕으로 나타내서 색의 조화와 형태의 명확성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 결과 세잔은 눈에만 의존하던 인상주의 그림의 무형태성을 극복하고, 견고한 형식적 구조를 되살려 놓았다.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우리를 지치게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하얀 눈밭 위 소나무처럼 늠름하고 의연하게 버텨야 할 텐데.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4.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 빅투아르 산』 - 하얀 눈밭 위 소나무를 보면서/ 세계일보, 2022. 1. 21.
75.얀 페르메이르의 『식사준비』 - 일상 속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며
얀 페르메이르의 ‘식사준비’
긴 연휴를 보내고 다시 맞은 주말이다.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이 올겨울을 뒤덮고 있어 쉬지만 쉬는 것 같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폭증하는 이 사태가 언제쯤 잠잠해지려나. 답답함이 앞서지만 다음 주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 그림 한 장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연휴 끝 심란함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은은하고 고른 명도의 부드러운 빛이 화면 가득히 흐른다. 얀 페르메이르가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의 안락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그림 안에 담아냈던 방법이다. 당시 다른 풍속화 작품이 세밀한 장면 묘사나 일상생활 속 이야기로 채워졌다면, 그의 작품은 간결하고 단순한 장면에다 이야기마저 없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한 명의 인물만 강조한 그림 또는 두 명이 등장해도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정도일 뿐 그 이상 어떤 내용도 없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빛의 묘사를 통한 분위기 전달이라는 그림의 방법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내용으로 향하는 시선을 그림의 방법으로 향하게 하기 위함이다.
‘식사준비’는 당시 네덜란드의 전형적 실내 풍경에 우유를 따르는 한 여인을 나타낸 그림이다.
장식 없는 벽면, 소탈한 집기들, 평범한 의상의 여인이 조화를 이루며 편안함을 준다.
팔을 걷고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식사준비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풍속화지만 인물과 그 행동만을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인물이 있는 일종의 정물화 같다.
하지만 묘사 방식에서는 질감과 색채, 형태의 윤곽을 살리면서 부드러운 느낌도 잃지 않았다. 페르메이르가 빛의 묘사를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이다. 윤곽선을 흐리게 하지 않고도 전체적으로 부드러움을 나타냈는데, 은은하고 고른 명도의 빛이 화면 위로 퍼지는 것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왼쪽 위 창문에서 비치는 빛이 은은하게 흘러들어와 화면 안의 모든 정경을 감싸면서 안락하고 여유로운 집안 분위기도 만들어냈다. 평범한 일상 속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이 모습에서 우리의 답답함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작점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5.얀 페르메이르의 『식사준비』 - 일상 속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며/ 세계일보, 2022. 2. 4.
76.에드가르 드가의 『무대 위의 발레리나』 - 봄의 따뜻함과 활력 앞에서
에드가르 드가의 ‘무대 위의 발레리나’
마음도 춥고, 몸도 춥다. 오미크론의 기세 때문에 마음이 춥고, 다시 몰아친 한파로 움츠러든 몸은 활력을 잃었다.
따뜻한 햇볕을 찾아 야외로 나가고 싶고, 도시적 감성과 활기 넘치는 거리도 보고 싶다.
도시인의 생활 감정과 색채 효과가 가득한 인상주의 그림 한 장이 위안이 될까.
인상주의는 19세기 말 파리를 중심으로 한 도시 중산층 삶의 내용을 소재로 택했다.
문명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생활환경이 빠르게 변하던 당시의 역동적인 생활 감정을 예술로 담아내려 했다.
세상을 도시인의 현대적인 눈으로 보고 느낀 인상들로 나타내려 한 것이다.
지속적인 것보다 일시적이며 순간적인 것들이나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변화라는 현상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효과가 넘치는 야외로 나가 시각적 인상을 포착하는 데 매달렸다.
자연이나 세상을 인습적인 눈으로 바라보거나 규범을 통해서 정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접 경험해서 나타내자고 했다. 자연에서 경험하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순간순간의 모습을 나타내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는 순간순간의 모습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자연의 인상 대신 발레리나의 춤동작이나 승마에서 순간적인 동작과 자세의 특징을 포착하려 했다.
