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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명
“크르릉! 끼리릭!”
새벽어둠 속에서 2시간을 달려 온 낚시선의 클러치 음이 들리자 후미의 주방에 웅크리고 있던 도치씨는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폈다.
뼈마디마디가 응고된 듯 삐걱거렸다.
“애애앵!”
낚시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낚시꾼들도 일제히 선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포인트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한두 번 줄을 내려 보겠습니다.”
선장의 안내방송과 함께 좌우현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제자리를 찾아 간 낚시꾼들 중 손 빠른 사람은 선장의 입수신호를 기다렸고, 조금 굼뜬 사람은 손놀림보다 마음만 급해져 있었다.
“삐이익!”
입수신호가 울렸다.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여명 속에서 전동 모터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수심30m에 맞추세요. 어초 높이는 5m입니다.”
그러나 줄을 내린 10여명의 낚시꾼 중 입질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한 번 더 줄을 내린 후, 낚시 선은 포인트를 향해 다시 전속으로 달렸다.
그 사이 여명은 완전히 벗겨지고 수평선은 붉게 물들었다.
채비가 완벽했지만 줄을 내리지 않았던 도치씨는 붉게 퍼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말레이시아 셈프로나에서 우연히 만났던 바자우어부 아시발을 떠올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아시발과의 조행은 평생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조행이었다.
항상 선하게 웃던 아시발을 위해 V자를 그려보였다.
“아시발님.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지금 느끼고 있어요. 오늘도 당신의 텔레파시를 받고 싶습니다.”
중얼거리는 도치씨에게 모닝커피를 돌리던 기관장이 물었다.
“기도하세요? 오랜만에 나오셨군요.”
커피 잔을 받아 들며 도치씨가 대답했다.
“기도가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에게 안부 전한 겁니다.”
“호오! 40년 바다에서 사는 나는 우리마누라 안부한번 못 들었는데. 부럽소.”
“그럴 리가 있겠어요?”
기관장의 커피 잔을 받느라 고개를 내민 선장도 도치씨를 보고 아는 체 했다.
“오늘은 좋은 자리 앉았네요. 17번 자리보다 4번 자리가 이 배에서는 최고 명당인데, 오늘 대박한번 쳐보세요.”
대답대신 도치씨는 아시발처럼 빙그레 웃었다.
도치씨 발 앞의 수조밸브를 점검하고 다음 자리로 기관장이 옮겨가는 사이 순식간에 훤히 날이 밝았다.
“삐이익!”
입수신호가 내려졌다.
좌우현의 낚시꾼들은 일제히 전동 릴의 원줄을 풀었다.
허지만 좌우 현 어느 쪽에서도 입질반응을 외치는 사람은 없었다.
20명의 낚시꾼들 중 군평선이 한 마리를 올린 것이 유일한 수확이었다.
“물 때 좋고 날씨 좋은데 입질을 하지 않네요. 한 번 더 자리를 옮깁니다.”
안내방송 후, 낚시 선은 15분을 더 달렸다.
선장은 노련하게 섬 절벽에 낚시선을 바짝 붙였다.
“삐이익!”
일사불란하게 전동 릴을 가동했지만 도치씨는 묵묵히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원줄을 내린 지 1분도 안 돼 5번 낚시꾼이 소리쳤다.
“왔따!”
원줄 감아올리는 모터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5번 낚시꾼의 익살스런 사투리가 터졌다.
“흐미! 요거이 뭐이당가?”
하단바늘에서 퍼덕이는 성대를 떼어 수조에 넣으며 5번 낚시꾼이 도치씨를 힐끔 쳐다봤다.
“멀미하요?”
도치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능한 5번 낚시꾼과 말을 섞지 않으려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하필 5번 낚시꾼과 나란히 자리한 것이 몹시 불쾌하고 거북했다.
도치씨의 이런 기분을 알 턱이 없는 5번 낚시꾼은 라이프재킷에서 멀미약을 꺼내 도치씨에게 내밀었다.
“멀미약인디 먹을라요?”
5번 낚시꾼이 눈을 감고 있는 도치씨의 어깨를 툭 치며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멀미약이랑께요.”
눈을 감은 체 도치씨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멀미 아니요!”
머쓱한 표정으로 도치씨를 흘겨보던 5번 낚시꾼이 중얼거렸다.
“제에미! 낚시꾼이 아니고 무당인겨벼.”
무당이란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도치씨는 참았다.
바자우어부 아시발과 텔레파시로 소통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득 아시발의 곱슬머리가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다.
곱슬머리 속에서 아시발이 빙그레 웃었다.
“우리 바자우어부들은 바다로 나가기 전에 먼저 영혼을 내보내고, 바다로 나간 후에 영혼을 불러들인다네. 바다의 영혼들과 충돌하면 그날은 조업을 포기하지.”
도치씨가 아시발에게 물었다.
“영혼을 어떻게 내 몸속에서 내 보낸단 말입니까?”
아시발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물고기 떼를 상상으로 집중해. 그러면 어느 순간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그 과정이 영혼을 바다로 내보낸 증거지.”
아시발의 선한 얼굴이 조각나서 사라졌다.
도치씨는 아시발과 소통하기 위해 더 집중했다.
허지만 상상 속에서 사라진 아시발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남겼던 말이 귓속에서 크게 울렸다.
“내가 물고기를 언제, 얼마나 잡을 것이냐가 아니고 물고기가 언제, 얼마나 잡혀 줄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자네는 이제 어부가 된 걸세. 사람들은 그것을 예감이라고 그러지만 그건 예감이 아니야. 통감인게지. 초능력 말이야.”
도치씨는 아시발로부터 전수받은 초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수면아래의 해저를 상상으로 더 깊이 헤치기 시작했다.
5번 낚시꾼은 계속 잡어를 잡아내면서도 기분은 우쭐했다. 입질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옆자리 낚시꾼들 때문이었다.
팔뚝만만 한 우럭 두 마리와 동태만한 놀래미를 올린 5번 낚시꾼이 옆자리를 돌아보며 도치씨를 가리켰다.
“내가 말이여 오늘 조황이 좋은 거이 조 무당때문인겨벼.”
옆자리 6번 낚시꾼도 5번 낚시꾼만큼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 분이 무당이래요?”
손가락을 입술에 세로대며 5번 낚시꾼이 말했다.
“무당인께 새벽부터 조러고 있재. 우리가 있응께 굿은 할 수 없고, 조롷게 눈감고 기도만 하는거이여.”
옆자리 낚시꾼이 도치씨를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당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아마 멀미하나봅니다.”
“흐미! 무신소리한다요? 내가 멀미약 줬는디, 멀미는 아니라데.”
“나도 물었다!”
옆자리낚시꾼이 단성을 내뱉었다.
전동 릴의 레버를 재끼고 대를 들었다.
“찬찬히, 찬찬히!”
5번 낚시꾼이 소리쳤지만 옆자리낚시꾼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투둑 거리는 옆자리 낚시꾼의 초리 대를 쳐다보며 5번 낚시꾼이 비교하는 투로 말했다.
“흐미, 우럭은 아닐시. 놀래미가 분명혀. 그래도 찬찬히 감으소. 올리다 떨구몬 죽은 아들 불알만지기여.”
5번 낚시꾼의 말이 귀에 거슬렸는지 옆자리 낚시꾼은 자신의 전동 릴 액정만 지켜봤다.
금방 올린 4짜우럭을 보고 얼른 고개를 돌려버린 5번 낚시꾼에게 옆자리낚시꾼이 말했다.
“놀래민줄 알았는데 개우럭이네요?”
딴청을 피우는 5번 낚시꾼에게 옆자리낚시꾼이 짓궂게 말했다.
“요건 방생 사이즈 아니죠?”
약간 아래턱을 내밀며 5번 낚시꾼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으게 묻는 거이요?”
“네!”
“흐미, 조 무당님한테 물어보시요잉. 방생은 무당이 전문 아닙뎌?”
듣다 못한 도치씨가 눈을 부릅떴다.
“그 오늘 왜 그러요? 당신하고 나하고 새벽부터 정말 악연이네?”
5번 낚시꾼이 자라목을 하고 말했다.
“뭐이 악연이라요? 한배 탄 동서지간인디.”
동서란 말에 울컥 부아가 치밀었지만 침과 함께 꿀꺽 삼킨 도치씨가 어르듯 말했다.
“치매 걸렸나? 오늘 새벽일도 기억 못해요?”
얼른 도치씨의 눈길을 피한 5번 낚시꾼이 낚싯대에 액션을 주다말고 탄식했다.