역시 그 시대 풍류를 즐기는 중산층 도시민의 여가생활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고, 그중 하나가 발레 공연이었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는 드가가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의 경쾌하고 순간적인 동작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경의 인물을 중심에서 벗어나게 배치한 것은 움직이는 동작을 더욱 실감 있게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화면 가운데 인물을 배치하면 균형감은 있지만 정적인 느낌을 주게 될 것을 우려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를 택했다.
발레리나의 의상이나 무대 뒤 다른 발레리나와 배경은 생략되고 거친 인상주의적 붓 자국으로 나타내서 발레리나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앞을 향해 두 팔 벌린 모습이 따뜻한 봄과 활력 넘치는 내일을 맞이하는 준비자세 같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6.에드가르 드가의 『무대 위의 발레리나』 - 봄의 따뜻함과 활력 앞에서/ 세계일보, 2022. 2. 18
77.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 봄의 향연 한가운데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일교차가 크기는 하지만 한낮은 포근해서 곧 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엔 좋은 일이 있으려나 기대해 보며 봄 그림을 골랐다.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르네상스 미술은 15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150여 년 지속됐고, 서양미술사 최고봉을 이뤘다. 중세가 끝나 갈 무렵 고대 그리스 문화의 이성적 경향의 부활을 꿈꾸며 시작됐다.
15세기에 기초를 다졌고, 16세기에 다빈치·라파엘로·미켈란젤로 등으로 대표되는 전성기에 도달했다. 이런 전환의 바탕을 이룬 화가가 보티첼리였다. 전체적 구도와 공간적 통일성이란 측면에서 15세기 미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자. 주제가 종교적 내용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란 점에서 고대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 정신이 담겼다. 부드러운 곡선 위주로 표현됐지만 윤곽선이 두드러져 간결하고 분명한 느낌을 준다. 대지의 지평선, 인물과 나무의 수직선을 중심으로 한 구도가 그림 전체의 틀을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어울린다.
미의 여신 비너스와 그의 아들 큐피드가 가운데 있고, 왼쪽 가장자리 샌들과 날개 달린 모자 차림을 한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봄소식을 전한다. 그 옆으로 항상 비너스와 동행했던 순결·사랑·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이 자리했다.
오른쪽은 땅의 요정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하는 장면이다. 클로리스에게 반한 제피로스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만 쉽지 않은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땅과 나무 곳곳에 봄의 꽃과 식물들이 가득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완연한 봄 풍경이다.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묘사 수준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도 보인다. 머리카락과 옷과 외투의 곡선이 여전히 중세 고딕 미술의 장식적 전통에 묶여 있다.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인물들의 목 부분이 어색하리만치 길게 묘사됐고 어깨도 가파르게 처져 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올여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풀려 가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7.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 봄의 향연 한가운데/ 세계일보, 2022. 3. 4
78.로이 릭턴스타인의 『음-어쩌면(M-Maybe)』 - 상황이 변하면 달라져야 한다
로이 릭턴스타인의 ‘음-어쩌면(M-Maybe)’.
상황이 변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행동도 달라진다. 미술도 그랬다. 1960년대 대중문화가 넘쳐나던 때 예술가들은 새로운 길을 나섰다. 대중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들의 홍수, 대량생산되는 새로운 상품들, 번잡한 대도시 고층 건물과 인공구조물에 둘러싸인 예술가들은 자연에서 감수성을 얻고 표현했던 것과 다른 방식을 꿈꿨다.
어떤 방식이었을까? 전통적 회화나 조각의 이미지와 대중문화 속 이미지가 갖고 있는 차이점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회화나 조각의 이미지는 어떤 매체를 사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갖는다. 똑같은 대상일지라도 어떤 예술가의 작품인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의미와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미술작품의 이미지는 미묘하고 암시적이며 때론 불명료하다.
이에 반해 광고나 상품 이미지는 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 명확하고 단일한 의미를 고집한다. 개인의 주관적 요소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의미를 제시한다. 대중문화의 이런 특성을 잘 읽어내고, 자신의 미술세계로 끌어들인 팝아트 화가가 미국의 로이 릭턴스타인이었다.
그는 복잡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 보는 이를 혼란에 빠트리는 길을 버리고, 사람들이 익숙하게 접하는 만화 이미지를 소재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대중문화 시대 사람들의 감성이 변했고 그에 따라 예술도 달라져야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줄거리나 사실성에 중점을 두는 만화를 형식적 소재로만 사용했다. 만화의 한 컷을 골라 스케치하고, 영사기를 통해 화면에 확대 투사한 후, 그 형상에 색을 입혔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 등 색면을 강조하고, 검은 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신문 그림 인쇄에 사용되던 망점도 만화의 말풍선도 그림의 요소로 변형했다. 이렇게 만화의 모든 것이 릭턴스타인화되어 그만의 형식세계 그림이 탄생했다. 그 결과는? 음-어쩌면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색면이 주는 공허함을 넘어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까지 주지 않을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78.로이 릭턴스타인의 『음-어쩌면(M-Maybe)』 - 상황이 변하면 달라져야 한다 / 세계일보, 2022.3. 18.
79.피에르 퓌제의 『크로토나의 밀로』 - 위기를 잘 극복했겠지
피에르 퓌제의 ‘크로토나의 밀로’
고대 그리스 시대 이야기다. 밀로란 이름의 병사가 어쩌다 나무줄기 틈새에 손이 끼자 손을 비틀며 고통스러워 한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사자가 달려들어 그의 엉덩이를 물어뜯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17세기 프랑스 조각가 피에르 퓌제의 작품인데 당시 고전주의 비평가들에 의해 모진 비판을 받았다.
고전주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정신을 본받고, 고대의 부활을 외친 르네상스 미술의 양식적 특징도 되살리려 했다. 미술가들이 두 시대 미술의 특징인 균형과 조화와 절제의 방법을 고전처럼 신봉했기 때문이다. 이성적 규칙에 의한 작품을 이루는데 루이 14세가 설립한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도 앞장 섰다.
아카데미가 표현 방법의 기준을 설정하고 규범적 사례를 만들어서 창작 지침으로 제시했다.
이른바 ‘아카데미즘’이라는 관학파 미술의 전형이 이렇게 탄생하고 다듬어졌다.
지금 우리는 아카데미즘 하면 자유로운 창작보다 규칙에 입각한 판에 박힌 미술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카데미가 중심이 돼 미술 전반을 통제했다
‘크로토나의 밀로’가 어떤 점에서 고전주의자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퓌제가 병사와 사자의 역동적인 자세를 강조하고, 중심축 밖으로 퍼져나가는 형상으로 만들어서 불균형의 구조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난폭한 사자와 병사 얼굴의 표정을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순간적인 동작을 실감나게 표현한 점도 아카데미의 눈 밖에 났다.
반면 퓌제가 대리석 부분 부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사자의 포악함과 병사의 고통, 뒤틀린 팔 등을 긴장감 넘치게 표현한 점, 이성적 절제보다 감정이 살아 넘치는 작품으로 만든 점이 생기 넘치고 활력 있는 새로운 조각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 병사는 위기를 잘 극복했을까?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어 그저 상상의 모습을 그려볼 뿐이다.
잘 벗어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9.피에르 퓌제의 『크로토나의 밀로』 - 위기를 잘 극복했겠지 / 세계일보, 2022. 4. 1.
80.움베르토 보초니의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 공간 예술에 시간의 흐름을 담다
움베르토 보초니,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모자 쓴 한 남자가 어딘가로 바삐 가고 있다. 바람을 가르며 길을 재촉하는 모습에서 휙휙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조각작품으론 어떻게 나타낼까?
미래주의 작가 움베르토 보초니는 바람에 옷깃이 휘날리는 형태들을 연속적으로 이어 붙여 속도감까지 표현했다. 제목도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라 붙였다. 청동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도록 처리해서 움직임에 활기도 더했다.