“흐미! 또 걸렸어야?”
바닥을 걸고 쩔쩔매는 5번 낚시꾼을 쳐다보던 도치씨는 터지는 웃음을 입술로 눌러 참았다.
건드리지 않으면 매너 좋고 싹싹한 도치씨가 오늘 처음만난 5번 낚시꾼을 목에 걸린 생선가시같이 대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도전해도 삼킬 수 없었던 목포홍어보다 더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새로 도입한 자리추점으로 후미는 시끌벅적했지만 도치씨는 낚시 선에 오르자마자 선실로 들어갔다.
비좁은 선실의 안쪽을 재빠르게 차지한 도치씨는 라이프재킷을 배게 삼아 눈을 감았다. 선실 벽 쪽을 향해 모로 돌아눕자마자 이내 잠에 빠졌다.
50을 한해 앞둔 탓인지 봄부터 선상 낚시할 때마다 체력이 달린다고 느낀 도치씨는, 힘을 비축하는 길은 에너지보충보다 충분한 수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통통거리는 엔진소리와 가끔 큰 파도를 타고 넘는 롤링이 도치씨를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좀처럼 꾸지 않던 꿈까지 꾸었다.
20년 지기 목포낚시친구들이 여객터미널 앞의 식당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도치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빙 둘러 본 도치씨가 테이블 위의 흰 명주보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왜 영탁이는 안 나왔지? 혹시 사고 난거야?”
표정 없는 친구들에게 재차 물었다.
“죽은 거야?”
불길한 예감으로 흰명주보자기를 휙 벗겼다.
둥근 은 뚜껑이 들어났다.
“뭐야 이거? 영탁이 대가리야?”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친구들이 동시에 말했다.
“열어 보랑께!”
은 뚜껑 속에 친구의 머리가 들어 있을 것 같아 머뭇거리며 도치씨가 물었다.
“언제 죽었나?”
“보름 전에!”
“뭐? 며칠 전에도 통화했는데 보름 전에 죽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영탁이가 죽였어!”
“뭐? 뭐라고? 영탁이가 죽였어? 그럼 자살했단 말이야?”
입을 맞춘 듯 일제히 친구들이 낮은 톤으로 말했다.
“타살이지.”
“어떻게 자기가 자신을 타살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희들 완전 미쳐버렸군.”
황당해하는 도치씨의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이야!”
팽이처럼 몸을 돌린 도치씨 앞에 영탁이가 서있었다.
“너? 안 죽었구나?”
반가움과 놀라움에 도치씨가 눈과 입을 크게 벌리며 은 뚜껑을 가리켰다.
“그럼 이건 뭐지?”
마치 저승사자처럼 눈두덩이 새까만 친구가 말했다.
“홍어지라.”
“뭐? 홍어?”
마량친구가 거들었다.
“영탁이가 잡아 온 것이여.”
으쓱 어깨를 들추며 영탁이 자랑하듯 말했다.
“나가 원동다리 밑에서 이 놈을 걸었는디, 끌어내는 게 장난 아니었당께라.”
물살 빠른 원동교 아래서 홍어를 낚시로 잡았다는 것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도치씨는 믿을 수 없었다.
“홍어가 어떻게 완도에 나타났단 말이야?”
무표정하게 앉아 있던 친구들이 합성으로 말했다.
“물에 사는 것들이 주민등록지 있는 거 봤냐?”
도치씨가 은 접시안의 홍어에 조심스럽게 코를 가져가서 냄새를 맡았다. 삭힌 홍어를 제일 싫어했기 때문이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벌떡 허리를 세운 도치씨가 구겨진 은박지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삭혔잖아?”
“삭혀야 홍어는 제 맛인겨.”
“자네들 우정이 고맙지만 난 못 먹네. 아무리 노력해도 삭힌 건 딱 질색이야.”
“홍어가 금값인디.”
“영탁이 성의를 봐서라도, 한 점 먹어 보는 거이 도리여!”
“히야! 요 새깔 좀 보소!”
“그래도 난 못 먹네!”
“친구람시로 고로코롬 매정혀?”
무표정하던 친구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친구들이 기계처럼 일어섰다.
은 접시 속의 홍어를 갈가리 찢어 들었다.
“왜 이러는 거야?”