20세기에는 급변하는 복잡한 사회 상황만큼이나 다양한 미술양식들이 부침을 거듭했다. 그중에는 조형적인 방법보다 예술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주목하고, 예술가가 보여야 할 태도나 관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경향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한 예가 미래주의였다.
미래주의는 1909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미술·문학·연극·음악 등에 걸쳐 나타났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지속됐다. 특히 미술에서는 기계문명 시대를 맞아 변화한 현대인의 의식과 감성에 부응하는 미술을 이루려 했다.
기계나 자동차 등 과학기술 발달로 사람들의 감각세계도 변한 만큼 그 안에 담긴 속도감, 활력, 움직임 자체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초니는 “자동차 밸브가 열리고 닫히는 리듬은 동물 눈꺼풀의 깜빡임만큼 아름답지만, 그것보다 더 무한히 새롭다”고 했다. 자연에서 얻는 감흥보다 기계 시대 움직임이 더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그가 창안한 미래주의 조형 방법을 적용했다.
걸어가는 사람과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을 조각적으로 해석했다. 바람결과 펄럭이는 옷자락이 공간 속에 그리는 흔적을 해체된 형태로 분할하고, 연속적으로 이어 붙였다. 그래서일까.
청동으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고, 경쾌한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새로운 점은 또 있다. 조각은 정지된 순간을 담는 예술이지만, 그 안에 과거와 현재의 형태를 함축적으로 압축해 담으려 했다. 이 점이 공간예술로 분류되는 조각작품 안에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려 한 시도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0.움베르토 보초니의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 공간 예술에 시간의 흐름을 담다 / 세계일보, 2022. 4. 15
81.모자이크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황금접시 봉헌』
- 우크라의 비극이 끝나길 바라며
모자이크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황금접시 봉헌’.[비잔틴제국의 산비탈레 교회 모자이크화]
그리스 문명을 이은 로마는 지중해 주변 대부분의 영토를 정복하고, 인도 국경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이뤘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광대한 영토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비잔티움(지금 터키 이스탄불)에 새 수도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했다.
그 후 도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으로 분열되고, 서로마제국은 476년 북쪽 게르만족에 의해서 멸망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서양의 고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됐고, 두 개의 문화권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비잔틴제국이란 이름으로 중세 내내 지속된 동로마제국이 중심인 그리스 정교 바탕의 그리스·비잔틴 문화권이다. 다른 하나는 서로마제국 영토 위에 새로 생긴 라틴·게르만 문화권인데, 여기서 동유럽 문화와 서유럽 문화가 시작됐다.
이 작품은 비잔틴제국의 산비탈레 교회 안에 있는 모자이크화다.
비잔틴제국이 황제의 권위를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반영됐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막시미아누스 대주교에게 황금접시를 봉헌하는 장면인데, 가운데 황제를 배치해서 그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음을 나타냈다. 황제 바로 옆에 대주교를 배치하고, 양옆으로 지위와 신분의 중요도에 따라 신하들과 사제들을 배열했다.
가장 지위가 낮은 병사들은 왼쪽 구석에 모아 놓고, 그 모습을 방패로 가리기까지 했다.
방패에는 X와 P가 교차된 십자가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X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책형을, P는 목동의 지팡이 모양으로 교회의 목자적 사명을 의미했다.
신비롭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황금빛 배경도 사용했다.
황금이 가장 변하지 않는 금속이란 점에서 불멸의 이미지를 나타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비잔틴제국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멸망했고, 그리스·비잔틴 문화 중심지는 러시아로 옮겨 갔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시대착오적 지배사상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광기가 만들어 낸 결과다. 이 비극이 멈추길 기대하면서 모자이크화를 다시 한번 본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1.모자이크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황금접시 봉헌』 - 우크라의 비극이 끝나길 바라며 / 세계일보, 2022. 4. 29
82.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 대자연 앞에서 배우는 인간의 한계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으로 근대 시민사회가 탄생했고, 유럽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 정신이 퍼져 나갔다. 예술가들은 급변하는 현실에서 소재를 취하고, 감정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창작에 의한 낭만주의를 열었다.