뒷걸음치는 도치씨를 영탁이 가로 막고 무섭게 노려봤다.
발버둥치는 도치씨의 입에 친구들이 홍어를 집어넣었다. 사력을 다해 막았지만 웬일인지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생각과 몸이 따로 놀았다. 지독한 홍어냄새가 최루탄가스처럼 도치씨를 파고들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친구들은 사정없이 도치씨의 입에 홍어를 우겨 넣었다.
“우웨엑!”
창자가 올라와 입안의 홍어를 밀어냈다. 간신히 숨통이 트인 도치씨가 발길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야이! 개새끼들아!”
“퍽!”
둔탁한 도치씨의 발길질에 차인 친구들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다시 엉겨 붙었다.
필사적으로 친구를 물어뜯었다.
“아이고 발가락이야!”
친구의 비명소리에 도치씨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금방 아귀처럼 달려들던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도치씨의 틈 사이에서 거꾸로 잠들었던 낚시꾼이 발가락을 싸잡고 팔팔 뛰고 있었다.
도치씨를 향해 낚시꾼이 꽥 소리쳤다.
“왜, 내 발가락을 물고 지랄이야?”
“나보고 왜 성질이오?”
“성질 안 나게 생겼어? 처자빠져 자다 절단 날 뻔 했잖아!”
무좀양말 신은 발가락을 도치씨의 코앞으로 밀며 낚시꾼이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
“아이고, 아파라!”
번뜻 정신이 든 도치씨가 비로소 상황을 깨달았다.
허지만 도치씨는 낚시꾼의 발가락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에 코를 막았다.
심한 구역질이 일어났다.
꿈속에서 맡았던 친구들의 홍어냄새보다 더 지독한 발고린내를 감당하지 못하고 선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몇 번이나 구토를 한 후, 조금 전 선실에서 있었던 상황을 되짚어 봤다.
도치씨가 잠결에 옆 자리 낚시꾼의 발가락을 깨문 것은 잠자리의 관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인트까지 항해하는 2시간동안 비좁은 선실에서 앉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실에서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눕지만 뒤 늦게 들어 온 사람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거꾸로 눕기 마련이다.
발가락을 깨물린 사람도 도치씨의 틈을 비집고 거꾸로 누워 잠이 들었다.
한바다로 나온 낚시선이 파도를 타고 크게 롤링했을 때 도치씨의 취침자세가 바뀌었다.
오른 쪽으로 돌아누웠다.
지독한 고린내의 발가락이 닿을 듯 말 듯 도치씨의 코앞에 있었다.
지독한 발 고린내를 맡으며 도치씨는 삭힌 홍어 꿈을 꾸었다.
삭힌 홍어를 먹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친구를 물어뜯었지만, 그것은 꿈속이었다. 도치씨가 잠결에 물어 뜯은 것은 친구의 손가락이 아니고 수채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퍼트리는 발가락이었다.
선미로 나온 도치씨는 눈물이 나도록 헛구역질을 한 후, 반복해서 생수로 입을 헹구었지만 좀처럼 발가락고린내는 입과 코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고린내에 치를 떨었던 발가락의 임자는 지금 해저바닥을 걸고 쩔쩔 매는 5번 낚시꾼이었다.
한두 번 바닥에서 바늘을 빼내려고 낚싯대를 털던 5번 낚시꾼이 합사 줄을 끊기 위해 원줄을 잡았다.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뿌드득! 툭!”
낚싯대가 두 동강 나서 부러진 1번 대가 수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관장이 달려와서 5번 낚시꾼의 줄을 끊었다.
끊어진 합사 줄을 보고 기관장이 말했다.
“10호 줄도 넘어 보이는데 이런 합사로 낚시하니까 대가 부러지지요.”
5번 낚시꾼이 히죽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기관장 낚싯대나 좀 빌려주소.”
기관장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낚싯대 없어요.”
“흐미, 낚싯배고객서비스차원에서 비상용 대도 비치 안하고 손님 태우고 다닌다요?”
기관장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남의 다리 긁는 소리 그만하고 들어가 쉬던지, 원줄은 살아 있으니까 줄 낚시하던지 알아서 하세요.”
기관장은 후미로 돌아가고, 5번 낚시꾼은 부러진 낚싯대에 채비를 매달았다.