19세기 중엽을 지나 각 나라가 혼란한 정치적 현실을 극복하면서 예술도 격동하는 현실 세계 대신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회화의 또 다른 흐름인 낭만적 자연주의로 불리는 경향이다.
고전주의 풍경화가 자연에 입혀 온 이성적이며 인위적인 틀을 벗기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느낌을 담자는 것이다.
낭만적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영국의 윌리엄 터너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로 바다 풍경을 택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 같은 대자연의 장엄함과 숭고함을 나타냈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이 느끼는 한계나 자연에 대한 외경심도 암시하려 했다.
공포와 압박감을 주는 위협적인 자연과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켜 자연에 대한 공포감뿐만 아니라 경이로움도 일으킨다는 점이 그의 그림의 특징이다.
‘노예선’은 노예를 싣고 가다 죽은 사람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 노예 상인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전경 오른쪽 아래 버려진 시체를 상어들이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한다.
거친 물결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도는 갈매기들의 모습은 이 장면을 더 끔찍하게 만들고 있다.
터너는 이 광경으로 노예 상인들의 탐욕과 잔인함을 상징하려 했다.
험한 파도에 휩쓸리며 출렁이는 위태로운 배의 모습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실적인 인간의 탐욕이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갖게 될까 생각하게 한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휘감듯 몰아치는 소용돌이가 금방이라도 배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터너는 물체들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뜨리고, 빛과 색의 세계로 웅장하면서 신비롭게 펼쳐냈다.
그래서 바다 풍경이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2.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 대자연 앞에서 배우는 인간의 한계 / 세계일보, 2022. 5. 13
83.피트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 경쾌하고 빠른 음악을 그림으로
피트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20세기 현대미술은 시각적 인상에 치우친 인상주의 영향으로 대상의 묘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자유로운 형식 구성을 목표로 한 추상미술에 이르렀다. 미술이 예술가의 자유로운 형식 구성이라 할 때, 예술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마음의 능력인 이성과 감성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전자의 흐름을 대표하는 추상화가로 피트 몬드리안을 들 수 있다.
네덜란드와 파리를 오가며 활동했던 몬드리안은 기하학적인 선과 형태를 중심으로 한 추상미술을 시도했다. 선과 색과 형태를 절제된 관계와 형식으로 표현해서 비례나 균형, 조화 같은 순수한 수학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했다.
그것을 통해 자연과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질서와 비례라든지 변화 속의 리듬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몬드리안의 추상미술은 이성적이며, 이성이 차가운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차가운 추상’으로도 불린다.
몬드리안은 자연의 법칙성을 표현하기 위해 십자 무늬 구성 방식도 창안했다. 가로와 세로 길이나 색의 농담을 조절하면서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 물질과 공허, 차 있음과 비어 있음의 관계 등 자연의 법칙성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이런 화면 구성 방식이 사용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연의 리듬이나 비례를 나타내려 한 십자 무늬 구성 방식이 도시의 이미지에 적용됐다. 몬드리안이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뉴욕의 한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본 뉴욕 시가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거리가 십자 무늬들이 모인 바둑판 모양처럼 구획되고,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노란색 택시들과 휘황찬란한 거리 불빛으로 활기찬 뉴욕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몬드리안은 이 활기찬 도시 분위기가 미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라는 곡을 작품 제목으로 붙였다. 잘게 쪼갠 색면들로 경쾌하고 빠른 느낌을 만들고, 형형색색의 사각형들을 교차시킨 리듬감을 덧붙여 눈에 보이는 음악을 탄생시켰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3.피트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 경쾌하고 빠른 음악을 그림으로 / 세계일보, 2022. 5. 27
84.모자이크화 『이소스 전투』 -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광
모자이크화 ‘이소스 전투’
기원전 4세기쯤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리스 반도 패권을 다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했다. 그 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혼란에 빠졌고, 이때를 틈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쳐들어와 그리스를 정복했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20세 나이에 왕위에 올라 동방으로 영토를 넓혔고, 멀리 인도 국경에 이르는 제국을 이뤘다. 알렉산드로스가 원정길에 전염병으로 죽자 제국도 쇠퇴했으며,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로마가 부상했다.
이 그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원정을 나서 이소스(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를 격퇴하는 장면이다. 전쟁에 패하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다리우스 3세의 당황한 얼굴 표정이 측은해 보인다.
전차병은 말들에 채찍질하며 후퇴를 재촉하고, 병사들이 창을 세워 도망치는 왕을 보호하려 한다. 다리우스 3세 아래 쓰러진 병사, 놀라서 날뛰는 말과 뒤꽁무니 빼는 말이 뒤얽힌 어수선함이 패배자의 모습 그 자체다.
혼란스런 전쟁터 상황이 다양한 자세와 동작의 사람들과 말들의 복합적 구성으로 잘 처리됐다.
색조는 빨강, 노랑, 검정, 흰색 네 가지만을 사용해 단순함과 통일감을 만들어냈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주는 산만함을 없애고, 전투 승리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본래 폼페이 유적에 있던 것을 복원해 옮겨 놓은 것이다.
폼페이는 기원후 1세기쯤 나폴리만 근처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해 묻힌 로마의 작은 도시였다.
18세기 우물을 파던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했고, 로마 시대 생활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들이 발굴됐다.
당시 폼페이의 부유한 사람들이 집 안을 벽화나 모자이크화로 장식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 작품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눌린 해외여행 욕구가 분출하며 인천공항이 활기를 찾고 있다.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나폴리를 찾는다면, 폼페이 유적과 고고학박물관에 들러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광도 생각해보면 어떨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4.모자이크화 『이소스 전투』 -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광 / 세계일보, 2022. 6. 10
85.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 - 요즘 날씨를 잠시 식혀주는 그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
화사한 하늘과 푸른 강물, 산뜻한 색감의 강기슭 숲 풍경 여기저기 목욕하는 여인들이 보인다.
한여름의 시원한 물놀이가 떠오르는데 그린 방식은 다소 색다르다.
전경의 두 여인은 육감적인 모습이지만, 윤곽선과 형태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멀리 보이는 두 여인도 형태감보다 분위기만을 짐작할 수 있게 간략하고 거친 색채 흔적으로 표현됐다.
선보다 색채 효과로 인물과 풍경의 관계를 나타낸 인상주의자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이다.
인상주의는 자연과 현실 속 대상의 시각적 진실에 가까이 가려 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대상 표면에 나타나는 빛의 변화를 통한 색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다.
현실이란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생성이요, 결정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임을 나타내려 했다. 자연 속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해간다는 생각을 갖고, 빠르고 거친 기교로 빛의 효과들을 그림에 담으려 했다.
인상주의의 이런 이론은 당시 발달한 과학의 영향에 의해서 탄생했다. 프리즘이 발명되고 광학이론이 발달하면서 자연 대상이 고유색을 갖는다는 전통적인 생각이 무너졌고, 대상의 색은 빛을 이루는 7가지 색 중에서 반사되는 색에 의한 것이며, 시간에 따라 빛의 양이나 세기가 달라지면 대상 표면의 색도 변한다는 주장을 그림에 반영하는 것이다.
르누아르는 이런 색채 구사 방식에다 인물 묘사도 강조해서 풍경만을 주로 다룬 다른 인상주의자들과 차이점을 보였다. 르누아르가 1883∼1884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의 그림을 보고, 그의 인물 묘사 방식과 데생에 심취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귀국 후 육감적인 여체를 부드러운 윤곽선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1887년 이후는 다시 인상주의적 색채 구사를 살리고, 부드럽고 육감적인 여체 묘사를 결합한 목욕하는 여인들 작품을 연속해서 그렸다.
이 그림은 그때 그린 것 중 하나이다. 여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요즘 날씨를 잠시 식혀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5.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 - 요즘 날씨를 잠시 식혀주는 그림 / 세계일보, 2022. 6. 24.
86.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 현장에서 접하는 그림의 감동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최초의 낭만주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균형과 절제를 강조했던 고전주의자들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억제하려 한 역동적이며 극적인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1816년 관리들과 사람들을 싣고 식민지인 아프리카 세네갈로 가던 프랑스의 메두사호가 지중해에서 난파된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350명이 죽고 15명만이 살아남아 뗏목을 만들어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을 제리코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나타냈다.