반 토막 난 낚싯대로 줄을 내리려는 5번 낚시꾼을 쳐다보던 도치씨는 참았던 웃음을 트리고 말았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도치씨를 쳐다보던 5번 낚시꾼이 홀더에 꽂혀있는 도치씨의 낚싯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금일 낚시 안 할 것이면 고 낚싯대 나가 좀 쓰면 안 되겠소?”
선상매너도 없고, 발 고린내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아 떨떠름했지만 도치씨는 의외의 말을 했다.
“아까 내가 누웠던 자리에 가면 내 예비대가 있을 겁니다. 그 대를 사용하세요.”
5번 낚시꾼의 눈동자가 거봉만 하게 커졌다.
40분 후.
중 들물 조류가 완만하게 흐르는 포인트로 자리를 옮긴 낚시 선의 클러치 음이 들린 후, 선미에서 포말이 하얗게 일어났다.
도치씨의 예비낚시대로 위기를 모면한 5번 낚시꾼이 캔 음료를 건넸다.
“도사님 덕분에 오늘 편하게 낚시하요잉.”
도치씨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난 도사가 아니요.”
“으메. 나가 거시기해서 도사라는디, 오해마시오.”
“거시기 하다니요?”
도치씨의 이마에 잡힌 주름을 보고 조심스럽게 5번 낚시꾼이 말했다.
“무당님이라면 기분 나쁠 거 같아서.”
말끝을 흐리는 5번 낚시꾼의 하는 꼴이 우스워 도치씨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예비낚싯대를 빌려 준 후, 선실에서 맡았던 5번 낚시꾼의 발 고린내는 묘하게 잊고 있었다.
“나는 무당도 아닙니다.”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5번 낚시꾼이 장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의 명함 한 장을 뽑아 도치씨에게 건네며 싹싹하게 말했다.
“흐미. 나가 실수를 잘 안하는디. 요거이 나의 직업이요.”
명함을 받아 든 도치씨가 빙그레 웃었다.
大韓民國再活用總集荷場.
代表 梁 河 治
명함을 들고 웃기만하는 도치씨에게 5번 낚시꾼이 물었다.
“와, 웃는다요? 재활용집하장이랑께 엄청 큰 사업인줄 알았소? 이름이 그럴 듯해야 장사가 됭께 그라재. 쉽게 말해서 고물상이지라. 헤헤헤.”
도치씨가 말했다.
“직업이야 좋고 나쁘고가 있나요? 이름 때문에.”
“나의 이름이라고라?”
“네, 발음 나오는 대로 불러도 될까요?”
“흐미, 영어로 불러도 나의 이름이고, 독일어로 말해도 똑 같은 나의 이름인디 머씨 그리 어렵소?”
도치씨가 5번 낚시꾼을 쳐다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양아치대표님?”
“머이다요? 나으 가운데 함자는 아가 아니고 강 하짜, 긍께 강을 다스린다 이 뜻인디.”
“양아치. 양아치. 양아치?”
도치씨는 얼른 이름을 고쳐 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네요.”
불쾌한 표정으로 째려보던 5번 낚시꾼이 도치씨가 빌려 준 낚싯대를 쳐다보며 태도를 바꾸었다.
시원하게 말했다.
“한평생 사는 것도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라는디, 발음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쩌겄소? 긍께 양아치라 불러도 무방하요. 편한대로 불러뿌리소. 근디 그쪽은 어떻게 된다요?”
도치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강도집니다.”
“머씨라고라? 강도집이라고라? 흐메! 그럼 조폭하우스란 말인겨라?”
놀란 5번 낚시꾼을 쳐다보며 도치씨가 한자로 설명했다.
본명 굳셀 姜, 길 道, 알 知.
배움을 찾아 굳세게 나아가라는 뜻을 담은 조부의 염원으로 내려진 이름이란 설명에 5번 낚시꾼이 놀란 표정을 풀었다. 곁들여 도치전문의 동해선장이 도치처럼 귀엽다고 붙여준 닉네임을 온오프라인에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으메, 그러고 봉께 영낙없이 도치닮았소잉?”
5번 낚시꾼이 손을 내밀었다.
“강도인줄 알고 참말로 놀래뿌렀소. 근디, 양아치나 강도집이나 일맥상통하는거이 인연인갑소. 안그라요? ”
두 사람은 통성명을 한 후 갑자기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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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항상 건강하십시오