전경에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의 축 처진 모습과 체념한 듯 비탄에 잠긴 사람을 그렸고, 그 위에 파도 사이로 구조선을 발견하고 흥분에 차 기뻐하는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꼭대기에는 찢어진 옷을 벗어 구조선을 향해 흔들고 있는 흑인을 그려 넣는 등, 비극적 상황에서 고통과 싸우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림 형식에서는 색, 명암 대비, 감정의 흐름을 강조한 낭만주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고전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선이나 형태보다 어둠침침한 갈색 톤을 화면 전체에 흐르게 해 불안한 분위기를 표현했고, 강한 명암 대비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극적인 순간도 잘 나타냈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사선 구도를 사용해서 당시 긴박했던 순간의 역동성을 느끼게 했다. 그 꼭대기에 흑인을 그려 넣은 것은 ‘타락한 서구 문명’과 ‘고상한 야만’을 대비시키며 자연적인 것을 강조한 루소의 낭만주의 이론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 크기는 세로가 5m에 가깝고, 가로는 7m가 조금 넘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올여름 파리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현장에서 이 그림을 직접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성인 키의 2배를 훌쩍 넘는 높이와 5∼6명을 감싸고도 남는 폭의 거대한 그림 앞에 서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고,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공포의 감정이 우리 안으로 밀려들어옴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의 작은 사진으로만 접했던 그림에 대한 감동이 현장에서 접할 때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경험할 수 있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6.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 현장에서 접하는 그림의 감동 / 세계일보, 2022. 7. 8
87.클라스 올든버그의 『빨래집게』(1976)
- 차가운 금속 구조물서 느끼는 따스한 인간의 온기
클라스 올든버그, ‘빨래집게’(1976)
청계천에 다슬기 모양의 작품 ‘스프링’을 제작한 클라스 올든버그가 9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고, 가족 모두 미국으로 이주해서 뉴욕과 시카고에서 주로 살았다.
그가 미술활동을 시작할 때는 뉴욕에서 팝아트가 유행했다.
팝아트 예술가들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던 1960년대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이미지를 새로 창조하기보다 대중매체 속에서 익숙하게 접한 사물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이미지들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화, 포스터, 상품광고 이미지 등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대중에게 익숙한 것들을 사용해서 대중과 예술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 했다.
올든버그는 미술과 사회의 소통으로서의 미술작품에 뜻을 뒀다.
흙손, 빨래집게, 성냥개비, 아이스크림콘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재료로, 때로는 거대한 크기로 확대해서 놀랍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사물의 특성인 기능보다 그 자체를 주목하게 하고 미술작품으로 보도록 하자는 의도이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빨래집게’이다. 13m가 넘는 거대한 빨래집게 형상을 보면서 우리는 빨래를 널며 사용할 때는 주목하지 않았던 빨래집게 모양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하늘로 뻗어 올라간 금속 구조물 두 개가 만나고 그 둘을 단단히 묶는 철삿줄이 합쳐 이룬 추상조각으로 볼 수 있다. 한참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이 포옹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두 개의 철 구조물이 얼굴과 가슴을 맞댄 모습이 되고, 철삿줄은 꼭 끌어안고 있는 두 팔이 된다.
그럴 때 차갑게 솟아오른 금속 구조물에서 따스한 인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그렇다.
예술은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고 애써 보지 않았던 것들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하고,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갖게 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87.클라스 올든버그의 『빨래집게』(1976) - 차가운 금속 구조물서 느끼는 따스한 인간의 온기 / 세계일보, 2022. 7. 22
[출처] 『박일호의 미술여행Ⅴ』-▣말레비치▣세잔▣페르메이르▣드가▣보티첼리▣릭턴스타인▣피에르 퓌제▣베르토 보초니▣산비탈레교회 모자이크▣W.터너▣몬드리안▣이소스 전투▣르누아르▣제리코▣올든버그|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